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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세라 워터스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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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니에게 빌려서 읽기 시작. 처음에는 약간 시큰둥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역사소설이 재미있을까?) 와... 1장 읽으면서 가슴 터지는 줄 알았다. 난 내용 하나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이건 낸시 애슬리의 레즈비언으로서의 성장기. 그렇지만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낸시 자체가 소설 끝날즈음엔 꽤 철이 들어있다. 일단 얼굴만 밝히지 않아요... 아무튼 끝까지도 꽤, 아니 사실 엄청 재미있었다.

  1장, 2장, 3장으로 나뉘어서 낸시의 인생이 얼마나 널뛰며 변화하는지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1장이 제일 재밌긴 했다. 로맨스 소설 읽는 기분이었다. 레즈비언판 로맨스 소설... 심지어 잘 쓴. 남장 가수였던 키티 버틀러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쫓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기까지의 장면은 진짜 여느 로맨스 소설 뺨치는 긴장의 연속. 이게 낸시의 시점이다 보니까 감정이 절절하게 전해들어와서 또 좋더라. 촌뜨기 소녀였던 낸시가 사랑때문에 런던에 가며 인생이 확 바뀌어나간다.

  다이애나를 만나기 전 까지 낸시의 삶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고 어찌 보면 비참하기 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낸시에게 완벽한 풍요와 향락을 가져다 준 다이애나를 만난 뒤의 일이 썩 즐겁게 보이지만도 않았다. 돈 많은 과부의 애인이 된 낸시의 모습은 완벽한 애완동물이었다. 예쁨받지만 자신의 의견을 낼 수도, 존중받을 수도 없었다. 화를 낸다 치더라도 한낯 어린애의 화처럼 치부됐을 뿐이지. 제나와 그렇게 사고를 친 게 잘했다는 말하려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낸시 자체가 썩 도덕적이지 않은데다 캐릭터가 철 없을 나이의, 철 없는 애인지라 좀 열받게 하는 구석이 간간히 있긴 했다. 그래도 그렇게 된 데에는 다이애나의 탓이 절반은 넘는다고 생각. 뭐 낸시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긴한데, 이 부분은 그랬다.

  플로렌스를 만난 뒤 낸시는 레즈비언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완성된다. 그렇게나 철없던 그녀가 처음에는 살려고 발버둥치고, 플로렌스의 집에 들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탕아가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더라. 처음엔 플로렌스의 캐릭터 역시 썩 마음에 들진 않았는데(아 죽은 사람 붙잡고 살다니 이게 무슨 말이요), 갈수록 좋아졌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질투하는 모습도 나름 귀여웠고... 둘 사이 연애가 크게 꼬이지 않아서 다행. 서로 솔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난 굉장히 재미있게 봤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난감할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생각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어서. 퀴어문화에 조금 열려있지 않으면 난관일 듯. 그걸 감당할 사람에게라면 추천. 너무너무너무 재밌다. 핑거스미스도 완전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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