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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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태어나서 제일 처음으로 내 돈주고 산 책은 '향수'이다. 그 두꺼운 소설은 하룻밤 새 읽을 수 있을 만큼 긴장감이 가득하고 소재 또한 재미있다. 제일 처음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좀머씨 이야기'이다. 고모 방 안에 있던 삽화가 예쁜 소설책은, 짧지만 기묘하게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었다. 내게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 하면 떠오르는 사람 순위권.

  콘트라베이스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유명하게 만든 희곡이다. 1인극을 위해 쓰여진 이 희곡은 그의 글들이 항상 그렇듯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든 생각까지도 낱낱이 풀어헤친다. 1인극이다 보니까 희곡적인 느낌이 많이 안나서 좋았다. 게다가 그냥 한 사람의 독백을 계속 듣는데도 지루할 새가 없어 금세 읽었다. 원체 얇기도 하지만, 몰입도가 끝내준다.

  오케스트라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이 주인공. 어느새 30대 중반을 넘어선 그는 '세라'라는 소프라노를 좋아하지만 그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 틀에 갇힌 채 (거기에서도 신의 직장 공무원이긴 하다만)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주인공에게는 모든 것은 자기를 옥죄는 틀과 같다. 심지어 자신이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조차도 그에게는 '언젠가 부수어리고 싶은' 대상이다. 그는 커다란 사회 구조 안에서도, 오케스트라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지막에 가서는 세라의 눈에 들 만한 일을 하겠다 마음을 먹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아마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전략) 그런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제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어떤 시각으로 살펴보아도 최후의 쓰레기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 때문에 저는 오케스트라의 구성을 인간 사회의 모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계에서나 그 세계에서나 쓰레기와 관련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게 마련이지요. 더구나 오케스트라의 세계는 인간 사회보다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인간사회에서는―이론적으로만 보자면―언젠가는 나도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내 밑의 벌레 같은 것들을 내려다볼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1993, pp.62~63

  1인 희곡은 작게는 오케스트라에 속한 한 인간의 고뇌를 말하지만, 넓게 보면 사회 전체의 문제를 꼬집기도 한다. 그 부분에서 몇 부분 마음에 안드는 구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묘사와 표현은 마음에 들었다. 혼잣말을 이렇게까지 심도있게 쓴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상연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꼭 한번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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