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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와 준』은 작가 아나이스 닌이 쓴 일기 일부를 편집해 만들어 낸 글이다. 따라서 허구적인 면이 전혀 없는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이라기엔 뭐하긴 한데, 내용이 극히 소설적이라거나 편집에 따라 단순 일기 이상의 장점을 얻어낸 듯한 글이었다. 『헨리와 준』의 성애묘사 자체는 사실 그렇게 대단할 것이 없다. 관능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사실 그대로를 적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일기에서의 성애는, 그런 행위를 벌이는 인간의 심리묘사가 완벽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청교도적 소녀였으며 자상한 은행원인 남편 휴고와 함께 그럭저럭한 나날을 살아가던 작가 '아나이스 닌'은, 자유분방하며 강렬함을 가진 미국 작가 '헨리(그러니까 하인리히)'를 만나 정열적인 사랑에 눈을 뜬다. 또한 헨리의 아내인 '준'을 만나 조심스러우면서도 은은하게 타오르는 듯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여태까지 그런 사랑을 해보지 않았으므로 아나이스 닌은 그 둘을 향한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는 듯한 모습를 보여준다. 헨리를 사랑하며 준을 질투하기도 하고, 준을 사랑하기에 헨리를 하찮게 여기기도 하는 방식이다. 이런 감정의 혼돈은 처음에는 준의 강세인 것 처럼 보였지만, 준이 잠시 도시를 떠난 틈을 타 헨리와의 불장난에 초점이 크게 맞춰지게 된다. 그런 감정의 혼돈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고뇌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알고파하는, 자기 탐색적인 면모가 강하게 느껴졌다. 또 남들의 감정을 분석하려 드는 태도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런 분석적인 태도는 정신과 의사인 '알렌디'를 만나면서 더욱 강해진다. 그런 갈등의 위치 때문에 몇 몇 부분들은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그에 대한 죄책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헨리와 준을 동시에 사랑하고, 휴고를 아끼며, 사촌인 에두아르도나 정신과 의사인 알렌디와도 엮이는 아나이스 닌의 사고방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벌이는 아나이스 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서 그런 부분은 좋았다. 단편적이지 않은 오랜 시기의 묘사가 이런 점을 더 부각되게 만들어준 것 같다.
하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보면서 이 여자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뭐 그런생각까지 들었다. 벌이는 행각들이 해도 해도 너무 심하잖아....... 차라리 휴고랑 이혼을 하라고...... 이걸 출판까지 했다는 점에서 휴고와 에두아르도에게 눈물을 보낸다...
헨리는 질투를 느끼고 걱정이 되어서, 한꺼번에 두 세 명의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히스테리컬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고 내게 말한다. 내가 그런 여자일까?
『헨리와 준』, 아나이스 닌,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p.334
『헨리와 준』, 아나이스 닌,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p.334
나는 깜짝 놀란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린다. 나는 헨리와 준 사이에서, 그들의 상반된 모습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진실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나는 헨리의 문학적이 극악무도함은 충분히 알지만,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믿는다. 준의 순수한 파괴력과 그녀의 거짓말을 알지만, 그녀를 믿는다.
『헨리와 준』, 아나이스 닌,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p.358
『헨리와 준』, 아나이스 닌,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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