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타이거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SF소설
지은이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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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읽으면 바로바로 쓸 수 있었으면.. 읽은 지 일주일 넘은 거 같은데. 꼭 다까먹고 쓰네ㅋㅋㅋㅋ 하여튼 다류가 빌려줘서 봄. SF계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고 해서 흥미가 있긴 했지만, 또 SF라서 해서 그닥 볼 생각은 없었는데...ㅎㅎ 만나러 갔는데 빌려주길래 읽기 시작. 절판되었다가 다시 잠깐 복간되어서 알라딘에서만 팔고 있는 것 같다. 마음에 들면 사려고 했는데 살 정도로 마음에 들진 않았음. SF가 내게는 안맞아요. 원제가 The Stars, My Destination이던데 왜 한국어 제목은 타이거 타이거로 했는지 모르겠다. 완전 안어울리는 건 아니니까 된건가...

  공간이동 능력인 '존트'가 일상화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수준 이하의 노동자 걸리버 포일이 주인공으로 등장. 걸리버 포일이 타고 있던 우주선 '방랑자 호'는 파손되어 우주를 떠돌게 된다. 그 안에서 거의 6개월의 시간동안을 간신히 살아남은 걸리버 포일은 마침내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만한 우주선, '보가'를 발견. 하지만 보가는 걸리버 포일의 구조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쳐버린다. 이 분노가 걸리버 포일의 탈출 의지를 불태워 걸리버 포일은 미아상태를 벗어나고, 동시에 보가에게 복수하기 위한 일들을 시작한다는 이야기. 그 탈출 사이에 '현대'의 사회와 전혀 다른 '과학인'들이 사는 곳에 불시착하면서 얼굴에 '방랑자N♂MARD'라는 문신이 새겨지는데 이게 걸리버 포일을 구분하는 일종의 표식이 되어버린다. 문신을 지운 후에도 분노할 때엔 마치 호랑이처럼 얼굴에 문양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여튼간에 또 과학인이 사는 소행성에서 탈출하여 지구로 돌아온 걸리버 포일은 '보가'를 향한 복수를 준비해나간다.

  근데 이 복수의 과정이라는 게 되게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처음에 좀 놀랐음. 주인공 자체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처럼 선량한 느낌은 전혀 없고, 무지했던 동물이 복수를 위해 거듭난다는 느낌이어서 그나마의 선한 의지는 막판이 가기 전까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난민인 가족을 둔, 일방 텔레파시 능력자 로빈을 괴롭히기도 하고, 정신병원에 갇힌 뒤 만난 지즈벨라를 배신하기도 한다. 무자비했던 과정들은 교육을 통해 점점 나아지긴 하는데 본성만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안티 히어로 같은 면모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더라. 그렇다고 프레스타인이나 그의 딸 올리비아, 다겐함과 양-요빌의 편에 서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여타 선량한 주인공들과는 약간 달랐다는 소리.

  방랑자 호에 있던,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PryE 10kg에 의해 걸리버 포일은 여러 사람의 표적이 된다. 본인은 별로 그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부를 획득하고 '보가'와 관련된 인물을 찾아나가고, 그 최상위에 위치한 프레스타인을 몰락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뒤에 말끔하게 변하는 모습은 확실히 몬테크리스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보다 저급이라는 건 옆에서 로빈의 코치를 받았다는 데에서 드러나긴 하지만서도 이 정도면 그 이전의 노동자 걸리버 포일이 아니었으니까. 거기서 프레스타인의 딸인 올리비아에게 홀딱 반한건 좀 웃기긴 했다만. 워낙에 본능적인 포일이었던 터라 이해도 갔다. 물론 사랑, 사랑이 모두를 갈라놓지만.

  '보가'호가 방랑자호의 구조신호를 무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안에 있던 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우주공간에 버리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이 일의 꼭대기에 올리비아가 있다. 맹인인 자신의 불행에 다른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이었던 것. 이 사실을 알고 거의 폭주하게 되는 걸리버의 모습이 재미있었음.

  마지막의 걸리버는 그동안의 '개인적인 복수'의 면모를 모두 지우고 일종의 영웅 역할을 하는데, 판단 자체를 수뇌부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아닌 개인들에게 맡겨버린다. 걸리버 포일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 있어서 '우주 존트'를 실행했건 말건 그건 내게 중요해보이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깨우쳐가고,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음. 그리고 그 성장의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발돋움 한 게 인상깊었다.

