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이제와서 이걸 리뷰하다니. 뭐 쨌든. 나는 19일 공연만 갔다왔었다. 사실 금요일 공연의 프로디지가 더 보고 싶었지만 외박은 절대 안되기 때문에(...) 부모님이 지방에 놀러가셨던 때를 틈타 토요일 공연을 가기로 했었음. 공연 가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타임테이블 한 번 쳐다보지 않고 갔고, 따라서 언더월드가 나온다는 것만 알고 갔다. 나머지가 누가 나오든 관심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가기 전까지도 되게 망설였던 공연. 티켓은 하루 전에 샀고, 팔찌 교환 직전까지도 나 집에 갈래를 외쳤었다. 게다가 그 날 컨디션은 최악이었으니.
공연 많이 가 본 건 아니지만 글로벌 개더링 코리아의 진행은 정말 형편 없었다. 일단 장소부터가, 난지 지구는 차 없이는 갈 수 없어... 그렇다고 홈페이지에 셔틀버스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해 둔 것도 아니었고. 배째라는건지. 팔찌 같은 건 열두시에 교환해 주면서 입장은 두시라는 것도 이상했고, 두시에 딱 입장 시작을 안한 것도 짜증이 났다. 뭐 하나 제대로 해주는 게 없어. 일렉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설렁설렁하긴 했지만서도 진행 자체가 구닥다리였다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여튼 열한시부터 가서 설쳤던 나와 친구들은 가운데 펜스를 정ㅋ벅ㅋ 느물느물하게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은 세 시부터. 각 팀 당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배분되어 있었고, 언월도까지 하면 새벽 2시에 끝나는 공연이었다. GOGOSTAR, E.E, Beejay & Stereo, Fantastic Plastic Machine (Feat. VERVAL), G-Dragon & 2NE1, Royksopp, Underworld 순.
첫 타자였던 GOGOSTAR. 멤버들이 독특한 화장과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눈에 띄었다. 뭐지 이거, 하면서 공연을 기다렸는데 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보컬이 되게 분위기 띄우려고 노력하는게 보였다. 낮시간이라 사람이 너무 없어서 아쉬울 지경이었음. 사람만 좀 더 많았어도 더 재미있었을 거 같은데. 본인들 말대로 홍대 작은 클럽에서 관객과 가수 모두 섞여 놀 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던 밴드. 이모저모 신경쓴 구석이 보여서 좋았다.
E.E 왜 난 타임테이블을 보면서도 내가 아는 그 E.E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무대에 이윤정씨이 나온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잖아도 40분의 짧은 공연이었는데 시간이 슉슉 지나갔다. 백댄서들도 잔뜩 등장했었고 (백댄서라고 해도 될까, 행위 예술인?) 노래도 신나고. 무대 매너도 좋고... 즐거웠음.
Beejay & Stereo... 남자 둘이 나와서 내내 디제잉만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되게 싫었다. 일단 보컬 없이 디제잉만 하면 좀 쳐지길 마련인데 노래 자체도 뭔가 느낄라 치면 축 가라앉아버려서. 사람 지치게 만들었던 그룹. 심지어 타임테이블을 완전 무시하고 시간을 넘겨버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공연을 늦춰버렸어. 옆에서 스탭들 화나서 발 동동 구르는게 보였는데 그래도 멈추질 않더라. 재미 이전에 매너도 없었다.
