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감독 케빈 리마, 크리스 벅 (1999 / 미국)
출연 조 화이트, 나이젤 호손, 알렉스 D. 린즈, 글렌 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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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앙 역시 디즈니 2D 애니메이션은 너무 재미있다... 이거 보고 나니까 새삼 미녀와 야수라던가, 라이온 킹 같은 것들이 보고 싶어졌다. 3D랑은 다른 맛이 있다니까.

  초반부부터 중반까지는 눈도 못떼고 재미있게 봤다. 진행 속도도 꽤 좋았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마음에 들었다. 타잔(토니 골드윈/아역-알렉스 D. 린즈) 자체보다는 고릴라 엄마 칼라(글렌 클로즈)와의 만남같은 거라던가, 타잔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고릴라 무리의 우두머리 커책(랜스 헨릭슨)과의 관계, 그리고 친구인 터크(로지 오도넬)나 텐더(웨인 나이트/아역-테일러 뎀시)와의 관계 같은 게 즐거웠달까. 본디 자기 원래 자식을 잃고 정을 갖게 된 칼라는 그렇다 쳐도, 커책이 타잔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타잔은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 것들이... 뭔가 뛰어넘어야 하는 아버지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커책과 타잔의 관계가 영화 내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터크는 귀엽고 감초같은 캐릭터였다. 텐더는 그냥저냥 사실 역할이 크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좀 더 설명을 해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뭔가... 있지만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오히려 재미가 좀 떨어졌던 게 중반 이후 제인(미니 드라이버)을 만난 후.. 라고 생각했다. 원래 이 부분이 제일 흥미진진해야하는데, 만나고 나서 타잔이 변화하는 과정이 너무 쓱 지나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인과의 소통도 좀 부족했던 것 같고... 손을 대는 장면 같은 건 정말 좋았지만, 제인이 타잔을 좋아할 이유같은게 거 참. 악역의 설정도 좀 그랬던 것이, 클레이튼(브라이언 블레스트)의 악역 등장이 너무 뒤늦었고(뭐 그럴만한 캐릭터라는 것은 미리 알 수 있었지만) 해소 또한 그렇게 극적인 느낌이 아니어서 심심한 느낌이었다. 라이온 킹이나 미녀와 야수의 악역들을 생각하면 클레이튼은 좀 심심했지. 인간 버전의 텐더로는 포터 박사(나이젤 호손)를 꼽을 수 있겠고.

  작화는 뭐 그때에도 예뻤겠지만 지금 봐도 좋더라. 하지만 똑같이 자연이 배경이었던 라이온 킹에 비해 좀 심심한 느낌이 있지 않았나 싶다. 어두컴컴한 정글이라 그런가. 몇 몇 장면은 정말 예뻤지만... 그런 부분보다는 인물이 움직이는 그런 쪽에 더 신경쓴 느낌이 강했다. 노래는... 딱히 기억 나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는 느낌.

  원작을 기대하진 않았긴 했는데 정말 많은 부분에서 관계를 잘라내고 정리해서 간단한 서사구조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짧은 영화고, 그게 애니메이션에 어울리긴 하지만 서사를 좀 더 보강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진행이 빨랐던 것은 마음에 들었다.

  어라, 쓰고 보니 좋은 소리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엄청 재미있게 봤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감독 이와이 슌지 (2001 / 일본)
출연 이치하라 하야토, 오시나리 슈고, 이토 아유미, 아오이 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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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대체 누가 추천해 준거지. 일본 특유의 감성이 미친듯이 묻어나는 영화다. 그거 까진 괜찮은데, 다루는 소재가 왕따에 관련한 것이다 보니까 보는 내내 불편했다. 10대의 나였다면 뭔가 구구절절히 느끼면서 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미 20대고, 이 영화가 참 불편했다. 시작에서부터 결말까지 내내 불편했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의 심리변화라던가, 일종의 복수의 과정, 여자아이들의 대처. 모든 것들에 긍정하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그게 전형적인 일본 10대의 태도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내게는 모든 것이 변명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처음부터 하스미(이치하라 하야토)의 비참한 현재 상황을 보여주고, 행복했던 예전의 과거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지 보는 내내 입맛이 썼다. 하스미는 현재에서조차 완전한 피해자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그 세계 안에서 가해자의 입장 도 취하고 있다는 게 참 현실적이었다. 좋아하는 여자애인 쿠노(이토 아유미)를 창고로 보내면서 엉엉 울던 장면은 짜증도 났지만 이해도 됐달까.

