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망이 말했다.

  "내가 너 뭐 한다는 데 안시켜 준 건 거의 없지 않아?"

  응, 진짜다. 연극 영화 학원 보내달라는 거 빼고는 다 시켜줬다. 꼬꼬마 시절이지만 미술 학원도 다녔었고, 피아노도 배웠었고, 글짓기 학원도 다녔었다. 커서는 남들 다니는 학원 다 보내줬고, 일본어 배우고 싶다니까 학원도 보내줬었다.
 
  저 중에 끝장을 본 거? 없다. 난 항상 끈기가 부족해서 뭐든 간만 보고 끝낸다.

  미술 학원도 한 반년 다니다가 관뒀고, 피아노는 두 번에 걸쳐서 끊었다. 그것도 두번 째는 자의 로 간 거였지만 관뒀다. 글짓기 학원은 유일하게 재미있게 다닌 곳이긴 했는데 그래도 관뒀다. 남들 다니는 학원? 빼먹기를 밥먹듯이 했고, 학원도 꽤 자주 옮겼다. 단과도 다니고 종합반도 다녀보고 그랬다. 일본어? 한 달만에 관뒀다. 버겁다고.

  그래서 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만화 스케치는 그럭저럭이지만 수채화는 완전 꽝이다. 최하점도 받아봤다. 피아노? 손가락 굳어서 악보 쪼끔 보고 건반 두드리는 정도. 음감도 없다. 글짓기? 적당히 내가 끄적거리고 싶을 땐 끄적거리지만, 순간적으로 다 쓰지 않는 이상 끝까지 쓰는 거 거의 없다. 공부?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완전 들쑥 날쑥. 수능 공부는 정말 적당히 해서 지방대학 갔다. 일본어, 하고 싶을때만 했다 말았다 해서 누구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못한다. 감으로 하는 야매 일본어다.

  반대로 말하면, 난 뭐든 참 적당히 할 줄은 안다.

  미술도 적당히, 피아노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 글짓기? 적당히 하고 있다. 공부는 시험때만 피치 올려서 쫙. 다른 때는 안한다. 일본어도 손짓 발짓 섞어가며 대충 말할 수 있다. 배운 거 말고 적당히 습득한 건 컴퓨터 지식 정도? 컴퓨터 한 다섯번쯤 망가뜨리고 나니까(양아젤 바이러스라 한다) 대충 알겠더라.

  마망이 그랬다.

  "넌 끈기가 없어."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응."

  뭐든 쉽게 수긍하고 마는 것이다. 싸우기 귀찮은 것도 어쩌면 끈기가 부족해서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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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찮은 싸움은 딱 질색이다. 나는 싸움이 벌어져도 먼저 사과하고 끝내는 편이고(심지어 상대가 잘못했을 때에도!), 화가 난다 해도 금방 풀리고 잊는다. 좋게 말하면 뒤끝이 없다고 해야하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하다고 해야 할까.

  난 나의 무지상태를 잘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처럼 지식이 해박하지도 못하고, 논리성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인터넷에는 논쟁하고 싶은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대부분, 나는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꾹 눌러 참는다. 세상에는 똑똑한 이가 많고, 궤변을 잘 늘어놓는 이도 많고- 그런 곳에서 내가 무언가 터트려 내봤자 일만 귀찮아 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논쟁거리가 있을 때 보통은 혼자 생각한다. 말해봤자 지인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뿐이고, 보통은 그냥 사람들의 논쟁을 지켜보며 이 사람 말 잘하는구나- 하고 만다. 나는 구경꾼이고 방관자다. 인터넷에서 한창 떠들고 있는 소재, 사회의 커다란 이슈거리가 있다 치자. (뭐 최근만 해도 벌써 두 건이나 터졌다.) 나는 생각은 하되 내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는다. 그 소동에 휩싸이기 싫기 때문이다. 나는 나, 너는 너. 생각이 다르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 나에게 요새 인터넷 게시판들은 참 무섭다.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이 서로의 분노를 서로에게 뱉어내려 든다. 게다가 논쟁거리라 불리는 싸움거리를 찾아서 헤매이는 것 같다. 자신과 같지 않으면 처단할 자이고, 욕먹어 마땅하고, 죽어 마땅한 자이다. 상대방의 논리적인 대답따위는 지식에 찌들어 잘난 체 하는 자의 궤변이다. 사실인지 검증되지 않은 근거들을 내세우거나, 그 근거들을 순진하게 완전히 믿어버리거나, 그로 인해 열풍에 휩싸이는 자들 천지이다. 검증된 사실이 아닌 것에 다수의 사람이 몰려 한 사람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일이 많다. 자신과 반대의 주장을 내뱉은 사람의 홈페이지를 초토화 시키는 일도 잦다. 이건 무섭다. 어떤 때에는 나치즘이나 매카시즘을 보는 것 같다. 인터넷의 익명성 아래 사람들은 분노를 쏟아낸다. 언제부터 다수의 믿음이 완전무결한 진리가 되었나? 왜 짓밟지 못해 안달인가. 자신과 다르다면 그냥 무시해버리면 편할 텐데.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선구자도 아니다. 논쟁따위는 귀찮다. 앞으로도 이런 싸움에 낄 생각은 없다. 즐겁게 살기에도 복잡한 세상인데, 왜 스스로 머리 아프려 드는 건지 모르겠다. 싸움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것을 논쟁으로서 해소하려 한다면 최소한 예의를 갖추고 토론했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라 해도 죽어 마땅한, 욕먹어 마땅한 씨팔놈은 아니란 말이다. 이러한 화살이 앞으로 어디로 돌려질 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젠 누굴 칠 차례냐.

