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2011)

Sherlock Holmes: A Game of Shadows 
7.7
감독
가이 리치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누미 라파스, 레이첼 맥아담스, 야레드 해리스
정보
액션, 어드벤처 | 미국 | 129 분 | 2011-12-21


  전편보다는 신경 쓴 흔적이 보이는 속편. 1편에서 써먹었던 효과들을 2편에서도 사용하는데 좀 더 틀어놓거나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 정성은 보이더라. 셜록(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캐릭터는 여전히 셜록이 아닌, 셜록의 이름만을 빌린 것 같지만... 그래도 오락영화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만날 BBC 셜록만 보다가 이거 보니까 영 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나름 재밌다. 열혈에 그다지 바르지만은 않은 거 같은 왓슨(주드 로) 캐릭터도 마음에 들고... 아무리 왓슨이 셜록에게 바락바락 화를 낸들, 일반상식의 수준을 넘어선 거에만 그러지... 사실 둘 보다 보면 저러니까 같이 놀지. 싶은 성격의 공통점이 많이 보였다.

  신나게 활용했던 아이린(레이첼 맥아담스)캐릭터는 생각보다 쉽게 정리해서 놀랐고, 이번 편에서는 확실히 모리아티(자레드 해리드)를 전면에 내세워서 활용한 건 좋았다. 뭔가 사회전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범인이었고, 뒤로 꾸미고 있는 꿍꿍이를 제지해야했으니까... 경찰 등이 협조적이었던 1편과는 달리 2편에서는 셜록과 왓슨 본인들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측면이 커서 더 즐거웠던 듯 하다. 집시여인 심(누미 라파스)의 캐릭터는 흥미롭긴 했으나 초반부보다 후반부 가서는 흥미가 떨어졌다. 오빠를 찾아내고 만나는 부분은 약간 식상하고 무성의하지 않았나...마이크로포트(스티픈 프라이) 캐릭터는 묘한 느긋함이 좋아서 웃겼다. 이런 식의 마이크로포트도 괜찮은 거 같아.

  액션은 이 영화의 배경이 옛 런던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지만...ㅎㅎ 애당초 이 영화 볼 때 고전적인 연출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그냥 오락영화 본다 하고 생각하고 본거라 난 나름 재미났음. 슬로우 모션은 그만 좀 써라 싶을 때도 있긴 했지만... 그냥저냥 재밌다 하고 넘길 수준.

  적당히 볼 만 했다. 근데 난 로다주 좋아하는 편이라서 남들보다 더 즐겁게 보긴 했음... 로다주는 너무 자기 개성이 강해서 보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거 같은 배우인데 난 좋아해서 다행인듯ㅋㅋ





월-E (2008)

Wall-E 
9.3
감독
앤드류 스탠튼
출연
벤 버트, 엘리사 나이트, 제프 갈린, 프레드 윌러드, 매킨 토크
정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가족, SF | 미국 | 104 분 | 2008-08-06


  얼마 전에 지나 언니랑 봤었는데 또 보고싶어서 보고 좀 짠해졌다. 애니메이션에서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사물이 주인공이 되는 건 흔한 일이지만, 말할 수 없다는 점이 독특하고 또... 굉장히 매력있게 그려내서 좋았다. 판타지인데 되게 설득력있다고 해야하나 가슴 울먹하게 하는 그런 부분들도 많았고.

  쓰레기로 가득찬 지구에 혼자 남은 청소 로봇 월-E(벤 버트). 월-E는 지구에 홀로, 아니 바퀴벌레와 둘이서만 남아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한 것인지 월-E는 홀로 남은 긴 시간동안 '의미있는 것들'을 모으며, 인간들의 영상을 통해서 손을 붙잡고 감정을 나누는 부분을 '배운다'. 인간이 버리고 간 행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있으면서 외로움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습득해버린 로봇이라니. 시작부터 좀 슬프지 않나. 이런 월-E의 모습은 지구상에 홀로 남은 생각하는 존재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듯 해 애틋하더라... 그런 월-E에게 찾아온 이브(엘리사 나이트)와의 만남. 이 작은 존재가 이브에게 붙인 애착과 애정의 크기가 보여서 참 짠하고도 예뻤다.