  호시노(오시나리 슈고)는 짜증날 수밖에 없었던 게, 과거 자기가 당했던 상황을 다른 아이에게 복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키나와 여행에서의 익사할 뻔한 사건이나 여행 당시 만났던 남자의 죽음 이후 뭔가 호시노 안에서 각성한 건 알았는데, 그럴 거면 좀 긍정적으로 하던가. 피동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휘어잡은 것은 좋지만, 그것을 위해 하는 일들이 역겹기 짝이 없었다. 호시노가 원조교제를 시키던 츠다(아오이 유우)가 자살한 뒤 릴리 슈슈의 노래를 들으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그 심정이 이해간다기 보다는 화를 증폭시켰다. 결과적으로는 그래 놓고 변한 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호시노가 느꼈던 건 자기 세계 안에서의 일일 뿐 겉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릴리 슈슈의 세계 안에서 아오네코로써만 착한척하고, 실제 호시노는 똑같았다. 피리아, 혹은 하스미에 의한 호시노의 종말도 결국은 그가 초래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

  츠다가 참 안쓰러웠다. 츠다의 경우에는 기대고 있던 자가 겨우 하스미였으니까... 현실을 따진다면 자신에게 고백해 온 남자애에게 도움을 취했어야 겠지. 거기에 하스미에게 빌린 릴리 슈슈를 들으면서 그녀의 자살은 더욱 부추겨진 느낌이다. 쿠노의 경우 정말로 당당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머리를 밀고 교실에 돌아왔을 때 놀란 것은 반 아이들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자를 쓰고 당당히 생활하는 그녀의 모습이 좋았다. 츠다도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릴리 슈슈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모여 인터넷 상의 세계에서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뭐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말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잘 보면 영화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부분도 많아서... 릴리 슈슈의 에테르 같은 것들? 에테르를 받아들이던 때의 아이들은 정말로 모두 우울하고 결과적으로 부정적은 결말을 맞지만, 릴리 슈슈를 포기해 버린 시점의 하스미나 드뷔시의 음악으로 자기를 달래던 쿠노의 경우 살아남는다. 그들을 달래주던 것을이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 같아서 아이러니했다.

  장면이 재미있던 게 있었는데, 마지막 즈음에 하스미가 자살시도하려는 듯한 장면들. 집에서의 장면과, 어머니 미용실에서의 장면. 하스미 내면의 갈등을 잘 드러내주고 있어서 좋았다. 어느 정도 웃음을 주기도 했고.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하스미는 쿠노의 드뷔시를 들으며 자기 자신에게 삶의 의지를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영화였다. 모르겠다 나쁘다고 평할 수는 없는데 참 힘들었다. 보고 나서 힘든 게 아니라, 보는 내내 힘들었다는 느낌. 나는 이제 이런 감성을 즐기기엔 커버렸나보다.


가디언
감독 앤드류 데이비스 (2006 / 미국)
출연 케빈 코스트너, 애쉬튼 커쳐, 셀라 워드, 멜리사 세이지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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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헐리우드 플롯을 따라가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는 있었다. 해상구조에 관한 만화를 전에 봤던게 있어서 그런지, 더 흥미롭고 그랬다. 특수한 직업군을 다룬 영화는 뭔가 그만의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진행으로 봤을땐 정말 전형적이었지만ㅋㅋㅋ.. 나름 훈련장면 보고 그러는 거 재미 있었음.

  구조의 달인인 벤 랜달(케빈 코스트너)과, 구조대원을 양성하는 A스쿨에서 다소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 제이크 피셔(애쉬튼 커쳐) 사이에 불화가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오만하고 실력 좋은 제이크에게 나름대로의 트라우마가 있을 거라는 것 또한 말이다.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나, 결말 즈음에 누군가가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될 거라는 것도 말이다. 진행 양상은 뻔해서 별 재미가 없는 편인데, 그런 거 신경 안쓰고 헐리우드식 감동주기를 받아줄 자신이 있다 싶으면 뭐 괜찮다. 나는 괜찮았다.

  주변 인물들보다는 벤과 케빈에 확실히 집중이 되어 있지만, 조연 중 눈에 띄는 사람들도 있었다. A스쿨에서 벤과 조금 부딪쳤던 스키너(닐 맥도너)는 교관으로서 나름 뚜렷한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3번이나 떨어지고도 스쿨로 돌아온 호지(브라이언 게라그티) 또한 자기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음. 스키너가 호지에게 맞아 피가 철철 나면서도 호지를 끌어안아주던 장면은 조금은 뻔했지만, 스키너라는 캐릭터와 호지의 캐릭터에게 매력을 갖게 해주었다.

