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수가. 순전히 제레미 때문에 본 영환데 제레미 동정할 가치도 없고 악당이라는 칭호 붙여주고 싶지도 않은 상찌질이로 나온다니... 나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서부극. 난 서부극 별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별로 매력을 못느끼기도 했고, 내가 살아오는 동안엔 서부극이 유행한 적도 없으니까. 그래서 뭐 기존의 서부극이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요 영화 하나만을 놓고 보자면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다.
버질 콜(에드 해리스)과 에버렛 히치(비고 모텐슨)라는 범죄 해결사 콤비가, 랜달 브렉(제레미 아이언스)이라는 악당이 판치는 마을 '아팔루사'에 와서 겪는 이야기. 그렇게 긴장감이 크지 않고, 워낙에 버질과 에버렛이 신적인 것마냥 그려져서 재미가 없다. 악당이라는 랜달은 앞서 말했듯 동정할 가치도 없는 상찌질이라서... 카리스마도 별로 없고 그냥 하는 짓거리도 찌질하다. 사형 판결 받은 뒤 링 쉘튼(랜스 헨릭슨)과 애브너 레인즈(톰 보워)에게 돈을 주고 도움을 받아 도망치는 과정이나, 그 와중에 다시 잡혀와서(...) 죽나 했더니 인맥을 활용해 사형에서 빠져나가는 거나... 자기 능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뻔뻔스레 아팔루사로 돌아와서 신사인 척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이건 뭐.
아무튼 악당은 이렇고, 주인공인 둘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고. 그냥 끈끈하다. 앨리슨(르네 젤위거)을 통해서 잠깐 그려지려나 싶었던 불화도 불씨가 보이는 듯 하다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아 앨리슨은 그냥 남자 없이 못사는 싸구려. 이런 여자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려 드는 버질도 짜증나고(심지어 앨리슨이 어떤 종자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 그런 버질을 위해 문제거리를 해결해주고 떠나는 에버렛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너넨 멋있냐 그게...
뭐 남자끼리의 신의라던가 카우보이들의 믿음이라던가 이런걸 멋지고 과묵하게 그려내려던 의도는 알겠는데 매력적이지 않았다. 배우들 아니면 내 시간이 많이 아까웠을 거에요.
참 시작부터 뭐라고 써야 할 지 모르겠는 느낌이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느낌이었다. 인간이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나, 전쟁 중에 인간들이라는 게 얼마나 하찮게 보여질 수 있나... 그런 생각도 들고... 편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다.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피아니스트라는 섬세한 직업을 가진 폴란드 청년이 전쟁을 통해서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러나 그 추락 속에서도 지켜질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약간은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필만 본인이 가질 수 있는 고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주변 상황이나 주변사람들의 태도가 변하는 것들도 흥미로웠다.
독일에 의해 점령된 바르샤바에서 유대인인 스필만 가족이 겪는 고난의 굴레는 점점 심해져만 간다. 다소 낙천적이던 아버지(프랑크 핀레이)나 신경질적이면서도 섬세했던 어머니(모린 립먼)이 힘을 바싹 잃은 노인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나, 그렇게 기가 세던 동생 헨릭(에드 스톱파드)이 약해져가는 모습을 보면 속이 쓰리다. 여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 격리 지구에서의 험악한 삶의 묘사는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휠체어에 탄 노인을 베란다에서 집어던지는 게슈타포의 모습은 짧으면서 강한 충격을 주었고, 구와덱이 꿈을 잃어가는 모습들은 슬펐으며, 수용소에 가기 전 캬라멜 하나를 가족 다섯이서 나눠먹는 모습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짠했다.
간신히 혼자서 수용소 행을 면한 구와덱의 삶은 혼자라서 더 힘들고 지친다. 힘들더라도 같이 힘들 수 있는 가족이 옆에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연명하는 그의 삶은 절박하고 동시에 끈질긴 면이 있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삶에 대한 의지가 신기할 정도로. 이런 거친 삶의 묘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이 제한되는 부분인데, 먹지 못해 바싹 말라가는 구와덱의 모습은 그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콩 몇 알을 넣어 물을 끓이던 모습이라던가, 들기도 버거워 보이는 깡통캔 하나를, 죽음이 눈앞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들고 다니는 모습. 독일군 장교(토머스 크레취만)이 준 음식에서, 잼을 황홀한 표정으로 먹던 모습같은 건 정말 인상깊었다.