   배에 올라탄 뒤의 일들은 모험도 모험이지만, 이브와 엮이는 부분에 가까워 모든 장면장면들이 즐거웠다. 특히 우주에서 이브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짠하더라. 인간들의 역할이 크진 않았지만 선장(제프 나이트)과 몇몇 인간 캐릭터가 보여준 노력들도 마음에 들었다. 모니터만 보며 멈춰있던 인간들이 진짜, 실질적인 변화를 맞게 되는 게 감격적이지 않은가. 그렇게까지 퇴화한 인간들이 다시 땅에 발을 붙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게 이 작은 로봇의, 이브를 향한 사랑이라니 아이러니하고도 좋았다.

  월-E는 사랑 이야기였다. 인간들이 말로 내뱉는 구구절절한 무엇보다도 마음을 건드리는 애정이, 사랑이 보이는 그런 행동들이, 백마디 말보다 좋았다. 이브의 손을 다시 붙잡는 월-E의 손동작. 거기에서 참 많이 짠하고 또 감동하게 되더라.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고... 좋았다.



에비에이터 (2005)

The Aviator 
7.8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베킨세일, 존 C. 라일리, 알렉 볼드윈
정보
로맨스/멜로, 어드벤처, 드라마 | 미국, 독일 | 169 분 | 2005-02-18


  마틴 스콜세지거 봐야지 하면서 보기로 했다. 이것도 런닝타임 미친듯이 길더라... 담은 내용에 비해서 너무 길지 않나 싶은데, 뭐 크게 지루하진 않았으니까 괜찮을지도. 나는 이거 보면서 내용 자체가 무겁거나 진중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했는데 그럼에도 즐겁게 보긴 했다. 그건 주인공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탓이 클 듯. 자신이 노력해서 돈을 번 것이 아닌 재벌 2세인데 그 돈으로 자기가 꾸어왔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영화의 전부이다. 물론 그 과정이란게 마냥 쉽지만은 않고 하워드 휴즈는 결벽증이랑 편집증 증세까지 가지고 있어서 나름의 드라마는 있지만... 딱 느낌은 되게 화려한 영화라서 그런 고민이 대단하게 불거진단 느낌은 아니었다. 위기로는 작용할 지언정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실존인물인 하워드 휴즈는 괴짜스러울 정도로 비행기에 미쳐있었고, 그 꿈을 실현할 재능과 돈이 있었다. 거기다가 생긴 것도 잘 생겼으며 내노라 하는 여자 연예인들과의 염문도 허다했다. 완벽한 영화 속 캐릭터 아닌가. 아무리 영화를 가볍게 그린다 해도 실존 인물을 다뤘다는 데서 오는 현실성이 이 영화의 가벼운 필치는 꾹 누르면서 서로 융합하고 있었다. 괴짜스러운 일면을 한 번 보여주었다가, 그 인물이 가진 고통과 시련을 보여주었다가 하니까 재미도 있고.

  주변 인물들 다루는 것도 하나의 재미. 이 괴짜 캐릭터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관철시키는 장면들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인간관계의 하나인 연애담도 제법 괜찮았다. 후반부에 나온 에바 가드너(케이트 베킨세일)과의 연애담보다는 아무래도 캐서린 햅번(케이트 블란쳇)과의 연애담이 눈에 들어왔는데 캐릭터 탓이 아닐까 싶다. 케이트 블란쳇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어떡해...

