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은 신변잡기를 두루 늘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전에 한비야의 다른 책을 읽었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몇 편의 중국 견문록 에피소드들은 더욱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캄보디아의 이야기라던가, 구호활동 이야기 같은 것.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굳이 중국 견문록에 들어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런 에피소드가 중국 견문록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한비야의 책이 한비야의 일상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것이다. 여행기라기보다 일기 같다.
남의 소소한 일상을 왜 사람들은 들여다보고 있을까. 그건 한비야의 책이 가진 당당한 느낌과 한비야가 전해주는 일상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일게 하기 때문이리라. 한비야의 문체는 당당하다. 나는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이러이러하게 느꼈다. 라는 식의 말투가 그녀의 외국 이야기에 신뢰를 더해준다. 또, 소소한 일상이라고 해도 한비야의 일상은 세계적이다. 외국에 나가서 겪게 되는 자그만한 난항이 읽는 이에게는 무척 신비로운 일로 다가온다. 한비야의 생각을 적어놓은 그저 일상인 것뿐이지만, 읽는 이에게는 재미있는 외국의 실상이다. 게다가 한비야는 그저 단순히 외국에서 겪게 되는 일상을 적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에피소드나, 정치적 문제를 담은 에피소드,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일게 하는 에피소드를 적어낸다. 이런 것에서 우리는 세계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다. 마치 우리 이웃의 이야기처럼 외국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교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서 여행기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은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초기에 발간된 한비야의 책을 읽었던 내게 이 중국 견문록은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주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이 여행기, 견문록의 틀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비야식의 당당한 문체도 좋고, 소소한 일상이야기도 좋지만 제목인 중국 견문록과 상관없는 에피소드는 내게 복잡하고 재미없는 구성을 만드는 요소로만 보인다. 한비야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뛰어오름과 동시에 그 본연의 색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다.
-
이것도 예전에 적어둔 감상. 이런 식의 옛감상이 몇 개 있어서 앞으로 올려보려고 한다.
'마음의 양식 > 가끔은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 박노자 (한겨레신문사, 2003) (0) | 2009.12.27 |
---|---|
나무 /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03) (2) | 2009.12.22 |
콘트라베이스 /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1993) (0) | 2009.12.18 |
싱글맨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그책, 2009) (0) | 2009.12.17 |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1) (2) | 2009.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