구와덱의 삶은 그렇다 쳐도 주변 상황묘사를 담담하면서도 비정하게 잘 그려낸 듯 하다. 이게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을 걸 생각하니, 그게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람 목숨이 바퀴벌레보다 못한 모습으로 죽어나가니까... 그게 마치 일상인 것처럼 말이다. 또 유태인 말살정책이 있었기에 변해가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가슴이 서늘하더라. 숨어있던 구와덱을 발견했을 때 마구 몰아세우던 독일인 여자는 정말 소름이 끼쳤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도왔던 도로타(에밀리아 폭스)와 그의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 제한되었을 때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명확한 모습으로 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제한 안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음 굳이 생명력 운운하지 않아도 끈기같은 걸 본 것 같다. 마지막 즈음에 러시아군이 독일군 코트를 입은 구와덱에게 그딴 옷을 왜 입고 있느냐고 물었을때 구와덱의 대답이 가슴에 와 박혔다. 추워서요(because I'm cold). 얼마나 단순하고, 기본적이며 동시에 와닿는 대답이었던지. 이런 대사는 헨릭이 경찰서에 잡혀있다가 나왔을 때, 배고프다고 말했을 때도 느껴지긴 했는데, 아무튼 이 장면의 와닿음은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았어도 정말 큰 인상으로 남았다.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필트이 구와덱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켰을 때의 모습이 또 기억에 남는데... 구와덱의 직업이라는 건 예술 직종이다. 이런 직업은 세상이 풍족한 때일수록 잘 되는데, 전쟁 상황에서의 취급이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찮아진다. (아이러니한게 이런 때 또 기막힌 작품들이 쏟아져나오지만.) 전쟁이 난 뒤 구와덱은 피아노를 치지 못하며, 죽을 듯한 동물으로서의 삶의 투쟁만을 보여주는데... 이 때의 피아노 연주는 구와덱의 안에서 예술가의 혼이 죽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 같으면서도 굉장히 재미 있었다. 하나의 긴 투쟁을 본 느낌. 빌름의 일도 잘 풀렸으면 좋았을텐데. 역사가 그렇지 못했다는게 슬프다.
1986년 영화라서 상큼 풋풋한 톰아저씨를 볼 수 있다. 근데 난 지금 모습이 더 좋은듯...? 이땐 너무 깎아놓은 밤톨마냥 반질반질해서. 키가 작건 말건 참 훈훈하고 잘생겼어요...
이야기 진행이 너무 전형적이어서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진 젊은 조종사 매버릭(톰 크루즈)가, 탑 건이라는 비행사 훈련학교에 입학하면서 맞이하는 일들 인데... 적당해 재미난 친구 구즈(안소니 애드워즈), 매력적인 여자친구 찰리(켈리 맥길리스), 싸가지없는 라이벌 아이스맨(발 킬머)... 그리고 멘토가 되어주는 교관 바이퍼(톰 스커릿). 등장하는 인물만 봐도 대충 촉이 서지 않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안 좋은 기억이고, 그 때문에 약간 날라리가 된 매버릭이 성장하는 스토리. 이 성장 스토리에선 구즈의 죽음으로 좌절을 겪기도 하고, 찰리와의 연애도 흔들리고, 뜻밖에 아이스맨을 돕기도 하며 좋은 조종사로 거듭난다는 이야기. 아 너무 그대로의 이야기라 가감할 것이 없어!
그런데도 그냥저냥 무난하게 봤다. 워낙에 옛날영화이기도 하고, 청춘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그럭저럭 볼 만 했다. 그 시절엔 이 영화가 신선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다... 나는 이걸로 톰 크루즈가 스타가 되었다길래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더니, 스토리빨이 아니라 그냥 청춘영화 빨. 트와일라잇으로 뜬 로버트 패틴슨 같은 거 아닐까. 아 그건 비유가 너무 심한가... 그렇지 너무 심하지...
구즈는 등장할 때 부터 아 쟤 죽겠다 싶었는데 정말 죽더라. 그럴거면 아내나 보여주지 말지...ㅜ.ㅜ 맥 라이언같은 예쁜 아내를 두고 아들을 두고 죽어버리면 어떡하누. 아이스맨은 딱히 엄청 못된 애라는 느낌도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은 쟤랑 서로서로 돕겠고만 이런 느낌 당연히 들었고, 찰리 캐릭터도 뻔하고.
유명한 영화인데 이제서야 봤다. 그리고 본 뒤에서도 또 한참만에 감상을 쓰는구나. 그냥 생각한 만치의 영화. 옴니버스 식 영화는 산만해지기 쉬운데 인물들을 긴밀하게 잘 엮어낸 것 같다. 주제도 일맥상통하고... 그래서 옴니버스 영화 치고 꽤 흥행한 거겠지.
