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블로그에서 하는 시사회에 당첨되어 다녀왔다. 시사회만 한 게 아니고 진중권 교수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도 있었음. 영화 2시간, 시네토크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시네토크라는거 영화에 대한 해설도 되고 좋긴 했다. 하지만 관객들과의 토론은 그저 그랬음. 도대체 저 질문은 왜 하는가? 싶은 수준낮은 질문들도 많았다. 아무튼, 이 영화 2007년 영화인데 좀 뒤늦게 개봉한다는 감이 있지만, 뭐 여러 상들을 휩쓴 영화 답게 영화는 좋았다. 시드니 루멧은 어떻게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렇게 잘 빠진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걸까. 광화문 시네큐브 단독개봉이라는데 그게 아쉽다.
영화 제목은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반 시간이라도 천국에 가 있기를.' 이라는 아일랜드 속담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데, DJUNA의 영화평 아래 달린 사족을 보면 아일랜드 건배에서 나왔다고. 'May you have food and raiment, a soft pillow for your head; may you be 40 years in heaven,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어느 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행크(에단 호크)의 팍팍한 일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앤디는 번드르르한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약때문에 횡령했던 회사 돈을 감사가 나오기 전에 메꿔야 하고, 에단 호크는 애당초 가난하다. 누구나 한 번쯤 돈이 궁할 때 범죄를 저지를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걸 실행하느냐 마느냐겠지. 그리고 이 형제들은 실행한다.
앤디가 생각한 대로 모든것이 잘 풀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는 결코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보안이 허술한 부모님의 보석상을 턴다. 이 보석상엔 나이든 노파인 점원 한 사람만 있을 테고, 총은 장난감 총을 가져갈 것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앤디가 행크를 조용히 꾀어낼 때만 해도 이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자그마한 실수들은 우연과 섞여 전체적인 그림을 뒤섞어 버린다. 작게는 그 날 출근한 사람이 점원이 아닌 엄마 나넷(로즈마리 해리스)였다는 것부터, 앤디가 행크에게만 일을 맡겨버린 것, 행크가 친구인 바비(브라이언 F. 오바이런)을 끌어들인 것, 앤디가 장물상에게 명함을 준 것. 행크가 앤디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모든 사소한 일들은 결국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연쇄작용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이것들이 초래한 재앙은 그 재앙만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재앙으로 등장인물들을 몰아갈 뿐이다. 형제가 원했던 건 지금의 경제난을 해결할 돈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소한 실수만으로 보면 행크의 더 많았긴 했지만, 앤디가 행크를 몰아세우는 장면에서는 좀 속이 쓰렸다. 애당초 시작점이 앤디였던 것을 생각하니 더 그랬을지도. 나는 과정보다 결과와 시작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앤디가 평소 생활에 만족했다면, 아내(마리사 토메이)와의 성관계에 만족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뭐 행크는 혼자서는 그럴 배짱도 없는 사람이다. 경제난에 휘둘리긴 했지만 실제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몇 번이나 망설이고, 결국은 친구까지 끌어들였으니까. 보는 내내 은자와 헉 행크 찌질해... 를 외친 것 같다. 거기다 형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바람까지 피우는 걸 보면 기가 차는 캐릭터였음. 아버지인 찰스(알버트 피니)가 행크를 더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앤디는 그거 때문에 또 열등감을 가지기는 하지만.
가족 내에서 어머니가 죽었다는 작은 재앙이, 원래 묻혀 있던 재앙의 뿌리들을 끄집어냈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미 뿌리가 튼튼치 못했던 가정이 그 이후에 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달까. 찰스가 앤디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뭐 그런... 하긴 이런 식으로 시작을 따지면 끝도 없겠지.
배우들 연기는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는 비열한 타입에 잘 어울린다. 에단 호크는 다정할 땐 한 없이 다정하지만, 찌질한 모습을 연기할 땐 정말 미친 듯이 잘 어울린다. 엘리트와 루저 사이를 넘나드는 느낌이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에서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온 몸으로 드러내 주었다. 마리사 토메이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넘실대는 감정을 잘 보여주더라. 알버트 피니가 대박이었다. 마지막에 앤디를 보며 괜찮단다. It's all right 할 때, 이미 표정이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얼굴을 막 찡그린 것도 아닌데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용서못함의 감정이 느껴져서 사뭇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연기자 셋 중에서 가장 도드라졌다는 느낌.
밍기적 거리다가 집에서 봤음. 케이블 만세. 영화 느낌이 참 따뜻해서 좋았다. 로빈 윌리엄스 영화에서는 왠지 모르게 이런 것을 기대하게 되는데, 실망하진 않았음. 어떻께 어떻게 된다- 라는 전형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하면서 봤는데, 실화라고 하길래 조금 놀랐다. 중년이 되어가는 나이에, 암울했던 과거사를 딛고 남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의술을 배운다니. 죽기 직전까지 간 사람의 의지일까. 어찌 되었건 대단하다.
헌터 아담스(로빈 윌리엄스)는 영화상에서 자신을 패치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상처를 치유한다'는 뜻의 Patch라고. 이것 저것 따뜻한 선행들의 베품, 그리고 다소 세게 느껴졌던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것. 정말 흔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이 실화라는데에서 큰 힘을 느낀다. 물론 영화 전체가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뻔한 스토리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이 영화가 실화라고 한다면 '아, 세상은 아직까지 따뜻하구나'라는 위안을 더불어 얻게 되니까.
이거 개봉했을때 신문에서 포스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땐 포스터가 엄청 재미없게 생겨서-_-; 내 사랑 니콜 키드먼+르네 젤 위거 조합(주드 로 무시)에도 불구하고 보러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센스없어 보이는 포스터다. 누가 보면 마냥 전쟁영화-_-;같은 포스터. 어찌 되었건, 케이블에서 하길래 보았다. 케이블에서 본건 좀 됐다. 한달? 두달? (...)
물론 포스터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영화였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전쟁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이다(니콜 키드먼)를 만나기 위해 길고 긴 길을 걸어서 돌아오는 인만(주드 로)의 여정. 그 험난한 여정을 견뎌내는 모습, 도중의 과정들을 통해 사랑의 마음이 점점 더 굳건해지는 모습... 주드 로 되게 멋있게 나오더라.