  걸리버가 폭주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책에서 쓸 수 있는 표현법을 많이 썼다. 글자를 늘이거나, 키우거나, 모양을 변경하고 배열하는 방식들. 책 안에서 시를 보는 것처럼 신선했음. 순수문학에서 많이 보지 못했던 방식이네요.

  이야기가 재밌고 뭘 말하려는 지는 대충 알겠는데 느낌은 고만고만했다. 확 와닿지 않더라. 인물의 짐승같은 매력으로 커버하기엔 내 취향까진 아니고 재미는 있고...

"너는 누군가?"
"어디에서 왔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 p. 36

  "내가? 나는 살아가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을 되돌려주었어. 일반인들은 우리같이 무리하게 몰아대는 사람들 때문에 오랫동안 매맞고 끌려다녔어. 억지로 몰아대는 사람들...... 세상을 자신들 앞에 꿇어앉히지 않고는 못 배기는 호랑이 같은 인간들이 끌고 다녔다고. 우리는 모두 호랑이야. 우리 셋 다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대체 뭐길래 강제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모든 결정을 도맡아 하려는거야? 이제 세상이 알아서 삶과 죽음 사이를 선택하도록 놔두라고. 왜 책임을 지려 하냔 말이야?"
  양-요빌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원해서 책임지려는 게 아니야. 우리는 내몰린 거야. 평범한 사람들이 피하고 있는 책임을 대신 지도록 강요받고 있는 거라고."
  "그럼 피하지 못하게 하라고. 자기 의무와 죄를 맨 처음 그걸 잡은 기형아의 어깨에 떠넘기지 못하게 하라고. 언제까지 세상의 속죄양 노릇을 하며 살 생각이야?"

『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 p. 376

내 이름은 걸리버 포일.
내 나라는 지구.
내가 머무는 곳은 깊은 우주.
그리고 내 목적지는 별들.
 
『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 p. 381
바이킹:오딘의후예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역사소설
지은이 팀 세버린 (뿔(웅진문학에디션),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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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형제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팀 세버린 (뿔(웅진문학에디션),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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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킹의 삶을 다룬 팀 세버린의 팩션. 갑자기 바이킹 이야기가 너무 읽고 싶어져서 발병났었을 때 이 책을 알게 됐는데, 그 당시엔 1권인 오딘의 후예만 나와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꽤 지난 후라서... 2권이 안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안샀었는데, 2권이 나오면서 두개 같이 삼. 트릴로지라 아직 3권이 출판되어야만 한다. 2권까지 출판해놓고 3권 출판 안해주면 진짜 출판사 악마....

  작가가 이쪽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소설마저 자연스레 읽힌다. 아이슬란드의 전설들을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만든 이야기라지만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이렇게 살았겠구나 싶었다. 그 몇몇 부분이라는건 옛 신앙, 즉 오딘과 북구신들을 믿는 주인공 토르길스의 영적 능력에 관한 부분인데... 요건 뭐 소설적 픽션부분이라서. 이 부분만 빼면 나머지 생활상은 참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그려냈다. 역사소설로서의 가치도 뛰어난 듯. 난 바이킹 생활사를 알고 싶었던 거라서 그 부분에서는 굉장히 만족했다.

  첫 권은 토르길스의 성장배경에 관한 이야기들. 아직 토르길스가 어떤 능력을 갖추기 전인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흥미진진했다. 특히 수도원 이야기가 가장 인상에 남았음. 빈란드의 대학살은 오히려 와닿지는 않았고... 어쨌든 첫권까지만 해도 애가 좀 덜자랐다, 한 북구 사람으로서 확고하진 않구나 그런 느낌이 강했는데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보여서 좋았다. 두번째 권에서는 전사로서도 좀 자라고 그러는데, 확실히 토르길스 자체가 굉장히 뛰어난 전사라는 생각은 안든다. 다른 쪽에서 재능을 보이긴 하지만 그게 막... 천재적인 느낌은 아니어서 더 좋았음. 일반 사람이 어떻게 고생해서 어떤 사건들에 휘말릴 수 있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그런 게 느껴지니까. 사랑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고달퍼 하는 모습들이 보기 즐거웠고, 사람들을 하나 둘 잃어가며 가슴 속에 굳은 의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특히 의형제인 그레티르와 관련한 일들은 심장이 바짝 쬐어들었다. 난 배드엔딩 안좋아하는데, 그레티르는 처음 봤을 때부터 느껴졌다. 얘가 어떤 식으로 죽어갈지가 보여서 슬펐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고 좋았던 캐릭터였음. 너무 바보같이 우직하고 자기를 변호할 줄 모르긴 하지만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솔직하고 순진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옛 북구인의 생활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소설 자체의 재미로서도 떨어지지 않았음. 만족했다. 제발 3권만 나와줬으면. 제발.
겨울여행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문학세계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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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지 거의 삼주 다 되어 가는 듯. 너무 쓰기 귀찮아서 그만... 내용 더 까먹기 전에 쓴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문학세계사는 표지 디자인을 더 신경쓸 필요가 있다. 이번에 아멜리 노통브 책을 좀 샀는데, 책 표지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는 건 문학세계사 버전. 그나마 살인자의 건강법과 적의 화장법은 문학세계사 거 치고 괜찮긴 했다만 열린책들 표지와 비교되는 건 사실이다. 겨울여행이 그 표지들 중 가장 심한듯 하다. 물론 내용이 가장 중요하지만 때로는 포장도 중요한 법이에요.