낭만적인 장면도 많지만 묘하게 그 낭만이 껄끄럽게 보이는 장면들도 많다. 친구인 피터(치웨텔 에지오포)의 아내(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하는 마크(앤드류 링컨)의 이야기는, 마크의 행동에서 낭만이 묻어나면서도 피터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입장에서 회사 사장 해리(알란 릭맨)을 꼬시는 직원 미아(하이케 미카취일)의 이야기는 미아의 입장에선 달콤할 수 있지만, 해리의 아내 캐런(엠마 톰슨)에게는 가슴찢어지는 상처를 남긴다. 모든 사람이 1:1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사랑할 때 만큼은 서로만을 바라보는게 정석이라 그런지 남겨진 짜투리 사람들은 슬퍼지는 것 같다.
전체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있고 대부분은 가슴따뜻한 이야기인지라 딱히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재미있었던 커플이라면 포르노 배우 커플. 잭(마틴 프리먼)과 주디(조안나 페이지)의 이야기는 굉장히 싱그러웠다. 잘 사귀어 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좋았던 건 작가 제이미(콜린 퍼스)와 가정부 오렐리아(루시아 모니즈)의 이야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게 참 미묘하다 싶으면서도 믿고싶고.
영국 수상(휴 그랜트)과 비서(나탈리)의 이야기는 너무 판타지가 가미되었다 싶었고... 반대로 너무 현실적이었던건 사라(로라 리니)와 칼(로드리고 산토로)의 야이기인데, 연애가 사실적이었다는 게 아니라 사라의 상황이 그랬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오빠 탓에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기와 그걸 놓지 못하는 여자라니.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도 포기할 수 없는 사라의 인생에 자신만의 사랑이 있긴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앞으로도 쭉 그런 상황이겠지. 해리와 캐런의 이야기도 나름대로 현실적이었고, 캐런의 대처 또한 그랬다. 해리가 한동안 사과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아, 머저리 영국남자인 콜린(크리스 마셜)의 미국 정복기(...)는... 난 반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그게 더 놀라웠음.
그냥 무난무난하다. 실망도 없고 대단한 놀라움도 없지만 그럭저럭 보기 괜찮은 영화.
새로 부임한 매력적인 미혼의 영국 수상(휴 그랜트)은 발랄하고 귀여운 비서 나탈리(마틴 맥커친)에게 첫눈에 반한다. 수상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의식해 그녀를 멀리하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만다. 고민 끝에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만 사랑 고백이 담긴 그녀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뜨거운 사랑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주소도 모른 채 그녀가 사는 동네로 무작정 찾아 나서는데.
새 아빠 대니얼(리암 니슨)은 엄마를 잃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아들 샘(토마스 생스터)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사실 샘은 좋아하는 여자 조안나 앤더슨(올리비아 올슨)을 두고 짝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었던 것. 새 아빠는 아들의 사랑을 이뤄 주기 위해 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낸다. 크리스마스 이브 학예회, 여자친구 앞에서 멋지게 드럼을 연주하고 싶은 샘은 밤낮없이 방에 틀어박혀 드럼 연습을 한다. 드디어 학예회가 끝나고 작별인사도 못나눈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새 아빠와 함께 공항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는 이미 가족과 함께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버린 후... 어쩔줄 몰라하던 샘은 무작정 비행기로 뛰어 든다.
소설가 제이미(콜린 퍼스)는 바랑둥이 여자친구에게 상처 받고 남부 프랑스의 작은 별장에서 소설을 쓰면서 마음을 달랜다. 그가 머무는 동안 집안 일을 돕기 위해 젊은 포르투갈 여인 오렐리아(루시아 모니즈)가 온다. 이 둘은 말은 한마디도 통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고, 매일 헤어지는 시간을 너무나도 아쉬워 한다... 떠날 무렵까지 결국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하는 제이미... 점점 더 커가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쩔줄 몰라하던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드디어 포르투갈로 그녀를 찾아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는데...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칼(로드리고 산토로)을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사라(로라 리니). 드디어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꿈에 그리던 그와 함께 춤을 추게 된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그녀의 새로운 매력에 마음이 끌린 그. 결국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오게된다. 뜨거운 눈빛이 오가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마침내 고대하던 사랑을 나누려는 찰나, 요양소에 있는 그녀의 아픈 남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아쉽지만 그녀는 그를 남겨두고 누나를 찾는 동생에게 달려가는데... 과연 이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무뚝뚝한 남편 해리(알란 릭맨)의 주머니에서 하트목걸이를 발견하고 기쁨에 설레여하는 캐런(엠마 톰슨).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브, 정작 해리가 건넨 선물은 CD. 그렇다면 그 목걸이의 주인은?