마을에 혼자 남은, 고생한번 안하고 자란 아이다는 억센 여자인 루비(르네 젤위거)를 만나면서 힘든 삶에 적응해 나간다. 이 모습은 영화 중 가장 재미있고도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사람의 감정이나 모습들이 전쟁을 통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영화에는 인만과 아이다, 루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여럿의 악당들은 개성적이다. 특히 백발의 청년 잊을 수 없다-_- 그리고 인만의 여정 중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까메오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에 관해서는 밑에 덧달아 놓은 네이버 제작노트를 보시길. 개인적으로는 흑인 노예를 임신시킨 목사로 나오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가장 좋았다.
어떻게 보면 밋밋한 영화이긴 하다. 사건들이 그다지 커다랗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렇지만 배우들의 호연이 좋았고, 스토리가 좋았다. 자잘한 사건의 연속은 영화에 푹 빠질 수 있게 해주었다. 주드 로도 좀 좋아졌다. 니콜 키드먼과 르네 젤위거는 더 좋아졌다.
시간이 아깝진 않은, 괜찮은 영화였다.
어떤 비극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운명적 연인의 위대한 러브스토리
전미 도서상에 빛나는 원작과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제작진이 만났다.
1860년대의 미국! 남북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두 동강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운명적으로 맺어진 연인이 사랑을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사랑과 우정, 자연, 생존, 그리고 격변기의 미국사를 드라마틱하게 담은 <콜드 마운틴: Cold Mountain>은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에 빛나는 찰스 프레지어(Charles Frazier)의 소설을 각색한 대작이다. <콜드 마운틴>은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를 만들어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안소니 밍겔라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신작이며, 주드 로와 니콜 키드먼, 르네 젤위거가 주연을 맡았다.
지금까지 46개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됐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시드니 폴락에 의해 <콜드 마운틴>은 제작됐다. 안소니 밍겔라의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참여한 윌리엄 호버그도 제작자로 참여했다. 제작총지휘는 <불의 전차>,<킬링필드>,<미션>,<제5 원소> 등에 참여한 이아인 스미스가 담당했다. 촬영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고, <리플리>에도 참여한 존 실이 담당했다. 편집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편집 부문과 음향편집 부문에서 두 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월터 머치가 맡았다. 미술은 <쿤둔>,<뱀파이어와의 인터뷰>,<순수의 시대>,<갱스 오브 뉴욕> 등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된 단테 페레티가 담당했고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앤 로스가 이번에도 안소니 밍겔라 감독과 손잡고 의상을 담당했다. 음악은 장 자끄 아노의 <베티 블루>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야레드가 담당했다.
순수의 사랑을 짓밟았던 비극적인 미국의 자화상이
<잉글리쉬 페이션트> 감독에 의해 대서사 로망으로 부활하다.
찰스 프레지어의 데뷔 소설인 <콜드 마운틴>이 1997년에 발표됐을 때 이 소설의 서사시적 스토리는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급속한 관심과 찬사를 불러 모았다. 문학 비평가들은 미국의 문학계에 큰 역량을 가진 새 작가가 출현했다고 격찬했다. 찰스 프레지어의 소설은 강력하고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격동기였던 시대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 <콜드 마운틴>은 격랑의 시대에 운명적으로 만나 순수한 사랑을 불태우면서 평화를 갈구한 어느 연인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그려낸 미국의 비극적인 자화상이다.
소설 <콜드 마운틴>의 시대적 배경은 아브라함 링컨이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주창한 때이다. 당시 형제들은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밀어야 했고, 연인들은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위해 고통스러운 이별을 각오해야만 했다. 야만적인 전쟁은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들과 아내들, 그리고 모든 계층의 미국인들에게 생존의 문제는 여전히 불확실한 시대였고,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기 위한 전투가 발발할 가능성은 어디에나 상존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당시는 정신적 재건의 시대였으며, 인간의 존립을 위하여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찰하는 시대였고, 미국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족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재발견하는 시대였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루 릿지(Blue Ridge) 태생인 찰스 프레지어는 고조부 때부터 전해 내려온 남북전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성장했다. 그는 또한 버지니아의 병원으로부터 약 300마일(480km)를 걸어서 고향에 실제로 돌아온 W.P. 인만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찰스 프레지어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영혼들이 파괴됐던 화전민 농부, 변경의 미개척지에 활동했던 목사들 등의 보통사람들에 관해서도 강한 흥미를 느꼈었다. 프레지어는 또한 자신들이 믿지 않는 명분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병사들의 절망감, 여자들, 어린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의 정신적 황폐, 그들을 절망의 나락으로부터 구해준 수많은 무명씨들의 무용담에도 강한 흥미를 느꼈었다. 저자가 <콜드 마운틴>에서 다룬 이런 소재들은 지금까지 소설을 통해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에 독창성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나온 소설들과는 다른 스토리 즉, 유명한 전투나 명장들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격동의 시대에 보통의 미국인들이 겪은 시련과 그들이 간절하게 갈구했던 희망의 이야기를 집필하기로 결심했다. 프레지어의 소설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격동기 중의 하나인 남북전쟁을 소재로 다룬 수많은 문학작품들과 공통의 소재를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만과 배반이 세상을 뒤덮은 혼란기를 배경으로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방향을 잃고 황폐해졌는가를 잘 묘사한 걸작이다. 프레지어의 소설 <콜드 마운틴>은 대서사 드라마로 전 세계 모든 계층, 모든 연령층의 독자를 사로잡았으며 급기야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뉴스위크는 프레이저의 소설을 가리켜 "문학적 큰 힘을 가진 독창적인 로맨틱 드라마이며 대단히 놀라운 걸작"이라고 평했다. The Raleigh News & Observer는 그의 작품을 가리켜 "미국의 문학이 오늘날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걸작"이라고 평했다. 소설 <콜드 마운틴>은 무려 45주 동안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작품이다.