  반면 여자 캐릭터들은 조금 매력이나 당위성이 없다 싶었다. 벤의 아내였던 헬렌(셀라 워드)의 경우 그냥 퇴장해버리는게 낫지 않았나 싶고, 제이크의 연인은 에밀리(멜리사 세이지밀러)는 차라리 처음과 같이 냉정한 매력을 발산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뭐 등장 안하면 더 좋고. 꼭 이런 거에 어설픈 연애를 끼워 넣더라.

  처음에 바다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가디언에 관한 전설이 왜 나오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차용해 쓰더라. 음... 제이크가 미묘하게 웃었던 표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라면 그가 저 곳에 있다. 라는 것에 살짝 미소를 짓기보다는 조금은 서글프고 착잡한 표정을 지었을 것 같지만...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저는 케빈 코스트너가 좋습니다. 아 진짜 멋있어... 풋내기 애쉬튼보단 백배 멋있었다. 애쉬튼은 아직도 펑크드라던가 그런 이미지가 강해서 큰일이다. 코믹 장르에만 나올 것 같아졌어. 뭐 좀 더 커리어 쌓으면 달라지겠지만. 셀라 워드는 보자마자 하우스 스테이시... 이 생각. 닐 맥도노도 마찬가지로 헉 위주 데이브... 뭔가 사악하게 돌변할 것 같아서 무서웠다ㅋㅋ 멜리사 세이지밀러는 예뻤지만 거기까지였다.

  뻔한 스토리. 그래도 다룬 소재가 특이하고 좋았다.

블레이드 III
감독 데이빗 S. 고이어 (2004 / 미국)
출연 웨슬리 스나입스, 제시카 비엘, 라이언 레이놀즈,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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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이상으로 재미없어서 깜짝 놀랐다. 영화가 보통 속편이 만들어지면은 본편이 어느 정도 재미있었단 말이잖아. 그리고 그 속편이 말아먹는다 해도 어느정도의 재미는 보장된다고 믿었는데. 내가 본편을 안봤지만 편견부터 생기게 생겼다. 이런 식의 캐릭터 설정이라면 1이나 2편에서도 그다지 재미 없었을 것 같은데.

  블레이드(웨슬리 스나입스)는 전형적인 안티히어로이다. 악의 무리인 뱀파이어를 죽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진짜 너무 무미건조해서 매력이랄 게 없다. 뱀파이어와 인간이 섞인 캐릭터라면 좀 더 꾸며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이었을텐데, 이 뻣뻣한 뱀파이어 처형자는 정말이지 영화 내내 그런 매력이 없더라. 그래서 더 나대는 한니발(라이언 레이놀즈)에게 눈이 갔다. 여자 주인공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비게일(제시카 비엘) 또한 마찬가지. 뭐니 이 통나무같은 캐릭터와 연기는... 실망. 그리고 영화의 가장 큰 적인 드레이크(도미닉 퍼셀) 또한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뭔가 악의 사도다운 맛이 없어요. 게다가 도미닉 퍼셀은 무섭다기 보다는 인상 자체가 워낙에 서글퍼서...

  아무튼 주요 인물들이 이렇다 보니까, 한니발이랑 뱀파이어 악녀였던 대니카(파커 포시)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 같은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설정이었다. 입나불대고, 성격 좀 있는데 가끔 약하기도 한 애. 보면서 계속 킹스의 케일럽 떠올라서 혼났다ㅋㅋㅋ 대니카의 경우엔 뭐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인 편이었는데, 파커 포시가 연기를 잘 해줘서 더 살았던 것 같다. 파커 포시 너무 귀여워...

  내용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진짜 단순하니까. 그냥... 액션 보러 가는 영화 같다. 문제는 그 액션마저도 심심한 편이라는 거지. 한니발 캐릭터 때문에 그나마 참고 보았다. 4편이 나오진 않겠지 설마?

러브 & 트러블
감독 알렉 케시시안 (2006 / 프랑스, 영국, 미국)
출연 브리트니 머피, 산티아고 카브레라, 매튜 리스, 사만다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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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었을 때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뭔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라는 느낌이 들었었거든. 케이블에서 하길래 그냥 앉아서 봤는데, 뭐랄까 브리트니 머피를 새삼 다시 봤다. 감정선도 잘 타고 연기를 굉장히 잘 하더라. 영화에 대한 생각도 편견임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오히려 로맨틱 무비의 편견을 대놓고 들먹이면서 그 부분을 써먹는다거나 비꼬거든. 영화적 효과 면에서 참 재미있었다.

