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책들의도시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발터 뫼르스 (들녘,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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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된지 좀 됐고 베스트셀러였던 것도 알았지만 꽤 늦게 읽었다. 사실 별 관심 없었는데 사촌오빠네 집에가서 몇 장 보고 마음에 들어서 샀음. 결과는 대만족.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상상력이 돋보인 소설책이 아니었나 싶다. 판타지와 현실이 묘하게 뒤섞여서 어느 한 쪽도 버리지 않은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난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판타지가 가득한 세계관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판타지가 아니라 기존 문학의 형식에 가까웠다는 느낌이 있었다.

  반지의 제왕 식의 뻔뻔한, 이 책은 번역서다 라는 식의 말로 시작하는 '번역'에서부터 군더더기없는 결말까지 마음에 들었다. 순전히 작가답게 그러나 다른 작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점이 정말 즐거웠다. 현실을 적당히 버무려진 큰 상상력이 빛나는 이야기. 게다가 단순히 상상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진행 방식에 있어서도 쫀득쫀득하니 읽는 맛이 살아있더라. 1권 중반의 그 반전 부분에서는 책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나도 같이 놀라고 말았다.

  린드부름 요새의 어린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자신의 대부시인 단첼로트를 통해 위대한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작가를 찾기 위해 책의 도시 부흐하임에 가서 겪게 되는 일들이다. 여기에는 현실에도 있는 서점상 뿐 아니라 책사냥꾼, 부흘링이라 불리우는 지하도시의 책난쟁이들, 또 그림자제왕까지 흥미로운 등장인물이 가득 증장한다. 그 누구도 지나칠 만큼의 역할을 하지 않고 적당히 그러나 매우 즐겁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부흘링들과 함께 있었던 때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부흘링들은 각자 존경하는 작가의 이름을 따 자기의 이름으로 삼고 그들의 모든 작품을 암기한다. 책을 대하는 부흘링의 모습을 보면 아주 책을 사랑하는 그런 장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림자 제왕과의 만남은 약간 슬프기도 했다. 그랬던 것 같다. 그 존재 자체가 좀 슬펐다. 작가가 책을 쓰면서 경지에 이르는 '오름'의 경지를 단첼로트에게 힐데군스트에게 알려주는 부분은 물론 즐겁기도 한 과정이었지만 그가 지상으로 올라갈 결심을 하고 그 뒤에 벌어지는 여정은 씁쓸하고도 슬펐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뭔가 벅찬 감동과 그런 쓰라림이 뒤섞여 이상한 감정을 만들어내더라.

  마지막 장 즈음에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라는 이름의 부흘링이 나왔을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날 뻔 했다. 이 책은 모험을 다룬 이야기치고 내 감정일 절절하게 메우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읽는 것이 아주 즐거우면서도 심정을 건드리는 것이 꼭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들 읽을 때 같아서 묘했음.

  난 아주 아주 좋았다. 연이은 시리즈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없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들녁, 2005, p. 308
좁은문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앙드레 지드 (웅진씽크빅,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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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를 많이 했는데 즐겁지 않았어요... 너무 기독교적인 정서가 묻어나서 그런가. 주인공 제롬 팔리시에와 사촌인 알리사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 둘 다 첫사랑이며 뭔가 아득히 짙은 감정들이 느껴지는데, 행복한 커플이 되지 못했던 이유가 너무 내게는 가당찮아 보여서 그랬다.

  제롬은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구애하는 편이지만 어려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알리샤는 속을 모르겠었고, 알리샤의 동생인 쥘리에트는 너무나 제롬을 좋아하는데도 알리샤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리샤의 속을 알고 나서는 사실 짜증이 났다. 제롬이 자기에게 너무나 빠져서 신을 멀리하게 될까봐 그렇게 군 것이라구요?! 그렇게 죽어서 하늘에 가면 퍽이나 하느님이 예뻐해주시겠네 싶었네... 아 내가 너무 무신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건가? 아무리 알리샤의 일기를 읽어도 감동이 느껴지지 않아서리. 내가 제롬이었으면 사랑이고 뭐고 당장 잊어버렸을텐데 책의 제롬은 끝까지 알리샤만 생각하고 살아가긴 하더라... 목적은 이루었네요 알리샤씨...ㅜㅜ 아 근데 이건 사랑같지 않아 너무 고차원이야... 너무 머나먼 일까지 생각하는 거 같아서 보는 내가 답답했다. 이런 사랑은 봐도 썩 뭐 아릿하거나 그렇지가 않단 말이지...