  산 다른 책들은 이미 읽어봤거나, 혹은 유명해서 샀는데... 이 책은 시간인데 그냥 샀던게 책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사랑을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이름의 첫글자를 연상시키는 건축물을 비행기로 폭파시키려 하는 내용. 황당무계하지만 이런 막무가내식 설정이 마음에 들어서 사게 됐다.

  주인공 조일은 평범한 남자. 그러다가 일하러 들른 집에서 아름다운 여자 아스트로라브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알리에노르 라는 이름의 작가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알리에노르는 아스트로라브가 맹목적으로 보살피고 있는 정신지체가 있는 작가. 조일은 아스트로라브에게 끊임없이 구애하지만 항상 그 사이에 껴 있는 알리에노르 탓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그의 사랑은 점점 간절해지고 커가는데 아스트로라브는 수동적이고 또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어느정도 사랑이 풀려나갈 때 조차도 아스트로라브는 많은 것을 내어주지 않는다.

  알리에노르가 내뱉는 말들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말보다 드러나는 행동과 상황 같은 것들을 보면 의외로 가장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녀는 소설 내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왜냐하면 조일이 하는 행동은 아스트로라브에게 관련된 것이고, 아스트로라브의 행동은 또한 알리에노르에게 통하기에.

  사랑때문에 너무 힘이들어 아스트로라브를 사랑하는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에펠탑을 파괴하려는 조일은, 대책없는 낭만주의자이다. 그의 생각 속에서 현실과 상상은 마구 뒤섞여 있는 듯 하다. 실제로 깨진 병 하나로 비행기를 납치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적지만, 그는 그것을 굳건히 믿고 있다. 보는 나조차도 왠지 설득되어버린다.

  실제로 조일이 비행기를 납치 하는지, 안하는지보다는 그에 깔린 면면의 생각과 감정들이 중요했던 이야기. 조일이 납치에 성공했을까? 그건 중요치 않다. 조일이 아스트로라브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었을까? 난 그것만큼은 전자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성공했을 거라 본다.

  가볍지만 괜찮았다.
어떻게살인자를변호할수있을까
카테고리 정치/사회 > 법학 > 법학일반 > 법학일반서
지은이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갤리온,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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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가 자신이 변호했던 사건들을 토대로 지은 책. 어떻게 변호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하고 있긴 한데,방법론에 관한 것이라기 보단 영화같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엄청 가벼울 거라는 걸 알고 사서 방법같은거 안나와 있다 뭐 그런 부분에서 아쉽진 않았고 오히려 이 영화같은 사건들에 더 즐거워하며 읽었다.

