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여자의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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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한강 (창작과비평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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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취향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망했다. '어느날 그는'과 '아기 부처'는 좋았는데 나머지는 썩 취향에 맞진 않았던 듯. 나중에 되팔 목록에 올릴 지 말 지 고민중이다. (으 그러기엔 '어느날 그는'이 걸려서.) 여튼 그래서 초반 두 소설을 읽고 나머지는 건성건성 넘기고 닫고 이러다 나중에서야 완료.

  한강 소설 읽으면 침울하고, 음울한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만 같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왠지 자연스레 힘없고 하얗게 마른 여자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그런 여자. 여튼 한강의 소설은 그런 게 있다. 굉장히 삶에 집착하면서도 또 쉬이 그걸 놓아버리려고 하는 느낌 같은 게. 아니 삶보다는 어떤 대상인가? 그 대상에 대한 욕구 때문에 삶을 이어가지만 그 대상이 없어진 순간 삶에 대한 의지도 한풀 사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혹은 그 욕망의 대상을 위해서라면 삶 같은 건 되게 하찮아지고 마는. 끈질기게 뭔가를 갈망하는 모습이 소설집 전반에서 묻어나왔다.

어느 날 그는
아기 부처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붉은 꽃 속에서
내 여자의 열매
아홉 개의 이야기 
흰 꽃
철길을 흐르는 강

  '어느날 그는'은 다류에게서 텍스트를 얻어 먼저 따로 읽어봤었는데 그 때 느낌이 되게 좋았다. 뭔가 비참하고 절절한 집착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민화'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삐뚤어진 방식을 택하지만 그게 꼭 악에서 나왔다기보단, 방법을 몰라서 택하게 되었다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고시원 골방으로 돌아왔지만... 결말을 보면 그건 비극적인 일만도 아니다. 그는 민화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결국 그 스스로의 인생을 찾게 되었으니까. 시작점이라도.

  '아기 부처'는 소재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감추려 애쓰는 남자, 그 상처 탓에 남자를 보게 되었지만 정작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자. 다른 여자에게 더 심한 상처를 받는 남자, 그리고 다시 남자와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자. 뭐 요런 구성 자체가 난 꽤 마음에 들었다. 상처입고 상처입다가도 결국 둘 밖에 남지 않는 느낌이 좋았다.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는 되게 비참하고 절절하다. 화자가 어린 소녀라서 더 그랬다. 그 소녀에게 독을 먹이고 같이 죽으려던 아버지의 심정이란 것도 볼수록 비참했고. 어머니가 외치던 '지겨워'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부녀가 찾아 헤매던 욕망의 대상인 어머니는 끝까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붉은 꽃 속에서'는... 나쁘진 않았는데 뭔가 체념하고 관조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해탈이라고 하나. 그래서 스님이 된 여자는 행복했을까. 이 소설 보면서 더 느낀 건데, 한강 소설 속의 남자들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참 드물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여자의 열매'는 채식주의자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길래 좀 기대했는데... 아 내가 뭘 기대한거지; 왜 밝은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채식주의자 만큼이나 무언가에 집착하고, 또 그 모습은 처절하게 아픈 모습이었다.

  '아홉개의 이야기'는 작은 토막글 아홉 개인데... 뭐 썩 마음에 안들지도,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간소한 이야기들이라 그런가 크게 다가오진 않았는데.. 그래도 '첫사랑'만큼은 좀 마음에 들었다.

  '흰 꽃'도 뭔가 근근히 붙잡고는 있는데 그게 엄청 희망적이진 않았고... '철길을 흐르는 강'도 마찬가지 느낌이 들었다. 둘 중 뭐가 더 낫냐고 하면 그나마 '흰 꽃'쪽을 택하긴 하겠다.

  음 모르겠다. 소재가 마음에 들었던 소설들은 좋았는데 나머지는 꾸역꾸역 집어넣은 기분이다. 난 밝고 희망적인 게 좋다. 아니면 내쳐지고 버려져도 끊임없는 욕망으로 삶을 붙잡으려 드는 모습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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