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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에 대한 작은 편견이 있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봤던 프랑스 영화들은 모조리 지루했고, 특히 난 그 발음을 견딜 수 없었다. 프랑스어 발음은 날 졸리게 만들었고, 프랑스 영화를 볼 때면 난 어김없이 잤었는데... 이 영화는 좀 다르더라. 쉴새 없이 쫑알대는 엘자(클레어 부아닉)를 보고 있으면 영화에서 눈을 뗄 새가 없었다.
엘자 캐릭터는 처음엔 좀 별로였다. 어린애가 너무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또 생각해보니 그게 어린애긴 하더라.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는 시도 자체는 귀여웠다. 줄리앙은 그냥 나비를 수집하는 평범한 노인. 심술궂은 척 하지만 사실 엘자를 많이 걱정하고, 아끼고 보살펴주는 모습들이 보여 좋았다. 그리고 엘자에게 많이 약했다. 유괴소동을 불러올만큼 허술했던 건, 줄리앙 자신도 많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역시 며칠이 다 되도록 전화 한 통 제대로 못한 건 문제가 있긴 하다. 엘자 엄마는 지나치게 책임감이 없었다. 별로 비중있다고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잔잔할 때도 있지만, 마냥 조용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여행담이라기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도 있고, 엘자와 줄리앙의 담화의 덕도 크다.
엘자와 줄리앙(미셸 세로)의 담화들은 가볍고 쉼 없이 이어지지만, 때때로 철학적이다. 우리 삶 속에 있는 단순한 물음들은 엘자를 통해 던져지고, 줄리앙의 입을 통해 어린이의 시선에 맞게 설명된다. 줄리앙이 엘자에게 하는 설명들은 노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경험에 입각한 사실들이 많아서 좋았다.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는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야. 믿음이 없다면 사랑도 없어.
하지만 그 새는 날아가지 않았어. 나는 그게 너무 기뻤어. 왜게? 내 곁에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은 날 사랑하기 때문일꺼니까.
이거 말고도 사람이 순간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간다는 것,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사실 난 이게 가장 좋았는데 대사가 잘 기억 안난다.) 이런 심각한 이야기들이, 엘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의 말들로 전해지는데 그것들이 참 좋았다. 줄리앙이 엘자에게 그림자를 통해 해주던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라기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두 배우가 함께 부른 '나비Le Papillon'가 엔딩곡으로 쓰이는데, 그 가사를 보면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담화의 수준과 그 안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좋았다. 커다란 난관이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선 뒤늦게 개봉한 셈인데, 그렇다고 해도 어색한 건 전혀 없었다. 뭐 특별히 도시풍경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진행되었으니까.
두 배우가 함께 부른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첨부한다. 스튜디오 모습을 보니까 또 신기한 기분이다.
검색해보다가 충격받았다. 줄리앙 역을 한 미셸 세로가 2007년에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고 했던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른다. 좋은 데 가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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