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구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이환 (예담, 2009년)
상세보기

  2009년 멀티문학상 수상작. 소재가 엄청 재미있어 보여서 온 책들 중에서도 빨리 읽어야지, 하는 순위권이었는데. 느낌만큼이나 재미 있었다. 그렇게 내내 재미있다가 막판에 찝찝해져 버렸다... 으 난 이런 불쾌함을 되게 싫어하는데. 결말을 어떻게 낼까 궁금해하긴 했는데, 이런 류의 설정들의 전철을 밟듯이 '홀연이 나타나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가 정답이 되어버렸다. 물론 중요한 건 구의 정체가 아니고, 인간의 삶을 향한 발버둥과 그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들(주인공 내면이건 주변 사람들이건 간에)이긴 한데... 으 그래도 난 이런 거 별로 안좋아해. 우주전쟁 같은 이런 설정 별로인 거 같다. 차라리 설명을 해줘... 날 이해시켜줘... 이래서 내가 판타지 문학을 잘 못읽는 거겠지만.

  장편인데 계속 도망을 쳐야하는 주인공의 상황 때문인지 긴박감이 넘쳐흐른다. 거의 종반부까지도 내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긴장상태가 계속되었다. 원래 출퇴근길에만 읽으려고 했는데, 출퇴근 길에 반 읽고, 다음날까지 못참고 집에서 다 읽음. 엄청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아니 재미는 있다만) 이 긴장상태를 잃어버리면 내일 또 가져오기 어려올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쭉 한번에 읽는 편이 더 재미있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도 온 몸에 힘이 쫙 풀리는 기분이었다.

  근데 중요한 건 뭐 이 남자의 도망보다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상황의 변화 같은 거. 어떤 부분에서는 남자에게 공감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못하고 그랬다. 인상깊었던 만남은 종교집단과의 만남이랑, 청년과의 만남. 종교집단 쪽에서는 뭔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고(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었다 한들 그 분위기란 게), 청년과의 만남은 세상에 남은 단 둘이었다는 점에서 그 감정교류가 흥미로웠다. 어떻게 해서든 둘이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 영 맞지 않는 두 사람이 공존해나가는 모습은 끈질기고 흥미롭지만, 동시에 남자의 피로가 나의 피로가 되어 짜증이 밀려들어온다. 두 사람의 심리가 변해가는 모습도 재미났다.

  구가 사라진 후의 세상은, 글쎄. 서로의 짜증을 폭발시킬 희생양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읽으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이게 딱히 판타지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거.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인터넷에서... 뭐 이런 저런 모습을 보면 결국 이 소설은 판타지 안에서 현실을 풍자하는 쪽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다. 무거운 것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재미있으니 추천 못할 이유가 없지.

  그나저나 멀티문학상은 올해 수상작 없음... 어이쿠 1회로 끝나는건 아니겠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