이제는 한물간 로커 빌리(빌 나이히)에게 오랜동앗 매니저 일을 맡아주며 고생해온 조(그레고르 피셔). 데뷔때부터 빌리와 음악 활동을 함께해온 그는, 다시 재기를 꿈꾸는 빌리와 함께 리바이벌곡 'Christmas Is All Around'를 크리스마스 음반 차트 1위에 올려 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크리스마스에 이들은 과연 1등을 할 수 있을까?
신랑 피터(치웨텔 에지오포)와 신부 줄리엣(키라 나이틀리)의 결혼식. 신랑의 제일 친한 친구 마크(앤드류 링컨)는 정성을 다해 웨딩 촬영을 해준다. 하지만 신부 줄리엣은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마크를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크의 집에 웨딩 테이프를 찾으러 간 줄리엣은 온통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을 보고 감격한다.
영화 끝나고 할 말을 잃음... 너무 재미있네ㅋㅋㅋ 상영시간이 꽤 긴데도 불구하고 지루한 적 없이 봤다. 여러모로 머리써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뭐...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해도 굳이 따지려 들지만 않으면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는 거 같다. 기본 베이스인 꿈 안에서 정보를 훔치거(디스트랙트)나 심을 수(인셉션) 있다는 배경을 알고, 토템(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위한 자신만이 만질 수 있는 단순한 물체), 킥(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일종의 충격)과 림보(무의식 깊은 단계의 꿈)의 개념만 알면 괜찮다. 좀 더 분석하고 싶다면야 분석하면 되는데... 그런거 좋아하는 사람은 하시구 저는 별로 단계별 분석 이런거까진 하고 싶지 않으니 패스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이 글을 보면 괜찮을 것 같음.
내가 마음에 들었던건 이리저리 꼬아댄 공식들 보다도 인간관계라던가, 사랑, 죄책감, 회한... 뭐 이런 인간 내면의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거다. 꿈이라는 무의식을 통해 구성되는 생각과 감정의 모습들이 좋았고, 또 그걸 기묘하게 비틀어대며 인물들의 과거를 들춰내고 거기에서 보여지는 감정들을 보여준다는 게 기가 막혔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맬(마리아 꼬띠아르)의 관계가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작용한 건 물론이고, 건축가인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배우는 것들과 느끼는 감정들이 좋았다. 또 좋았던 건 로버트 피셔(킬리언 머피)의 아버지(피트 포스틀스웨이트)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와 그 해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 개인적으로 피셔가 금고에서 바람개비를 발견하는 장면이 참 짠했다.
캐릭터들에게 쓸데없는 설명을 많이 자제한 것 같다. 오히려 조연인 로버트 피셔의 성격 묘사가 몹시 잘 드러나는데, 그에 반해 주요 인물들인 아서(조셉 고든-래빗), 위장사 임스(톰 하디), 약제사 유서프(딜립 라오), 그리고 이 인셉션을 실행하게 만든 인물인 기업가 사이토(와타나베 켄) 모두가 어떻게 보면 참 단편적인 인물이다. 바탕이 되는 성격의 일면들만 착착 깔아두고(아서는 냉철하면서도 재치가 있고, 임스는 장난스러운 캐릭터. 유서프는 겁은 있지만 돈 앞에서 의외로 모험을 감수하는 편이고, 사이토는 사업가 치고 스스로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 내면 깊은 것들은 보여주지 않는데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이야기 안에서 딱 신경쓰이지 않고 성격 판독이 가능하고, 그 때문에 중심 인물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머지 애들은 스핀오프로 내주십시오... 아서 이야기좀 제발...
사람의 머리 속에서 무언가를 빼내는 것도 무섭지만 어떤 잠재의식을 심어준다는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로 인해서 맬이 죽은 것이었고, 그 일로 인해 코브 또한 무의식의 압박을 받게 되었으니까. 아들 딸도 못만나고... 코브 장인(마이클 케인)은 보면 코브가 무죄인 걸 확신하고 있는 거 같던데 이런 쪽 증언은 씨알도 안먹히나ㅜㅜ 아무튼 사람 의식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이런 기억의 조작 뿐 아니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떤 식으로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도... 코브가 가진 죄책감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 지 그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버트 피셔는 인셉션의 피해자이긴 한데 어떻게 보면 자기 트라우마를 해소하게 되었다는 점에선 수혜자인 걸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에게 한없이 눌려있고 아버지에 대한 배척이 가득하던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해소하게 되었을 때 느낄 카타르시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 같다. 근데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그렇게 크면서 의외로 대부인 브로닝(톰 베린저)은 꽤 따르는 거 같은 느낌이더라...
