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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두 명의 여자친구를 살해하 죄로 감옥에 10년동안 복역한 토비아스 자토리우스가 주요인물. 이 소설에서 주인공을 꼽고 싶지가 않은 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주체가 딱 하나가 있는 게 아니라 여럿이 얼키설키 엉켜서 사건해결이 이뤄지는 거라서 그랬다. 토비아스는 자신이 살해를 저질렀단 기억이 전혀 없이 증거만으로 형을 살게 된다. 토비아스가 죽였다고 추정되는 여자 둘은 토비아스의 전 여친이었던 로라와, 당시
알텐하인이라는 작은 도시가 배경. 항상 이런 소도시가 나오면 소름이 끼치는 게, 사람들끼리의 결속력이 대단하고 그 안에 음모가 있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마치 이끼처럼. 이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좋은 얼굴로 마을을 쥐고 흔드는 부자 클라우디우스 테를린덴이 있고, 10년 전 교사이기도 했던 남편 그레고어 라우터바흐를 훌륭한 정치인으로 만들어 낸 정신과 의사 다니엘라 라우터바흐, 마을의 심술궂은 소식통 마고트 리히터 등 마을의 인물들은 수상쩍기 짝이 없다.
토비아스는 알텐하인으로 돌아와서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아버지 하르트무트 자토리우스가 운영하던 식당은 망한 지 오래이고, 테를린덴의 놀음으로 재산을 빼앗기게 된 터라 어머니는 리타 크리머는 아버지를 오래 전 떠났다. 그나마도 토비아스가 돌아오면서 리아 크리머는 누군가에게 차도로 밀쳐져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다.
토비아스의 곁에 남은 알텐하인 주민은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나디야 폰 브레도프 뿐. 어릴 적 촌스러운 모습이었던 나디야는 이제 유명한 스타가 되어있고, 토비아스를 끊임없이 돕는다. 마을에서 토비아스를 배척하지 않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건 마을에 새로 들어온 십대 아멜리 프륄리히와 테를린덴의 첫째 아들인 티스 테를린덴. 아멜리는 고스스타일을 즐기는 십대 여자아이로 겁이 없는데, 10년 전 토비아스가 죽였다고 하는 여자 중 하나인 스테파니를 꼭 닮았다. 티스는 심성이 곱지만 뭔가에 억눌려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폐증을 앓고 있어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티스의 동생인 라르스는 일전에 토비아스의 친구였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을을 떠나 가족과의 연락을 거의 두절한 상태.
이런 설정 속에서 형사인 보덴스타인과 피아가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주가 된다. 물론 형사 쪽 인물들이 더 있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둘이라고 보면 될듯. 둘의 개인사정도 나오긴 하는데 추리에 좀 지칠때 쯤 간간히 재미를 더해주는 정도였다.
하여튼간에 결론은 결국 토비아스의 잘못이 아니었고, 마을 사람들이 긴밀히 얽힌 과거 사건이라는 게 드러남. 이거야 처음 읽을 때부터 짐작이 가능하다. 누가 어떻게 했느냐의 문제... 이것도 뭐 그냥 그랬고 난 음습한 과거 일이라는 데 더 집중해서 재미를 느꼈다. 추리 그런 거 안함.
로라는 토비아스의 친구들인 외르크, 펠릭스, 미하엘이 강간하고 살아있는 채로 파묻은 건데... 지레 밟힐까봐 겁이 나 자수를 어설피 하는게 인간적이라고 할까. 소름끼쳤던 건 부모의 태도. 외르크의 아버지인 루츠 리히터는 들켰다는 것을 알자마자 자살을 택하지만, 어머니인 마고트 리히터는 자신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거 한국이나 외국이나 삐뚤어진 모성애는 똑같구나 싶어서 소름끼쳤다.
스테파니는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레고어 라우터바흐에게 살해당했다. 심약한 라우터바후의 뒤를 받쳐주던 아내 다니엘라가 시체를 수습한 것인데, 이 과정엔 테를린덴 가문 또한 얽혀있다. 티스가 살해장면을 목격했다는 걸 알게 된 다니엘라는 티스에게 치료가 아닌 마약성분의 약을 계속해서 처방하고, 테를린덴은 스테파니의 죽음에 아들 라르스가 얽혀들어갈까봐 스테파니의 시체를 숨기는 걸 돕는것.
나디야의 일도 여기서 드러나는데, 이 모든 일의 내막을 알고있음에도 토비아스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이 일들을 감춘 것이었다. 여러모로 마을 사람들이 남 인생을 쉽게 망가뜨린 것이었다.
토비아스 본인의 인생 뿐 아니라, 토비아스 아버지의 인생도 망가졌고, 로라의 아버지 만프레드 바그너는 망가져서 리타를 해쳤고, 뭐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의 인생이 망가졌다. 참 사람이 뭔가 생각하게 만들었던 소설. 추리 자체는 뭐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다만... 재미만 있었다 싶은 느낌도 있고.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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