처음 나치스가 공산당의 인권을 무시하고 탄압하자 사람들은 모두 잘 했다고 기뻐했다.
그 뒤 그들이 타락한 동성연애자들의 인권을 무시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잔소리만 하던 사회주의자들이 끌려갈 때애도 아무도 동정을 보이지 않았다.
욕심 많고 이기적이던 유태인 탄압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동참했다.
마침내 나치스들이 무고한 일반 시민들을 탄압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이들은 이미 그 전에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출처 : Avalon의 감자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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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모든게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왜 이리 자주 잊고 사는 걸까. 내가 갖고 있는 무언가가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그 행복일 수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행복은 누군가에겐 하찮은 것 일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이 쥐고 있는 행복의 가치를 잘 가늠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행의 가치만을 크게 가늠할 뿐이다.
  -갑자기 왠 진지한 이야기냐, 하느냐면... 사실 별로 진지하진 않고.

  오늘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내 삶에 대한 반성을 아주 조금 했다. 우리 아빤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우리 엄마 아빠가 나랑 내 동생을 정말 오냐오냐 키우는구나... 나 철 좀 들어야겠구나... 뭐 요런 생각 조금 했다. 아빠 밥을 차려주는 나라니. 정말 상상할 수 없어(...)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나와 내 동생을 정말 오냐오냐 곱게 키우는 걸 알면서도, 조금 불편한 점이 생겨도 불만을 툴툴툴 털어놓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아빠가 평소에 정말 우리에게 미친듯이 잘해도, 명절 때 조금 권위 세우는거- 엄마한테 물 떠오라고 시키는거- (나한테 시키는 건 괜찮아;) 그런 일만 생겨도 불만을 품는다.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래도, 우리 아빠가 그러는게 나는 싫다. 우리 아빠는 다정다감하고 좋은 사람인데. 왜 명절 때 변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아빠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아빠였으면 좋겠다. 나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 예전부터 가족에게는 유독 그랬다. (이게 다 질풍노도의 중학시기 때문이야.)

  그러나 전에 엄마가 그랬다. 그 상태에서 만족할 줄 알면 그게 사람이냐고. 그러니까 내가 가진 불만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변명을 한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빠의 단점을 완벽히 커버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딸로서 아빠가 완벽하길 꿈 꿀 수는 있는거니까. 그냥 그렇게 되진 않더라도... 바랄 수는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불평한 거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진 않을란다. 아빠 미안, 내가 이래-_- 이건 엄마 닮아서... 어쩔 수 없어. 

