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
감독 강형철 (2008 / 한국)
출연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황우슬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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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3주가 다 되어가는데 어떻게 포스팅을 또 하는구나. 그냥 넘길 줄 알았는데... 아무튼 꽤 뒤늦게 봤다. 처음 광고를 봤을 때에는 또 이런 영화인가? 싶었었다. 차태현 또 이런 영화 찍나...? 이런 느낌. 연기 잘하구 스펙트럼이 되게 넓은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비슷비슷한 역할만 하다 보니까 좀 이미지가 고정되어가서 슬펐었다. 그런데 또 요런 영화야? 이런 느낌이었다구.

  그런데 이 영화가 요상하게 입소문을 잘 타는거다. 쫄딱 망할 줄 알았거늘,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뭐 요렇다는 식이었다. 사실 이런 영화가 재미있고 감동도 있어야지 없으면 어떡하니?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말한다면, 진행이 잘 되었겠구나.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호의적인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영화관까지 보러 갈 생각은 별로 안했는데, 듣는 강좌에서 강사님이 표를 싸게 해주셔서-_-ㅎㅎ 보러갔다.

  그래서 봤는데, 오 재미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뻔한 플롯이야 각오하고 들어간 거고, 그런 스토리에 대해선 큰 불만이 없었다. 진행시켜가는 방식이 중요한거지. 라따뚜이 때 같은 느낌이었다. 전형적인걸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는가가 중요한 것 같음... 라따뚜이보다는 조금 더 뻔한 감이 있었지만, 뭐 그래도 쉴 새 없이 터지게 해줘서 재밌었다.
 
  차태현이야 항상 안정감 있었는데 남현수라는 배역 까지 너무 잘 어울려서. 쩝. 미혼모 역할의 황정남(박보영)은 자칫 까다로울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좀 더 무디면서도 어떤 부분에선 섬세한 역할이었다. 손주 황기동(왕석현)은 아이구 그냥 막 귀여웠어요. 사위(..)인 상윤(임지규)은 너무 찌질해서 할 말이 없어... 보는 내내 찌질해만 연발했다. 임지규씨 이럴 때 보면 참 연기 잘하는 것 같아. 유치원 선생님(황우슬혜)은 뭐 생각보다 쿨한 여자네. 요 정도 느낌이었고, 황우슬혜씨는 예뻤다. 연예부 기자 봉필중(임승대)은 이 평탄한 영화에 그나마 하나 사건 터트릴만한 요소 때문에 나온 거였다고 생각하고... 임승대 씨는 참 순한 역할도 잘 어울리고, 이런 나쁜놈 역할에도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전에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빙의 걸린 연기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잠깐 나는구나;

  요는 많은 기대 없이 보면 꽤 재미있는 영화라는 거. 즐거웠다. 영화에 비해 홍보가 참 거지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렉산더
감독 올리버 스톤 (2004 /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출연 콜린 패럴,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안소니 홉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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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얼마만에 쓰는건지; 아무튼 방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보게 되었는데... 나 콜린 파렐이랑 자레드 레토, 안젤리나 졸리 외의 캐스팅은 잘 몰랐는데 의외로 아는 얼굴들이 좀 나와서 반가웠다. 특히 카산데르 역의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_-;; 나오는 줄 몰랐어.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좋아해서 반가웠음. 로자리오 도슨도. 이 여자 너무 섹시하다. 주연 배우들도 꽤 좋아하는 편이고(자레드 레토 킹왕짱 ㅎㅇㅎㅇ) 뭐 적당히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만, 아놔 어떻게 이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가 이렇게 찍어 놓을 수 있어(...) 지루해서 채널 몇번이나 돌릴 뻔 했잖아! 내용이 쉴틈없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많았다. 이야기 자체 각색이 진짜 멋대가리 없게 됐다고 생각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라는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기도 힘들텐데. 전쟁씬이 매력있거나, 드라마적 매력이 있어야 했을 텐데 둘 중 어느 것도 끌어당기는 것이 없었다. 무의미해보이는 영상들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좀 편집을 더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 들었다. 3시간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

