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리본
감독 미카엘 하네케 (2009 /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이탈리아)
출연 마리사 그로왈트,야니아 파우츠,미카엘 크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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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류가 권해줘서 봤다. 처음엔 이거 언제볼라나, 싶었는데 또 금방 보게 되는구나. 역시 뭔갈 하는 건 타이밍. 그때 그때 적절한 순간이 있는 것만 같아...ㅋㅋㅋ

  세계1차대전 직전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다가, 흑백영화라서 좀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영상적인 면에서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밝은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는 것처럼 화면이 선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자체의 느낌은 아무래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답답하다기 보다는 기저에 깔려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훔쳐보는 게 흥미로움에 가까워서 재미있었다.

  영화는 노인이 된 교사의 나레이션(에른스트 야코비)로 시작되고, 중간 중간 개입이 있지만 그 당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악이 어떤 식으로 피어나는 지에 대해, 은유적이지만 또한 직접적인 느낌으로 설명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로 구분되어 있던데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사소하게 양배추 밭을 흐트러놓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 일들은 점점 커진다. 남작의 아들 시지(피온 무테르트)가 거꾸로 매달린 채 얻어맞거나, 화재가 일어나거나, 나아가 다운 증후군 아이인 카를리(에디 가힐)이 심각하게 얻어맞는 일들로. 사건의 강도가 중요하다기보단 사건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 속에 피어나는 감정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의가 창궐하게 된 계기는 또 무엇인가. 영화는 그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일상적인듯 비틀려있다. 농부는 아내가 죽어도 내년의 일을 위해 남작에게 항의할 수 없다. 풍족하게 살고 있는 남작(울리히 터커)과 남작 부인(우르시나 나르디)의 집안에도 부부문제가 강렬히 드러난다. 남작부인의 변덕만으로 일하러 왔던 에바(레오니 베니쉬)는 쉽게 해고된다. 목사(버그하트 클로브너)는 아이들을 신심을 바탕으로 한 강한 압제 속에 키운다. 클라라(마리아-빅토리아 드래거스)와 마틴(레너드 프로소프)가 받는 스트레스는 목사의 앞에서 해결되지 않지만, 동시에 뒤에서는 스멀스멀 커간다. 마틴은 자위를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몸이 묶이기까지 하는데, 이 때의 표정이 참 그랬다. 난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던 마틴을 붙잡고 교사(크리스티안 프리에델)가 왜그랬느냐고 묻자, 마틴은 "신이 자신이 죽질 않길 바라나봐요"라고 대답한다. 다른 집의 아돌프(레빈 헨닝)은 새로 낳은 아기에 대한 발언과 형제를 밀쳤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뺨을 얻어맞으며, 이런 그의 스트레스는 아기방의 창문을 열어두는 것으로 발현된다. 여행을 갔다 돌아온 시지는 아이들에 의해 강에 밀쳐지기도 한다. 마을의 의사(라이나 보크)는 산파(수잔느 로타)와 불륜관계를 맺어오지만 그녀를 잔인한 방식으로 버리고 딸인 안나(록산느 두한)을 추행한다. 보이지않는 모든 것들이 잘못되어 있었다. 게다가 있을법한 이야기라 더 신경을 곤두서게 하더라.

  그나마 밝은 부분을 꼽으라면 교사와 에바의 연애였지만... 뭐 이것도 완전 밝다고만은 할 수 없고. 안나의 동생 루돌프(밀얀 카틀렌)가 죽음에 대해 묻는다던가, 목사의 아들 구스타브(티볼트 세리에)가 새를 들고 목사에게 키워도 되느냐 묻는 대화장면 같은 끔찍하지 않고 또한 은유적이 장면들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참 거식했던 것은 사실.

  여튼 이런 모든 상황과, 마을에서 일어나는 수상쩍은 사건들이 그나마 해결되려는 조짐을 보였다가 그대로 소멸해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눈치를 챈 교사가 사실을 목사에게 언급했을 때 목사가 내보이는 반응은 역겨운 것이었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니, 그런 사고가 아이들을 어떻게 자라게 될 지는 그 뒤에 벌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있기에 보이는 거겠지.

  문제가 제시되지만 문제의 해결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다기보단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던 영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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