  물론 내가 철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고쳐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아빠 미안-_- 인젠 동생 꼬셔서 같이 집안일도 쫌 할게... 그래도 나 요새 청소기도 돌리잖() 발전하는 내가 되고 있어... 그래도 속알맹이좀 차고 있으니까 점점 더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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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t
  - 간단하게 ‘줄거리’라고 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시간적 경과에 의한 줄거리의 전개를 뜻하는 것이라면 플롯은 작품의 주제를 증명하는 데 관련된 등장인물 등의 내적(內的) 인과관계를 추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플롯을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 이래 작품의 ‘묘사’에 선행하는 극적 효과의 중요한 지주(支柱)로 삼아왔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고대로 긁어온 것. 현대소설론이라던가, 소설창작이라던가에서 플롯에 대해 들었지만... 전혀, 조금도 기억나질 않아. 시험치고 고대로 땡 까먹었음. 자랑이다.

  실토하자면, 나는 소설을 쓰면서 제대로 플롯을 짜 본적이 없다. 글을 써 본 경험도 물론 별로 없지만(내가 써본 글이라고는 순수 창작 소설 2편, 팬픽 몇 편 정도가 고작이다.) 그 기저를 제대로 만들어 놓고 써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것이다. 내가 썼던 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은 그래서 항상 내 머릿속에서 시작과 끝이 가능한 것들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장편을 쓸 수 없었다. 내가 쓴 장편은 지누와 연달아 썼던 릴레이 뿐이었다. 릴레이라서 가능했다. 내가 쓰는 글들은 항상 즉흥적이었고, 무계획 했다. 지금도 그렇다. 기초가 없어서 앞과 끝의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 흐지부지하다.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그래서 내용을 펼쳐서 그때 그때 써지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잘 써지면 하룻밤 새에도 마구마구 써 갈겼다. 안써지면 세 글자도 쓸 수 없었다. 팬픽 하나에 삼일이 걸리기도 하면서, 석달이 걸리기도 하는것은 그때문이었다. 적어도 플롯이 있다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 뼈대가 있다면, 어떻게든 살은 붙여나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뼈대가 없는 데 살에다 살을 얹어가며 어떻게든 뭉뚱그린다. 아아,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플롯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플롯 없이 소설은 존재할 수 없다. 토양이 바싹 마른 상태에서 나무는 얼마 버틸 수 없다. 내 글은 껍질만 간신히 살아 버티고 있다. 알고 있기에 슬프다. 

  이번에 새로 쓰려고 하는 팬픽에 어떻게든 뼈대를 만들어 보려고 엉성하게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건 소설을 위한 플롯이 아니라, 플롯이라는 이름을 위한 플롯... 게다가 내가 원하는 느낌도 아닌거 같아서, 아. 뭔가 아냐. 그런데도 창작 이론 책 꺼내 읽기는 싫으니 난 정말 구제불능인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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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좋아하는 여성 '아빠 얼굴 닮은 배우자 선택'

  아놔,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 본인도 인정하고 있는 파파콤으로서 할말이 없음ㅋㅋ 우리 아빠 반만 닮은 사람 만나도 행복할 거 같은데. 그치만 울 아빠 얼굴도 잘생기셔서*-_-* 어려울 듯.

  나와 동생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예찬을 하고 있다-_- 잘생기고, 성격도 푸근하시고, 성실하시고, 우리집에서 젤 부지런한 분이 아빠. 물론 엄마도 좋은 분이지만; 아무튼 우리 아버지 가끔 말하는 게 답답하신 거 빼고는(엄마가 이거 유전이라고ㅋㅋ 할머니-아빠-동생으로 이어지는...) 정말 좋은 아빠다. 어릴 땐 많이 무서웠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정말 좋은 분으로 탈바꿈 하였음;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는 매를 안드셔서 그런가-_-; 무서운 적이 별로 없었다. 성적 못받아오면 엄마보단 아빠한테 보여주고 끝낸 적도 많았다. 엄마가 훨씬 엄하고 했으니까... 적어도 나한테는. 내 동생한테는 좀 크고 나서도 매드셨지만. 

  아무튼 그런 아빠가 얼굴도 잘생기셔서ㅋㅋㅋ(뻔뻔하지만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 동생과 나는 좌절의 구렁텅이로. 둘다 엄마 아빠를 잘 믹스해놓은 얼굴이라 아빠의 좋은 점을 많이 닮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아빠의 이목구비를 받았지만, 엄마의 골격을 고스란히 받아-_-; 동그란 얼굴과 낮은 코를 가지게 되었다. 어흑, 아빠 코는 진짜 예술인데;ㅁ;... 내 동생은 아빠의 골격을 받아 키도 크고 코 뼈도 높지만, 엄마의 이목구비를 닮아 아빠 포스의 반도 못따라간다. 우리아빠 이제 사십대 후반인데.. 스무 살 동생과 비교하면서 놀리고 있음. 아빠 안닮아서 불쌍하다고ㅋㅋ 이 무슨 자기 분수를 모르는 인간 1인지. 동생이 버럭 화내면 나는 아예 안닮아서 괜찮아!라고 외치고... 