밍겔라 감독은 소설 <콜드 마운틴>이 가슴을 찢어놓은 아픔과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극적 스토리로 채워진 신비로운 작품이라고 느꼈다. 게다가 감독은 이 작품으로부터 사적으로도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감독의 감상을 들어보자. "소설 <콜드 마운틴>은 전쟁에 역점을 둔 스토리가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나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소설 <콜드 마운틴>은 그 이상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전쟁터를 떠나 불법으로 돌아오는 병사의 이야기이자 전쟁이 전쟁터 밖의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잔혹한 고통과 요구하고, 혼란을 빚어내는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소설이다. 가정과 가족과 우정이 어떻게 부서지는지를, 그런 혼란 속에서도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강렬한지를 보여주는 명작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감독의 술회를 계속 들어보자. "찰스 프레이저는 호머의 <오디세이>의 설정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온갖 위기와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한 병사의 긴 여정을 탁월한 문학적 필치로 창조해냈다. 극중 인만의 캐릭터는 자신의 긴 여정을 통해 수많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용기, 로맨틱한 사랑, 허황된 자만, 여자들로부터의 유혹, 그리고 한 여자만을 향한 헌신 등이 시험받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인만은 육체적으로 험난한 모험을 겪어야 되며, 그와 동시에 정신적인 의지력을 요구하는 힘든 여정도 이겨내야만 한다."
감독의 술회가 계속 이어진다. "소설 <콜드 마운틴>에는 인만의 여정 말고도 또 하나의 여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콜드 마운틴에 남아서 생사조차 알 수가 없는 연인을 기다리는 아이다의 여정이다. 그녀의 역경과 여정 또한 그 심도가 매우 깊다. 아이다는 교양 있고 기품 있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여성이다. 결국 아이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살피고, 전쟁 기간 중에 스스로 목숨을 지켜야 되며, 계절마다 자연이 안겨주는 험난한 시련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나는 전쟁터에서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오는 인만이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까를, 혹은 귀결돼야 할까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소설을 읽었다. 아울러 나는 아이다가 루비(르네 젤위거)와의 우정을 통해 변화해가는 과정과, 내적인 삶에 익숙한 아이다가 어떤 식으로 거친 대자연의 일부분으로 변모되어가는 지를 눈여겨보며 읽었다."
일독을 마친 밍겔라 감독은 프레지어의 소설이 극영화의 원작으로써 너무나 훌륭한 대서사시라는 것을 간파했다. "어찌 누군들 이 소설을 각색해보고 싶지 않겠는가!" 감독의 술회이다. "프레지어의 소설에는 명예로운 영웅이 등장한다. 험난한 시련이 동반된 여정 및 확고부동한 회귀의 목적도 존재한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가야 되는 여정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들과 삶의 어떤 유혹으로부터도 흔들림 없이 인내하면서 연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는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무대인 콜드 마운틴이 등장한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잃어버렸거나 잊혀져버린 가치들이기에 소설이 독자에게 안기는 주제와 느낌이 더 강렬한 것이다. 소설 <콜드 마운틴>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지만 프레지어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질문-시도해보고 실패하는 것은 전혀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과연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을 던진다."
밍겔라 감독은 소설을 각색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표출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감독은 또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소설을 각색하려면 많은 위험이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스크린에 옮기기에는 너무나 힘든 언어와 생각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아온 마이클 온다치의 소설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그가 직접 각색해봤기 때문이다. 깊고 광범위한 주제들을 담고 있는 그 소설을 독창적인 감각으로 스크린에 담아냈을 때 관객들과 비평가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밍겔라는 인만과 아이다, 그리고 루비의 운명적인 관계 및 사랑과 우정에 의해 생겨난 뜻밖의 용기와 힘, 그리고 평화를 갈구하는 소망과 의지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밍겔라 감독이 각색한 각본이 돋보이는 이유는 원작자인 찰스 프레지어의 소설이 그만큼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작자인 시드니 폴락 또한 프레지어의 소설에 감동을 받았는데 각색과 관련한 폴락의 소감을 들어보자. "밍겔라 감독은 원작자의 의도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각색했다. 밍겔라 감독은 소설 속의 세계를 새롭게 상상하고 새롭게 구상해서 자신의 스크린에 담아냈다. 그의 각본은 우리가 소설에서 소중하다고 느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의 각본은 러브스토리이자, 주인공들에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련을 안겨주고 시험하는 과정을 담은 긴 여정의 오디세이다."
찰스 프레지어의 끝맺음 말을 들어보자. "<콜드 마운틴>은 우리가 두려워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들에 관한 명상을 담은 작품이다. 아울러 폭력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되며,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어떤 식으로 평화를 지향해야 되는가에 관한 명상을 담고 있다. 고향으로 향하는 인만의 여정은 평화를 갈구하는 그의 개인적인 열망인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삶을 향한 여정이기도 하다. 이런 소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나 소중하게 받아들여지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나의 소설과 영화의 주제를 염두에 둘 때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남북전쟁의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찰스 프레지어가 소설에서 창조한 모든 캐릭터들에
살아있는 숨결을 불어넣지 못한다면 캐스팅은 무의미한 작업이다.
밍겔라 감독은 초기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강인하면서도 생생한 캐릭터들인 영웅들과 악당들의 적임자를 캐스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밍겔라 감독이 로케이션과 디자인을 통해 역사와 자연을 아무리 잘 표현해낸다고 하더라도 찰스 프레지어가 창조한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소설 속에 묘사된 핵심 인물들 즉, 탈영병들과 그들을 기다리면서 숨죽인 채 살아가는 연인들과 가족들은 영화에서도 핵심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캐스팅을 위해 수개월을 고심했다." 밍겔라 감독의 회상이다. "난 언제나 그랬듯이 수개월간 고심하면서 캐스팅을 했다. 난 모든 배우들을 한 사람씩 직접 만난다. 내가 캐스팅 과정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배역에 딱 맞는 훌륭한 연기자를 찾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떤 배우가 적합하고, 적합하지 않는가를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나의 기존의 작품들에서보다 주인공들을 비롯해서 주요 배역들이 더 많이 등장하는 <콜드 마운틴>의 경우엔 더 심혈을 기울여야 마땅했다. 나는 각각의 시퀀스가 각 배역들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시시각각 염두에 두면서 캐스팅했다."
밍겔라 감독은 특히 세 주인공 배역-인만, 아이다, 그리고 루비-의 적임자를 캐스팅하면서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이 고심했고, 더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세 연기자의 삼각구도가 영화에서 어떻게 화학작용을 할 것인가를 심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누구에게 연기를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독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나는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했고, 후보자들의 수를 줄여가면서 마음에 드는 배우 이름에 동그라미를 겹겹이 그려나갔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룰 세 배우를 찾아냈다."