  난 별로. 내가 공감할 만한 것이라고는 상대방의 마음을 몰라서 헤매는 제롬의 조급한 감정 뿐이었다.
마이코리안델리백인사위와한국인장모의좌충우돌편의점운영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벤 라이더 하우 (정은문고,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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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니가 재밌을 거 같다고 알려줘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워낙에 재밌고 가벼운(내용이야 어쨌건) 내용의 에세이라 두께와 상관없이 금방 읽었다. 부제에서도 알려주듯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백인 중산층 출신 남성이, 한국인 가족과 함께 살고 또 편의점이라고 할 수 있는 '델리'를 운영하며 겪은 일들을 풀어나가고 있따. 단순히 가게 경영담이 아니라,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 가정에 대한 문제도 들어가고, 델리를 운영하면서 겪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중산층 백인 가정에서 자라난 벤은 대학 시절 아내 개브를 만난다. 개브는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정의 자녀로, 그의 어머니 케이는 살아남기위해 억척스러워진 한국인 가정의 어머니이다. 개브는 나이 든 그녀를 위해 가게를 하나 차려주기로 결심하는데, 자신의 직업까지 관두어 가며 그녀에게 정상궤도에 오른 가게를 주고 자신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 가게가 바로 편의점과 같은 델리. 이 델리 사업에는 온 가족이 투입되고, 벤은 생소한 사업에 뛰어들며 갖은 일들을 겪게 된다. 여기엔 비단 가게 일 뿐 아니라 한국인 가정과 살며 겪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에피소드도 큰데, 이 부분 또한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벤은 자신이 일하는 파리 리뷰에서도 여전히 일하는데 두 직장 사이의 갭 또한 신기하고 재미있더라. 가정 이야기도 재밌지만 직장 사람들, 이를테면 파리 리뷰의 기둥이었던 조지 플림튼이나 델리의 만년 직원 드웨인 이야기에서 꽤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일단 소재도 소재고 글도 유머러스해서 읽는 데 재미있다. 근데 재미만 있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줘서 더 좋았다.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맞닥뜨리고 사는 현실 이야기가 비중이 커서... 개브와 케이의 관계를 보면서 자연스레 나와 우리 엄마를 비춰보게 되더라. 희생적인 엄마를 가진 딸이라면 누구나 개브처럼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만나는 사람들 중에선 드웨인이 단연 흥미로웠다. 그의 부지런하면서도 느긋한 성격, 그의 마지막 길까지도 참 영화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만나본 사람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았다.

  재밌다. 꽤 추천하는 편.
팅커테일러솔저스파이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존 르카레 (열린책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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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류님이 빌려주셔서 읽음. 도서관에 신청해놨는데 왜 반납일이 이주가 넘도록 반납하질 않니...? 진짜 매너좀ㅡㅡ 예약 걸었던거나 취소해야지...

  사실 이걸 보려고 이전 작들인 죽은자에게 걸려온 전화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본 셈이었는데 나름 만족스러웠다. 사람들이 스파이 소설을 볼 때 이런 부분을 많이 기대하지 않을까 싶었다. 감정 이입하게 하는 이야기는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였지만, 이 소설이 짜임새나 트릭, 머리 쓰게 하는 구조는 더 빡빡하게 들어가 있었다. 이 소설 쪽은 감정이입보다는 복잡한 트릭과 음모를 파헤치는 재미가 있었다. 둘 다 장점이 다른 거라 뭐가 낫다고 말하기 힘들다. 다만 복잡한 트릭과 스파이 용어들의 등장 덕분에 자꾸 헷갈려서 혼났음. 원래 내용을 몰라도 앞장을 다시 들춰보거나 하지 않고 쭉 보면서 이해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그게 안되어서 곤란했다. 스파이 용어가 특히 자꾸 헷갈려서 다시 들춰보고 들춰보고 그랬다. 뒤에 쭉 정리되어있는데 책 읽을땐 몰랐지. 여튼 위치크래프트라는 고급 정보의 명칭과 멀린이라는 고급 정보원의 코드네임이라는 말만 알면 대충 헷갈리진 않을..듯... 아마도... 아닌가 나만 그런가; 나 넘 대충읽었나...