  있을 법한 오해를 코믹하고도 어른스러운 섹시함으로 덧그려낸것 같다. 아마도 나는 칙릿소설 특유의 감성이 영화로 만들어 질 때를 좋아하는 것 같다. 잭스(브리트니 머피)라는 캐릭터는 비현실적인데도 현실적인 느낌이라 보는 기분이 신기했다. 능력도 어느 정도 있고, 그러면서 외롭고, 상처도 있고, 사랑하기 두려운데도 뭔가 익숙한 기분이었다. 전남친인 제임스(엘리어트 코원)랑 잠은 자면서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게 이기적이긴 했지만, 뭐 사람은 다들 이기적이잖아. 베스트프랜드인 피터(매튜 리즈)와 여자들 대화하듯 놀고 있는 모습들은 특히 즐거웠고... 파울로(산티아고 카브레라)를 게이로 착각하고 하는 행동들도 재미있었다. 파울로는 진짜ㅋㅋㅋ... 진지한 모습이 있으면서도 엉뚱한 면모가 보이는 캐릭터로 그야말로 판타지적인데도 이게 참 좋았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도 참 '부담없는 게이 프렌드'의 편견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피터는 항상 잭스의 든든한 지지자로 나오니까. 이 판타지가 참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피터의 이야기도 제법 다뤄줘서 좋았다. 피터가 한 눈에 반한 남자를 갈구하고 직접 만나게 된 후 그 판타지를 깨트리고, 자신의 짝을 찾아 만나가는 그 과정은 꽤 귀여웠다. 잭스커플 이야기보다 피터 이야기 쪽이 더 흥미 있었던 것도 같다.

   브리트니는 여기서 새삼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눈망울이 푹 젖어서 내뱉는 대사들이 마음에 들었다. 산티아고 카브레라는.. 헉 히어로즈의 아이작이야! 하며 처음에 놀랐었음. 보다보니 이런 잔잔하고 뭔가 약간 멍청한 듯한 역할도 잘 어울리더라. 아이작은 약간 미친놈같았잖아. 매튜 리즈는 브라더스 앤 시스터즈에서 먼저 봤었는데 여기서도 게이 역할이라 익숙했다. 뭔가 참 잘어울린다.

  이 영화가 엄청 대단한 건 아니다. 오히려 엉성한 구석이 더 많았다. 그래도 20대 여성들이 꿈꾸는 로망을 괜찮게 그렸고, 이 영화 특유의 정서나 배치가 참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헐리웃 파올로(올랜도 블룸)와 헐리웃 잭스(기네스 팰트로) 같은 덤장면도 좋았고.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감독 가보르 츄포 (2007 / 미국)
출연 조쉬 허처슨, 안나소피아 롭, 주이 디샤넬, 로버트 패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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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둥거리다가 케이블에서 하길래 봄. 안나 소피아 롭은 아무래도 찰리와 초콜렛 공장 때문에 얼굴이 익숙했고, 조쉬 허처슨은 여기서 처음 봤다. 원작 소설은 안 읽었다. 처음에 광고 하는거나 포스터 같은건 이전에 봤었는데, 그거 때문에 난 나니아 연대기나 해리포터 같은 완전한 판타지일 줄 알았었다. 그런데 보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 오히려 한 소년의 성장기 같았다는 느낌.

  여자 형제들로만 북적대는 가난한 가정에서, 꼭 어설픈 서열에 끼인 제시(조쉬 허처슨)는 학교 생활마저도 평탄치 않다. 내성적인 성격의 이 남자애가 학교에서 겪는 고난들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시하고 신경을 끄고 있다는 느낌. 학교에서 유일하게 신경을 쓰고 좋아하는 건 에드먼즈(주이 디샤넬)선생님을 보는 것 정도. 그리고 달리기. 제시의 고민은 오히려 집안에 있는 것 같다. 아버지(로버트 패트릭)와 뭔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데 제시는 항상 그걸 못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여자 형제들에게만 관대하게 뿌려지는 것 같이 느껴지고. 특히 모든 관심을 막내동생인 메이벨(베일리 매디슨)과의 비교가 제시를 더욱 외롭게 한다. 이러한 아버지의 무관심때문에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이 남자로서 성장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에 갇혀버린 제시는, 옆집에 이사온 레슬리(안나소피아 롭)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간다. 어리석어보이는 테라비시아의 설립은 레슬리에게보단 제시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팍팍한 일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제시가 현실 외에 좀 더 다른 것을 보게 되었달까. 학교의 지배자인 재니스(로렌 클린턴)에게 대항할 생각도 하게 되고 말이다. 제시는 아버지 대신 레슬리와의 모험을 통해 성장의 새로운 지표를 열어나간다.