아이다 먼로 역에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니콜 키드먼이 캐스팅됐다. 아이다 먼로는 도회지의 좋은 가정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여성이며 도널드 서덜랜드가 연기한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면서 순탄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녀이지만 목사인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고, 사랑의 감정을 막 싹틔운 상대인 인만이 전쟁터로 떠나자 아이다는 농장에서 혈혈단신 혼자가 돼버리고 만다. 게다가 자신을 어떻게 보살펴야 될지도 모른 채 극도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굶주림과 북군의 공격 가능성과 인만이 어쩌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직면한 아이다는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된다. 게다가 굳세고 생활력 강한 떠돌이 처녀인 루비와 친구가 되면서 겪어야 될 고충도 이겨내야만 된다.
키드먼은 아이다의 배역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캐스팅이 되자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녀의 감회를 들어보자. "나는 몇 년 전 소설이 출간됐을 무렵에 책을 읽어봤었고 무척 감탄했었다. 찰스 프레지어의 산문은 무척 지적이면서도 깊은 삶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인만과 아이다의 내면적 삶을 놀랍도록 탁월하게 잘 묘사했다. 난 이런 훌륭한 원작을 어떻게 영화로 그려낼 수 있을지 무척 걱정스러웠었다. 하지만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빼어난 영상시인이기에 훌륭한 원작을 탁월하게 각색해서 영화적 숨결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키드먼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난 이토록 멋진 대서사 러브스토리를 마지막으로 만나본 게 언제였었나를 생각해봤지만 언뜻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소설 <콜드 마운틴>은 그 감동이 강렬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과 희망, 그리고 운명에 관한 스토리를 모두 담고 있다. 난 오랫동안 이토록 훌륭한 소설과 각본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콜드 마운틴>에 참여하게 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삶의 공동체, 신념, 믿음,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사랑에 관한 작품이기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대단히 의미가 깊다고 확신한다."
키드먼은 극 중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를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시대에 맞선 한 여자의 변모 과정과 생존을 위한 의지력과 그녀의 긴 여정을 탐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이다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연기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아이다는 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일이라곤 남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연약한 여성에서 전쟁과 궁핍이 지배하는 끔찍하고 처참한 환경 속에서 생존 방법을 터득해야만 되는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한다. 나는 또한 아이다와 루비 사이에서 맺어지는 여자들 사이의 진한 우정에 관한 주제도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두 여자가 우정을 통해 혹독하고 가혹한 시련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로를 도와주는 과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뭉치는 과정을 절제력 있게 잘 묘사했다. 한 영화에서 이토록 친밀하고 멋진 여성들의 배역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루비는 강인하면서도 억세고 독립적인 떠돌이 여성인 동시에 마음씨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다. 아울러 루비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아는 여성이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잘 터득한 여성이다. 루비는 때로는 아주 거칠며, 종종 날카로운 유머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망 직전에 다다른 아이다를 구해주는 과정에서 루비는 오랫동안 갈구해왔던 인간과의 따뜻한 접촉과 가족간의 화해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시카고>에서 요부 같은 재즈 댄서 배역을 맡았던 르네 젤위거가 그와 정반대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 루비를 위해 캐스팅됐다.
키드먼과 마찬가지로 르네 젤위거는 소설가 찰스 프레지어의 열렬한 팬이다. "난 그의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읽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프레지어가 속한 사교모임에 함께 속해있는 친구들 덕분에 출간 전의 원고를 읽을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소설 <콜드 마운틴>은 전율을 느꼈을 만큼 나에게 강렬한 감동을 준 대서사시이다."
원고를 읽고 받은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젤위거는 몇몇 인디펜던트 제작사가 <콜드 마운틴>의 판권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였기에 안소니 밍겔라 감독이 연출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율을 느끼는 기쁨을 맛보았고, 그가 자신에게 루비의 배역을 제안했을 땐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젤위거의 감회를 들어보자. "밍겔라 감독은 번쩍이는 창조적 감각을 가진 감독이다. 나는 그가 원작의 창의성과 문학적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감독이라는 사실에 감동받았다. 나는 루비 같은 여성을 사랑한다. 루비는 감독의 말처럼 잡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대자연의 시련으로부터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강한 여성이다."
젤위거에게 있어서 자신이 루비의 캐릭터에 빠져든다는 것은 순수하고 원초적인 대자연의 리듬 속으로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며 이는 여느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루비의 배역을 연기한다는 것은 곧 루비의 내면적 여정을 밟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은 젤위거의 설명이다. "루비는 언제나 대자연 속에서 거칠게 살아온 여성이다. 그녀는 어떻게 파종하는지 잘 알며, 그것이 자라 무엇이 되는지도 잘 알뿐만 아니라 언제 수확해야 되는지도 꿰고 있다. 루비는 또한 달과 태양에 관해서도, 사계절들 여러 가지 바람들이 시시각각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해서도 꿰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다 생존을 위한 지식들과 직결된다. 하지만 그녀가 아이다를 만날 때까지는 그녀의 삶에서 감정이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이후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삶의 방법을 터득해왔기 때문이다. 차츰 마음을 열면서 변화해가는 여성을 연기하는 것은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일이다. 루비는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이용한다. 아울러 나는 연기를 통해 두 여자가 서로를 어떻게 가르치며, 어떻게 성숙해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상반된 매력을 가진 아이다와 루비의 배역의 캐스팅을 마친 밍겔라 감독은 인만을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10세기 경의 그리스 시인인 호머의 미국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인 인만은 격변하는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기나긴 오디세이를 시작한다. 불처럼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전쟁터에 나갔다가 무려 4년이란 세월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사의 여부조차 알릴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서 인만은 탈영한다. 아이다가 겪고 있을 비극적인 현실로부터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향으로 발길을 돌린 인만은 온갖 위험과 불신에 맞닥뜨리면서 인생에 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만 배역의 적임자로서 밍겔라 감독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주드 로를 점찍었다. 감독이 그를 원한 건 <리플리>에서 함께 작업했던 결과가 대단히 성공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은 주드 로에 대한 밍겔라 감독의 평이다. "그는 매우 스마트 하며 사려가 깊고 부드러운 남자다. 나와 주드 로의 대화는 ‘인만 배역을 맡을 수 있겠어?’가 아니었다. 난 그가 당연히 수락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인만의 배역을 위해 그가 겪어야 될 모든 것을 그가 감수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화를 해나가면서 나는 그가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걸 확신했을 때 난 엄청난 전율을 맛보았다. 내가 <리플리>에서 그와 작업했던 경험은 정말 행운이었다. 나는 <콜드 마운틴>에서 어떤 연기든 소화해낼 수 있는 로맨틱한 주인공을 발견한 것이다."