  영국의 스파이 조직인 서커스 내부에 침투해 있는 '두더지' 즉, 이중스파이가 누군지 파헤치는 내용이다. 전작에서 많이 등장했던 조지 스마일리가 등장해 또 침착하면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피터 길럼의 경우 이전엔 굉장히 여유로운 느낌이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많이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았다. 독백 같은 것들이 특히. 리키 타르는 난 왜 배역이 클 줄 알았지... 뭐 얘 덕분에 컨트롤의 사망 후 덮힌 문제가 드러난 격이라 중요하지 않은 배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느낌도 모르겠더라; 이번 소설은 아무래도 조지와 피터, 그리고 짐 프리도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는 제목은 영국 동요에서 차용한 것인데 소설 안에서는 스파이 축출 작전에서 다섯 명의 의심되는 요원을 가리키는 비밀암호로 쓰인다. 소설 안에서는 팅커, 테일러, 솔저, 푸어맨, 베거맨. 현 서커스 수장인 퍼시 올러라인(팅커), 현 서커스의 새 조직인 런던스테이션의 소장 빌 헤이든(테일러), 정보탐문 에이전트 램프라이터 대장 토비 이스터헤이스(푸어맨), 런던스테이션의 2인자 로이 블랜드(솔저), 그리고 조지 스마일리가 베거맨으로 다섯 명의 후보자가 나온다. 이 중에서 누가 스파이일지는 읽다 보면 아 이 사람밖에 없다... 는 감이 온다. 이게 웃긴게 그냥 감이야... 느껴져. 조지는 딱 아니다 싶고, 둘은 너무 가볍고 권력추구적이고, 한명은 뭔가 존재감이 없다. 그리고 남은 그 한 명의 존재감이 진짜 너무 커서... 아니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이 사람밖에 없다는 느낌이 확확 온다. 근데 그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캐릭터들은 그런 일말의 동정심이랄까 관심도 안가는데 말이다. 소설 안의 인물들도 미심쩍인 부분들을 그 사람에게 발견하면서 동시에 믿고싶지 않았던 것 같다... 증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좇다 보면 모두 씁쓸히 괴로워하는 느낌이다.

  여전히 차분하게 증거를 되짚어가는 스파이 소설인데 다른 소설들보다 좀 위기감이 느껴져서 그건 좋았다. 내가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이 나를 아는 상황에서 이중간첩을 잡아낸다는 게 정말로 쉽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용도 짜임새 있고 그렇다고 여태 전작들에서 다뤄졌던 스파이 개인의 삶이 드러나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난 만족스럽게 봤다.

  마지막에 그 '두더지'가 그렇게 약해진 모습이었던 게 또 이상하게 기분이 묘하더라. 등장 인물들도 그랬겠지.

추운나라에서온스파이(세계추리걸작선6)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존 르 카레 (해문출판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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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테일이에게 빌려서 읽음. 이건 열린 책들 판이 아닌 해문 버전으로 읽었는데 아무래도 번역이 좀 별로였다. 그래도 내용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읽긴 했는데 열린책들 판본으로 다시 읽을까 생각 중... 인데 내가 추리 소설을 다시 읽을 리가 없구나.

  죽은자에게 걸려온 전화보다 더 스파이 개인의 삶의 삶과 심리를 파고 든 느낌이다. '죽은자~'에서 등장했던 조지 스마일리, 문트, 피터 길럼이 모습을 보이는데 주연급은 아니고 반가운 얼굴로 등장하는 정도. 문트가 그나마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상하게도 전편보다 밉살스럽더라...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알렉 리머스. 독일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가 실패하여 요원들을 전부 잃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후 관리인에게 문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잠입하라는 명을 듣는데 요컨대 이중 스파이 같은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독일로 가기 전에 보여지는 알렉의 삶이 사건 자체보다 흥미로웠다면 아이러니일까.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마음에 드는 리즈라는 여자를 만나면서도 그녀에게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알렉의 심정이 담담한 묘사 속에서도 뜨겁게 느껴졌다. 리즈를 향한 마음은 독일에서 일을 하는 도중에서도 아주 잠깐씩 드러나는데 그 잠깐의 무게가 굉장히 크더라.