배경이나 액션이 생각보다 좋았다. 꿈이 붕괴되는 장면들도 인상깊었고, 그런 꿈 안에서 개고생을 하는 모습들도 재미있었다. 무의식이 적들에게 반응하고 그들을 제거하려 한다는 설정이 신기하고 좋았음. 꿈안의 개고생은 역시 2단계 꿈에서 아서가 무중력 상태에서 킥을 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가장 재미있었다. 이 상태에서 엘렌페이지가 머리를 묶고 있었던 건 무중력 상태에서의 머리카락을 표현하기 어려워서였다고ㅋㅋㅋ 아 그리고 처음에 코브와 아리아드네가 꿈속에서 만나고 그 꿈이 붕괴될 때의 모습은 CG가 아니라 실제...이고 고속카메라 촬영이더라. 무서운 크리스토퍼 놀란...
처음 나왔던 배신자 건축가 내쉬(루카스 하스)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더니 크마ㅋㅋㅋㅋ 1시즌 1화에서 나왔던 말더듬이 연쇄살인마! 그래 얼굴이 너무 멀쩡한데 말더듬이 연기 너무 잘해서 기억하고 있었어...
결말은 딱 좋은 것 같다. 아 물론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미칠 지경이 된 건 맞는데 생각할 여지랑 여운을 많이 남겨주니까ㅋㅋㅋ 개인적으로 난 쓰러졌다 쪽에 한 표를 건다.
좀 뒤늦게 본 편. 책은 덤덤하면서도 음울하게 진행되었는데, 영화는 이 느낌을 또 화려한 톤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음울보다는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었다. 이 화려한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조지(콜린 퍼스)가 과거 짐(매튜 구드)이 죽었던 비극을 떠올릴 때면 우울함이 확 배가되어 다가오는게 신기할 지경. 평소의 느낌들은 화보를 하나하나 이어붙인 듯한 섬세함이 있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가도 몇 몇 장면에서 터질듯이 분출되어 오히려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짐을 잃은 뒤 삶에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조지는 차분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집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친구를 만나보는 날. 이 날은 평소와 일관되게 같으면서도 약간씩의 변주가 있다. 왜인지 눈에 띄는 제자 케니(니콜라스 홀트)와 이야기를 하는 것, 스페인 청년 카를로스(존 코타자레나)과 만나게 되는 것, 끊임없이 집에 오라고 재촉해대는 친구 찰리(줄리안 무어)의 집에 가서 조촐히 파티를 하고, 잠시 바에 나갔다가 케니와 우연히 마주쳐 바다에 뛰더든다던가 하는.
그런 일상의 변주는 대부분 의미없이 지나가지만 케니와의 만남만큼은 의미를 갖는다. 그에게서 생기를 얻고 그에게 느끼는 감정을 통해, 이전에 짐에게서 느꼈던 활기를 다시 얻게 된 조지는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힘을 얻는다. 그러나 운명같이 행복에 젖은 그 날밤 조지는 쓰러져 짐과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찰리의 역할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포스터에 줄리안 무어의 역할이 강조된 듯해 신기했다. 찰리는... 그냥 두고 보기엔 안타까운 면이 있는 헤테로 친구. 찰리가 '정상적인' 연애 운운할 때는 조지가 흥분한 것처럼 나도 신경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 외에는 지켜주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케니는 조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인물은 아닌 거 같지만 젊음의 풋풋함만큼은 잘 느껴지더라. 과거의 모습들을 통해 드러나는 짐의 모습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다정했는지 느껴져 좋았다. 조지의 생활하는 모습들은 건조해서 재미가 덜했지만, 짐과 있는 장면들에서 나타나는 생동감이 너무 좋았다. 짐을 잃었을 때의 그 북받치는 감정들도.
영화가 화보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건축물이나 소품들도 그랬지만 등장하는 인물들도 만만치 않아서. 애인을 막 잃어 상심하면서도 그 감정을 아무데서나 드러내지 않는, 뻣뻣하면서도 섬세한 조지 역에 콜린 퍼스가 등장한 것도 그랬지만 그의 친구인 여자라는게 줄리안 무어요, 죽은 애인은 매튜 구드, 가슴을 흔들어놓는 학생에는 니콜라스 홀트라니.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로 리 페이스가 나오질 않나, 우연히 만나게 되는 스페인 청년 카를로스가 존 코타자레나. 옆집에는 지니퍼 굿윈이 살고 있습니다... 남편으로 나오는 테디 시어스도 만만치 않은 얼굴. 인물부터 소품, 배경까지 이러하니 화보 느낌이 안날 수가 있나.
