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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블로그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갔다 왔다. 카피 탓에 모녀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속았다. 이건 모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중년마저 지나가려 하는 엘리자베스 '바부'(이자벨 위페르)의 인생 이야기다. 바부가 갑자기 변화하려 애쓰는 데엔 딸 에스메랄다(롤리타 샤마)의 역할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모녀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카피에 뒷통수맞기는 몇번 당해봤지만 독립영화쪽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어서 좀 당황했었다.
카피와 상반된 영화라고 해서 이 영화가 별로다 라고 말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영화는 적당히 현실과 판타지가 섞인 듯한 모습으로 가벼운 즐거움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그 점이 어떤 이에게는 좋을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는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서(나는 개연성만 있으면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도 괜찮으니까) 결말을 보고서도 아, 이건 뭐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아니고 되게 쉬운 해결방식이지만... 뭐 어울리네. 싶었다.
이 영화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인데, 정확히는 여태까지 자유롭게만 살아왔던 바부가 세상과 마주치는 이야기이다. 바부는 가볍다. 재미가 없으면 금세 관두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폐도 많이 끼쳤다. 어떤 직장이든 금세 관뒀던 바부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딸 에스메랄다가 바부에게 자신의 결혼식에 오지 말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에스메랄다의 입장은 이렇다. 엄마의 가볍고 돌발적인 행동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속에는 결혼식 비용에 관한 것도 얽혀 있어서, 뻔히 결혼식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엄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그녀를 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바부는 이에 격분하여 자신도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콘도를 파는 직장을 구해 벨기에까지 떠나온다.
놀랍게도 이런 바부의 인생은 생각보다 잘(!) 풀려나간다. 살가운 성격 탓에 가림없이 친구를 사귀어 나가고, 그 와중에 남자친구 바트(유겐 델나트)도 만나고(바부 자체는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섹스프렌드로 생각하는것 같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좋은 지점을 찾아 고객을 많이 유치해 승진도 하고, 직장 상사 리디(오레 아티카)의 눈에도 든다. 물론 질투를 하는 성격 안좋은 직장동료 이렌느(챈털 밴리어)도 있지만 이 정도는 우습게 넘길 수 있는 배포가 있어서 괜찮다. 자기 인생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챙길 줄도 알아서 길거리 노숙 여행자인 소피(마갸리 보크)와 커트(귀욤 고익스)에게 지나칠 정도로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이런 팔랑팔랑한 진행은 바부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면서 영화를 보면서 약간의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아슬아슬한 기분도 들고.
바부의 캐릭터는 한없이 가볍다. 본인의 가벼움 탓에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단 생각없이 민폐를 끼친다. 도서관에서 떠드는 것, 친구 파트리스(루이 레고)의 구애를 가볍게 무시하는 것, 수잔(노에미 르보브스키)에게 차를 빌린다거나, 남자친구 같은 바트의 입장은 생각치도 않고 자신의 인생 경로를 결정해 버리는 것 같은 일들. 그러나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다. 소피와 커트에게 베푸는 호의만 봐도 그렇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모습이 투영되어 있긴하지만, 바부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들은 일반적인 동정을 넘어선 호의이다. 한마디로 바부의 성격은 전형적인 '애는 착해요' 타입.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한번 스쳐지나가는 인물이지만 주변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 수가 없다. 바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딸 에스메랄다와의 충돌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딸을 무척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바부이기에 그녀는 많은 인생의 결정들을 스스로만을 위해 내려왔다. 그 때문인지 에스메랄다는 정착하고 싶어 쥐스탱(조아킴 롬바드)과의 결혼을 서두르게 된다. 그나마 십대 시절에는 서로의 시선이 맞았던 것 같지만 딸이 성장한 이후로는 그럴 수 없어진 것 같아 약간 안타깝기도 했다.
에스메랄다가 어머니를 무조건 나쁘게 보고 있진 않다. 그렇기에 벨기에까지 어머니를 보고 오고, 또 엄마의 무심함에 화를 내고 그랬던 거겠지. 결혼식에 오지말라고 해놓고서는 바부를 염두에 둔 계획을 짜는 것도 그랬다. 바부는 참 재미있는게 연애사에 있어서는 빠삭해서 그런가 에스메랄다가 왜 화가 났는지 잘 파악해 쥐스탱에게 조언을 주는 캐릭터면서, 정작 자신과 딸 사이의 문제는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마주치지 않는 평행선이 영화 끝까지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는 하늘하늘한 감각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지나가기에, 둘 사이의 마주치는 부분만을 강조하여 행복한 여운을 남겨 준 거겠지.
영화에 큰 사건은 없는데 긴장감이 조금은 있다. 왜냐하면 지켜보기엔 바부의 행동들이 너무나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바부 커리어의 종말은 예상된 것이었다. 언제 오느냐가 중요했을뿐. 사실 바부가 직장을 관두고 나온 돈으로 카지노에 들어갔을 땐 이 영화 정말 이렇게 끝내려는 건가 싶었는데 판타지를 마음껏 발휘하여 해피하게 돌린 건 좀 의외였다. 카지노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쓰다니! 보통이라면 질색할 전개인데 이 영화에서는 묘하게 어울렸으니 다행.
전반적으로 다들 연기가 편안해서 좋았다.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영화를 혼자서도 잘만 이끌어나가더라. 마치 바부가 이자벨 위페르 본인인 것처럼. 딸 에스메랄다 역은 이자벨 위페르의 친딸인 롤리타 샤마가 연기했는데 비슷한 수준의 편안함을 보여줬다. 둘이 있을때 아무래도 분위기다 더 자연스러웠던 게 좋았다.
생각했던 것 같은 모녀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바부의 진정한 행복찾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부에게는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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