주드 로 또한 각본을 읽자마자 자신이 인만의 배역을 강렬하게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만의 배역은 어느 배우든지, 목숨을 걸고라도 맡아보고 싶어 할 배역이라는 것을 난 즉각적으로 간파했다." 주드 로의 회상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투영될 수 있는 보통사람의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전쟁에 나가게 됐을 때 처음엔 흥분을 맛보기까지 한 애국주의자였다. 남부에 대한 확신과 믿음 또한 투철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의 공포를 경험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인만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되돌아가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며, ‘사랑’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 밍겔라 감독은 주드 로의 의지력에 감탄했다. 감독의 술회를 들어보자. "주드 로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자신도 극 중에서 인만이 겪어야 되는 만큼의 고통과 시련을 겼어야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산 채로 매장되는 장면도 만들어야 했고, 악취가 나는 거름 속에서 두 차례나 기어 나와야 되는 장면도 찍었다. 그는 또한 기절하기도 하고, 불에 타고, 총탄에 맞고 고문당하고, 쇠사슬에 묶인 채 질질 끌려 다녀야 했으며, 죽음과 여자들의 유혹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건 전시 상황에서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내 배역이 겪어야 될 고역에 대하여 만반의 대비를 했으며, 나의 배역을 위해서라면 어떤 연기가 요구되든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주드 로의 감회이다. "이 영화는 거대한 시련을 요구하는 시대에,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영화가 삶에 관한, 삶의 의미를 찾은 이유에 관한, 그리고 사랑이 왜 절대적인 목적인지를 호소력 넘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키드먼, 젤위거, 주드 로를 비롯하여 그들 세 사람의 삶 속에 들어와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캐릭터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그 캐릭터들은 관객들이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하고 싶어 할 인물들이다. 이들 배역들을 채우기 위해 밍겔라 감독은 주연 급 조연 배우들을 물색했다.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자. "헤비급 선수들을 위한 링이 있다고 치자. 그 링에 밴텀급 선수를 올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주드 로나 니콜 키드먼, 르네 젤위거가 날리는 펀치에 버금가는 강펀치를 날릴 수 있는 배우들을 원했다. 결국 아이다의 아버지인 먼로 목사의 배역에 도널드 서덜랜드를, 인만에게 구세주 역할을 하는 ‘염소 키우는 노파’ 매디의 배역에 에일린 아트킨스를, 흑인 노예를 임신시키는 등 결코 명예롭지 못한 목사인 비지의 배역에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병든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혼자 살아가다가 북군에게 겁탈당하는 사라의 배역에는 나탈리 포트만을, 탈영병들한테 인정 많은 구세주인양 가장하여 그들을 집으로 유인한 다음 의용대에게 팔아넘기는 주니어의 배역에 지오바니 리비시를 캐스팅했는데 그런 쟁쟁한 주연 급 조연 배우들을 그토록 많이 캐스팅해본 건 평생 처음이며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올지는 자신 못할 일이다."
비중 있는 배우들은 그들이 다가 아니다. 밍겔라 감독은 <콜드 마운틴>을 위해 가능한 모든 명연기자들을 영입했는데, 그들의 연기 앙상블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탈영병들을 개잡듯이 사냥하는 잔혹한 의용대 대장의 배역이자 아이다에게 끊임없이 유혹의 손을 뻗치는 티그의 배역에는 레이 윈스톤이 캐스팅됐다. 떠돌이 풍각쟁이 겸 탈영병이었다가 나중에 루비의 아버지로 밝혀지는 스토브로드의 배역에는 <갱스 오브 뉴욕>에 등장했던 브렌단 글리슨이 발탁됐다. 아이다의 이웃이면서 탈영한 두 아들을 숨겨주다가 의용대에게 발각돼서 고초를 겪는 에스코 스욍어와 샐리 스욍어의 배역에는 제임스 개먼과 캐시 베이커가 각각 캐스팅됐다. 티그의 오른팔이자 악의 화신으로 악명을 떨치는 보씨의 배역에는 찰리 후남이 캐스팅됐고, 스토브로드의 풍각쟁이 동료지만 생각이 단순한 팽글의 배역에는 에이단 서플리가 캐스팅됐다. 처녀 나룻배 사공의 배역에는 지나 말론이, 색욕을 밝히는 주니어의 부인인 라일라의 배역에는 멜로라 월터스가 캐스팅됐다. 록 그룹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의 멤버인 잭 화이트는 스토브로드의 일행과 함께 유랑하는 악사인 조지아의 배역을 맡아 극영화에 데뷔했다. 어린 병사 오클리 배역에는 루카스 블랙이 캐스팅됐다.
로케이션에 관하여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우면서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듯한 미개척의 풍취를 담고 있는 곳! 나무들로 꽉꽉 찬 조밀한 숲과 습한 늪지,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먹을 것을 겨우 얻을 수 있을 듯한 척박한 농장이 있는 곳! 끊임없는 시련을 요구하는 자연과 날씨가 상존하는 곳! 밍겔라 감독이 당면한 중차대한 과제 중의 하나는 영화의 무대이자 이젠 사라져버린 세계인 '콜드 마운틴'을 찾아내는 로케이션 작업이었다. 콜드 마운틴은 미국의 격동기에 존재한 곳으로 설정돼있을 뿐만 아니라, 개척되지 않았던 시대의 대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1860년대의 미국 남부는 대부분 척박한 땅이었으며, 문명의 손길과도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아이다와 인만이 처음 만나서 사랑을 싹틔운 곳이자, 대자연이 자아내는 장엄함과 두려움을 모두 담고 있는 콜드 마운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영화 <콜드 마운틴>이 펼칠 대서사시의 무대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밍겔라 감독은 사실적인 느낌이 고스란히 담긴 19세기의 노스캐롤라이나를 물색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감독의 소감을 들어보자.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스토리의 진실성을 포착하고, 연기자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은 스토리와 캐릭터들을 100% 받쳐줄 수 있는 로케이션을 찾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밍겔라 감독과 미술 감독인 단테 파레티는 거의 1년 동안 영화 촬영에 부합되는 무대를 찾아 헤맸다. 기획 초기단계 무렵, 제작진은 찰스 프레지어가 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루 릿지 마운틴에 곧장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은 제작진에게 너무나 실망스러울 만큼 드라마틱하게 변해있었다. 울창해야 될 나무들은 무자비하게 벌목된 상태였고, 문명과 현대 생활의 손길이 거의 모든 곳에 닿아있었다. "애쉬빌과 주변 산촌은 굉장히 탐났지만 영화의 배경이 됐던 시대의 분위기를 간직한 건물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찾지 못한 콜드 마운틴의 로케이션을
루마니아에서 극적으로 발견하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더 이상 그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제작진은 실의에 빠졌다. 그랬는데 그들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던졌다. 제작총지휘자들 중 한 사람인 이아인 스미스가 휴가차 루마니아에 갔었는데, 트랜실바니아의 카파시안 산맥에서 문명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모습을 간직한, 노스캐롤라이나를 너무나 닮은 자연 경관을 발견한 것이다. 이아인 스미스는 자신의 발견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어서 제작진들에게 쏜살같이 보냈다.