이거 재밌을 거란 생각을 단 한번도 안했었는데 막상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런닝타임이 짧은 만큼 진행도 빠르고 사건들도 충격적인 것들이 확확 나와대서 재미있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 거라서 찝찝하려나, 그런 생각을 좀 했는데ㅋㅋㅋ 음 이정도면 난 그런 느낌도 거의 없이 좋았다. 인간 마음의 기저에 깔린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폭력 그 자체보다는 그걸 참아내는 인내 쪽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톰 스톨(비고 모텐슨)이라는 캐릭터만 봐도 아 이건 폭력적인 사람이다, 라기보다는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드니까.
처음 등장했던 살인자들로 영화의 긴장감은 처음부터 확 조여진다. 살인을 지켜보았다는 것 만으로도 아이를 죽이는 살인자 콤비. 그런 잔혹한 살인자들의 모습과 비교되는 평범하고 소심한 가장 톰 스톨이 있다. 톰은 자기보다 능력이 좋은 아내 에디(마리아 벨로)와 함께 살면서 다정하고 소심한 모습만을 보이는데(그의 소극적인 모습은 그들의 섹스신만 봐도 완벽하게 도드라진다.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에디이다.), 그런 톰을 보고 자란 탓인지 그의 십대 아들 잭(애쉬튼 홈즈) 또한 대단한 참을성을 보여준다. 그를 괴롭혀대는 친구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막내딸인 사라(헤이디 헤이스)야 워낙 어리니까 순진하고.
아무튼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 잔혹한 살인자들이 찾아든다. 그리고 그 살인자들은 하필이면 톰의 가게로 들어와 손님과 직원을 위협하고, 톰은 기지를 발휘해 그 둘을 처치한다. 그런데 그게 우연이 아니라 간단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죽이는 거다. 어쨌든 그 일로 일약 마을의 영웅이 된 그는 신문에도 실리게 되는데 그로 인해 그를 '조니 쿠삭'이라고 말하며 찾아오는 갱 칼 포카티(에드 해리스)가 등장한다. 칼은 조니에게 눈이 파여 대단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스톨 가족 주변에서 그들을 섬뜩하게 졸라맨다. 톰은 극구 자신이 조니가 아니라 부인하지만 칼에게는 확신이 있고, 에드 또한 그로 인해 자상한 남편의 과거에 의심을 품게 되는데... 이게 너무 칼이 확신하다보니까 둔감한 나조차도 감이 오더라. 톰이 조니구나.
원한이 있으면 조용히 해치우잖고 난리를 치던 칼은 그의 졸개들을 모두 톰에 의해 잃고, 그 자신은 톰을 지키려던 아들 잭에 의해 죽는다. 얌전하던 잭이 이 한 방의 사살로 인해 그를 참게 만들던 고삐를 잠시 풀어헤치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그는 자기를 놀려대던 애를 묵사발을 만들어버리고 정학을 맞는다. 참 잘했어요(...) 약골이 아니었구나.
톰의 비밀은 산산히 깨어졌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제어하고 있는게 흥미로웠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건 사실 톰인데, 그는 에디나 잭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폭력성을 제어한다. 반항하는 잭의 뺨을 때리고서 자기가 되려 놀라는 모습이나, 에디를 강간하는 것 같았던 섹스 후에 그를 놓고 떠나는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모습은 처연하기 짝이 없다. 이게 보면서 웃기는 거다. 그는 자신의 본능을 완벽하게 제어하니까 오히려 약한 것처럼 비춰지는 아이러니가 웃겼다.
톰이 가족에게만 그러할 뿐 실제로는 냉혹한 살인마라는 건 그가 형 리치(윌리엄 허트)의 연락을 받고 필라델피아에 갔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자기가 불리안 그 시점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자기 폭력성을 숨김없이 드러내 모두를 몰살시켜버리니까. 여튼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톰의 폭력성이 드러났다 말았다 하는 게 흥미로웠다. 역시 인내력 대장...!
그렇게 냉혹한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에 집에 돌아왔을때 톰은 또다시 약자가 되어버린다. 식탁앞에서 머뭇대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고, 그런 그를 구원해주는 건 그의 천진난만한 막내 딸이다. 폭력에 물들지 않고 폭력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지 못하는 그 애가 내미는 손길에 톰은 구원받는다. 연이어는 폭력의 맛을 알았으나 톰처럼 자제할 줄 아는 아들. 마지막에 남은 것은 폭력성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에디인데, 에디의 반응은 완벽하게 나오진 않지만... 그와 에디가 마주보는 시선 속에 감정들이 깊은 것 같아서 묘했다.