  주변 인물들도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아니어서 몇번정도 헤맸다. 캐릭터가 좀 덜잡혔다고 해야하나... 무엇보다 알렉산더(콜린 파렐)캐릭터 자체를 매력없게 찍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인 올림피아스(안젤리나 졸리)나 아버지 필립(발 킬머)와의 관계에서부터 삐꺽거렸으니, 알렉산더 측근들과의 관계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좀 안정적인 게 헤파이스티온(자레드 레토)과의 관계였다. 전쟁 이야기보다 헤파이스티온, 록산느(로자리오 도슨)와의 연애사가 더 눈에 들어왔으니 이걸 누구 탓이라고 해야 할지; 이걸 좀더 치밀하게 찍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늙은 프톨레미(안소니 홉킨스)의 나레이션으로 끝이 나는데... 과거 회상 뭐 좋다만. 이때쯤 됐을 땐 그냥 지겹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록산느의 등장 정도. 춤이 너무 예뻐서 그냥 넋놓고 봤다. 그리고 헤파이스티온 죽을 때의 콜린 파렐 연기 부분. 슬픔이 절절하게 느껴지더라. 평소 자레드 레토와 콜린 파렐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런 캐스팅과 이런 소재로 이렇게 지루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많이 아쉽다.

렛 미 인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 스웨덴)
출연 카레 헤데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페르 라그나르, 헨릭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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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다 본다 하다가 이제사 다 봤다. 뱀파이어 물인지도 모르고 봤다가, 초반을 조금 본 후에서야 알았다. 최근 뱀파이어물을 보고 싶어서 난리치던 차에 더 잘됐다 싶었다.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스웨덴 영화다. 배경은 눈덮인 설원만이 기억에 남는, 특별하게 화려하진 않은 영화였다. 그래도 인상적이게 잔혹한 장면이 꽤 있고 조용함 속에서 그런 모습들이 더욱 부각됐다. 영화의 조용하면서도 뭔가 스산하게 스려있는 듯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쨍한 눈밭은 되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뱀파이어 공포 영화라기 보다는 소년과 소녀가 만나서 성장하는 이야기 쪽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잔혹한 장면이 없지는 않은데, 주인공들이 만나서 서로 교감하고 서로를 아끼게 되는 과정들이 아주 좋았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오스카르(카레 헤레브란트)와, 지켜주는 보호자 호칸(페르 라그나르)가 죽은 후의 12살(혹은 그보다 더, 덜한)짜리 뱀파이어 엘리(리나 레안데르손).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나는 이 소년소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모스 부호 같은 것을 통해 대화하던 것, 큐브를 통해 마음을 나누기 시작하던 것... 수영장에서 오스카르의 손을 잡으며 끌어내던 엘리의 표정이 가장 좋았다.

  가장 인상적이던 장면은 엘리가 뱀파이어인 것을 알게 된 오스카르가 조금 냉정하게 구는 부분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엘리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던 오스카르. 그에게 "초대해 달라."고 말하던 엘리. 강아지를 들이듯 손짓으로 엘리를 들여놓았을 때, 엘리는 그 분노를 속으로 참아내듯 온 몸에서 피를 쏟아냈다. 뱀파이어의 '초대' 방식에서 기인한 결과였지만, 나는 그 상태에서도 엘리가 오스카르를 죽일 수도 있었고 생각한다. 엘리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오스카르를 그만큼 아꼈기 때문이 아닐까. 배신감 또한 컸던 것을 것 같다. 다행히 그 뒤로 둘은 잘 풀렸지만.

  영화에서 살인은 무차별적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딱히 선악에 따라 판단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짐승의 본능처럼 엘리는 사냥을 하고, 엘리의 보호자 또한 그랬다. 엘리는 오스카르에게 "당한만큼, 당한 것보다 더하게 갚아줘라."라고 가르쳤다. 이건 완전히 자연계 법칙이고, 엘리의 삶은 완전히 그 규칙 안에서 굴러가는 것 같다. 엘리의 살인에는 어떠한 가치 판단도 들어있지 않다. 오스카르를 괴롭히던 패거리를 죽일 때 빼고는 엘리의 살인에 어떤 법칙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살인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점은 오스카르도 엘리와 비슷하기 짝이 없어서, 엘리 말대로 오스카르 또한 "죽일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살해했을 것" 같다.

  시놉시스 소개에는 호칸이 엘리의 아버지처럼 소개되어 있던데, 원작에서는 다르다. 엘리의 연인같은 존재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엘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쨌건 영화에서도 그다지 아버지 같은 구석은 없었고... 어쩌면 오스카르가 커서 호칸 같은 존재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음 아니겠찌.

  마음에 들었다. 조용한 마을에서 큰 소동이 조용한 것처럼 일어난다.


버터플라이
감독 필립 뮬 (2002 / 프랑스)
출연 미셸 세로, 클레어 부아닉, 나드 디유, 자케 보아니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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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드 블로그에서 하는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갔다 왔다. 명동에 있는 스폰지하우스에서 봤는데, 생각보다 관이 작았다. 특별히 불편했던건 아니고 그냥 아담하니 좋았다. 은자랑 같이 봤는데 나보다 은자가 더 마음에 들어한 것 같다.