  아빠가 잘생긴 것을 어릴 때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철없던 시절 엄마 앞에서 '아빠가 아까워'라는 망발을 서슴치 않았던 나. 지금 생각해도 죄스러운 마음 뿐. 우리 아빠 엄마는 잘 어울리시는 한쌍인지라, 떨어뜨려놓고는 상상할 수 없다. 두 분 성격이 상호보완적이고 그러니까... 

  지금도 난 아빠 닮았다는 소리가 좋다ㅋㅋ 그리고 성격이 엄마 닮았다는 소리도 좋다. 난 그래도 제법 잘 믹스되었어! 아빠 성격 똑 닮은 나는 왠지 상상하기 싫다... 원체 엄마랑 성격이 똑같아먹어서, 엄마가 아빠 답답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일치하니까; 물론 어떤 부분은 아빠를 몹시 닮았지만-_-; 

  그렇다고. 아빠 닮은 사람 만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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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귀레, 신의 분노'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31세때 찍은, 1972년 개봉작이다. 헤어조크 감독의 영화는 극한의 상황과 극단적인 목표, 그리고 고생하고 상처받은 주인공들을 내세워 기이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아귀레, 신의 분노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 아니 그 틀을 구축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실제 페루의 아마존강 유역에서 찍은 영화로, 지금처럼 CG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고생하면서 찍은 영화였다. 주변 환경도 그렇고, 아무튼 연기자들과 스텝 모두 극한상황에 내몰렸다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클라우스 킨스키는 헤어조크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이였는데, 성격이 까탈스럽고 괴팍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천재였다고. 그렇게 연기에서만큼은 악바리였던 그조차도 아귀레, 신의 분노 촬영현장에서 도무지 참을 수 없었는지 "더이상은 못해먹겠다."라고 손을 놓으려 했었다.

  그런 클라우스 킨스키에게 헤어조크 감독이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 바로 총을 겨누며 "촬영할래, 여기서 죽을래." 

  그래서 촬영은 계속되었고, 영화는 호평을 받았고, 클라우스 킨스키는 헤어조크 감독의 페르소나로 남았다. 뭐 이 부분에서는 헤어조크 감독의 승리로 보이지만, 사실 평소에는 클라우스 킨스키의 괴상한 성격에 질려 헤어조크 감독이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헤어조크 감독 스스로 말하길 클라우스 킨스키 살해 계획까지 세웠었다고. 그러나 그들은 깊은 애증의 관계같은 것을 맺고 있어서, 클라우스 킨스키 사후에는 헤어조크가 '나의 친애하는 적 - 클라우스 킨스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그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요새 가끔, 누군가가 내 머리에 총을 겨눠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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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그렇게나 거대해 보였던 존재들. 그러나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고보니, 그들도 어렸구나... 나와 같이 철이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와 같이 유치했던 존재들. 그러나 그들조차 몇 살 어린 내게는 너무나 거대해 보였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다르다. 어찌 되었건 세월의 힘이라는 것은 제법 위대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는 나보다 많이 겪게 된다. 그것만으로 그들은 나보다 거대해 보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과 성인(成人)이 된다는 것은 다른 것 같다. 나이만 먹으면 성인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어른이 될 수는 없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나는 성장하는 것일까. 점점 어른으로 내딛고 있는 것일까?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내가 어리다는 것. 아직은 어른이 아니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 온연히 철이 들면... 그 다음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하기엔, 지금의 나에겐 어른으로의 길조차 너무나 멀어 보인다. 

