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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심리 철학자라서 그런지 철학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서,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의 머리 속을 샅샅이 분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철학적인 이야기를 가미해서. 그런 부분은 높게 사지만, 스토리의 빈약성이 크고 그야말로 '현실의 연애'를 보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재미있지 않았다.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라는 것도 뭐... 연애 속에 있는 '나'의 말들은 솔직히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 만한 것들인지라. 다만 그걸 어떻게 더 윤택하게 표현해냈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그런 쪽의 말들보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부분에서 통찰력이 발휘된 것들이 좋았다. 몇 부분 안 남아서 그렇지.
스토리는 그냥 통속소설의 기본 플롯을 따라가는 듯. '나'가 '클로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고, 그리고 헤어지는 이야기. 사랑에 빠지는 단계보다는, 헤어짐을 느끼면서 남자가 편집증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좋았다. 모든 사소한 부분에서 헤어짐의 징조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사소한 것들인데 이 주인공 남자가 너무나 예민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잘 관찰되어서 좋았다. 실제로 사귀는데 이렇게나 섬세한 남자라면 꽤 귀찮겠다. 그런 생각은 했다.
클로이가 바람을 피운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사실을 '나'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진짜 짜증났다. 이딴 식의 변명은 질색이다. 왜 자기가 잘못해놓고 상대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건지. 이럴 바엔 차라리 독하게 나가는 게 깔끔하게 관계를 끝내기에 적당한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였다.
이러나 저러나 내용적인 측면은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고 간단하게 연인 관계의 심리라던가, 그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가볍게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싫어할 것만 같다.
이것에 대해서 무슨 변명이 가능할까? 부모와 정치가들이 메스를 꺼내들기 전에 하는 낡은 말이 있을 뿐이다―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네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나는 네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너에게 영광을 주었으니 이제 너에게 상처도 주겠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7, p.90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7,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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