  프랑스 영화에 대한 작은 편견이 있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봤던 프랑스 영화들은 모조리 지루했고, 특히 난 그 발음을 견딜 수 없었다. 프랑스어 발음은 날 졸리게 만들었고, 프랑스 영화를 볼 때면 난 어김없이 잤었는데... 이 영화는 좀 다르더라. 쉴새 없이 쫑알대는 엘자(클레어 부아닉)를 보고 있으면 영화에서 눈을 뗄 새가 없었다.

  엘자 캐릭터는 처음엔 좀 별로였다. 어린애가 너무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또 생각해보니 그게 어린애긴 하더라.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는 시도 자체는 귀여웠다. 줄리앙은 그냥 나비를 수집하는 평범한 노인. 심술궂은 척 하지만 사실 엘자를 많이 걱정하고, 아끼고 보살펴주는 모습들이 보여 좋았다. 그리고 엘자에게 많이 약했다. 유괴소동을 불러올만큼 허술했던 건, 줄리앙 자신도 많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역시 며칠이 다 되도록 전화 한 통 제대로 못한 건 문제가 있긴 하다. 엘자 엄마는 지나치게 책임감이 없었다. 별로 비중있다고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잔잔할 때도 있지만, 마냥 조용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여행담이라기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도 있고, 엘자와 줄리앙의 담화의 덕도 크다.

  엘자와 줄리앙(미셸 세로)의 담화들은 가볍고 쉼 없이 이어지지만, 때때로 철학적이다. 우리 삶 속에 있는 단순한 물음들은 엘자를 통해 던져지고, 줄리앙의 입을 통해 어린이의 시선에 맞게 설명된다. 줄리앙이 엘자에게 하는 설명들은 노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경험에 입각한 사실들이 많아서 좋았다.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는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야. 믿음이 없다면 사랑도 없어.
하지만 그 새는 날아가지 않았어. 나는 그게 너무 기뻤어. 왜게? 내 곁에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은 날 사랑하기 때문일꺼니까.

  이거 말고도 사람이 순간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간다는 것,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사실 난 이게 가장 좋았는데 대사가 잘 기억 안난다.) 이런 심각한 이야기들이, 엘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의 말들로 전해지는데 그것들이 참 좋았다. 줄리앙이 엘자에게 그림자를 통해 해주던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라기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두 배우가 함께 부른 '나비Le Papillon'가 엔딩곡으로 쓰이는데, 그 가사를 보면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담화의 수준과 그 안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좋았다. 커다란 난관이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선 뒤늦게 개봉한 셈인데, 그렇다고 해도 어색한 건 전혀 없었다. 뭐 특별히 도시풍경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진행되었으니까.

  두 배우가 함께 부른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첨부한다. 스튜디오 모습을 보니까 또 신기한 기분이다.

  검색해보다가 충격받았다. 줄리앙 역을 한 미셸 세로가 2007년에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고 했던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른다. 좋은 데 가셨길...
 
 

 

  누가 줘서 봤다. 요새 영화 잘 안봤는데 딱 맘잡고 봐야지... 하고 침대에 누우니 28분짜리 단편영화였다. 스웨덴 영화라서 말 하는건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자막이 있어도 귀에 익은 언어를 듣는 것과 안그런 언어를 듣는 것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퀴어영화이긴 한데 되게 담백하고 마음에 들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영화다. 스웨덴 산 한가운데에 있는 캠프장은 조용하기 짝이 없다. 그 안에 아빠와 같이 사는 올레(토비아스 뱅츠손)의 성격도, 자신이 사는 곳과 꼭 걸맞게 얌전하다. 전구를 엮어 무대 장식이나 만들며 아빠와 조용히 캠프를 꾸려나갈 뿐이다. 여행을 다니며 캠프에 해년마다 찾아오는 바브로 아주머니(브리타 앤더손)는 이번엔 조카인 케빈(톰 로프터주드)과 함께 캠프를 방문한다. 올레와 케빈은 미묘한 감정을 대하고, 약은 듯 하지만 자기 감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케빈과, 수줍고 어색하지만 자기 감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올레의 줄다리기가 재미있다. 내가 왜 요약을 하고 앉아있냐... 아무튼 제목인 럭키 블루는 케빈(과 바브로 아주머니)이 키우는 새 이름. 새장속에 갖혀 있는 것을 올레가 꺼내서 같이 놀다가 날려보낸다. 하지만 뒤에 되돌아 옴. 이걸로 뭔가 사랑의 상징을 주려고 했던 듯.