전에 케이블에서 하던거 중간에 보다 못봤었는데 어쩌다 보니 또 봤다. 혹평이 많은데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봐도 다른 영화에서 따온 편집 방식을 썼는데 이걸 기발하게 쓴게 아니라 좀 식상하게 썼더라. 그래도 반질반질하니 나온 영화 같았다. 반전이나 진행이 너무 예상이 쉬워서 아쉬웠다. 일단 아역 자체가 어딜 어떻게 봐도 너무 슬레빈(조쉬 하트넷)이지 않은가... 꽁꽁 숨겨지고 머리를 잘 써야 반전이 통하는데 머리쓰는 거도 영 설거워서... 영화가 나온 모양새는 반질반질하고 좋은데 그 속 알맹이는 사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보스(모건 프리먼)와 랍비(벤 킹슬리)는 힘이 있으면서도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가서 슬펐다. 그정도 짬이 있는 사람들이 우째 이렇게 쉽게 넘어가나. 브리코스키 형사(스탠리 투치)는 촉이 좀 있는 줄 알았더니만 그것도 아니고. 슬레빈이 너무 쉽게 제 원한을 해결하니까 영화 전반의 재미가 좀 떨어진다. 자기 여자친구인 린지(루시 리우)를 구해내는 방식도 너무 간단하고.
다만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건 말장난 같은 것들. 전체적인 맥락 자체는 썩 훌륭할 것이 없는데 단편적이고 자잘한 장면들만 보면 너무 재미있는거다. 특히 슬레빈이 초반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도 제 할말을 싹싹 내뱉는 걸 보자면 묘하게 웃음이 입가에 걸리는 걸 막을 수 없다. 슬레빈과 린지가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도 쓸만하다. 요컨대 슬레빈이 그 '마틴'이라는 게 밝혀지기 전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굿캣이라는 인물은 얕게 다뤄져서 아쉽다. 좀 더 이야기를 오밀조밀하게 채워넣을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이름날리는 살인청부업자인 그가 '왜' 마틴을 살려주고 지금까지 키워줬으며, 그와 어떤 유대감을 쌓았는지... 뭐 그런것들이 더 궁금했다. 여러모로 설명이 얕아서 아쉬운 지경. 그렇게 철두철미한 그가 린지를 살려줄 정도면 슬레빈과의 사이가 그만치 돈독하다는 건데.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아릿했다.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 슬프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있고... 프랑스 감독이라 그런가, 그쪽 영화 특유의 느낌이 약간 있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프랑스 영화 같지도 않았고... 시간 교차하는 편집방식 때문에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게 환상인지 때때로 헷갈렸지만 헷갈리면서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기억상실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꽤 적절한 편집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기꾼인 발렌틴 발렌틴(프랑스어로는 발랑탕 발랑탕, 제레미 아이언스)의 이야기와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인 제인(파트리샤 카스)의 이야기. 정열적인 사랑이야기라기보다는 저 사람들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랑에 관한 것은...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같은 병을 앓는 동질감 속에서 발렌틴과 제인이 이야기를 나누며 친근해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발렌틴의 경우 기억상실증의 원인이 뇌에 있는 거였지만, 제인의 경우엔 심적인 괴로움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 마음을 치료함에 따라 증세도 치료된 거겟지. 기가막히게 운이 좋은 발렌틴은, 팔코네티 부인(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보석을 훔친 도둑으로 오해를 사서(그간 행적을 바탕으로) 모나코 돈으로 수술도 하고 병도 치료되고 좋았네요. 결국은 누명도 벗었고, 새로운 연인도 얻었고.
발렌틴의 사기행각은 생각보다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그 때문인지 노련미가 보였다. 어릴 때 기념품을 훔쳐내어 더 싼 값에 팔던 때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범죄는 단순하면서도 꽉 짜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기범들이 으레 그레하듯 자기를 꾸미는 데도 뛰어나고, 그걸 받혀줄 만큼의 매력도 있었다. 불가리에서 일하던 프란시스(알렉산드라 마르티네즈)가 자기네 보석상을 턴 발렌틴에게 넘어간 것도 이해가 갔다. 다만 단기적인 사랑은 줘도 장기적인 안정은 정말 모르겠기 때문에, 프란시스가 티에리(띠에리 레미띠)에게 마음을 주게 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틴이 모나코에서 고난에 처했을 때 당황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짠하기도. 여튼 발렌틴은 죽을 위험에 놓인 사기꾼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사실 제인보다 고난의 깊이는 없어보였다. 이런 생각은 해봤다. 그가 기억상실증을 겪게 된 것은 뇌종양 탓이지만... 크게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제인의 경우 어떻게 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삼각관계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거고, 사실 제인은 그에 대해 크게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내부에서 조용히 끓어오르고 있었나보다. 항상 먼 데 시선이 있는 제인은 제 마음까지 먼 곳에 두고 온 것 같았다. 간단하지만 그 슬픔의 깊이가 깊어 보였던 캐릭터.