  그러던 중 에드먼즈 선생님이 제시에게 미술관에 같이 가자고 청하고, 그곳에 가게 될 때 레슬리를 두고 가면서 사건은 어두워진다. 제시가 없는 새 레슬리에게 일어난 사고는, 제시가 여태까지 가졌던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다. 제시가 잠시나마 소유했던 희망의 세계는 그런 식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 제시는 크게 울지도 못하고, 레슬리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망설이는 것만 같다. 그것의 해소를 가능케 하는 것은 결국 아버지와의 진정한 만남이다. 테라비시아에서 홀로 모험을 하던 제시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제시의 아버지는 그제야 제시와 진정한 교감의 일부분을 보여준 것 같다. 갈 데 없던 제시의 방황은 아버지를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재구축의 방향을 갖게 되는 듯 했다. 그래서 메이벨에게 공주님의 자리를 내줄수 있었던 것일테고.

  급작스럽게 내용이 암울해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참 잔잔하게 흘러가는구나... 싶었는데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 갑자기 던져져서 놀랐다. 막판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이거 판타지겠지? 라고 바라게 되었달까. 그런 기분이었다. 영화가 나쁘진 않았는데 크게 재미있지도 않았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마음에 들었던 게, 난 이런 타입의 성장 영화를 꽤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덧. 볼 때 생각했던건데, 남들이 제시와 레슬리가 노는 꼴을 봤다면 당장 정신병원에 연락했을지도ㅋㅋㅋ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감독 시드니 루멧 (2007 / 영국, 미국)
출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단 호크, 앨버트 피니, 마리사 토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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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드 블로그에서 하는 시사회에 당첨되어 다녀왔다. 시사회만 한 게 아니고 진중권 교수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도 있었음. 영화 2시간, 시네토크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시네토크라는거 영화에 대한 해설도 되고 좋긴 했다. 하지만 관객들과의 토론은 그저 그랬음. 도대체 저 질문은 왜 하는가? 싶은 수준낮은 질문들도 많았다. 아무튼, 이 영화 2007년 영화인데 좀 뒤늦게 개봉한다는 감이 있지만, 뭐 여러 상들을 휩쓴 영화 답게 영화는 좋았다. 시드니 루멧은 어떻게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렇게 잘 빠진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걸까. 광화문 시네큐브 단독개봉이라는데 그게 아쉽다.

  영화 제목은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반 시간이라도 천국에 가 있기를.' 이라는 아일랜드 속담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데, DJUNA의 영화평 아래 달린 사족을 보면 아일랜드 건배에서 나왔다고. 'May you have food and raiment, a soft pillow for your head; may you be 40 years in heaven,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어느 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행크(에단 호크)의 팍팍한 일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앤디는 번드르르한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약때문에 횡령했던 회사 돈을 감사가 나오기 전에 메꿔야 하고, 에단 호크는 애당초 가난하다. 누구나 한 번쯤 돈이 궁할 때 범죄를 저지를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걸 실행하느냐 마느냐겠지. 그리고 이 형제들은 실행한다.

  앤디가 생각한 대로 모든것이 잘 풀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는 결코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보안이 허술한 부모님의 보석상을 턴다. 이 보석상엔 나이든 노파인 점원 한 사람만 있을 테고, 총은 장난감 총을 가져갈 것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앤디가 행크를 조용히 꾀어낼 때만 해도 이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자그마한 실수들은 우연과 섞여 전체적인 그림을 뒤섞어 버린다. 작게는 그 날 출근한 사람이 점원이 아닌 엄마 나넷(로즈마리 해리스)였다는 것부터, 앤디가 행크에게만 일을 맡겨버린 것, 행크가 친구인 바비(브라이언 F. 오바이런)을 끌어들인 것, 앤디가 장물상에게 명함을 준 것. 행크가 앤디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모든 사소한 일들은 결국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연쇄작용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이것들이 초래한 재앙은 그 재앙만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재앙으로 등장인물들을 몰아갈 뿐이다. 형제가 원했던 건 지금의 경제난을 해결할 돈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소한 실수만으로 보면 행크의 더 많았긴 했지만, 앤디가 행크를 몰아세우는 장면에서는 좀 속이 쓰렸다. 애당초 시작점이 앤디였던 것을 생각하니 더 그랬을지도. 나는 과정보다 결과와 시작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앤디가 평소 생활에 만족했다면, 아내(마리사 토메이)와의 성관계에 만족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뭐 행크는 혼자서는 그럴 배짱도 없는 사람이다. 경제난에 휘둘리긴 했지만 실제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몇 번이나 망설이고, 결국은 친구까지 끌어들였으니까. 보는 내내 은자와 헉 행크 찌질해... 를 외친 것 같다. 거기다 형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바람까지 피우는 걸 보면 기가 차는 캐릭터였음. 아버지인 찰스(알버트 피니)가 행크를 더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앤디는 그거 때문에 또 열등감을 가지기는 하지만.

