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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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사강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서점에서 책 뒤적이다가 마음에 들어서 샀다. 주인공은 40이 가까워진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 한없이 자유로운 그녀의 연인 로제, 그리고 폴에게 푹 빠진 25살의 혈기왕성한 청년 시몽. 심리묘사에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 사강이니만큼 세 사람의 묘한 심리변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연애 이야기는 뻔한 전개 때문에 식상해 질 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진행인데, 이 소설은 짧으면서도 그 세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세심하게 전달해 줘서 그 부분이 좋았다.

  다만 진행 자체가 짜증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닌데, 너무 현실적인 연애 이야기라서 마지막에 폭삭 가라앉아 버렸다. 이스트 집어넣은 빵마냥 부풀어 오르던 환상이 푹 꺼져버려서 조금 슬펐다. 하긴 아마 환상같은 진행대로 갔다면 그 나름대로 소설의 격을 떨어뜨렸을 것 같긴 한다.

  39살이 된 여자 폴은 더 이상 모험을 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 안락함을 줄 수 있는 연인 로제는 자유연애로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래도 언제나 담담하게, 그 자리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폴이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25살의 청년 시몽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순수하면서 정열적이고, 또한 조심스러운 시몽의 구애에 결국 폴은 넘어가버린다. 여기까지만 가면 통속 소설이다.

  문제는 폴이 시몽과 함께하게 된 후이다. 그녀는 시몽의 정열적인 사랑을 느끼지만, 동시에 로제의 빈자리 또한 느낀다. 슬프게도, 그녀는 열정적인 사랑을 할 수 없는 타입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꽃처럼 사랑하며 모든 것을 바치려 드는 시몽의 열정보다, 로제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편안함이나 안락함이 더욱 그리운, 39살의 여자였다. 폴은 모험에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었기에, 로제에게 느끼는 실망과 시몽의 신선함이 만나 잠시동안 시몽을 선택했지만, 결국은 로제에게 돌아가버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 사람 다 자신들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갈팡질팡 고민하며 흔들려하는 폴의 심정을 볼 때, 폴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조금은 유치하게도 보였던 시몽의 담대함을 보았을 때, 자유연애를 중시하면서도 폴을 그리워하며 그녀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로제의 마음을 보았을 때... 그런 묘사들이 참 공감이 가고 좋았다고 생각한다. 셋 다 완전히 나는 아니면서도, 셋 다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어서.

  하지만 마지막의 결말은 여전히 좀 슬펐다. 완연히 상처받은 시몽, 지쳤다고 말하는 폴, 그리고 여전히 이전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로제. 기묘하게 현실적인지라 짜증도 좀 났던 것 같다. 그래도 한 번 읽어보기에 괜찮은 소설이었다.

"제겐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제겐 당신을 사랑할 권리가 있고,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올 권리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 2008, p.65
 
  "(…) 폴. 내게는 당신을 이해할 능력도, 당신을 도울 능력도 있어. 알다시피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 이상이야. 난 당신도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은 행복해지기에는 지나치게 로제에게 집착하고 있어. 당신은 우리의 사랑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해.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는 힘들여서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폴은 경이와 희망에 차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그가 별 생각 없이 지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알다시피 나는 경솔한 사람이 아냐. 나는 스물다섯 살이야.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 인생의 여인이고,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나는 알아. 당신이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 2008, pp.132-133

  "잊지 않을거야." 폴이 말했다. 그녀는 그를 향해 눈길을 들어올렸다.
  "나 역시 잊지 않을 거야. 그건 다른 문제야. 다른 문제라고." 시몽이 말했다.
  그는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중간쯤에서 몸을 휘청하더니 그녀를 향해 일그러진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한 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주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은 결코 느낄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을 느끼는 그가 부러웠다. 그는 갑자기 그녀에게서 몸을 빼더니 짐을 놓아 둔 채 나가버렸다. 그녀는 그를 따라 나가 난간 너머로 몸을 굽히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하지만 시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 2008,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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