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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남자 배우가 불가리아에서 찍은 네덜란드 영화... 복잡도 하여라. 여자 주인공은 네덜란드 배우고 나머지 배우들도 그 쪽 출신인 듯. 아무튼 배경이 좀 특이하다 했더니 불가리아였단다. 되게 황량해 보일 땐 황량하고, 따뜻한 느낌일 땐 한 없이 따뜻한 느낌을 주던 그런 배경이었다.
영화가 완벽하게 짜여진 느낌은 아니고, 약간 어설픈 듯 하면서도 사람 감성 자극하는 게 있다. 이런 진행은 렛미인에서 본 것 같아서 처음 느낌이 좋았다. 시대배경이 확실친 않은데 1880년대인 것 같다. 중간에 수술하는 장면에서 새로 나온 마취제라면서 코카인을 사용하는 게 있었다. 여튼 지금의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이런 배경은 영화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과부인 어머니 캐서린(카테리네 베르케네)과 살고 있는 눈이 먼 소년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 집은 넉넉하지만 어릴 땐 보이던 눈이 멀어버린 터라 루벤의 성격은 제멋대로이다. 짐승처럼 악을 쓰거나 소리를 지르고, 제대로 씻지도 않으려 드는 모습을 보며 영락없이 곱게자란 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루벤에게 책을 읽게 하기 위해 어머니가 고용한 사람인 마리(할리나 레진)는 딱 봐도 다른 사람과 같은 생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움츠러들어있고, 그러면서도 사소한 것에 공격당한 것처럼 발끈하는 태도는 그녀가 가진 상처를 짐작하게 할 만 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소년과 자신의 외모에 깊은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의 만남은 당연한 것처럼 사랑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영화에서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다. 책을 던졌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고 자신은 나가지 않는다며 루벤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마리. 마리가 소설을 읽을 때 악을 써대던 루벤. 모나기만 했던 둘의 감정은 점점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 나간다. 마리의 향을 느끼고, 머리색을 묻고, 눈 색깔을 물으며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그녀를 상상하는 루벤과, 그런 루벤의 "당신은 아름답다"는 말에 혹하는 마리 둘 다 어떻게 보면 참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아름답게 그려나가는 소년도, 그런 소년에게 거짓말을 해나가는 마리도 어리석고, 어렸다. 그런데도 참 예뻤다. 서로가 입술을 맞대고, 도망가고, 쫓는 모습들은 긴장감이 있어서 두근거렸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장애를 가진 셈이었다. 루벤은 시각을, 마리 또한 그 시각에게 난도질당하는 마음의 장애를. 그런 둘이었기에 그 사랑이 더 순수해 보였다.
그러나 앞서 심어둔 거짓말은 뻔한 결과를 낳는다. 루벤이 의사 빅터(얀 데클레흐)의 도움으로 눈 수술을 받게 되면서 지금의 안정된 상황은 모두 뒤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마리는 달아나고, 루벤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고 방황하지만 결국 안정을 찾고, 마리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런 진행이 중반 이후에 이루어지는데, 위기 상황이나 진행이 특별할 게 없어서 좀 아쉬웠다. 중반 이후의 진행이 약간 루즈하다고 느낀 건 이 때문이었다. 진행상황이 눈에 보일 만큼 뻔해서... 심지어 그 마지막 장면까지도 보면서 아 얘 다시 그렇게 되겠고만, 했다. 편지 읽을 때 감이 확 와버렸어. 그 장면이 내게 안타까움이나 여운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의 경우엔 난 어쩐지 해피엔딩인 것만 같다. 다시 그들의 세상으로,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 하지 않는 손 끝의 세상을 보게 된 루벤의 미소가 거짓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왜인지 마리 또한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원 중심의 배경과 음악이 영화에 잘 어울렸다. 약간 어설픈 편집까지도 영화에 잘 어울렸다. 나는 괜찮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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