  가족 내에서 어머니가 죽었다는 작은 재앙이, 원래 묻혀 있던 재앙의 뿌리들을 끄집어냈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미 뿌리가 튼튼치 못했던 가정이 그 이후에 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달까. 찰스가 앤디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뭐 그런... 하긴 이런 식으로 시작을 따지면 끝도 없겠지.

  배우들 연기는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는 비열한 타입에 잘 어울린다. 에단 호크는 다정할 땐 한 없이 다정하지만, 찌질한 모습을 연기할 땐 정말 미친 듯이 잘 어울린다. 엘리트와 루저 사이를 넘나드는 느낌이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에서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온 몸으로 드러내 주었다. 마리사 토메이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넘실대는 감정을 잘 보여주더라. 알버트 피니가 대박이었다. 마지막에 앤디를 보며 괜찮단다. It's all right 할 때, 이미 표정이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얼굴을 막 찡그린 것도 아닌데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용서못함의 감정이 느껴져서 사뭇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연기자 셋 중에서 가장 도드라졌다는 느낌.
 
  좋았다. 하지만 명작인데 기분나쁘고 재미있는데 찝찝한 기분. 그걸 감출 수는 없는듯.
 
2007/04/16 - 협박하기.


  옛날 포스팅 보다가 급 보고싶어져서 봤다. 포스터에 나오는 사진은 영화 안에 나오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였던 클라우스 킨스키 사이의 관계가 묻어나오는 사진이다. 짙은 애증. 클라우스 사후에 그를 기억하며 만든 이 영화는, 제목이 너무 적절한 것 같다.

  초반부엔 거의 웃으면서 봤다. 이게 추모 영화인지 코미디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웃겼다. 클라우스의 광적인 면모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설명하는데, 기가 막힐 정도로 또라이다. 일화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다. 헤어조크 감독은 13살에 얹혀 살던 셋집에서 당시 가난한 연기자였던 클라우스를 처음 보는데, 그 당시의 일화가 사실 가장 재미있었다. 자신의 연극을 보고 '탁월하고 기념비적인' 이라고 평하니, 바로 그 사람의 얼굴에 뜨거운 감자 두 덩이와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던지고는, 식탁에 올라서 "난 탁월하고 특별한게 아니야! 나는 기념비적인 존재야! 획기적인 인물이라고!" 라고 외쳤다니... 48시간동안 욕실 안의 모든 물건을 깨부수며 난동을 부린 적도 있었고, 자신에게 무료로 집을 빌려주고 세탁도 해주던 셋집 주인에게 옷깃이 안다려져 있다는 이유로 "클라라 이 돼지같은 년!"하면서 욕을 쏟아부울 수 있는 존재. 이런 기이함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는지 참 궁금하다.

  촬영 중 일화도 참 많아서,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했던 클라우스는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항상 자신에게 주목이 될 수 있도록 발작을 했고... 엑스트라에게 총을 쏘기도 하고, 칼로 내리치기도 하는 기이한 일들도 참 많이 했다. 촬영장에서 그가 난동을 부린 게 한 두번이 아니어서 어떤 때 헤어조크 감독은 그냥 얌전히 관전하기만 했는데.. 어떤 영화를 찍을 때에는 그 영화에 출연한 인디언 엑스트라들의 추장이 찾아와서, "당신을 위해 저 사람을 죽여줄까요?" 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 그 인디언들이 무서워 한건 클라우스가 아니라 헤어조크 감독이었는데, 클라우스가 그렇게 날뛰는데도 불구하고 헤어조크 감독은 항상 얌전히 상황을 관전해서... 였다고.

