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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 본다 하다가 이제사 다 봤다. 뱀파이어 물인지도 모르고 봤다가, 초반을 조금 본 후에서야 알았다. 최근 뱀파이어물을 보고 싶어서 난리치던 차에 더 잘됐다 싶었다.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스웨덴 영화다. 배경은 눈덮인 설원만이 기억에 남는, 특별하게 화려하진 않은 영화였다. 그래도 인상적이게 잔혹한 장면이 꽤 있고 조용함 속에서 그런 모습들이 더욱 부각됐다. 영화의 조용하면서도 뭔가 스산하게 스려있는 듯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쨍한 눈밭은 되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뱀파이어 공포 영화라기 보다는 소년과 소녀가 만나서 성장하는 이야기 쪽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잔혹한 장면이 없지는 않은데, 주인공들이 만나서 서로 교감하고 서로를 아끼게 되는 과정들이 아주 좋았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오스카르(카레 헤레브란트)와, 지켜주는 보호자 호칸(페르 라그나르)가 죽은 후의 12살(혹은 그보다 더, 덜한)짜리 뱀파이어 엘리(리나 레안데르손).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나는 이 소년소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모스 부호 같은 것을 통해 대화하던 것, 큐브를 통해 마음을 나누기 시작하던 것... 수영장에서 오스카르의 손을 잡으며 끌어내던 엘리의 표정이 가장 좋았다.
가장 인상적이던 장면은 엘리가 뱀파이어인 것을 알게 된 오스카르가 조금 냉정하게 구는 부분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엘리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던 오스카르. 그에게 "초대해 달라."고 말하던 엘리. 강아지를 들이듯 손짓으로 엘리를 들여놓았을 때, 엘리는 그 분노를 속으로 참아내듯 온 몸에서 피를 쏟아냈다. 뱀파이어의 '초대' 방식에서 기인한 결과였지만, 나는 그 상태에서도 엘리가 오스카르를 죽일 수도 있었고 생각한다. 엘리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오스카르를 그만큼 아꼈기 때문이 아닐까. 배신감 또한 컸던 것을 것 같다. 다행히 그 뒤로 둘은 잘 풀렸지만.
영화에서 살인은 무차별적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딱히 선악에 따라 판단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짐승의 본능처럼 엘리는 사냥을 하고, 엘리의 보호자 또한 그랬다. 엘리는 오스카르에게 "당한만큼, 당한 것보다 더하게 갚아줘라."라고 가르쳤다. 이건 완전히 자연계 법칙이고, 엘리의 삶은 완전히 그 규칙 안에서 굴러가는 것 같다. 엘리의 살인에는 어떠한 가치 판단도 들어있지 않다. 오스카르를 괴롭히던 패거리를 죽일 때 빼고는 엘리의 살인에 어떤 법칙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살인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점은 오스카르도 엘리와 비슷하기 짝이 없어서, 엘리 말대로 오스카르 또한 "죽일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살해했을 것" 같다.
시놉시스 소개에는 호칸이 엘리의 아버지처럼 소개되어 있던데, 원작에서는 다르다. 엘리의 연인같은 존재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엘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쨌건 영화에서도 그다지 아버지 같은 구석은 없었고... 어쩌면 오스카르가 커서 호칸 같은 존재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음 아니겠찌.
마음에 들었다. 조용한 마을에서 큰 소동이 조용한 것처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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