사진을 받고 감동했으면서도 밍겔라 감독은 자신이 직접 현장을 답사하고 싶어 했다. 밍겔라 감독과 미술감독은 곧바로 루마니아로 날아갔다. 그곳은 19세기의 노스캐롤라이나의 모습과 울창한 숲, 눈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였다. 제작진은 봄에 한 번 더 그곳을 방문했다. 사계절을 다 담아도 될 만큼 계절적으로도 만족스러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방문 결과도 대만족이었다.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곳에 남아있는 루마니아의 생활방식이 소설 속의 인만이 콜드 마운틴에서 겪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다음은 감독의 회상이다. "우리는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를 로케이션 후보지에서 포기해야 됐던 점이 못내 아쉬웠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콜드 마운틴을 루마니아에서 찾아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촬영은 루마니아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의 남부 로케이션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에서도 이루어졌다. 제작진은 그들 로케이션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의 건물들과 자연경관을 담아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늪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진은 보타니 베이(Botany Bay)를 이용하기도 했다.
미술 디자인에 관하여
밍겔라 감독은 관객들로 하여금 19세기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들도록 제작진이 무대와 의상, 세트를 디자인해주길 원했다. 감독의 욕구를 어느 제작진 못지않게 잘 간파한 사람은 미술감독인 단테 페라티이다. 그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감독들과 일하면서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아카데미상에 후보로 지명된 미술감독이다. 단테 페라티는 19세기의 미국의 마을, 남북전쟁 때의 군사용 진지, 남부의 전통적인 농장, 심지어는 콜드 마운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32채의 건축물을 짓기도 했다. 그는 또한 아이다와 루비가 인간승리적인 삶을 꾸려나간 블랙 코브 농장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사실감은 의상 디자이너인 앤 로스에게도 핵심적인 주제였다. 제작이 시작되기 전 단계에서부터 책과 화집과 희귀 사진들을 참고하면서 디자인을 구상한 앤 로스는 시대적 느낌을 사실적으로 살려낸 의상들을 탄생시켰다. 감독의 평에 따르면 앤은 연기자에게 의상을 입히기만 한 게 아니라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앤은 겉옷은 물론 속옷에 이르기까지도 역사적 사실성에 입각해서 디자인했다.
아이다의 의상은 루비의 의상에 비해 훨씬 고급스럽고 정교하다. 하지만 그녀의 의상은 극이 전개되면서 극과 극으로 통할만큼 큰 변화가 따른다. 도입부에서 아이다는 기품이 넘치고 귀티가 나는 의상을 입고 등장하지만 인만을 전쟁에 떠나보낸 이후 병약한 아버지마저 눈을 감자 초췌하고 남루한 의상을 걸친 모습으로 변해간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입던 코트를 걸치기도 한다.
인만의 의상은 모든 캐릭터들의 의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탈영한 이후로 인만의 의상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만의 의상에서 중요한 점은 탈영병으로서의 그의 비장미와 엄숙미가 잘 살아나야한다는 점이다. 인만은 사색적이면서도 영웅적인 인물이며 이 대서사시에서 핵심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에 어울리는 의상을 입어야만 했다.
앤은 군복 디자인을 위해서는 댄 트로이아니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댄은 남북전쟁의 의상과 문화적, 역사적 물품에 관해서는 가장 권위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서 <콜드 마운틴>의 제작 컨설턴트 역할을 맡았다. 앤은 댄의 자문에 따라 북군에겐 검은색이 감도는 청색의 군복 상의와 밝은 청색의 바지를 입혔으며, 남군에겐 주 마다 서로 다른 디자인이긴 하지만 초라한 느낌의 군복을 입혔다. 색상은 회색의 느낌이 묻어나는 흙색을 반영했다. 의상의 사실성을 위해 앤은 남북전쟁 당시에 사용했던 소재의 옷감을 구하는 치밀함까지 발휘했다. 앤은 아만파의 사람들-Amish: 17세기에 스위스의 목사인 J. 아만이 창시한 Menno파의 한 분파: 펜실베이니어 주에 이주하여 검소하게 산다.-이 입는 옷의 소재가 가장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내곤 그들의 의상의 소재를 군복 옷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제작진은 오리지널 패턴에 입각한 군복을 미국에서 제작해서 루마니아로 공수했으며, 앤 로스를 도와 의상 디자인에 참여한 카를로 포기올리는 루마니아의 라스노프 마을에 공장을 세워서 현지인으로 채운 엑스트라들의 군복 등 루마니아의 로케이션 현장에서 필요한 의상을 제작했다.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촬영감독 존 실은 인만이 살던 시대에 세상의 모습이 필름에 어떻게 담겨졌는지를 연구하기 위하여 틴 타입(tin-type: 일명 ferrotype-광택 인화법으로 찍은 사진) 등 남북 전쟁 당시의 사진기술을 연구했다. 존 실은 꾸밈이 없는 사실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고 각각의 계절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잡기 위해 다양한 필터와 촬영 기법을 도입했다. 다음은 촬영감독의 설명이다. "나는 두 가지 종류의 네가 필름을 사용했다. 하나는 배경 장면들을 위해 콘트라스트가 좀 더 많은 필름인데 인만이 탈영한 다음 고난의 여정을 밟아가는 과정이 매우 선명하게 그려진 장면들에 사용됐다. 나머지 하나는 좀 더 부드러운 네가 필름을 사용했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과 아이다와 루비가 블랙 코브 농장에서 함께 보내는 장면들에 사용됐다. 전체적인 조명은 1860년대의 분위기와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인공조명은 피하고 그 때 당시의 자연 채광 즉, 낮의 일광과 시시각각의 햇살, 구름, 월광, 야간의 빛, 양초가 발산하는 빛, 기름이 타면서 발산하는 빛, 그리고 모닥불 불빛 등을 최대한 활용했다."
