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데일 펙 (민음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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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자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책 중 한권. 퀴어문학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고 하기엔 가슴에 애틋하게 남는 응어리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주제가 헤어짐 혹은 사랑을 할 때 느끼는 부푼 감정, 그것이 빠져나가는 과정 들을 그리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단편집이라고 해야할까... 각각의 에피소드는 독립되어 있지만, 기묘하게도 유기성을 띄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마틴과 존』안에 있는 각각의 소설들에서 주인공들은 항상 마틴과 존이며, 주변 인물은 비, 수전, 헨리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틴이 부자건, 길에서 만난 십대 소년이건, 지금 욕조에서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이건 간에. 혹은 존이 또 다른 인물이건 간에 그들은 항상 마틴과 존이다.

  단편들은 각각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이 행복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속이 쓰렸다. 행복한 이야기도 얼마 없거니와, 행복하다고 방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항상, 그리고 영원히」같은 단편에서는 행복한 모습을 내내 보여주더니만은 마지막 강도들의 습격 탓에 기분을 잡쳐버리고 말았었으니까. 이 단편은 묘하게 뒤쪽에 위치한 「빌어먹을 녀석, 마틴」이라는 단편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주었다. 「빌어먹을 녀석, 마틴」은 이 단편집 내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는데, 이미 마틴이 죽어버린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 외에도 존이 헨리와 맺고 있는 관계, 수전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변모」와 「바다의 끝」이 아닐까 한다.
「변모」의 경우 처음에는 그 소재 탓에 껄끄러운 감이 있긴 했다. 양아버지와 같은 상대와 미성년자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렇지만 어머니의 하룻밤 상대였으며 아버지의 죽음 뒤 피폐해진 어머니를 돌봤던 애인 마틴과, 아들인 존 사이의 감정이 기묘하게 잘 나타나 있다. 중간에 있는 그 짧은 성애 장면에 대한 묘사는 나까지도 숨죽이게 만들었다. 소설 마지막의 존이 마틴에게서 받은 편지 구절이 아른거렸다.

  나는 오늘 그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편지는 수개월 전에 부친 것이었지만, 네 개의 다른 주소지를 경유하여 내게로 왔다. 마치 편지의 내용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어쩌면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비록 글의 맥락이 닿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그런게 있다고 한다면, 주의 깊게 찾아내야 했지만 말이다. 이 편지의 끝부분에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게 있었다. 동시에 모호한 점도 많았지만.
  "사랑하는 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니?"

「변모」, 『마틴과 존』, 데일 펙, 민음사, 2008, pp.101-102

  『마틴과 존』안의 소설이 대부분 내 속을 쓰리게 만들었지만, 「바다의 끝」의 경우엔 달랐다. 겨우 세쪽의 이 짧은 소설은 정말 산뜻하고 둥실거리는 사랑의 기쁨을 그 안에 담아냈다. '사랑이 언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짧은 물음으로 말이다. 사랑은 존이 느끼는 것 처럼 육체를 나누는 밤, 그 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틴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아침에 존재한다. 나는 이 논리가 퍽 마음에 들었다.

  "사랑은 아침에 존재하는 거야."
  마틴이 다시 내 귀에 그 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내 귀에 갖다 대고 젖은 손으로 내 등을 위아래로 쓸어 주며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아무것도 원치 않게 만들었다.
  "긴 밤을 함께 보내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에."
  내 귀 아래에서 그의 심장이 피의 강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생각에 나의 일부는 떨렸고, 나의 일부는 따뜻했다.

「바다의 끝」, 『마틴과 존』, 데일 펙, 민음사, 2008, pp.175-176

  단편집인데도 생각보다 더디게 읽었다. 슬며시 소재 탓으로 돌려본다. 재미있고, 언제 또 꺼내 읽겠지. 아, 그리고 소설 안의 묘사들이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독특하면서 와닿는 표현들을 많이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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