  팬암쪽, 후안 트립(알렉 볼드윈)과의 대결과 브루스터 상원의원(앨런 알다)과의 청문회 모습은나름 결말 짓는데 재미있었다. 헤라클레스라는 거대 비행정을 완성해서 결국 띄우는 장면으로 교차해서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맨 마지막에 어릴 적을 회상하면서 거울을 보며 반복하는 말은 의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하워드 휴즈의 강박증을 보여주더라.

  대단하게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스토리 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의 헐리우드와 미국 시대상, 하워드 휴즈라는 괴짜 인물이 버무러져 나오는 영화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그나저나 중간에 잠깐 나온 에롤 플린(주드 로)... 콩 줏어먹는거 왜 웃겼지...ㅋㅋㅋㅋ



셔터 아일랜드 (2010)

Shutter Island 
7.8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크 러팔로, 벤 킹슬리, 막스 폰 시도우, 미셸 윌리엄스
정보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 138 분 | 2010-03-18


  영화 중간도 못가서... 거의 처음부터 반전 알 수 있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되어서는 되게 슬프더라. 특히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회상 장면 나올 때. 레오나르도 연기 너무 잘했음... 아내 돌로레스 역의 미쉘 윌리엄스도. 넘 짠하더라. 알고 보더라도 연기 참 대단했다.

  보스턴 연방 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가 처음 만나게 된 동료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정신병원 시설이 있는 '셔터 아일랜드'에서의 실종사건을 수사한다. 환자 레이첼 솔란도(에밀리 모티머)는 밀폐된 공간에서 완벽하게 사라진 사건인데, 테디는 섬에 도착한 순간부터 병원 관계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의사 존 코리(벤 킹슬리)와는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며 테디는 이 사건을 병원에서 은폐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의 아내를 방화로 죽인 자의 흔적이 이 곳에 없으며, 증언을 해 주었던 병원의 이전 환자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를 C병동에서 만나면서 의심은 확신이 되어간다...

...지만 애당초 초반에서부터 이 영화의 반전이 무언지 알 수 있다. 난 반전 같은거 잘 못알아차리는 편인데도 그냥 보였을 정도니까, 영화 속의 사건 자체는 진행을 위한 사건이고, 진짜 사건은 뒤에 있지만 그 마저도 잘 보이는 편. 고조되어 펑 터지는 느낌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전개였다. 테디 다니엘스가 피하고 싶었던 지점이 나온 순간에는 울먹 하더라. 그 연못 속에서 아이들 모으면서 울 때. 돌로레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때... 이미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한 눈에 상황이 그려진 순간에 되게 많은 감정들이 보였다.

  마지막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여운을 주는 방식인데... 뭐 무엇을 믿으려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서 나는 그가 환상도 현실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하는 것으로 보였다.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환상 속으로 걸어가려는 듯해서 안타깝더라.

  괜찮았음. 그래도 러닝타임이 너무 길긴 하다...



황해 (2010)

The Yellow Sea 
6.7
감독
나홍진
출연
하정우, 김윤석, 조성하, 이철민, 곽도원
정보
스릴러 | 한국 | 156 분 | 201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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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룸메 꼬셔서 봤는데 영화 끝나자 마자 한 생각은 너무 많이 기대했구나, 였다. 내가 뭘 본건가 싶어서 약간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을 지경. 영민했던 추격자의 서스펜스를 기대했는데 나온 건... 글쎄. 나쁘지는 않은데 추격자 정도의 수작은 아닌 작품이었다. 100억이나 되는 돈을 쏟아부었는데 나온 작품이 전작보다 별로면 감독 속도 좋진 않겠다 싶네. 확실히 나쁜 건 아닌데, 이 처절함 속에서 내가 무엇을 보아야하는지 헷갈렸다. 메마르고 각박하고 처절한 그 삶 자체? 음... 해피엔딩이나 그런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너무 꼬여있다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다.

