분홍리본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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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권여선 (창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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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집. 처음에 '가을이 오면'을 읽을 때만 해도 이게 단편집이라고 생각을 안하고 읽어서, 끝났을 때 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라던가, 그런 느낌은 전혀 아닌데도 재미 있다고 생각했다. 말투같은 게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묘사들도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 튀지 않으면서 공감은 심하게 되는 것들이었다. 여튼 안정감이 있었다. 내가 소설 읽는다는 느낌을 들지 않게 하는(좋은 의미로) 그런 문체였다.

가을이 오면
분홍 리본의 시절
약콩이 끓는 동안
솔숲 사이로
반죽의 형상
문상
위험한 산책

  단편들이 전부 뭔가에 매여있는 치밀한 기억, 뭔가에 알게 모르게 집착하거나 매여있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것 같았다. 사람사이의 관계를 자연스레, 그러나 엄청나게 연관된 느낌으로 그리고 있는데 그게 독특하고 좋았다.
 
  '가을이 오면'에서 나왔던 엄마와의 관계에 매여있는 여자주인공은 좀 안쓰러웠다. 그런 기억에 매여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행복을 못잡고 넘기는 모습이 슬펐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던, "너 진짜 못됐고 집요하다"라는 말은 내가 들은 것처럼 꽂히더라. 그 말과 여자의 구구절절 집요한 심정 때문인지 이 소설집 하면 이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분홍 리본의 시절'의 선배 부부는 독특했던 캐릭터. 개인적으로 선배같은 남자 타입은 안좋아하지만, 그 선배의 부인도 썩 마음에 드는 존재는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침묵하다가 터트리는 사람. 오히려 더 나약해 보였다. 그게 마지막 몸짓인 것처럼. '나'의 존재는 글쎄... 참견하지 않으면서도 사건을 기다리는 그 모양새가 이해가긴 했다.

  '약콩이 끓는 동안'은 뭔가 치밀하지 않은 듯 하다가도 불쾌감을 자아내는 그런 면이 있었다. 노교수의 행동부터 그 아들들의 행동까지 스멀스멀하게 '나'를 얽매는 느낌. 그런 나에게 갑작스레 들이닥친 불행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반죽의 형상'은 흥미로웠다. 살짝 엇나간 친구관계를 이런 식으로 그린 소설은 처음 봤다. 그것도 한 쪽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는게 재미있었는데, 이 다른 한 쪽이 덤덤하게 풀어내는 말들은 실제로는 전혀 덤덤하지 못한 것들이라서... 뭔가 사소한 부분이 문제가 되는 그런 점을 잘 짚어내고, 또 그런 감정도 잘 설명한 듯한 느낌.

  '문상'에서의 여자는 물론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여자가 가지고 있었을 내면의 상처가 잠시나마 드러난 듯한 모습과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의 갭 때문에 동정심이 들었다. 남자주인공이 문상을 갔으면 좋겠지만.

  '위험한 산책'은 이 소설집 안에 그려진 불행 중 가장 끔찍한 불행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그 전까지 묘사되던 그야말로 쏘쿨하던 여자의 삶과 대비되어 더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보단... 아 이게 당연한 일처럼 그렇게 느껴져서.. 그게 좀 묘했다.

  확 취향은 아닌데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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