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유명한 연극이니까 질은 걱정 안하고 갔다. 처음에 이미 사고가 터진 후의 장면이 나오고, 그 이후엔 왜 이런 일이 벌어졋는가에 대한 설명. 세탁소 주인 강태국(승의열), 아내 장민숙(김민체)가 가장 많이 등장하고, 그 외에 세탁소 집 딸 강대영(한재진)이나 조연들이 잔뜩 나온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사람, 연기자 지망생인 배달부나 동네 술집 여자, 아주 예전에 짐을 맡기고 갔던 노숙자... 작은 세탁소이니만큼 나오는 조연들이 되게 소시민들이다. 이 많은 조연들을 통해 오히려 강태국의 캐릭터가 더 확실히 잡히더라. 번잡스럽지 않은 느낌. 이런 조연들 외에 후반부 조연으로 재산에 관계된 것이 얽히어 안씨 집안 남매들(세탁소 습격사건의 주범이 되는)도 나오는데 정신없지 않았다. 인물들이 꽤 많이 나오는 편인데도 역할 정리가 잘 되어서 그런가 혼란스럽지 않았다.
연극 본 것들 중에서는 중심을 잃고 흐트러지는 이야기들이 꽤 있었는데 이 연극은 그 쪽에선 나름 합격점. 정신산만한 와중에도 세탁소 주인 강태국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아내인 장민숙 입장에서 생각하면 화날 만한 캐릭터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이런 집에서 자식 교육은 어째서 실패하였는지(...) ... 극 자체도 너무 진지하지 않고 조연들을 통해 끊임없이 간간한 재미를 넣어주어서 좋았다. 꼬마 아이 사건 이후로 극이 한번 확 어두워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뭐 이상할 정도는 아니었고, 이 극에 그런 전환이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재산 분배와 관련된 부분이 세탁소에 있다는 소문 덕에 세탁소는 곤욕을 치르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 노력했던 강태국은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는데, 그 얌전한 성격이 습격사건 덕에 한 번 폭발하기는 한다. 세탁소 습격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전주가 이렇게 음습하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에다가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여 소란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꼭 필요한 대사들만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해결 장면은 다소 환상이 가미되어 있지만, 너무 현실적이지 않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세탁기 안에서 깨끗하게 빨려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잠깐이나마 현실을 잊고 동시에 그런 극적인 반전이 현실에도 있기를 바라게 되더라.
재미있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완벽하다 할 수 없어도 재밌고 즐겁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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