  아내(탁성은)를 한국으로 보낸 조선족 구남(하정우)은, 아내를 보내느라 진 빚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다. 거기다 아내와는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그 곳을 꽉 잡고 있는 인물인 면정학(김윤석)은 구남에게솔깃한 제의를 해온다. 한국에 가서 김승현(곽도원)이라는 사람을 죽이고 엄지 손가락을 잘라오면 돈을 주겠다는 것. 고민하던 구남은 결국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과 돈 때문에 한국행 밀입국을 시도한다. 그러나 일은 잘 풀리지 않아 김승현은 누군가에게 먼저 살해되고, 그 현장에 있던 구남은 김승현의 부인(임예원)에게 발각되어 죄를 뒤집어쓰고 도망을 다닌다. 중국행 배를 대기로 했던 면가와는 연락이 되지 않고, 김승현과 친분이 있던 김태원(조성하)의 조직까지 그를 쫓는다. 끝없는 도망과 추격이 그려지고, 그 사이사이에 면정학과 김태원 조직의 불화까지 더해져 구남의 처지는 더욱 곤란하게 된다.

  캐릭터들이 현실과 비현실성을 넘나들더라. 모두의 상황은 현실적인데, 그려지는 부분은 비현실적인 것들이 있다. 특히 면가와 구남이 살아남는 과정들을 보면 저게 어떻게 가능해 싶다. 그 와중에 그 둘이 다쳐가는 장면들을 보면 또 저건 현실적이네 싶고. 약간 감탄했던 게 면정학의 마지막 장면. 되게 어울리더라. 구남은 그냥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모든 일들의 시작이 하잘것 없는 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들의 의미가 참 격하되어버린다는 느낌이다. 근데 그게 또 우리 인생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싶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내가 확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어서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장면장면 생각하면 되게 좋았는데 전체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내 취향은 아닌 영화였다.



나쁜 교육 (2004)

Bad Education 
9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펠레 마르테네즈, 하비에르 카마라, 다니엘 지메네스 카초, 루이스 호마르
정보
스릴러, 범죄, 로맨스/멜로 | 스페인 | 104 분 | 2004-09-17


  영화 분위기가 생각보다 차가워서 놀랐다. 화면같은 건 화려한데 스토리 자체는 꽤 냉정하게 스토리들을 진행하고 있더라. 포스터만 보고서는 이런 분위기일 줄 상상도 못했는데.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진행되는 '현재' 외에는 모든 것이 조각만을 가지고 있을 뿐 전체 사실을 그려내진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그나시오(프란시스코 보이라/아역: 나초 페레스)가 쓴 '방문객'의 원래 스토리는 이그나시오의 시선을 따르고 있고, 영화로 각색된 버전은 또 엔리케(펠레 마르티네즈/아역: 라울 가르시아 포르네이로)의 시선을 가지고 있고, 마놀로 신부(다니엘 지멘네즈 카초)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를 따르고 있으니까. 그럼 이 이야기에서 자기 본인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 건 앙헬(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뿐인 건가...

  생각보다 어릴 적 이그나시오에게 있었던 일이 극 중에 대단한 느낌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건 물론 아닌데, 작은 도화선 같은 거라면 쉬울까. 이그나시오가 성장한 뒤의 모습 또한 그 본인의 잘못 같은 것도 커보였고... 이그나시오 보면서 한 생각은 우와 가짜주인공이 이런걸까... 정도. 이그나시오를 둘러싼 인물들, 엔리케와 마놀로 신부, 앙헬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이그나시오와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건들에서 정작 이그나시오의 역할은 없는...? 사건들이 영화에 나오는 세 부분의 씬들(엔리케와의 만남/영화의 내용/마놀로 신부의 서술)은 모두 결합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독립적인 느낌도 강했는데 그 이음새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앙헬이라는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순수한 얼굴을 하고서는 속안에는 열망이 있었다. 거기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욕망의 깊이마저 헤아릴 수 있어서 그걸 효율적으로 활용하더라. 이런 캐릭터 좋아함. 선역이건 악역이건간에...