  총 열 한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 안타까운 것들, 무서운 것들, 또 감동적인 실화들이 뒤섞여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에디오피아 남자'였고, '행운'과 '첼로', '서머타임'이 인상에 남았다. 앞의 두 이야기는 감동적인 이야기였고, 두에 두 개는 씁쓸한 이야기였다. '에디오피아 남자'와 '행운' 둘 다 불행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이 그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보아 기분이 좋았음. 에디오피아 남자의 프랑크는 천성이 착한 사람인 것처럼 보여져서 그가 갖게 된 행운에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행운에서의 이리나와 칼레는 서로를 보듬어주며 잘 살아갈 테고. '첼로'의 경우엔 남매에게 찾아든 불행과 그 결과를 두고 왜인지 자꾸 아버지를 탓하게 되더라. 동생 레온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 테레사를 탓할 수가 없어서 더 슬펐다. '서머타임'은... 범인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누군가가 평생 죄를 안고 살아갈 걸 암시해주더라.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이야기들만 말했지만 다른 사건들도 흥미로웠음. 소설책을 읽는 기분으로 봤다. 재미있었음. 다만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어쨌건간에 이 책은 실화를 이 변호사의 입을 빌어 말하기 때문에 실제 사건과 꽤 차이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 거 신경 안쓰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기분으로 본다면 더 재미있을 듯.
우아한거짓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청소년소설
지은이 김려령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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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거스미스 다 읽고 읽기 시작한 책.. 인데 금방 읽었다. 워낙 짧기도 하고 잘 읽히는 글이라 후딱 읽음. 같은 작가의 작품인 완득이때와 다르지 않았다. 이 작가 참 글이 잘 읽힌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타겟을 잡고 나와서 그런가 딱히 어려운 말들을 쓰는 것도 아니고, 대화 위주로 돌아가서 글이 쉽게 쉽게 읽힘. 그리고 그 대화라는 것들도 실제 일상에서 쓰이는 대화같은 맛이 있어서 재미가 있다.

  소재가 좀 특이해서 샀는데, 읽고 나니 소재에 비해 흔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할 건 이 쪽이 많긴 한데 완성도 쪽은 완득이 쪽이 높은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이게 재미없었단 건 아닌데 작가의 역량이 다 발휘되었다는 느낌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어느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자살한 소녀 천지.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 천지의 엄마, 동생 만지, 친구 화연, 미라의 이야기. 미라의 언니 미란의 이야기도 있고, 그들의 아버지, 옆집의 오대오 아저씨까지 오밀조밀하게 이야기가 이어져 있다. 천지가 죽기 전까지의 상황이 많이 나타나는데 인간관계에 얽힌 게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친구인 화연과 미라와의 관계가 가장 흥미로웠다. 화연이 약은 여우타입은 어디에나 있어서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미라같이 깊게 발들이진 않으며 적당히 간섭하는 수준의 애들도 많으니까... 고 나이대의 사회를 잘 잡아낸 것 같았음. 엄마와 만지와의 관계는 틀어짐이라기보다는... 일상에의 무심함? 이런게 드러나서 좋았다. 천지 주변의 관계 말고 엄마와 미라 아빠와의 관계도 흥미로웠고...

  이미 죽어버린 상황에서 시작해서 어떤 해결이 나온다기보단, 주변을 되짚어가는 그런 느낌이어서 내가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다시 생길 수 있는 다른 문제의 해결이 제시되긴 했지만 그건 뭐 천지와 더 이상 인연이 없는 이야기니까.

  이 책은 아마도 사촌동생 줄 듯ㅋㅋㅋ 그래도 괜찮았다.
핑거스미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세라 워터스 (열린책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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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기무니에게 빌려서 읽은 세라 워터스의 소설. 벨벳 애무하기에 이은 레즈비언 3부작 중 하나인데, 나머지 한 권은 언제 발매가 될지 모르겠다. 좀 됐으면 좋겠는데요...

  일반 사람들에게 레즈비언 문학을 추천하라면 벨벳 애무하기 보다는 이 소설을 추천할 것 같다. 벨벳 애무하기 쪽이 연애담으로서 훨씬 더 재미있었지만 아무래도 좀 강렬하니까. 가볍게 이 소설로 시작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소설이 가볍다는 소리는 아님. 1부 끝나고 나오는 반전에서 너무 놀라서 문자했을 정도니까. 2부 시작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의 전말인 인물에 대해서는 정말 충격받았었고... 굳이 레즈비언 소설이 아니더라도 미스터리 소설로서도 좋았다.