존 실은 스타일에 치중한 촬영을 피하도록 노력했지만 피츠버그의 스릴 넘치는 전투 장면만큼은 영상적인 스타일을 최대한 살렸다.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피츠버그 전투는 실제로도 너무나 격렬하고 참혹했기 때문에 사실적인 표현만으로는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촬영감독의 설명이다. "당시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대규모 폭발로부터 연기가 어떤 식으로 솟아올라서 대기를 채우는지가 잘 나타나있다. 그래서 나는 담배가 탈 때 끝에서 발산되는 붉은 색과 황갈색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색이 들어간 필터를 드라마틱하게 사용했다. 그 결과 불타는 화약과 사방에 튀는 피와 흙먼지의 느낌이 처절할 만큼 잘 묘사됐다."
밍겔라 감독과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만들어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고, <리플리>를 함께 만들어서 영국의 아카데미상에 해당하는 BAFTA상 후보에 지명된 존 실은 <콜드 마운틴>이 가장 촬영하기 힘들었던 영화라고 술회한다. 그들의 촬영을 힘들게 만든 요인 중 하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루마니아의 날씨였다. 화사하게 멋들어지다가도 깜짝 놀라게 만들만큼 돌변하고, 개울의 물살이 졸졸거리듯 흐르는 것처럼 햇살이 부드럽다가도 맹렬한 폭풍우가 갑자기 몰아치는 등 실로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런 날씨에 맞서서 촬영을 한다는 것은 마치 자욱한 안개 너머에서 적군이 언제 진격해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숨을 졸이며 대기하는 병사들의 심정을 다를 바가 없었다."
촬영에 관하여
밍겔라 감독은 2002년 7월 15일에 크랭크인을 했다. 첫 촬영의 로케이션은 부카레스트 인근의 포티그라푸의 마을이었는데, 제작진은 그곳에 있던 거대한 규모의 농장을 개조해서 버지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벌어진 전투장으로 이용했다. "크레이터(Crater: 분화구) 전투"라고 명명된 이 전투는 실제로 1864년 7월 30일에 일어났던 전투다. 남군과 북군 양측은 이 전투에서 6,300명으로 추정되는 군인을 잃었으며 북군은 치명타를 입었었다.
당시 남군은 북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진지를 치고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북군은 남군의 진지 밑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엄청난 폭약을 매설했다. 폭약의 심지에 불이 붙고 15,000명의 북군이 돌진했는데, 전방의 자욱한 포연과 안개 때문에 남군의 참호일 것으로 착각하고 돌진했던 북군은 깊은 분화구에 갇혀버렸고 그 바람에 수천 명의 북군은 ‘죽음의 구덩이’라고 불린 분화구 속에서 참살을 당했다. 그 안에 갇힌 채 몇 시간 째 이어진 육박전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참혹했겠는가!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머잖아 종전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전투는 그곳에서만 8개월 동안 이어진 새로운 전투의 시작을 예고했다.
크레이터 전투는 프레지어의 소설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핵심적인 장면인 동시에 인만에게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다. 인만은 이 전투를 통해 전쟁의 참혹성과 무차별 살육,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귀중한 생명을 명분 없이 소모하는 비극을 목격하고는 전쟁에 등을 돌리고 탈영을 결심한다. 그리곤 부디 살아서 돌아오길 기도하는 아이다를 향해 험난한 대장정을 시작한다.
촬영에만 무려 3주가 걸린 이 크레이터 전투 장면은 밍겔라 감독이 평생 영화를 만들면서 찍었던 장면들 중에서 가장 촬영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미술감독 단테 페레티는 포티그라푸에서 참호를 파고, 진지를 만들고 군대식 간이 병원도 만들었다. 제작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세트는 거대한 분화구인데 그 규모는 깊이가 9m-15m이며, 폭은 18m-24m, 길이는 51m 규모로써 당시의 실제 분화구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근접 촬영을 위한 구덩이도 만들었다. 한번에 무려 350명을 죽이면서 전투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기도 했던 진지 폭발 장면은 특수효과 전문가인 트레버 우드에 의해서 기획됐다. 우드는 이 장면을 위해 4,000 리터의 가솔린과 100kg의 고성능 폭발물질을 투입했다. 폭발하는 순간 허공에 분출하는 흙먼지 장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우드는 모래와 먼지, 나뭇조각, 나무껍질 등을 혼합한 소품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전투 장면과 상황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제작진은 엑스트라를 고용하는 대신 루마니아 군대의 촬영 지원을 받았다. 1,000명의 루마니아 군대는 각각 북군과 남군으로 편성됐으며, 군사전문가인 브라이언 포한카와 존 버트, 마이클 크라우스가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루마니아 병사들은 훈련받은 군인답게 제작진의 주문과 요청에 따라 정확하고도 치밀하게 연기에 임해주었다. 그들은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 면에서는 현재의 미국 군인들과는 큰 차이가 보일 정도로 마르고 왜소했지만 남북 전쟁 당시는 지금보다 궁핍했기 때문에 젊고 나이어린 병사들로 구성된 루마니아 군인들의 신체적 조건이 실제로 남북 전쟁 당시의 미국 군인들과 더 닮아있었다.
전투 장면의 촬영을 끝마친 다음 제작진은 북쪽으로 약 100마일 쯤 이동해서 트랜실바니아의 포이아나 브라소프 마을로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루마니아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는데, 특히 이곳에는 ‘블랙 코브 농장’의 세트가 만들어졌다. 이 농장은 19세기 미국의 전통적인 남부 농장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아이다와 아이다의 아버지-먼로 목사-가 산책을 하면서 인만을 안내하는 장면들과 먼로 목사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도 그곳에서 찍었다. 물론 인만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아이다가 4년 동안 시련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모습들도 함께 촬영됐다.