  올레 캐릭터는 되게 수줍고 내성적이지만, 은근히 다부진 면이 있어서 좋았다. 올레가 무대에 올라가서 F. R. David의 Words를 부르는 게 되게 좋았다. 내성적인 올레이지만 자기 감정에 있어서는 솔직하고 직설적이었다. 배우도 케빈 역 배우에 비해 좀 더 섬세해 보였다. 케빈은 솔직히 처음엔 좀 얄미웠다. 자기가 먼저 꼬셔놓고 딱 모르는 척 하는 건 우습다. 사실 그 마음도 이해는 가는데, 그 이후에도 또 찔러보는 건 뭐니 이 녀석아. 자신만만한 척 하지만 사실 올레보다도 용기 없었고 약은 척만 하는 애였다. 그래도 막판 가서는 가까스로 자기 감정 인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냥 가볍고, 조용하고, 물결 같았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감독 민규동 (2008 / 한국)
출연 주지훈, 김재욱, 유아인, 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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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일에 급 보자는 얘기가 나와서 케슥헤거랑 내꺼 두장 예매해놨다가, 유네 수업 째라고 꼬셔서(...) 한장 더 사서 셋이서 봤다. 그 전날 발표하느라 두시간 자서 거의 토할거 같은 상태로 봤었음.

  난 요시나가 후미 원작 만화의 팬이다. 거의 처음 1권이 나왔을 때부터 마음에 들어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당연히 이 영화 꽤 기대했었다. 캐스팅도 뭐 나름 젊고 신선하게 잘 했다고 생각했었고. 나이대가 좀 걸리긴 하는데, '팔려는' 영화 입장에서는 상당히 잘 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하기도. 평이 좀 엇갈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좀 기대하고 영화관에 들어섰었다.

  어.. 음.. 한 절반 정도 마음에 든다. 4권 분량의 만화책을 한 편의 영화에 잘 구겨넣었는데, 의외로 거의 모든 장면을 다 집어넣어놨더라. 장 바티스트(앤디 기레)의 오고 감과 납치사건을 잘 맞춰 놓은 점이 흥미로웠다. 칭찬은 여기까지고...
 
  사실 나야 만화책 팬이고, 만화책 다 봤으니까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너무 복잡했을 것 같았다. 중요한 부분들 같은 건 짧게 빠르게 지나가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주인공들 심리묘사가 아무래도 많이 부족해졌다. 그나마 제일 주인공격인 진혁(주지훈)이야 사정이 좀 낫다 싶지만, 성격을  많이 바꿔놓은 선우(김재욱)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많이 반감됐다 싶은 느낌이었고(도대체 왜 사과를 안하는거야 왜!), 기범(유아인)이나 수영(최지호)은 너무 얕아졌다. 수영보다는 기범이 특이 아쉬운 캐릭터였는데, 복싱을 관둠으로서 생겼던 그 안의 혼란 같은 것을 더 넣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수영의 비중이 많이 줄어든 것은 좀 더 마음에 든 편이었다. 어차피 캐릭터의 맛을 그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라면 이 정도 비중이 딱 좋았던 것 같다. 근데 원작보다도 더 멍청해진 느낌ㅋㅋㅋ 뭐 나야 재미있었다. 수영이 기범할때 맞을 때마다 완전 웃었음. 유아인이랑 최지호 넘좋아 ㅋㅋㅋㅋㅋ

  장 바티스트는 원작보다 쬐끔 더 느끼하다는 느낌? 그래도 꽤 좋았다. 원작만큼 폭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남자였다. 납치범 할아버지(김창완)은 원작이랑 완전 똑같더라. 캐스팅도 연기도 꼭 맞았다는 생각. 그의 아내(이휘향) 역할도 그렇고. 조연들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음. 뭐 주인공들 보기 바빠서 조연들은 깊게 생각 안했었는데 다들 꽤 좋았다는 느낌. 그 여고생 삼자매만 빼고... 아 걔넨 너무 부산스러워;

  각색이 나쁘지 않긴 했는데 캐릭터들의 내면을 깊게 다루지 못한 게 아무래도 좀 아쉽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마구마구 지나간 장면을은 오히려 자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들도 많았다. 큰 줄기만 잡아서 크게 크게 다루고 캐릭터에 더 집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뮤지컬 장면 같은건 나로서는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렇게 짧게 들어가는데도 무슨 상관이야 싶기도 했고...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땐 무난하다는 생각도 또 들고.