  핑거스미스는 도둑을 뜻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은어. 교수형을 당해 죽은 어머니를 가진 핑거스미스 수전은 석스비 부인의 손에서 자라난다. 석스비 부인은 자기가 맡고 있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수전을 정성들여 키우고, 수전 또한 런던의 빈민가에서 자란 거 같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전의 앞에 젠틀먼이 나타난다. 젠틀먼은 번듯한 사기꾼으로 종종 석스비 부인의 집에 들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결혼을 해야만 재산을 받을 수 있는 부잣집 딸 모드 릴리를 꼬셔서 재산을 가로채는 일을 하려 한다. 그리고 이 계획에 수를 필요로 하며, 수는 석스비 부인에게 한몫을 안겨주기 위해 이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게 모드의 집에 가게 된 수는 연약하고 지켜줘야 할 대상인 모드를 맞이하고, 그녀와 수족처럼 붙어있으며 점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후 모드를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길까지 이어지는 둘 사이의 고뇌는 참 볼만했음. 삼촌의 손에서 억눌리며 자란 모드의 속이 드러나는 2부 이후로는 회상의 느낌이 강했었다. 교차편집이 되었다면 더 보기 편했겠다만, 1부 마지막의 반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듯. 2부에도 나름의 반전이 있는데 1부의 그것이 너무 격심해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수는 석스비 부인의 보호탓인지 주변 환경에 비해 머리를 못쓰는 느낌이 있었다. 독한 느낌도 그렇게 크지는 않고, 나쁜 짓을 좀 할 수는 있어도 속 마음까지 악한은 아닌 느낌. 모드는 반대로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연약하지만 강단이 있어보였고. 다만 갈수록 그 강단이라는 게 사라져가는 모습이라 보기 아쉬웠다. 똑똑한데, 세상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는 헛똑똑이였던지라 어쩔 수 없었다.

  수와 모드를 빼면 젠틀먼과 석스비 부인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인데, 난 젠틀먼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번듯한 악역은 정말 좋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가리지 않으면서 자기를 번듯하게 꾸밀 줄 알고, 또 어느 정도의 예의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곁에 있으면 얄밉겠지만 보는 재미가 있는 악역. 석스비 부인은 마음에 안들었던게 이리저리 선악 사이에 걸쳐있는 느낌이 있어서. 차라리 끝까지 일관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총 3부로 나뉘어 있지만 1부 끝날때 까지가 가장 재미있었고, 뒤로 갈수록 그 재미가 감소하는 느낌이 드는 게 아쉬웠다. 특히 갈등의 해결파트가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모드와 수가 오해를 푸는 과정이 좀 이해가 덜 되더라... 드러나는 인물 중 누구를 봐도 하고 싶은 말은 그러게 사람은 정직이 중요한 거예요. 정도...?

  재미는 벨벳 애무하기 쪽이 더 있긴 한데, 이 책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반지의제왕세트(전7권)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판타지소설
지은이 J. R. R. 톨킨 (씨앗을뿌리는사람,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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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권을 언제 읽나 싶었는데 결국 읽기는 읽었다. 사실 볼 때 재밌어서 빨리 넘기고 싶었음... (노느라) 시간이 없어서 더디게 읽은 거 같기도 하다. 영화는 개봉했을때 봐놔서 내용이 가물가물하게만 떠올랐고, 그래서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인물만을 대입해가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해설편인 7권은 안읽었는데 그건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보다는 천천히 집에서 읽을 것 같다.

  당연히 영화보다 내용이 상세하다. 영화에는 없는 인물들도 많고, 배경 이해하는 데에도 더 자세하고 좋았다. 다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계속 되짚어봐야하긴 했다. 말도 생소하고, 등장하는 것들도 너무 많으니까. 세계관을 자세히 이해하고 싶고 인물간의 관계를 알고 싶다면 더디지만, 책 쪽이 당연히 낫다. 해설서도 붙어있고 낫지 아무래도. 그 외엔.. 아 노래? 운문이 있다는 게 인상에 남았다. 대부분은 자세히 느끼지 않고 넘겨버렸다만...

  '반지 원정대', '두 개의 탑', '왕의 귀환'의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 '반지 원정대'까지는 샤이어에 사는 평범한 호빗 프로도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원정을 떠나게 되는 경위와 그들이 헤어지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다른 권들보다 자세해서 읽은 재미가 도드라졌다. '톰 봄바딜' 때에는 다소 지치는 느낌도 있긴 했지만, 뭐 아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술술 넘어갔음. 영화보다 개개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피핀! 영화에서도 깜찍하고 귀여웠지만 여기선 훨씬 더 발랄하고 멍청하고 귀여웠다. 프로도는 영화에서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되어서 좋았고. 레골라스는 영화에서보다 오히려 비중이 약간 더 줄은 느낌...? 뭐 그래도 캐릭터의 깊이는 있었다.

  '두개의 탑' 부분은 두 시야로 나뉘어서, 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프로도와 샘의 이야기와 나머지 원정대들의 고난을 그려내는데 양쪽 다 그 쪽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다음 부분이 너무 보고싶어서 떨리더라. 그런데 또 막상 쭉 이어봤으면 긴장감 떨어졌을 거 같기도 하고.. 오히려 이 쪽이 배치가 나았을 거 같긴 함. 읽을 때 떨릴 뿐... 두개의 탑은 막상 스토리상 중요한 도입부나 결말부가 아니긴 한데, 전쟁 장면이 생동감있고 또 현실성도 있어서 재미있었다. 로한의 전쟁 장면은 언제 봐도 참 마음에 든다. 곤도르 쪽이 더 비장하긴 하지만, 이 쪽은 좀 더 코앞에 닥친 절박함이 느껴졌다.