히히. 가장 재미있었던 FPM-flo.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과 엠플로의 버벌이 나왔다. 으윽 엠플로. 나의 고3 시절 애스트로맨틱 앨범을 얼마나 돌려들었었던지. 둘이서 옷을 국가대표 축구팀 옷에다가 등번호는 나이, 앞에는 자기들 이름을 적어서 나왔었다. 일단 자세 좋고. 워낙에 무대 경험이 많은 엠플로다 보니까 이것 저것 반응을 유도하는 것들이 좋았다. 스케치북에 어설프게 적은 서리질러라던가, 고마와요. 같은 것들.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중간엔 각자 핸드폰을 꺼내게 해 불빛으로 일루미네이션을 만들게 하기도 하고. 노래들이 너무너무 좋았고, 공연자의 태도도 좋았고,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던 정말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G-Dragon & 2NE1. 일렉 페스티벌에 왠 아이돌이냐 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난 좋았는데... 내가 이 때 컨디션이 그냥 바닥을 친 데다가 내 양 옆에 있는 애들이 GD를 별로 안좋아해서...(라고 말해도 될까) 확 즐기진 못한 기분. 나야 보기 좋았지만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전반적으로 관객과의 호응보다는 스스로의 공연만 만들어 놓은 느낌었다는 것. 시종일관 지용이가 연예인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는게 재미 있었다. 사진이 수천장이나 계속 찍히니까 그 마음도 알만 하지만, 조금만 더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2NE1은 음... 산다라 박의 머리가 정말 작아서 깜짝 놀랐다는 것, 공민지가 너무 귀여웠다는 거... 그 정도. TV에서 보던 때랑 다를 것 없었다.
서브 헤드였던 Röyksopp! 전에 노래 듣다가 아 취향 아냐 하면서 말았던 기억이 나는데, 기묘하게 얘네 공연이 참 좋았다. 우주인같이 꾸미고 나왔을 떈 뿜을 뻔 했지만, 공연이 워낙 좋았고 반응도 상당했다. 본 멤버 두명도 반응이 이렇게 좋을 지 몰랐던지 시종일관 웃음상에 thank you를 연발해댔고, 세션일 베이스 오빠는 바로 앞 쪽에 로익솝 플랜카드를 든 사람들에게 팬서비스가 굉장했음. 그리고 베이스 칠 때 자기 세계로 가버리더라. 보컬이던 언니도 카리스마 있고 좋았음. 중간에 부엉이 가면 쓰고 부르는 노래가 있었는데 분명 웃겨야 하는데 카리스마가 있었다. 스벤은 딱 전형적인 미남상으로 성격도 재미있어 보였다. 중간에 무대에서도 역시 내려와 줬고... 토르뵤른은 금발이 찰랑찰랑해서 예뻤는데 빼는지 계속 안내려오다가 결국은 막판에 무대에서 뛰쳐내려와 바로 내 손을 꽉 잡아줬음. 게다가 만연에 웃음을 꽃피운 표정이었어서 그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가운데라 행복했어요... 자신은 분명 살짝 잡은 것일텐데 손이 얼얼했었다. 좋았음. 매우매우.
대망의 언월도... 무대 꾸미는 게 심상치 않았다. 하얀 봉들을 길길이 세워서 다양하게 이용하더라. 하지만 이때 쯤 나는 이미 정신이 반 쯤 나가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칼만 보고 펜스를 빠져나가야지. 이랬었다. 너무 아프고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중간에 반지를 떨어뜨렸어. 줏을 때까지 나갈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목소리가 안들리는 이상한 음향시스템이었는데 트랜스 음악인지라 가슴만 쿵쿵쿵쿵 계속 뛰어서 죽을 것 같았음. 그와중에도 칼의 허리 돌리기는 예술이었다... 아무튼 끝나고 나서는 반 기절 상태였음.
날이 새기를 기다려 지하철을 타고 오려고 했었는데, 결국은 거기서 다같이 택시타고 신촌 테일이네 방까지 가서 잤다. 그 짧은 거리를 택시비 이만원.... 비싼 건 둘째 치고 기사가 난폭해서 끝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음. 테일이네서 두어시간 뻗어 있다가 아침에 집에 들어왔다. 점심때쯤 돌아오신 엄마아빠가 어제 몇시에 들어왔어, 라고 하길래 '늦게...'라고 대답했었음. 거짓말은아니었어요...
확실히 락페보다는 빡빡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람들 거의 설렁설렁 공연을 보는 분위기였고 육체적으로는 덜 힘든 공연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곤했다. 내 컨디션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진행의 비유연성, 매너없는 외국인 관객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사운드가 짜증났으니까. 공연 자체가 재미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또 확 내 취향은 아니어서... 첫 날 프로디지와 팟벨리즈를 봤으면 좀 나았을까? 모르겠다. 반 반 정도로 공연들의 호오가 갈렸고. 다음에 일렉페스티벌을 갈 거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아니오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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