  독일에서의 활동은 대단한 첩보활동이라기보단 속고 속이고 속지 않도록 노력하는 머리싸움이 도드라졌다. 그것도 꽤 차분한 어조라서 긴박함은 없었는데 긴장감은 크더라. 문트 바로 아래에 있는 2인자 피들러와의 대면은 각자 굉장히 애쓰는 느낌이었다. 피들러가 싫진 않았는데 논리를 따라서 냉철하게 움직이는 느낌이어서 그랬다. 전후 독일로 돌아온 철저한 유태인의 모습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뭐... 하여튼간에 피들러가 그동안 의심해오고 또 그 자리를 노리기도 했던 문트에게서 마음을 돌렸으며, 적절한 증거를 끼워맞춘 터라 리머스의 일은 순순히 풀려간다. 거의 종반까지. 하지만 이렇게 잘 풀리면 추리소설이 아니겠지...ㅎㅎ 문트 쪽의 반박과 그 후에 드러나는 진상은 사실 예상 가능한 면도 있지만, 놀랍기도 하다. 요건 이 소설 하나만의 힘이 아니라 아마 전편에서 밑밥을 잘 깔아준 덕이 아닐까 싶다.

  후에 동독을 빠져나올 때 리머스와 리즈가 벌이는 설전은 스파이 개인의 고뇌를 다시 한 번 담아낸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의 가운데 알맹이보다는 초반과 결말부가 마음에 들었다. 결말부에 이르러서 리머스 또한 리즈 만큼 혼란스러운 듯 한데, 정부가 지시한 일이라 할 지라도 본인의 사상과 맞지 않는 일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정부의 사상과 개인의 사상이 교집합이 있을 순 있어도 합집합일 수 없고, 개인이 곧 정부일 수 없다는 것 같은 당연한 사실들을 사건을 통해 보여주니까 씁쓸하기도 하고. 마지막 리머스의 행동은 그런 틀 안에서 자아를 지키려는 발버둥 같기도 해서 좀 슬펐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죽은자에게걸려온전화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존 르카레 (열린책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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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근처 도서관에서는 요 책이 없어서 테일이에게 부탁해서 빌려 본 소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도 같이 빌려오긴 했는데 일단 순서대로 이거부터 읽었다. 사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때문에 읽은 소설이다. 영화 개봉하기 전에 원작을 보고 싶었고, 원작을 보려고 보니 앞에 시리즈랑 어느정도 주인공이 겹치고 연계되는 부분이 있다길래. 책 초반부에 조지 스마일리에 대한 묘사(와 그리고 어느정도 등장할 것도 같은 앤 서콤과의 관계)가 제법 있어서 읽길 잘한 것 같다.

  스파이 소설이라고 하지만 화려한 첩보물이 아니라 끈질긴 인내를 요구하는 실제 스파이의 생활을 그린 듯한 소설이었다. 난 추리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가 소설 안의 비밀에는 사실 몰입하지 않았는데, 조지 스마일리의 성격과 사고방식을 묘사한 것에는 꽤 매력을 느꼈다. 이 소설은 스파이 생활이 많은 매체에서 그려지듯 매력적이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데, 얼마나 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지, 상급자인 매스턴과의 관계를 통해 보이듯 그 사회가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경직되어 있고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존 르카레 본인이 스파이였기에 가능한 생생한 그래서 빛바래 있으면서도 힘있는 묘사들이었다. 책에 있는 묘사를 본다면 조지 스마일리를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지치고 힘든 중년 회사원의 모습이다.