  '왕의 귀환'은 마무리 편. 그 동안의 모든 사건들이 접어드는 편이라 나까지 끝까지 긴장했었다. 그리고 나서 사건이 해결되었을 땐 나도 같이 안도했고. 여러모로 커다랐던 사건들을 순서있게 정리해서 좋았다. 그리고 좀 평온하게 가려나 싶었을 때 작게 호빗들의 전투를 만들어줘서 더 마음에 들었음. 이 네명의 호빗들이 진짜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메리와 피핀이 이렇게 늠름하게 자랄 수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샘도 그렇고, 프로도는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한듯. 지치면서 성장한 느낌이라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중세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여자 캐릭터들이 활발하게 쓰이지 못한 게 아쉽지만... 뭐 약간의 단점은 접어두고라도 스토리면에서 기복도 괜찮았고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재밌었음. 판타지 소설읽고 만족한 게 많지 않은데 이건 고전ㅋㅋ이라 그런지 내 마음에도 들었다. 좀 더 캐릭터 이야기를 쓰고 싶기도 한데.... 귀찮으니 접어야지ㅋㅋㅋ 내 마음 속으로만 생각.
그리고아무도없었다(애거서크리스티추리문학베스트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애거서 크리스티 (해문출판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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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추리소설을 썩 좋아하진 않는데 유명한 거니까 읽어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은자에게 빌렸다. 요새 반지의 제왕 읽고 있었어 계속 방치하다가ㅋㅋㅋ 은자를 만나기로 해서 돌려주어야 함으로 급하게 읽었음. 항상 한 챕터만 읽고 자고 읽고 자고 그러다가 한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싹 읽었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많아서 초반에 외우느라 자꾸 앞장을 들춰보았다. 난 스토리 진행되면서 인물이 자연스레 외워지는 걸 좋아하는데(귀찮아) 요건 아무래도 추리소설이라서 사건 진행이 급박하고 그러다 보니까 빨리 빨리 인물을 파악해야 했다. 맨 앞페이지에 있던 인물 설명 보고 이딴게 왜있어 했는데 결국 그걸 잘 활용하고 말았습니다....


  인디언섬에 초대받아 오게 된 열명의 인물들이 있다. 각자의 누군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오게 되는데, 물론 겉으로는 자신들이 죄가 없다 말하지만 사람이 한명씩 죽어나가면서 스스로들의 죄를 인정하거나 짐작케 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범인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을 인디언섬으로 불러모으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고립된다. 섬을 뒤져도 범인의 흔적은 없기에 필연적으로 그들 안에서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고... 사람들은 인디언 동요에 맞춰 한 명씩 죽게 되거 결국은 '아무도 없게' 되는 내용.

열 명의 인디언 소년이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한 명이 목이 막혀 죽어서 아홉 명이 되었다.

아홉 명의 인디언 소년이 밤늦게까지 자지 않았다.
한 명이 늦잠을 자서 여덟 명이 되었다.

여덟 명의 인디언 소년이 데븐을 여행했다.
한 명이 거기에 남아서 일곱 명이 되었다.

일곱 명의 인디언 소년이 장작을 패고 있었다.
한 명이 자기를 둘로 잘라 여섯 명이 되었다.

여섯 명의 인디언 소년이 벌집을 가지고 놀았다.
한 명이 벌에 쏘여서 다섯 명이 되었다.

다섯 명의 인디언 소년이 법률을 공부했다.
한 명이 대법원으로 들어가서 네 명이 되었다.

네 명의 인디언 소년이 바다로 나갔다.
한 명이 훈제된 청어에 먹혀서 세 명이 되었다.

세 명의 인디언 소년이 동물원을 걷고 있었다.
한 명이 큰 곰에게 잡혀서 두 명이 되었다.

두 명의 인디언 소년이 햇빛을 쬐고 있었다.
한 명이 햇빛에 타서 한 명이 되었다.