  난 재미있게 봤다. 약간 허무할 수도 있는 마지막 에필로그마저 스토리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고. 엔리케와 앙헬이 잘 될거라는 생각도 안했어서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마지막에 이그나시오의 마지막 편지를 받아든 엔리케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묻어나오는 듯 했다. 그 편지를 전해주는 앙헬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고전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봤다. 공포인지도 모르고 골랐는데 공포영화였음... 무려 92년전 영화이니만큼 대단한 효과를 기대하고 보진 않았는데 나름 괜찮았다. 영화보다는 연극을 찍은 것에 가까워 보였던 게 아무래도 과장된 분장과 영화의 심리를 표현하듯 어지러운 세트 탓도 있었고, 연기 자체도 연극 연기에 가까운 과장된 연기였다. 무성영화들이 다 이랬던 걸까... 내가 본 무성영화는 슬랩스틱 코미디 정도여서. 중간 중간에 스크립트가 나와서 대사와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 조금 흥미로웠다.

  칼리가리 박사(베르너 크라우스)는 몽유병 환자인 세자르(콘러드 베이트)를 다루어 사람들에게 예언을 하게 하고, 그 예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세자르를 시켜 살인을 한다. 친구사이인 알란(한스 하인리히 폰 트바르도프스)과 프란시스(프레드리히 페르)는 둘 다 제인(릴 다고버)이라는 여자에게 반하지만, 세자르에게 죽음을 예언당한 알란은 살해당하고 프란시스는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내용 자체는 괴악하고 소름끼칠만한 소재이긴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 와서는 썩 신선한 것만도 아니어서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보았다. 마지막 반전도 그럴만 하네... 싶게 보기도 했고. 그래도 연출이라고 해야하나, 씬 자체가 신선하고 확 다가오는 부분도 꽤 있었다. 마냥 심심한 영화는 아니었다.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느낌의 영화였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어느 것도 현실의 것 같지 않았고 그건 소재와 잘 맞물려서 어울렸다. 그리고 시대를 감안하면 이런 연출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도 생각하게 되더라. 여러모로 보면서 신기했음... 근데 거기까지지 내가 그 스토리에 딱 몰입하게 되었다던가 그런 건 없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본다는 느낌 보다는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자료를 본다는 느낌으로 감상하지 않았나 싶다.



크.레.이.지. (2008)

C.R.A.Z.Y. 
7.6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미셸 꼬떼, 마크-앙드레 그롱당, 다니엘 프룰, 피에르 뤽 브릴란트, 알렉스 그라벨
정보
코미디, 드라마 | 캐나다 | 126 분 | 2008-02-05


  큰 기대는 안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퀴어영화는 흔히 성장담으로 빠지기 마련이지만 이건 그보다는 가족에 더 집중되어있는 느낌으로, 가족영화에 가까웠다. C.R.A.Z.Y. 라는 제목이 뭘 뜻하나 했더니 볼리외 가문의 다섯 형제, 크리스티앙(막심 트레블레), 레이몽(피에르-뤽 브리앙), 앙트완(알렉스 그뢰벨), 자크(마크-앙드레 그롱당), 이반(펠릭스-앙트완 데스파티)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동시에 아빠 제르베(미쉘 코떼)가 아끼던 레코드판에 새겨진 노래 제목(인가 앨범제목인가)이기도 했고. 사실 제목치곤 조금 유치하긴 한데 이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다.