  조지 스마일리가 조사했던 새뮤얼 페넌이 자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당연하게도 스마일리가 조사할 수록 새뮤얼 페넌이 자살하지 않았으리라는 정황사정이 드러난다. 죽은 그에게 모닝콜이 온 것을 스마일리가 받게 되면서 시작된 의심은 뒤에 숨어있는 스파이의 정체까지 닿는데... 뭐 사건 자체는 앞서 말했듯 난 그다지 신기하진 않았고 흥미롭게 읽을만은 했다. 이 해결 과정에서 페넌 부인, 조지가 스파이 활동을 할 당시에 협조했던 독일의 디터 프라이, 또 디터와 함께 일한 문트 등이 사건에 연관된 인물로 드러나는데 디터 프라이에 대한 묘사가 괜찮았다. 문트 사실 별 관심 없었는데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 등장하는 인물이길래 한 번 더 살펴보는 정도긴 했다.

  조지를 돕는 인물로 멘델과 피터 길럼이 있는데, 멘델이 힘있는 육체파의 느낌이라면 피터는 좀 차분하면서 영특하게 머리를 굴리는 느낌이었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피터 길럼 역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기에 대입해서 읽었더니 더 그런 느낌이더라... 여튼 두 캐릭터 다 소란스럽지 않게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이었다.

  시작 치곤 나쁘지 않았다. 존 르 카레 소설을 읽을 거라면 아무래도 순서대로 다 읽는 편이 괜찮을 거 같으니... 근데 요거 하나만 읽으라고 하면 내 취향일 것 같진 않고. 더 읽어봐야지.

제5도살장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커트 보네거트 (아이필드,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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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 채권자 폴 뱅크스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읽게 된 소설. 커트 보네거트 소설은 뭐 이전에 Long Walk to Forever 말고는 읽어본 적 없기에 요게 처음 읽는 장편 소설이었다. 아는 분이 번역과 취향을 탄다고 그러셔서 얼마나 그러려나 했는데 아 몇 장 넘기면서 알았다. 이거 진짜 취향 타겠다고... 그래도 내 취향엔 맞았으니 다행.

  살벌한 제목과는 달리 소설이 그렇게 어둡지 않다. SF적인 상상력도 섞여있고 아무래도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유머 섞인 진행 탓에 어둡지 않고 오히려 피식 피식 웃게 되는 장면(롤런드 위어리가 죽어가며 남긴, 내 원수는 '빌리 필그램'을 보라!)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고 정말 반전에 대한 사상, 그런 무거운 주제를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짧은 문단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설은 기존의 서술방식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 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전쟁에 참가하여 참혹한 드레드덴 폭격을 목격하게 된 빌리 필그램의 일화는 가볍게 진행되지만 읽다 보면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수없이 반복되는 '그렇게 가는거지' 라는 말은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들 안에서 안정을 찾게 만든다. 그건 세상의 섭리라 받아들여야하지만 그 안에서 더 나은 것을 만들어가야하는 느낌을 주었다. 우주인들처럼 우리는 법칙을 이길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나가야하는 느낌. 그렇게 가는거지.

  괜찮았다. 적어도 앞으로 커트 보네거트 소설을 찾아 볼 마음이 들 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사랑의추구와발견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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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희곡 되게 안좋아함... 연극 보는 건 좋아하는데 희곡 대본 보는 건 왠지 내게 항상 고난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재밌게 읽었냐, 그런 불편함이 없었냐 묻는다면 아니요. 전혀요... 그냥 파트리크 쥐스킨트꺼라 샀어요. 아놔 로시니도 남아 있는데 큰일이다.