한 명의 인디언 소년이 혼자 남았다.
그가 목을 매어 죽어서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게 그 인디언 동요. 좀 껄쩍지근한 내용인데 이대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몇 가지는 그 말대로 충실히 이행됐고, 몇 가지는 약간 바뀌는 식으로 이행되더라. 여튼 동요에 맞춰서 앤소니 마스튼 - 로저스 부인 - 매카서 장군 - 로저스 - 에밀리 브렌트 - 워그레이브 판사 - 암스트롱 의사 - 블로어 - 필립 롬바드 대위 - 베라 클레이슨 순으로 죽어나간다. 나중에 범인의 고백편을 보면 죄의 경중 등에 따라 이 순서가 정해진 거던데 그 판단은 자기 마음대로 인 것 같기도...

  사실 트릭이 굉장히 신기하다! 뭐 이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냥 슬렁슬렁 읽은듯.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 죄의 심판을 받는다는 점에서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어야 했지만 그것도 적었다. 나는 적어도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으로, 타인이 이런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게 별로 유쾌하지 않은 사람이라... 탐정이 없어서 그런가 사건만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았고, 범인의 고백을 들으면서는 아 그래... 뭐 요정도. 이야기의 정리는 차분히 되더라만 그 이상의 기분은 못느낀듯.

  추리 소설 읽은 건 이게 세 번째. 오리엔트 특급살인, Y의 비극에 이어서 읽은 건데... 뭐 세 개 중에 순위를 매겨야한다면 중간쯤에 넣어주고 싶다. 추리소설로서가 아니라 그냥 소설로써. 난 추리소설 취향이 아닌가봐요.
권태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이탈리아소설
지은이 알베르토 모라비아 (열림원,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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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었는데 읽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어디서 줄거리 요약만 듣고 바로 산 거였다. 요약이라 함은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와 헤어지려 하는데, 그 여자 쪽에서 먼저 멀어지려 한 순간 사랑이 불타오른다' 정도 였고, 내용 또한 다르지 않다.

  '어머니가 돈이 많고' 자신은 부자가 아닌 주인공 디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초반에 묘사되는 디노가 느끼는 권태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탁월해서 이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디노는 서른을 넘어서까지 인생에 무료함을 느낀다. 그가 느끼는 권태는 고질적인 병인데, 모든 것이 지겹고 귀찮기만 하다는 이 태도는, 부자가 아니라는 디노의 말과는 달리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집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며 화가로 독립했지만 그림에 열정이 있지도 않고, 성공한 것도 아니고, 결국 어머니에게 약간의 돈을 매일 받고 있는(나는 디노가 그렇게아 어머니를 거부하면서도 막상 아버지처럼 떠나지못한다는 것이 우스웠다.) 디노의 일상에 무슨 절박함이 있느냔 말이다. 디노에겐 삶을 하루하루 투쟁해 가는 절박함이 없고, 또한 항상 무언가를 쉽게 얻어왔기에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 또한 없다. 그러니 권태를 느끼게 될 수밖에...

  이런 디노의 권태를 완전히 불살라 버리는 건 체칠리아이다. 사실 디노는 처음엔 체칠리아를 그렇게 대단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그 자신이 계획했던 완벽한 이별이 체칠리아로 인해 부서지게 되자 상황이 달라지고 만다. 체칠리아를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참 잘 묘사했다 싶어서 웃고 말았는데, 뒤로 갈수록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들이 줄줄이... 난 체칠리아 보면서 무슨 소시오패스인 줄 알았다.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그걸 태연히 감추고, 증거를 잡아 추궁하면 순순히 사실을 털어 놓으면서도 잘못한 줄을 몰랐다. 오히려 디노에게 둘 다 사랑한다고 말하질 않나... 여러모로 신기한 여자. 일종의 팜므파탈이었는데, 썩 마음에 드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머리를 쓰고 재고 따진다기보단 생각없이 행동하는구나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거나, 감정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하더라도 이해하지는 못하는 타입이었다. 병이 들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두고도 별로 슬프게 생각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여자는 틀림없는 소시오패스...

