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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에게 걸려온 전화보다 더 스파이 개인의 삶의 삶과 심리를 파고 든 느낌이다. '죽은자~'에서 등장했던 조지 스마일리, 문트, 피터 길럼이 모습을 보이는데 주연급은 아니고 반가운 얼굴로 등장하는 정도. 문트가 그나마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상하게도 전편보다 밉살스럽더라...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알렉 리머스. 독일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가 실패하여 요원들을 전부 잃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후 관리인에게 문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잠입하라는 명을 듣는데 요컨대 이중 스파이 같은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독일로 가기 전에 보여지는 알렉의 삶이 사건 자체보다 흥미로웠다면 아이러니일까.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마음에 드는 리즈라는 여자를 만나면서도 그녀에게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알렉의 심정이 담담한 묘사 속에서도 뜨겁게 느껴졌다. 리즈를 향한 마음은 독일에서 일을 하는 도중에서도 아주 잠깐씩 드러나는데 그 잠깐의 무게가 굉장히 크더라.
독일에서의 활동은 대단한 첩보활동이라기보단 속고 속이고 속지 않도록 노력하는 머리싸움이 도드라졌다. 그것도 꽤 차분한 어조라서 긴박함은 없었는데 긴장감은 크더라. 문트 바로 아래에 있는 2인자 피들러와의 대면은 각자 굉장히 애쓰는 느낌이었다. 피들러가 싫진 않았는데 논리를 따라서 냉철하게 움직이는 느낌이어서 그랬다. 전후 독일로 돌아온 철저한 유태인의 모습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뭐... 하여튼간에 피들러가 그동안 의심해오고 또 그 자리를 노리기도 했던 문트에게서 마음을 돌렸으며, 적절한 증거를 끼워맞춘 터라 리머스의 일은 순순히 풀려간다. 거의 종반까지. 하지만 이렇게 잘 풀리면 추리소설이 아니겠지...ㅎㅎ 문트 쪽의 반박과 그 후에 드러나는 진상은 사실 예상 가능한 면도 있지만, 놀랍기도 하다. 요건 이 소설 하나만의 힘이 아니라 아마 전편에서 밑밥을 잘 깔아준 덕이 아닐까 싶다.
후에 동독을 빠져나올 때 리머스와 리즈가 벌이는 설전은 스파이 개인의 고뇌를 다시 한 번 담아낸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의 가운데 알맹이보다는 초반과 결말부가 마음에 들었다. 결말부에 이르러서 리머스 또한 리즈 만큼 혼란스러운 듯 한데, 정부가 지시한 일이라 할 지라도 본인의 사상과 맞지 않는 일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정부의 사상과 개인의 사상이 교집합이 있을 순 있어도 합집합일 수 없고, 개인이 곧 정부일 수 없다는 것 같은 당연한 사실들을 사건을 통해 보여주니까 씁쓸하기도 하고. 마지막 리머스의 행동은 그런 틀 안에서 자아를 지키려는 발버둥 같기도 해서 좀 슬펐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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