  어른이 되고싶다. 철없이 반복하는 일들은 너무나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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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가는 인터넷 게시판이 하나 있는데(활동은 안하고, 눈팅만 한다), 영화 관련한 게시판인지라 아무래도 그쪽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긴 하지만, 가끔 재미있는 논쟁도 벌어지고, 쓸모 있는 정보를 얻는 일도 있다. 가끔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는 잘났고 내 의견은 옳고, 그것들은 못났어.' 라는 식의 대화를 할때만 뺀다면, 그 게시판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또 그런 종류의 말이 올라왔더라. 자신은 무슨무슨 배우들을 싫어한다고. 그걸 목록으로 나열해 놨는데, 기가 찼다. 덧글에는 동조하면서 엑셀로 정리해놓은적이 있다는-_- 싫어하는 배우들 이름을 올려놓은 사람도 있더라.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싫으면 싫은거지, 그걸 또 뭘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공표를 하는건지.
  뭐 그래도, 이외수 싫다는 글에 '저는 이외수 소설 하나 읽었지만, 저도 그사람 문체가 싫더라고요.'라고 덧글 달았던 사람보다는 좀 낫나?

  그 글을 보면서 이전에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 하나가 떠올랐다. 모 분께서 대중교통에서 듣게 된 여고생들의 대화였는데, 뭐 이런 것.

A: 난 교감이 정말 싫어! 맨날 나만 보면 쓰레기 치우라고 하고
    머리 갖다 뭐라고 하고 신발 꺾어 신는다고 뭐라고 하고 뭐 등등등 뭐 등등등...
     ....(한참 열변)...
B: (툭 던지듯) 교감도 너 싫어해.
조용해졌습니다.

  내가 아무리 누가 싫다고 나불거리면 뭐하나. 그 사람이 알아주길 하나 뭘하나. 싫다는 사람을 게시판에서 적어놓는다거나, 목록으로까지 만들어 놓는거는 일종의 집착처럼 보인다. 정말 싫어한다면 아예 신경 끄고 있거나 말거나 하는게 낫지 않을까? 공감을 얻길 바랬던걸까? 나는 이해 못하겠다.

  음. 쓰고보니까, 나도 그 게시판에 덧글 단것도 아닌 주제에 그사람 싫다고 나불거리는거 같다. 아니 그냥 이해가 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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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수첩]‘된장녀’가 어쨌다고…

  요새 소위 '된장녀'에 대한 말이 많다. 원래 '~녀'라는 말을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이런 논쟁이 일어났다는거 자체가 몹시 짜증스럽다. 
  소비지향적이고 유행에 휩쓸리는 현대 여자. 이것이 '된장녀'의 기본 개념이다. ...아니, 그게 뭐 어쨌다고?   

  저들이 표현하는 된장녀처럼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자주 마시지도 못하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자주 먹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비난할 필요를 느껴 본 적은 없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게 뭐 어쨌단 말인가? 누구 돈을 훔쳐서 그렇게 쓰는 것오 아닌데, 왜 다른 사람들이 난리를 치느냔 말이다. 심지어 그들을 여자로 제한하고 이상한 호칭을 붙이면서. 참 오지랖도 넓지.

  왜 그들을 비난하는가? 스타벅스 커피가 비상식적으로 비싼데, 그걸 사먹어서? 니들은 안사먹으면 되잖아. 그게 싫으면 비난하는 당신은 당신 여친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으면 된다. 비싼 밥집은 아까워? 그럼 그것을 비난하는 당신은 당신 여친의 손을 꼬옥 붙잡고 싼 맛집을 찾아다니면 되는거다. 왜 남이, 자신의 돈을 가지고 사먹겠다는데 그리 난리인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스타벅스 커피가 비싼것은 사실이고, 빕스나 아웃백 따위의 레스토랑이 매일 먹을 만큼 싸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분명 그들만이 가지는 메리트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그리 승승장구할 이유가 없다. 가게의 인테리어, 위치, 장식. 오래 있어도 눈치주지 않는 분위기. 독특한 맛.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 소비자는 생각보다 냉정하다. 그들이 가진 메리트가 없다면, 그들은 성공하지 않았을 거다. 그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돈을 다른 곳에 쓰고 싶다면, 그건 당신들의 선택이지. 근데 남을 비난하진 말란말이다. 

  자신과 다르면 남을 비난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 자신도 그렇지 않을 때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취향은 다양하다. 남이 물구나무 서서 걷든 말든 그걸 뭐라 할 이유가 없다. 그가 거꾸로 세운 발을 주체못해 당신의 얼굴을 때리기 전까진 말이다.

* 좋은 메리트는 그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근데 스벅이 쵸큼 비싸긴해.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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