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청준 (열림원,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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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편제」라는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다. 영화 「서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대본이 고교 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서편제」는 각색되어진 시나리오의 모습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서편제」가 여러 단편들로 구성된 이야기라는 것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었고 소설을 읽게 된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다섯 편의 연작을 쭉 읽고 나니 시나리오 「서편제」의 그것보다 넓은 의미의 한과 그 승화의 모습이 머릿속에 들어옴을 느낀다.

  「서편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한의 예술적 승화에 눈을 돌린다. 이것에 대해서 내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바가 없다. 「서편제」는 정말 한국인의 정서에서 이해될 수 있는 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의 예술적 혹은 자연적 승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각각의 한의 승화의 모습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결국 큰 줄기를 보면 「서편제」 연작 다섯 편은 한의 승화를 보여 준다.

  「서편제」의 다섯 연작 중에서 한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며 그것을 잘 승화시킨 것은 역시 첫 번째 이야기인 「서편제」와 두 번째 이야기인 「소리의 빛」일 것이다. 이 부분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서편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리꾼과 그의 딸, 그리고 그녀의 동복 남매인 사내를 주축으로 진행되는 이 부분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의 승화를 이루어내는 모습을 그러내고 있다.

  그들이 가진 한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보통은 소리꾼의 딸인 송화의 한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는 송화의 한보다 사내의 한에 조금 더 시선이 간다. 사내는 소리꾼을 증오하고 죽이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에 그치고 만 사람이다. 나는 소리꾼에 대한 사내의 증오가 결국 한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단순히 원망의 이미지만으로 사내의 한을 폄하하지는 않는다. 사내의 한이 만들어진 것은 그의 유소년기적 체험에도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삐에 매여 무덤가에서 보냈던 사내의 유년기가 사내에게 어떠한 의미로 작용하는 지 나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삐에 매인 채 어머니의 요상한 노래를 듣고 자란 사내의 과거가 단순한 것이 아님은 알 수 있다. 뜨거운 햇덩이 아래에서 보낸 그의 유년기는 사내의 뇌리에 깊게 박혀, 그가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살게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가 가졌던 속박과 괴로움의 시간은 그의 한의 토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사내는 소리꾼에게 어머니를 빼앗긴 사람이다. 실제로 소리꾼이 어머니를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소리꾼은 어머니를 앗아간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믿음은 외디푸스적 심리에서 나온 것 같다. 사내를 뱀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고, 어머니의 죽음을 사내의 탓으로 무작정 돌리는 것도 그러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어머니의 소멸로 동복동생이 사내의 곁으로 찾아온 셈이지만 소리꾼에 대한 복수로 가득 찬 사내에게는 그것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만약 사내가 동복동생의 탄생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받아들였다면 소리꾼에 대한 증오가 없을 수 있었을까. 애초에 소리꾼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식했으니 그렇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사내가 가진 한의 모습을 단순히 소리꾼에 대한 증오로 볼 수 없는 이유를 나는 그의 유소년기의 체험과 외디푸스적 심리에서 찾는다. 더 덧붙이자면 결국은 소리꾼을 죽이지 못하고 자의든 그렇지 않든 그를 용서하게 된 그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내가 이러한 한의 생성 화정을 거쳤다 하면, 딸인 송화의 한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소리꾼은 자신의 딸을 훌륭한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만든다. 이것은 온전히 소리꾼 자신의 욕심에 지나지 않으며, 그 욕심에 그의 딸이 희생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송화의 한은 단순히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한 데서 나오지 않는다. 송화의 한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는 과정에서 탄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의 생성은 한국인이 가진 한이 단순히 증오나 원망의 성질의 것이 아닌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한국인의 한은 드러나는 복수나 원망으로 보여 지는 것이 아니다.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두다가 그것이 사무치게 되어 삶의 원동력이 되었을 때 그 한이 진정한 의미의 한이 되는 것이다. 송화는 그녀가 가진 한을 판소리로 승화시키고 이것에서 한이 그녀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내의 경우에서도 그의 한이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됨은 마찬가지이다.

  사내와 송화가 서로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한바탕 판소리를 한 것을 두고 송화는 그것이 서로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왜 그것이 서로를 보존하기 위한 길이었을까. 그것은 한이 가진 특성과 관련이 있다 할 수 있다. 한은 한으로 남아 있어야만 그 가치가 보존된다. 그들이 서로의 정체를 밝힘으로서 한의 해결을 도모한다면, 그들의 삶의 원동력인 한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삶의 원동력이 사라진다면 그들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헤어져 간 것이다. 그들에게 한은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벌이는 판소리 한 판은 그들의 한의 예술적 승화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되, 그것을 판소리로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편제」의 앞부분은 이런 식으로 소리를 통한 한의 예술적 승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작에서 이어진 다른 부분들은 어떠한가. 「서편제」의 다른 연작 소설에서는 한의 승화가 다각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이다. 「새와 나무」에서는 한의 자연을 통한 승화가 보여진다. 수림을 만남으로서 소유와 지배의 욕심을 놓는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의 자연적 승화를 본다. 「다시 태어나는 말」은 한을 용서를 통해 승화시킨다. 차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용서의 과정은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한이며 그것을 용서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한의 원동력이 탄생하는 것임을 「다시 태어나는 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 원동력은 단순히 미움과 원망에서 나오지 않는다. 복잡하고 단계적인 감정의 변화와 용서의 과정. 그것이 쉽사리 터트려지지 않고 가슴 속에 맺혔을 때, 한을 통한 원동력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서편제」는 한국인의 정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감정인 한의 다양한 승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다른 민족에게는 한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미움과 원망과는 또 다른 감정인 한. 이것은 우리 고유의 특성이며, 우리 고유의 것을 창조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가슴 속에 응어리지고 사무쳐 있는 그 감정을 어떻게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복잡한 감정인 한의 생성 과정을 그리며 그 승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서편제」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다소 감정적인 생각의 진행을 택하게 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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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과제. 이거야 워낙 유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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