  제일 유명한 일화가 일전에도 썼던, "촬영할래, 죽을래" 인데, 헤어조크 본인의 말로 봐서는 내가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짐싸려는 클라우스에게 손에 무기도 없이 가서 얌전히 말했단다. "지금 여기 총이 있는 건 아닌데, 다음 굽이를 돌아가기 전에 총알 8발로 당신을 쏘고 마지막 9발째로 날 쏠거야." ...아 참 얌전하셨던듯..ㅜㅜ 그래놓고 언론에는 자기가 카메라에 총을 달고 촬영했다고 소문이 나서 억울하다는 말도 했다ㅋㅋㅋㅋㅋ 둘 다.. 성격이 만만치 않다.

  영화 중간에 당연히 클라우스가 연기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참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하는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아귀레는 그냥 클라우스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다른 영화들에서도 기묘할 정도로 그 히스테릭하고 공격적인 면모가 잘 어울리게 연기하더라.

  클라우스 킨스키는 뭐랄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괴팍한 어린이 같았다. '많은 부분이 허구였던' 그의 자서전에 헤어조크 감독에 관한 욕을 잔뜩 써놓고도, 그 다음 장에는 강박적일 정도로 헤어조크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는 거... 그래놓고 헤어조크 감독에게 말하길 "내가 나쁜 이야기를 안 써놓으면 아무도 이 책을 안 사볼거야. 버러지같은 인간들은 나쁜 얘기에만 신경쓴다구." 라고 말했다니... 뭐랄까 귀여웠음. 항상 주목받고 싶어하는 면모같은거, 특별해지길 원하는 것... 헤어조크 감독의 말처럼 비겁함과 용감함이 섞여 있는 배우였다는 말이 적절했다.

  또, '보이체크'에서 여배우만 상을 받고 클라우스는 못받았을 때, 헤어조크가 "당신이 상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우리가 다 알아요. 상은 기껏해야 당신의 가치를 떨어뜨려 싸구려로 만들 거예요. 온갖 미디어들이 당신을 괴롭힐 거라구요." 라고 말해주자, 클라우스는 기분이 좋아져서 헤어조크에게 키스하고 오랜 시간동안 그를 안아줬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클라우스가 너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영화에 나온 여배우들은 클라우스를 다 좋게 평가 해 주는게 재미있었다. 평소에 괴팍하기 짝이 없는 이기주의자임에도 여배우들에겐 상당히 친절했던 것 같다. 심지어 '부끄러움을 타는' 배우였다고 말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 결벽증도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알콜로 소독을 한다던가... 짐승과 촬영을 해야 하는 장면에서 기가막히게 싫어한다던가 하는 것들. 이모 저모 독특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고, 클라우스 킨스키의 연기열정을 알 수 있는 장면도 많았다. 헤어조크가 말하길 자신과 킨스키의 마지막 영화 '코브라 베르데'의 결말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발산해서... 작열하듯 타올라서 그 후에 그가 재가 된 것 같았다고. 그가 없었다고. 이 때 클라우스가 "우리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클라우스는 그 뒤 자신이 감독한 영화 '파가니니'를 찍고 자신의 집에서 죽었다.

  마지막 부분 클라우스를 추억하는 헤어조크 감독의 나레이션들에서 참 많은 그리움이 묻어났다. 

  가끔 나는 한 번만 더 그를 내 팔로 안아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걸 꿈꾸는 이유는 내가 우리가 옛날에 찍은 필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친구인 척 하고 장난을 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에게 속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글로 돌아가 함께 보트를 타고 있는 우리를 본다. 세상이 전부 우리 것이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거기서 날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 때 그의 영혼이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했다는 걸 믿어야 했을까?
  그리고 나는 그가 정말 부드럽고 가벼운 나비 한 마리와 같이 있는 걸 본다. 그 조그만 존재는 그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친한 것처럼 군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클라우스는 스스로 나비가 된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심각했던 모든 일들이 부드러워 진다. 모든 일들이 잘 되어 간다. 나의 이성은 거기에 거스르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장 사랑스러운 그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에선 정말로 나비와 함께 있는 클라우스 킨스키의 모습이 나온다. 그 때 그의 모습은 아주 평화로워서, 정말 잠깐이나마 그가 평화롭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줬다. 여운도 길게 남았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의 친애하는 적.


귀여운 여인
감독 게리 마샬 (1990 / 미국)
출연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랠프 벨러미, 제이슨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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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터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케이블에서 하길래 봤다. 앞 부분을 조금 놓친 거 같은데, 뭐 상관 없을 듯. 그래도 중요한 부분부터는 다 봤으니까...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되게 뻔하게 흘러갈 수 있고, 보통은 플롯 자체가 다 뻔한 편이지만 이건 되게 재미있었다. 20년 전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한 장면도 놓칠 수 없게 만들더라. 물론 플롯이 엄청나게 대단하다 이런 건 아닌데, 창녀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의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있었다. 백만장자-_-ㅋㅋ인 에드워드(리차드)에 비해서 훨씬 보는 맛도 있었고, 여자들이 흔히 꿈꾸는 신데렐라 로망을 제법 잘 투영한 영화. 뭐 신데렐라 스토리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서도 이건 그냥 재미 있었다.