  연기는... 아 나 진짜.... 눈물이 콸콸. 주인공 네 명 중에서 연기가 잘 안되는 사람이 세 명이니 이걸 어찌할꼬. 이미지야 잘 맞는다 생각했는데 연기는 진짜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가 펀치 먹었다. 유아인은 연기 정말 잘한다. 네 명이 같이 있을 땐 혼자 지존급으로 잘한다. 근데 항상 모든 장면에 유아인이 있는게 아니잖아. 최지호는 비중이 좀 적고 말도 많지 않은 캐릭터였는데도 좀 어색했는데, 주지훈이랑 김재욱은 진짜... 민망해서 손발이 오그라 들 뻔 했다. 특히 그 둘이 같이 있고 같이 대화하는 장면들은 오 노... 주지훈은 대사 리듬 맞추는 거 잘 해야 할 거 같고, 김재욱은... 커피 프린스에서는 좋았는데, 대사가 늘어나니까 답이 안나오더라. 나름 자연스럽게 말하려는 거 같긴 했는데 이 둘이 있는 장면들은 총체적 난관. 더 난관인 것은 이 둘이 있는 장면이 정-말 많다는 거. 이미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니 아쉬울 뿐이었음. 조연들 연기는 다 괜찮고 좋았다.

  만화 팬들에게는 나름의 선물이 될 것 같다. 물론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난 나름대로 괜찮게 보았다. 모든 부분 우겨넣은 것은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확실히 만화 팬들에게는 오호. 하고 볼 수 있는 장면이 많아서 좋았고... 좀 흩어지는 느낌이 나긴 해도 마무리는 깔끔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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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2008 / 미국)
출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마이클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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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맥스로 봄. 용산까지 가느라 힘들었다... 랄까 너무 재미있어서 보람 있었음. 아이맥스 관람 후기는... 글쎄, 2D라 그런지 그냥 그랬음. 좀 더 생동감 있는거 같긴 했다. 그렇게까지 확 좋다거나 하는 건 못느꼈다. 아무래도 다크 나이트 한 번 쯤 더 볼 거 같은데, 그때는 그냥 동네 영화관 가서 볼 듯... 까지 써놓고 지금 다시 열었다. 본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리뷰 쓰는 속도 짱 빠른듯.

  기대 많이 하면 실망한다 소리를 들었었어서 걱정했는데 하나도 실망 안했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즐거웠고 완성도도 이 정도면 마음에 든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만족했었던 것보다 더 만족했다. 적당히 유머를 섞은 것도 재치있었고, 그런 것과는 별개로 또 본 스토리 또한 설득력있게 진행해서 좋았다.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의 고민은 한층 더 짙어졌다. 애시당초 고담시같이 커다란 악의 덩어리가 한 사람의 힘과 노력만으로 고쳐질 수는 없다. 수퍼히로인물이면서도 현실성을 강조한 탓에, 고담시는 더 암울하고 배트맨의 고뇌는 가실 줄 모른다. 끊임없이 일해도 악이 들끓는 고담시,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 사이에서의 균형맞추기, 게다가 레이첼(매기 질렌할)의 남자친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까지 신경써야 하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이면서도, 이런 저런 고민에 젖어 있는게 흥미로웠다. 영화 결말부에 가서도 그의 고민의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특히 레이첼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여지조차 없고), 이 영화의 다음 편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이번 편의 악당 히로인은 조커(히스 레저). 그래서 더욱 기대했었다. 조커는 여태까지의 악당과는 좀 다르다. 그도 물론 자신의 신념(이라고 해야할까... 이러면 너무 무거운 것 같고.)을 위해서 악을 벌이기는 하지만, 그건 여타 악당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악당들은 자신의 순수한 이익, 그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서 악을 행하지만 조커는 다르다. 그에게 돈은 악을 행하기 위한 부차적인 요소고, 그가 원하는 것은 사회를 혼돈으로 빠뜨리는 것이다. 조커는 왜 혼돈을 원할까. 단순히 그가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재미를 위해서? 그는 너무나 혼돈 상태의 존재라서, 오히려 단순히 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고민하는 것조차 Why So Serious?