  자크가 메인 주인공이긴 했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도 많이 이입이 되는 영화였다. 배경 자체가 과거인데다가 볼리외 가문은 가톨릭교도, 거기다 아버지는 마초 캐릭터인지라 주인공이 겪을 고민이 뻔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이 쉽진 않았지만 결국은 사랑으로 극복되는 듯한 모습들이 좋았다. 나는 퀴어영화가 흔히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너무 무거워 그것만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나 혹은 로맨스에만 집중해서 스토리는 고려도 안하는 두 가지 패턴을 너무나 싫어하는데, 이 영화는 가족을 다룬 드라마, 코미디로서의 모습을 잘 그려낼 뿐 아니라 자크의 고민과 가족들이 안고 있는 고민까지도 잘 그려내서 너무나 좋았다. 다섯 형제 중에서도 이야기가 가장 집중된 건 화자이자 주인공 격인 자크이지만 마약중독자인 레이몽의 이야기도 꽤 비중을 차지하고, 마초인 아버지 캐릭터에도 비중이 꽤 있었다. 이건 한 사람의 성장담이 아니라 한 가족의 성장담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조금씩 표출하던 자크와 아들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초 아버지 사이의 균열이 안타깝고 슬펐다. 크리스티앙의 결혼식 피로연 때 자크를 감싸기 위해 사고를 벌인 레이몽과,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자크에게 더욱 더 화를 내야했던 아버지. 레이몽이 한창 아플 때 때 맞추어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자크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보기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자크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굉장히 이입이 되던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 로리안느(다니엘 프룰)의 표정도 기억에 남는다.

  레이몽이 죽은 후, 해체되었던 가족은 다시 한 번 결합이 계기를 맞이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이런 일을 만들어냈다는 게 슬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설득력있는 전개였다. 형제들이 집을 떠나며 어머니 아버지와 인사를 할 때, 그 마지막 순간에, 어색했던 악수를 제치고 다시 자크를 붙잡아 껴안아주던 아버지 캐릭터가 무척 좋았다.

  난 마음에 들었음. 시대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나오던 락밴드의 음악들도 좋았고, 가끔 엉뚱하기까지 한 코미디식 연출조차도. 생각보다 따뜻한 영화다.



블랙스완 (2011)

Black Swan 
8.3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나탈리 포트만, 밀라 쿠니스, 뱅상 카셀, 바바라 허쉬, 위노나 라이더
정보
스릴러 | 미국 | 108 분 | 2011-02-24


  개봉 때 놓쳤는데 이제야 봤다. 생각보다는 흔한 스토리였고 소재도 딱히 대단치는 않았는데 역시 연출과 연기가 좋았다. 상상할 수 있다고 모두가 잘 그려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 차이를 확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니나 세이어스(나탈리 포트만)는 사람들이 발레리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편견 중 하나인 신경질적인 모습을 캐치해서 그걸 잘 발전시킨 듯한 캐릭터였고, 엄마인 에리카(바바라 허쉬)는 그런 딸에게 자신의 꿈을 모두 쏟아부었을 법한 엄마 캐릭터, 토마스 르로이(뱅상 카셀)는 전형적인 제작자 캐릭터, 릴리(밀라 쿠니스) 또한 주인공과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매력있는 라이벌 캐릭터로 나왔다.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전형적인데 보는 기분은 그렇지가 않다.

  단순히 여러가지 발레 기술동작이 나와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연출 자체가 짜임새있고 보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음악도 적절했고... 아카데미 받을 만한 스토리에 받을 만한 연기였다고 하면 될까. 애초부터 불안불안한 캐릭터였던 니나의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고...그 뒤의 이야기도 짐작할 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순진해빠진 니나, 불안해 하는 니나, 순종적이면서 반항하는 니나. 다양한 모습들이 참기 힘들 정도로 왔다갔다 하며 화면을 채울 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