발렌틴과 제인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시간이 그리 길었다 말할 순 없지만 서로가 비슷한 종류의 상처와 고민을 떠안고 있었기에 잘된 거라고 본다. 처음의 어색했던 대화와는 달리, 고난의 길을 걸으며 그들은 단기간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서로가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털어놓아서 일수도 있겠고...
결말이 산뜻하고 좋았다. 발렌틴이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들을 모두 복구하려 다니는 장면들도 좋았고... 제인이 다시 파리로 돌아온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바에서 노래하는 제인과 다시 만나게 되는 발렌틴이 좋았다. 혹시 얘네 서로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헤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이것도 역시 순전히 제레미가 나와서 본 영환데 음... 감안해도 참 뜨뜻미지근했다.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영화인데 화면이 그렇게 화려한 것도 아니고, 내용도 뭔가 얼기설기 갖다붙인거 같은데다가 진행도 그렇고, 주인공들이 믿고 있는 신념들도 그렇고 해서 이모저모 재미있다기보단 그냥 꾸역꾸역 봤다.
'철가면을 쓴 죄수'가 루이 14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쌍둥이 동생(필립,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라는 설정 하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글쎄다. 역사적 배경을 말아먹는 건 그렇다 쳐도 진행이 재미가 없었다. 달타냥(가브리엘 번)과 삼총사(아토스(존 말코비치), 포토스(제라르 드빠르디유), 아라미스(제레미 아이언스))가 서로 이해를 하고 있는 대상이다보니까 딱부러지게 선과 악이 나눠져 있지도 않고 그래서 싸움도 미적지근.
유일한 악역이라는 루이 14세는 생각보다 하는 일이 없다. 예의없이 자라먹은 아이마냥 떽떽대고 짖어댈 뿐 막상 스스로 하는 게 없었다. 끽해야 제대로 보이는건 백성들에게 막대하는 거나, 라울의 임자 있는 여자인 크리스틴(주디스 고스레쉬)을 뺏는거..? 그거야 뭐 잔혹한 축에도 못들었다. 애가 잔머리도 없고, 힘도 없어서 긴장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 서있는 건 필립도 아니란 말이다? 필립은 진짜 별 거 아닌 캐릭터다. 혈통에 의지한 기반 빼고 그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삼총사가 얘 편이다. 잘되겠네. 어떻게든 잘 될거라는 생각이 먼저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으니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
달타냥과 삼총사의 갈등도 무난하기 짝이없다. 달타냥이 약간 고지식하기는 해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은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이 쪽 편이 되겠구나, 이게 눈에 너무 잘 보였다. 거기다 루이 14세의 어머니인 안느(안느 파릴로드)와 관계가 있다는 재미 없는 설정으로 모자라 이 안느는 '제가 아들을 못키웠어요ㅜㅜ 내 다른 아들 필립..!' 이러고 있으니 이게 공감이 가야지. 애가 그정도로 비뚤게 자랐으면 엄마 캐릭터도 그런 방향으로 갔어야 좀 이해가 됐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필립을 중히 여긴다고 해도 또한 자기의 친아들인 루이를 그런 식으로 내치는 계획에 쉬이 동참하는 것도 좀.
삼총사의 캐릭터는... 고지식한 달타냥과 비슷하면서도 아들인 라울(피터 사스가드)을 잃어 분노에 찬 아토스, 묘하게 신앙심을 엿바꿔먹은거 같은 모은 일의 원흉같기도 한 아라미스,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내심 자기에게 분노하고 있는 포토스. 이렇게 각자 차이가 극명하긴 한데 묘하게 비뚤린 구석들이 잘 맞아 떨어지는 거 같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말 하면서 모여다닐 패거리 같았다.
막판에 다른 총사들이, 달타냥과 삼총사가 죽을 거 같은 상황에서도 용기있게 튀어나오니까 그거에 반응하는 거 보고 좀 웃었다. 그럴 거면 진작에 넘어가시던가...! 으 벌려놓은 판에 비해 해결이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끝까지 맥빠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