  영화 보기 전에 홍보 팸플릿이고 뭐고 정보를 하나도 안찾아보고 갔었다. 그래서 또다른 악당인 투페이스(아론 에크하트)가 나오는지도 몰랐다.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가 이런 식으로 무너져버린 것은 꽤 아쉽다.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조커의 부추김에 넘어가버린 것이 좀... 뭐랄까. 그 앞의 밝게 빛나던 하비 덴트가 떠올라서 더욱 안쓰러워진달까. 그리고 난 투페이스 좀 더 오래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심심하게 끝나버리더라. 사람들의 희망을 위해서 겉좋게 포장되어 버린 것도 난 좀 짜증이 났고. 악당이 되려면 확실하게 되던가. 아무튼 좀 아쉬운 캐릭터.

  고든(게리 올드만)은 앞편에 비해서 좀 더 딱딱해지고 권위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비와 부딪치게 된 것도 이런 면 탓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선은 선인데, 뭔가 아직은 약한 느낌이다. 앞으로를 기대해야겠지. 레이첼은... 말을 말자. 매기 질렌홀은 좋아하지만, 이 레이첼은 정말 별로였다. 알프레드(마이클 케인)와 루시어스 폭스(모건 프리먼)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존재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배트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좋았다. 아 그리고 알프레드가 편지 다시 가져가는 장면은 유머 부분의 백미... 지못미 브루스.

  배우들은 뭐 말 할 필요 있나? 다들 굉장히 좋았다. 매기만 빼고. 다시 말하지만 난 매기를 상당히 좋아함에도 이 역할은 정말 별로였다. 비긴즈에서 케이티 홈즈가 연기를 발로 했건 어쨌건 간에 배우가 교체된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가 큰 것 같다. 연기를 못한 건 아닌데 어색해서 혼났다. 레이첼 캐릭터 자체가 뭔가 더 보여줄 게 없었다는 것도 있었고. 크리스찬 베일은 브루스의 허세와 배트맨의 고민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히스는 진짜... 아우... 히스.. 왜ㅜㅜ... 자칫하면 가볍게만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다음 조커가 누가 되던간에 히스의 연기가 꽤나 신경쓰일거고, 그의 발목을 잡게 될 것 같다. 덧으로 조간호사 너무 귀여웠다. 아론 에크하트는 나는 다른 데서 제대로 본 기억이 없는데 연기 하나는 탁월하더라. 특히 투페이스 할 때 아주 좋았음.

  영화 참 좋았다. 비긴즈 때 너무 잘만들었다, 생각했었는데... 다크 나이트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듯. 앞으로 고담시에서 배트맨이 가지게 될 위치를 생각하면 씁쓸하기 짝이 없지만, 때문에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영화였다.

  참, 초반에 까메오로 등장한 킬리언 머피 굉장히 즐거웠음 ㅋㅋㅋ 난 비긴즈에서도 무엇보다 킬리언 머피를 좋아했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2006 / 미국)
출연 메릴 스트립, 앤 헤더웨이, 스탠리 투치, 에밀리 블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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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봤었는데, 당시에 너무 귀찮아서 리뷰 안했던 영화. 오늘 온스타일에서 해주길래 앉아서 봤다. 그전에 봤었던 때에도 상당히 재미있었는데, 두 번 봐도 재미있더라. 원작 소설은 안읽긴 했는데 그래도 이해 안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는 걸 보니 각색도 참 잘했다.

  화려한 패션 산업을 다룬 것 때문에 많이 주목받은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악마같은 상사 아래에서 일하게 된 사회 초년생과, 처음에는 징징대기만 하던 그녀가 성장해가는 모습에 관객들이 동화된 듯. 물론 의상도 시선을 휘어잡는 데 한 몫을 하긴 했지만.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런웨이의 식구들, 특히 앤디(앤 해서웨이)에게 있어서는 악마같은 존재이다. 까다로운 취향과 독선적인 스타일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권력자. 이 까다로운 여자의 비서로, 심지어 관심도 없는 패션산업에서 버텨야만 하는 앤디는 보통 힘든 게 아니겠지. 그런데 이 미란다를 미워하기 힘들다. 까다롭고 독선적이지만 그녀는 분명 실력을 가지고 있고, 인간미가 없어보이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있어선 어느정도의 인간미도 보여줬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방식은 좀 그렇지만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 까탈스러운 건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상사면 죽이고 싶겠지만.

  앤디는 사회초년생 티가 난다. 앤디가 겪는 힘든 일들은 미란다의 탓도 일부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녀 스스로 자초한 일들이다. 사회에서 학교때와 같은 어설픔이 통할리가 없다. 그녀는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모두가 입지 않은 옷을 입었었고, 일을 할 때 지켜야할 규칙들을 어기곤 했다. 그것과 미란다라는 악마가 합쳐져 더욱 큰 효과를 내게 된 것이겠지.