  뭐 크게 엄청 장애가 되는 사건같은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던지. 기껏해야 나쁜 변호사 필립(제이슨 알렉산더) 정도가 방해가 되었을 뿐인데... 이도 뭐 방해나 장애물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삼각관계로 엮이는 정도도 아니었으니까. 

  비비안을 만나면서 에드워드가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아가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비비안 자체의 성격 변화는 그다지 모르겠다. 비비안은 원래도 밝고 명랑했고, 창녀였지만 곧고 정직한 여자였다. 애당초 그 점에 에드워드가 끌렸듯이. 비비안이랑 에드워드가 하는 대화 중에, 비비안이 처음 킷(로라 산 지아코모)을 만나고... 몸을 팔고 나서 방에서 하루종일 울었다는 소리가 있다. 괜히 그 부분에서 맘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뭐 에드워드도 생각처럼 쿨냉정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은 아니었긴 하네. 모즈씨(랄프 벨러미)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슬쩍 훈훈해진 정도지, 커다란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낸 건 아닌 거 같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니 뭐니 해도 이보세요 그정도 나이 먹었으면 그 정도 상처는 떨궈내요 싶었고...

  아예 대놓고 비비안이 동화처럼 해피엔딩이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신데렐라 스토리긴 한데 그 묘사가 너무 즐거웠다. 고급 옷가게에서 옷을 사지 못해서 창피를 당했던 비비안이, 에드워드의 도움으로 그 옷가게에 쇼핑 가방을 가득 들고 가서 "큰 실수 했어요." 하는 장면이라던가. (도대체가 명품을 팔면 자기가 명품인 지 착각하는 족속들이 있다.) 호텔지배인인 바니(헥터 엘리존도)의 도움으로 정말 아름답고 고귀해 보이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비비안의 모습들이 보기에 즐거웠다. 그게 꿈인지 알아도 말이다.

  에드워드가 떠나야한다고, 아파트를 마련해 주겠다고 할 때 비비안이 거절하는 부분은 흥미로웠음. 뭐 실제라면 전혀 그렇지 않았겠지만... 이 캐릭터의 매력을 유지시켜 주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한 부분이었다. 마지막 장면에 비비안!을 외치며 차를 타고 오는 에드워드라던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에드워드가 비비안에게 가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부분 같은 건 좀 웃겼지만ㅋㅋㅋㅋ 그래도 결론적으론 알차고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감독 이반 라이트만 (2006 / 미국)
출연 우마 서먼, 루크 윌슨, 안나 패리스, 레인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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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개봉 당시에 예고편을 보고 뿜었었다. 여성 히어로가 신선하다고 생각했고, 예고편만 봐서는 꽤 재밌어 보여서 보고싶어 했었다. 그러다가 못보고 넘어갔던 기억이 났는데... 요새 케이블에서 많이 해주더라. 아무튼 그래서 또 뒹굴면서 봤다. 조금 기대도 했었으니까... 

  엄청 실망. 스토리가 이렇게 산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무슨 생각으로 이 스토릴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초반부는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진짜 겉잡을 수 없이 틀어지더라. 만약 영화관에서 봤다면 화가 많이 났을 듯. 

  슈퍼우먼이라는 설정을 저렇게밖에 활용하지 못하겠나? 제니(우마 서먼)가 G걸이라는 게 짜증날 정도로 만들어 버리면 어떡하나... 차라리 영웅짓을 하느라 실제 연애에 서투른 여자였다면 훨씬 귀여운 설정이었겠다. 이건 그냥 짜증나는 여자 그 자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제니보다 악역이라는 베드램 교수(에디 이자드)에게 마음이 더 가면 어떡하나요? 우리 불쌍한 베리ㅜ.ㅜ 이생각만 했다. 맷(루크 윌슨)은 주인공인 주제에 얼간이일 뿐이고, 진짜 맷의 친구인 본(레인 윌슨)이 차라리 제 마음에 솔직하게 굴더라. 맷은 너무 멍청했습니다. 좀 정상인가 싶었던 한나(안나 패리스)도 막판에가선 한없이 안드로메다로.

  으윽. 내게는 시간 낭비였다.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 못했으면 스토리라도 어떻게 해주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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