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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식의 뻔뻔한, 이 책은 번역서다 라는 식의 말로 시작하는 '번역'에서부터 군더더기없는 결말까지 마음에 들었다. 순전히 작가답게 그러나 다른 작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점이 정말 즐거웠다. 현실을 적당히 버무려진 큰 상상력이 빛나는 이야기. 게다가 단순히 상상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진행 방식에 있어서도 쫀득쫀득하니 읽는 맛이 살아있더라. 1권 중반의 그 반전 부분에서는 책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나도 같이 놀라고 말았다.
린드부름 요새의 어린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자신의 대부시인 단첼로트를 통해 위대한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작가를 찾기 위해 책의 도시 부흐하임에 가서 겪게 되는 일들이다. 여기에는 현실에도 있는 서점상 뿐 아니라 책사냥꾼, 부흘링이라 불리우는 지하도시의 책난쟁이들, 또 그림자제왕까지 흥미로운 등장인물이 가득 증장한다. 그 누구도 지나칠 만큼의 역할을 하지 않고 적당히 그러나 매우 즐겁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부흘링들과 함께 있었던 때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부흘링들은 각자 존경하는 작가의 이름을 따 자기의 이름으로 삼고 그들의 모든 작품을 암기한다. 책을 대하는 부흘링의 모습을 보면 아주 책을 사랑하는 그런 장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림자 제왕과의 만남은 약간 슬프기도 했다. 그랬던 것 같다. 그 존재 자체가 좀 슬펐다. 작가가 책을 쓰면서 경지에 이르는 '오름'의 경지를 단첼로트에게 힐데군스트에게 알려주는 부분은 물론 즐겁기도 한 과정이었지만 그가 지상으로 올라갈 결심을 하고 그 뒤에 벌어지는 여정은 씁쓸하고도 슬펐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뭔가 벅찬 감동과 그런 쓰라림이 뒤섞여 이상한 감정을 만들어내더라.
마지막 장 즈음에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라는 이름의 부흘링이 나왔을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날 뻔 했다. 이 책은 모험을 다룬 이야기치고 내 감정일 절절하게 메우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읽는 것이 아주 즐거우면서도 심정을 건드리는 것이 꼭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들 읽을 때 같아서 묘했음.
난 아주 아주 좋았다. 연이은 시리즈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없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들녁, 2005, p.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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