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 변정주
9월11일, 지누가 보여줘서 보러 갔다옴. 평일 공연은 여덟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살인의 추억 안봤다. 그 유명한 작품을 왜 안봤냐느냐면... 뭐 인연이 안닿았나 보지; 아 그래도 아예 쌩짜 안본건 아니고 드문드문 보긴 봤음. 앞에 뭉텅 짤린 채로도 봐보고, 뒤에 뭉텅 짤린 채로도 봐보고, 중간이 뭉텅 잘린 채로도 봐보고. 그래서 대충은 안다. 매끄럽게 연결이 안돼서 그렇지 본 거나 다름 없... 아, 이렇게 말하면 영화 하시는 분들에게 실례; 아무튼 그래서 본 연극이 영화랑 어떻게 다른가는 확인하면서 볼 수 있었다. 보러 가기 전에 무섭다는 소릴 들었는데 무서운건 아니고 깜짝 놀란 장면이 하나 있긴 했음;
살인의 추억에서는 송강호와 김상경의 캐릭터 대비가 심했는데, 연극에서는 일단 캐릭터도 좀 달랐고, 그런 대비보다는 사람들 전체를 고루고루 잘 다룬 느낌. 김형사(정승길)와 조형사(이협)의 대비가 있긴 했지만, 뭐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김형사 서울대 나온 엘리트 출신인데, 생각보다 그렇게 냉철하거나 엘리트스럽지 않았음. 가을 1, 가을 2할때는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다. 아 막판 가서는 좀 비열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또 그 와중에서 귀엽고 막. 조형사는 무식하고 다혈질인 캐릭터. 그렇게 입체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김반장(손종학)에게서는 살인의 추억 속 김상경의 캐릭터가, 또 송강호의 캐릭터가 함께 보였다. 그렇지만 반장이라고 해놓고 별로 하는 거 없는 거 같아서 짜증났음. 아무튼 연극이랑 영화는 캐릭터가 일치한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극 내내 싸움이 참 잦아서, 버럭버럭 하는 씬이 어찌나 많은지. 감초 역할인 박형사(유연수)가 계속해서 말리지 않았다면 싸움판. 박형사 캐릭터는 참 감초 역할도 잘했고, 상황을 마무리 하는 역할도 잘 했고. 또 그래서 그런지 배우의 능청스럽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참 눈에 띄더라.
보면서 짜증났던 캐릭터는 박기자(최유선); 아 정말 난 저런 캐릭터 너무 싫다. 완전 민폐 그 자체의 인간. 사건에 뭐 큰 도움을 주긴 주는거냐. 도대체 왜 서 내부로 들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로맨스 라인을 곁들여 주며 웃음도 자아냈던 미스김(이유선)은 뭐 그냥 그냥 소소한 재미를 엮는데 좋더라. 귀여웠음. 또 공장에서 보낸 사내, 정신병자 용의자의 친구 우철로 나왔던 김형중씨. 아 참 순박하고 어리버리하고, 그러면서도 좀 얍삽해 보이는 그런 연기를 했는데 잘하던걸.
맨 처음 용의자였던 정신병자(영화에서의 '향숙이'를 외치던 그 분;), 두 번째 용의자였던 술꾼 남씨, 그리고 정말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이 셋의 역할은 이현철씨가 1인 3역을 해 냈다. 처음과 두 번째 용의자가 너무나 바보같고, 모자란 캐릭터였기에 웃음 내는데는 정말 최고였다. 나올 때마다 쳐웃었음; 그런데 마지막 진짜 범인같던 용의자 역할을 할 때에는 정말 사람이 확 바뀌더라. 마지막에 조소를 흘리며 고개를 드는 장면에서는 소름 돋을 정도로 잔인해 보였다. 헐, 영화에서 박해일은 좀 뭐랄까 무덤덤한 느낌이었는데 이 캐릭터는 정말 소름끼쳤어; 그만큼 이현철씨가 연기를 잘 하기도 했고...
내가 기절할만큼 놀랐던 김형사 미치는 씬(...) 아 나 진짜 극장에서 기절하는 줄 알았네. 갑자기 불쑥불쑥 이런거에 놀라는 나로서는, 그 문 열리는 거에서 얼어버렸다. 그림자가 흩날리는 그런 장면도 완전 소름 쫙-_-; 엄청 무서운건 아닌데, 연극이잖아. 바로 앞에서 꽝꽝 거리는데 영화보다 더 놀라서 완전 혼 날아가시는줄.
아, 이 연극, 배경이 경찰서 사무실 셋트에서 바뀌지 않는다. 보면서 은근슬쩍 장면 전환하는 연극도 꽤 봤는데, 하나의 배경에서 이렇게 다채롭고 재미있게 사건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왔다. 그러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잘 설정해 놓은 것이, 굉장히 신기했음.
오래간만에 본 연극인데, 실망하지도 않았고 참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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