  생각보다 조연들이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미란다를 돕기도 하지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는 나이젤(스탠리 투치). 섬세한 캐릭터였다. 마지막에 그렇게 되어서 좀 슬펐다. 제 1비서인 에밀리(에밀리 브런트)는 밉살맞으면서도 귀여운 면이 있어서 좋았다. 그녀 역시 자기 일을 알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골빈 여자가 아니었다. 앤디의 남자친구인 네이트(아드리언 그레니어)는... 보면서 좀 속터졌다. 물론 연인으로서 자기 생일에도 오지 못하고 일하면 서운하기야 하겠지만, 그건 진짜 일인 건데. 그거 이해 못해준다는 게 속상했다. 하지만 네이트의 마음도 또 이해가 가서... 이런 문제는 솔직히 극복하기 어렵다. 안보이면 멀어진다. 크리스찬 톰슨(사이몬 베이커)은 처음부터 느끼해서 싫었는데 끝에서 물먹어서 재미있었음. 하지만 그 역시 앤디에게 그렇게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들 연기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메릴 스트립은 진짜 환상적이더라. 그런 캐릭터를 그렇게 매력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게 멋있었다. 중간에 피로에 지친 모습은 정말... 삶에 치인 여자의 모습이라 놀랐다가도 또 그 다음 장면에선 금방 바뀌고. 그런 이미지에 스타일까지 딱 맞아떨어져서 아무튼 그냥 멋있음. 그리고 또 한명... 스탠리 투치. 터미널에서 까탈스러운 역할로 봤다가, 이렇게 섬세하면서 부드러운 역할 보니까 이것도 너무 잘어울리더라. 연기 폭이 넓은 배우 같았다.

  (이런 표현 웃긴거 같지만)스타일리쉬하고 동시에 재미있는 영화였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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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2007 / 미국)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 켈리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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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 볼 땐 상당히 지루하게 봤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왠지 집중하게 하던 영화. 보고 나서 아 결말 왜이래. 하고 짜증을 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 괜찮은 영화인 것 같다.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랄까. 너무 삭막하고 건조한, 메마른 분위기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난 이런 식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좋게 보이는구나. 리뷰 쓰길 미루길 잘했다.

  정적 같이 조용한 가운데 팡팡 터지는 강렬한 이미지들이 많다. 맨 처음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가 저지르는 살인부터서 팡 하고 터지는 느낌. 살인장면들은 빠르고 간결하지만 인상 깊다. 안톤이 쓰는 무기는 독특하며 인상에 남는다. 그 외 살인장면들도 굉장히 빠르고 신속하며, 이미지가 강렬했다. 팡팡 터지는 장면 외에도 조용하면서 가슴졸이게 하는 장면들이 많아서 숨죽이고 보게 된달까.

  모스(조쉬 브롤린)가 돈을 탐낸 건 당연하다. 그 정도 돈이라면 누구라도 탐냈겠지. 하지만 그 과정이 내겐 좀 바보같이 느껴졌다. 돈을 든 가방을 그대로 사용한다던가, 돈을 가져왔던 장소로 다시 돌아간다던가 하는 행동들. 그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도망치긴 하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똑똑해 보이진 않았다. 필사적이지만 한 군데 씩 비어있달까. 어느정도까지는 그가 완전한 주인공인 것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아니고. 쓸데없는 호승심으과 돈에 대한 욕심으로 자기 목숨 뿐 아니라 아내의 목숨까지 배팅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 그런 면에서는 완벽한 일반 사람과 같다. 모스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손에 쥐게 된 것을 지키려는 탐욕으로 범벅이 된 보통 사람.

  안톤 시거는 생김새 자체도 좀 독특하고―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호러스러운데, 그가 벌이는 살인들은 감정없이 원칙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게 더 두려움을 자극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안전해 보이기도 하지만. 주요소 직원처럼 쓸데없이 "어디서 왔어요?" 따위의 질문만 내뱉지 않는다면, 그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그 이유라는 것이 나름 원칙을 세우고 있는 이성적인 것들이라 마음에 든다. 남들을 돕지도 않지만 대가없는 도움을 받지도 않는다던가 하는 점도 자기 원칙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일들 같다. 교통사고를 당해 뼈가 보이는 와중에도 그는 돈을 지불하고 소년들의 옷을 샀다. 교통사고에 대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대가 없는 도움을 받지 않으며 그 자리를 묵묵히 떠난다. 모스의 아내(켈리 맥도날드)가 "이럴 필요 없잖아요."라고 말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원칙을 따랐다. 아마 칼라 진 모스는 죽었을 것이다. 동전을 고르지도 않았고, 그녀를 살려두면 오히려 안톤에게 해가 된다. 원작에서는 확실히 죽었다.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는 세상과 타협하는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그는 대대로 정의를 수호하는 자였지만, 그 역시 자신의 목숨과 안전을 위해 안톤을 캐내지 않는다. 세상을 관망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마지막에 아내(테스 하퍼)에게 담담히 털어놓는 말들은 뭔가 안타까운 느낌을 준다. 그의 꿈들이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은데, 난 이해가 덜 된것 같다...
  