  디노는 자신이 체칠리아를 향한 사랑 때문에 죽은 노화가 발레스트리에리와 닮아간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을 관두지 못한다. 오히려 집착은 더욱 더 심해지고, 노화가가 걸었던 길인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그 길을 밟아갈 뿐이다. 비정상적인 관계가 계속되지만 그는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에게서 권태를 느껴야만 모든 것을 관둘 수 있는데, 그녀는 그가 권태로울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일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시간을 거의 주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데에서 기인하는데, 체칠리아가 입으로 사랑을 말해도 그건 디노에게 더 이상 안정을 주지 못한다. 디노는 그녀를 잡아 그녀를 일상적인 그 무언가로 만들려 하지만 그건 불가능 한 일이다. 결국 디노는 앞으로도 자기를 갉아먹으며 그녀를 사랑하게 되겠지. 권태를 다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심리 변화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고, 진행도 재미있다. 권태와 그 외 다른 감정들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다만 번역이 약간 거슬렸는데, '다르다'와 '틀리다' 정도는 제발 구분 좀 해라... 그리고 이건 편집자 실수겠지만, '안 되요'라고 쓰지마 제발!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무엇인가 하기를 강렬히 원하면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으면 마치 샴쌍둥이처럼 하기 싫은 일이 동시에 내 눈앞에 쌍으로 나ㅏ났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지만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 틀어박혀 있기도 싫었고 외출하기도 싫었다. 여행을 하기도 싫었지만 로마에 계속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리지 않고 싶지도 않았다. 깨어 있고 싶지도 않았지만 잠을 자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을 하고 시지도 않았지만 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고,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으며,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가끔씩 이런 권태가 극심해질 때면 혹시 내가 죽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사는 것을 내가 너무나 혐오스러워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모든 일이 음울한 춤처럼 쌍을 이뤄 교대로 내 머릿속에 침투해 들어왔는데,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가 종종 생각했둣이, 나는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을 그렇게 원치 않았듯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지도 않았다.

『권태』, 알베르토 모라비아, 열림원, 2005, p. 31
캐리(스티븐킹전집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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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역시 다류에게 빌려서 읽음.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썩 취향이 아니긴 했는데 그래도 좀 더 읽어보고 취향인지 아닌지 알아야겠다 싶어서. 캐리는 데뷔작이기도하고, 워낙 유명해서 더 재미있을 줄 알았다.

  ........근데 왜 더 재미없어........OTL

  읽으면서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을 (또!) 함. 원체 공포류를 즐기지도 않는 성향이 작용한 거 같은데, 아니 그렇다 쳐도 이걸 읽으면서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냥 짜증이 퐁퐁 샘솟았을 뿐... 장르 소설이 취향이 아닌가. 그래도 어떤 종류들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공포가 취향이 아닐 지도... 뭐 뼈대 이야기도 내겐 흥미롭지 않긴 했다. 염력이라는 소재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게 주요점은 아니었다만.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고 집안에선 기독교 근본주의자 엄마에게 시달리는 캐리에타 화이트가 주인공. 불운했던 캐리가 자신의 염력을 사용해 마을에 불러 일으키는 재앙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사건 되시겠다. 이미 이야기 시작할 때 시점은 사건이 다 끝난 뒤. 서술은 회고하는 듯한 내용이고, 마치 실제 사건처럼 보이도록 뉴스 기사 인터뷰 같은 것들을 삽입해 놓았다. 이건 그 당시에는 신선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 봐서는 별로 그런 거 모르겠고... 피를 사용한 상징은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더라.

  인물들이 대부분 짜증나지만 (그 캐리조차) 가장 짜증나는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캐리의 엄마. 부모가 자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더라. 기독교 근본주의자 캐릭터는 언제 봐도 좋아할 수 없는 건데, 이걸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부모라는 역할로 마주치게 되니까 혐오의 극치였다. 크리스는 완전 짜증나고 철없는 애였고... 수지는 약간 위선적인 느낌도 있었지만 뭐 나쁜 느낌은 아니었던 듯. 제일 안된 건 토미. 하는 짓 보니까 애도 착하고 그렇던데 무슨 죄야... 캐리라는 캐릭터는, 그래. 음. 분명히 내 옆에 있어도 내가 잘해줄 거 같진 않았다. 그런데 그 애를 그렇게 의심과, 불안과, 자기열등감으로 몰아넣은 건 걔 엄마인게 분명해서... 또 짠하고, 캐릭터 보면 여러 생각이 들더라. 원래 한 가지 사고를 계속 주입당하면 거기서 벗어나기 되게 쉽지 않은데 일탈을 시도했단 점에선 어떤 의미로 대단하기도 했다. 다만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불안과 불신이 폭발하게 된 건 아쉽다.

  사건 자체는 흥미로울 게 못 되었고, 그보다는 캐리라는 캐릭터가 형성된 과정이나 캐리 엄마 캐릭터와 캐리의 관계, 이런 게 도드라지고 재밌더라. 그런 부분이 오히려 더 공포였고...

  빠르게 읽었고 앞에 읽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재미없지는 않았는데, 또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다 싶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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