  나는 발레 그런거 잘 몰라서 니나가 한 백조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영화상으로 그 불안한, 가느다란 줄 위에 있는 심리상태가 잘 나타나서 좋았다. 절정으로 이르는 과정까지 한 치 모자람 없이 내달리는 것 같은 영화였다. 쉴 틈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그건 처음부터 니나가 불안정한 상태였고 뒤로 갈수록 그 불안이 고조되기만 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게 나빴던 것은 아니고...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난 뒤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니나가 느낀 완벽을 보는 나도 느낀 듯한 그런 착각이 들어서.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래도 호불호는 확실히 갈릴 것 같은데 난 일단 좋게 본 편. 근데 베티(위노나 라이더) 캐릭터 넘 슬픔... 추락한 스타라니. 위노나랑 너무 잘 어울리잖아. 캐스팅이 잔혹하다ㅜ.ㅜ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감독 스티븐 소머즈 (2009 / 미국)
출연 채닝 테이텀,시에나 밀러,레이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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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친김에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시리즈 다 보자 해서 본건데... 기대를 진짜 안하고 봐서 그런가 생각보단 괜찮았다. 물론 스토리 이런 거 후졌는데 그건 내가 스토리 안바래서 그런 거 같고 액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과도하게 과장된 액션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CG로 범벅된 영상까지도 그냥 그렇다고 수긍하게 되었음.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SF랑 초능력물이랑 액션이랑 뭐랑 이것저것 뒤섞인 스토리 없는 스토리로구나 하게 된달까. 그래도 스토리에서 좀 거슬렸던 건 렉스(더 닥터/조셉 고든-래빗) 죽고 난 후에 듀크(채닝 테이텀)가 여자친구인 애나(베로니스/시에나 밀러) 볼 면목이 없다면 장례식도 안 가고 연락을 끊은 건 좀 억지 설정이지 않나... 그런 상황에선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한들 앞에가서 빌고 곁에 있어주고 이게 당연한 거죠 이 사람아. 그리고 그 렉스가 한 순간에 변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미약하고...

  여튼간에 듀크와 그의 절친 립코드(마론 웨이언즈)가 임무를 맡아 무기를 호위하다가 자신들의 부대를 잃고, 그 와중에 듀크는 적 중의 하나가 자신의 이전 여자친구라는 걸 알게 되고, 지.아이.조 라는 뭔가 초월한 군사 단체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 시작. 처음부터 끝까지 전투가 가득가득한데 그게 오히려 스토리 없는 거 가려줘서 낫더라. 막판에 닥터랑 데스트로(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잡힌 건 좀 허무하긴 했다. 그래도 아예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자탄(아놀드 보슬루)이나 미국 대통령(조나단 프라이스)에 관한 이야기들은 도입만 보여주고 서술을 멈추어 버려서, 그래 다음 편엔 이걸로 스토리를 시작하겠지 하는 논리도 약간은 부여되고, 뭐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긴 했음. 이 시리즈에 내가 고퀄리티를 바라지 않아서 그런가...

  마스 사 쪽 인물들, 즉 코브라 군단(이건 마지막에나 나오긴 하지만)의 캐릭터들이 더 재미있었다. 마스 사 사장인 디스트로는 애초부터 허수아비 같은 거 보였지만 닥터나, 베로니스도 그렇고 특히 스톰 쉐도우(이병헌) 같은 캐릭터가 특징이 확확 있고 재밌지 않나. 지.아이.조 측의 스톰 쉐도우격인 스네이크 아이즈(레이 파크)만 비교해봐도 그래 말 없는 캐릭터 신비할 수 있겠지... 하지만 여기선 아니야. 그냥 무매력. 지.아이.조의 대장인 호크 장군(데니스 퀘이드)는 능력치라는 게 거의 안보이고, 리더 급인줄 알았던 헤비 듀티(아데웰 아킨누오예-아바제)도 별 역할 없었고, 스칼렛(레이첼 니콜스)은 여성 캐릭터라는 거 빼면 기억에도 안났을 듯. 프랑스 억양을 쓰던 브레이커(세이드 타그마오우이)만 쪼금 인상에 남았나. 오히려 지.아이.조에 나중에 합류한 캐릭터인 립코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 듀크? 듀크... 걔가 주인공이었나...

  그래도 보면서 졸진 않았으니 나로서는 성공. 기대 버리고 이거 판타지다, 하고 보면 그렇게 최악일 정도로 나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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