블랙 코브 촬영을 마친 제작진은 또 하나의 중요한 로케이션인 콜드 마운틴 마을의 세트를 만들기 위해 브라소프의 포이아나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자르네스티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골 마을이다. 인만과 아이다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포함해서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들은 거의 이곳에서 촬영됐다. 단테 페레티는 이곳에 예배당과 가게, 하숙집, 가축의 우리, 세탁소, 은행, 치과 병원 등 32채의 건축물을 지었다. 모두 목재로만 지은 건축물들을 비롯해서 주변 환경들은 블루 릿지와 스모키 마운틴에 실제로 존재했던 마을들을 본따서 재현한 것이다.
루마니아에서 <콜드 마운틴>을 촬영하면서 영화에 사실감을 더해준 요소 가운데 하나는 루마니아의 혹독한 날씨다. 불행하게도 8월 한 달 동안엔 장장 21일 동안 하루도 안 거르고 비가 내렸다. 제작진은 인내심을 갖고 시시각각의 날씨 변화에 대응하면서 순발력 넘치게 세트 안팎의 장면을 찍었다. 그런 인내심과 치밀함 덕분에 밍겔라 감독은 촬영 스케줄을 맞출 수 있었고, 순조롭게 미국으로 이동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의 로케이션 촬영에 들어갔다.
미국 로케이션에서는 인만이 탈영한 다음 콜드 마운틴으로 향하는 여정을 촬영했는데 보타니 베이 농장과 찰스톤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넓디넓은 늪지 등의 배경이 촬영됐다. 인만이 황폐한 옥수수 밭을 부근에서 흑인 노예들에게 달걀을 얻어먹을 수 없냐며 구걸하는 장면과 의용대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옥수수 밭을 뚫고 도주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인만이 부도덕한 목사인 비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와 함께 도주하는 장면, 나룻배에 몸을 싣고 케이프 피어 강을 건너다가 위기를 맞는 장면들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부상당한 인만이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찰스톤에 위치한 찰스톤 대학교에서 촬영됐다. 인만과 비지 목사가 양손이 쇠사슬에 묶인 채 다른 죄수들과 함께 의용대에 끌려가는 장면은 찰스톤의 시골 마을에서 촬영됐다.
다음 촬영지인 리치몬드로 이동한 제작진은 제임스 강가를 배경으로 인만과 비지 목사가 의용대의 감시를 피해 도주하는 장면을 찍었으며, 화전민처럼 산 속에서 살면서 탈영병들을 유인한 다음 의용대에 넘겨서 돈벌이를 하는 주니어(지오바니 리비시)와 인만 일행이 만나는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 미국에서 3주 반의 촬영을 마친 제작진은 다시 루마니아로 이동하여 블랙 코브 농장 장면을 촬영했다. 이번에는 루비가 아이다의 농장에 처음으로 찾아오는 장면을 찍었다. 그 다음엔 브라소프에서 한 시간 가량 남쪽에 있는 시나이아로 이동하여 쇠사슬에 묶인 인만이 다른 죄수들과 함께 의용대에 끌려가다가 북군과 대치되는 상황에서 탈출을 기도하는 장면과, 혼절한 다음 염소 노파라 불리는 매디(에일린 아트킨스)에 의해 구조되는 장면들이 촬영됐다.
그 다음으론 스욍어 농장으로 이동하여 의용대 대장 티그와 그의 부하들이 스욍어 가족을 참살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장장 22주 동안의 촬영을 마무리하는 촬영이자 영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장면들 즉, 인만과 아이다가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 두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침실 장면, 티그가 아이다와 루비 일행을 미행하는 장면들이 촬영됐다.
음악에 관하여
영화 <콜드 마운틴>을 완성하는 필수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는 19세기 분위기를 재현할 음악이다. 밍겔라 감독에게 음악은 자신의 모든 영화의 영상들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그에게 음악은 곧 시간과 공간의 느낌을 완성시켜주는 불가분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은 <콜드 마운틴>의 모든 구조에 스며들어있다. 그것은 때로는 가브리엘 야레드의 오케스트라 음악으로도 묘사되고, 때로는 19세기의 애절한 포크송으로도 묘사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리플리>의 음악들도 작곡한 야레드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부터 이 영화의 음악을 구상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작곡에 착수한 야레드는 영화가 촬영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 서 곡을 썼는데 그는 심지어 감독이 각본을 쓰고 있는 단계에도 이 작품을 위한 몇 개의 곡들을 써놓기도 했다. 야레드에게 이런 방식은, 마치 감독이 기본적인 콘티를 구상하고, 이어서 구체적인 콘티를 작성한 다음에 디테일한 촬영에 임하듯이, 스토리를 일관성 있게 따라갈 수 있는 창의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항상 선호하는 작업방식이다. 감독 또한 야레드의 그런 작업방식을 좋아한다.
모든 음악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미리 레코딩이 됐으며, 에 참여했던 T-본 버네트가 뮤직 프로듀서를 맡았다. <콜드 마운틴>을 위해 버네트는 포크송과 미국 남부의 컨트리 뮤직 중 하나인 블루그래스 뮤직의 전통도 도입했다. 출연진들도 영화의 음악에 일조를 했는데, 실제로 감독은 음악적 재능을 가진 연기자들을 원했었고, 그의 희망대로 연기자들은 극중에서 노래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환상적인 가창 실력을 선보였다. 스토브로드의 바이올린 연주는 극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스토브로드 배역을 맡은 브렌단 클리슨은 실제도로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가이다. 조지아의 캐릭터는 떠돌이 풍각쟁이 가수 역할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창력이 필수였는데 그의 배역을 맡은 잭 화이트는 록 그룹인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멤버이니 노래에 관한한 무엇을 걱정하리오! 잭 화이트는 연기력도 뛰어났기 때문에 감독은 그를 위해 중요한 대사들을 추가하기도 했다. 니콜 키드먼은 피아노 연주 실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하기 때문에 아이다의 캐릭터를 더 한층 살려주는 연기가 가능했다.
음악과 관련한 감독의 끝맺음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서정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로맨틱한 영화의 음악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종종 인만과 아이다의 감정 및 세계를 심도 깊게 묘사해야 되는 부분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표현해낼 수 있는 음악은 단연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