  희곡 중에서도 독립 예술영화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 진행을 보여주는 희곡이었다. 난 사실 글로 봤어도 썩 이해를 잘 한 편이 아닌데 영상으로 봤으면 더 못했겠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 쪽 신화를 좀 더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음. 이건 오르페우스 신화가 모티프인데 난 그 이야기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알지만 좀 설아는 느낌. 항상 서구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그 사회에 전반적으로 뿌려져있는 문화지표를 내가 알지 못해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모르고 넘어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작곡가 미미와 그의 비너스, 슈테른헨의 사랑 이야기. 그들의 친구인 테오와 헬레나 이야기도 나오긴 하지만... 중심은 요 둘의 이야기. 비너스와 헤어진 뒤 사랑 때문에 죽음을 택한 미미과, 그런 미미를 좇아(죽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물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신화의 그것과 같다. 이후의 진행은 그들에게 행복을 다시 찾아주는 듯 하다가, 사소한 일을 계기로 그들은 다시 갈라져버리고 만다. 그들이 다시 조우하는 장면은 앞선 두 번의 이별 탓에 더 무겁고 진한 회한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뭐 난 그렇게 크게 공감하거나 열중하면서 본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다 저렇다 하는 감정만 수박 겉핥듯이 안 느낌이로다...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는 좀 다를라나 몰라도 이건 내 취향이 아니었네. 쥐스킨트의 소설들은 모조리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걸 이해하기에 난 너무 가벼운가봐.
머큐리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열린책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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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책들의 도시 감상문 써야하는데 그건 넘 재밌어서... 이거부터 써야지. 전에 몰아 샀던 아멜리 노통브 책의 마지막 권. 한 여섯권 일곱 권 읽은 것 같은데 맞나 아닌가... 여튼간에...
 
  난 이제 앞으로 아멜리 노통브 소설은 다시 읽지 않을거란 생각을 굳혀준 소설.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고 그 안의 궤변이 넘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집어든 책까지 이래서야. 게다가 이 책은 재미가 없었다... 내 취향에 맞았던 건 사랑의 파괴, 앙테크리스타,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까지만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머지 책들은 소재에 그닥 관심도 안생기거니와 자기복제에 가까운 작품들이라 시간이 아깝다.

  그나마 이 소설은 결말이 두 개여서 좀 신선하려나... 근데 진행 자체는 여태껏 읽은 책 중에 가장 별로였고, 궤변에 넘어가지지가 않고 그냥 짜증만 나는 그런 대사들이어서 매력도 없고 설득력도 없고...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짜증나고. 그나마 결말 2가 있어서 좀 다행이려나. 결말 1만 읽었을 때에는 책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별로였다. 그건 해피엔딩도 뭣도 아니라 그냥... 다시 읽고싶지 않은 그 무언가... 엔딩 2는 그나마 나았다 싶은데 그것도 결말의 결말 부분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음. 내가 하젤이었다면 프랑수아즈의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도 남았을텐데...?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리스인조르바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지은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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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명작이래서 샀었나... 이런 식으로 사서 안 읽고 있는 책이 꽤 있을 텐데 요건 어째 금방 읽었다. 아니 책 읽는 시간 말고 책 읽기위해 집어드는 시간이 짧았단 소리..인데 뭐 별로 중요하지 않군.

  재밌다. 주인공이 만난 그리스 사람 '조르바'는 정말 독특하고 톡톡 튀며 개성있는 캐릭터. 가끔 동조하지 못할 법한 소리를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끌린다. 그는 못되거나 사악한 이가 아니며 약은 짓을 하거나 바보같은 짓거리를 벌이면서도 그 나름의 논리와 양심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조르바가 가진 자유로움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보이며 그것이 예순을 넘은 노인 조르바에게 청년의 그것보다 더한 생기를 부여한다. 그런 자유로움 또한 그가 겪은 많은 인생사 속에서 탄생한 것이겠지만. 소설 속의 '나'가 박학다식하지만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서생에 불과하다면 조르바는 그 정 반대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차이가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게 다가옴. 캐릭터가 일단 충실한데 내용 자체도 훌륭한 지라... 사실 한 번 읽은 지금 다 이해했다고 하기 힘들고, 시간을 들여 여러 번 읽어봐야 할 듯 하다.

  끝으로 갈 수록 결말이 어느 정도 짐작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되게.. 내 생각보다 엄청 먹먹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도 왠지 편지를 받은 나의 심정이 내게 그대로 절절히 와닿는 것 같았다. 난 오히려 '나'가 느꼈던 친구의 죽음, 그 부분보다도 더 슬프고 사무치더라. 소리쳐 울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나 무거운 가슴을 가눌 수가 없는.

  완전히 동조할 순 없지만 참 닮고 싶었다. 또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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