  해결사(우디 해럴슨)는 좀 웃겼다. 뭔가 허세만 가득해서 뻗대더니만 정말 허세로 끝났다. 죽음을 구걸하는 신세까지 되어버리다니. 사실 그가 뭔가 한 껀 하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했건만...

  연기들이 다 좋았다. 살아남으려는 모스의 모습이 필사적이라 좋았다. 조쉬 브롤린 연기 좋았음. 특히 초반에 그 총맞으면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거. 하비에르 바르뎀은 그냥 말할 필요 없는 듯. 진짜 안톤 시거 같다. 우디 해럴슨은 찾아보다 알았는데, 실제 친아버지가 돈받고 살인해서 감옥 복역...; 지금은 돌아가시긴 했는데 좀 어이없었음. 다른 영화에서 킬러도 했었던데, 연기하면서 기분이 어땠을까?

  뭔가 메타포가 많은데 그걸 다 파악하지 못해서 화가 남. 난 역시 좀 더 생각없는 영화 쪽이 맞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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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감독 길 정거 (1999 / 미국)
출연 히스 레저, 줄리아 스타일스, 조셉 고든 레빗, 라리사 올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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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 보고 왔다가, 히스가 너무 떠올라서. 그래서 찾아봤다. 얼마전에 봤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 떠올랐다. 원작이 있고 그걸 10대 주인공의 현대물로 각색한 것까지 똑같다. 다만 이건 아주 재밌게 봤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보다 무겁거나 진지해서가 아니라(오히려 내용 다루는 방식은 그쪽이 훨씬 무겁지), 현대극에 맞게 잘 각색하고 분위기도 끝까지 즐거운 편이었음. 영화 자체가 풋풋한 기운이 넘쳐나서 즐겁다. 물론 이 영화도 좀 엉성하다 싶은 구석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유쾌하고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극을 진행시켜 나가더라.

  인물들의 관계도가 이리저리 얽힌 게 맘에 들었다. 인기없고 고지식한 캣(줄리아 스타일즈), 인기 만점이지만 캣이 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데이트고 뭐고 없는 캣의 동생 비앙카(라리사 오레이닉), 각 학교에 하나씩 있는 잘난척 하지만 사실은 실속없는 조이(앤드류 키건), 정보통이면서 학교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마이클 (데이빗 크럼홀츠), 전학생이며 비앙카에게 한눈에 반한 카메론(조셉 고든-래빗), 그리고 학교에 하나씩 있을 법한 아웃사이더 괴짜 패트릭(히스 레저).

  각 캐릭터들이 이렇게 저렇게 얽힌 게 재미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행동들의 이유를 더해주기도 하고. 캣과 패트릭이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모양새도 맘에 들고, 얌체같았던 비앙카가 카메론에게 반하는 과정도 마음에 든다. 다만 카메론 캐릭터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비앙카가 아깝기도 했다. 아니지. 비앙카도 멍청이이긴 하다. 조이같은 머저리에게 빠질 정도면.

  캣이 점점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좋다. 딱딱하지만 사실은 속에 그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 좋았다. 패트릭은 좀 알 수 없다 싶다가도 여러가지 구애 방법이라던가 하는 게 너무나 귀엽다. 매력있어. 이 영화에서 Can't Take My Eyes Off Of You를 부르는 장면이 괜히 말 많은 게 아니다.

  발랄하고 좋았던 청춘 영화. 히스가 더욱 그립다.

  난 당신이 하는 말도 머리 모양도 싫어요. 차를 모는 방법도 쳐다보는 눈길도 싫어요. 무식하게 큰 장화도 싫고 내 속을 들여다 보는 것도 싫어요. 날 화나게 하는 당신이 싫어요. 사실을 말해도 싫고 거짓말을 해도 싫어요. 날 웃겨도 싫지만, 울릴 땐 더 싫어요. 곁에 없는 것도 전화를 안하는 것도 싫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건 당신이 싫지 않은 거예요. 하나도, 정말 하나도 좋은 게 없어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中, 캣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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