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영국 드라마.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난 작품을 알게 된 게 제레미 아이언스를 검색하다가... 제레미 아이언스가 동명 소설을 읽은 보이스 북으로 책을 알았고, 책을 검색하다가 드라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었다. 흥미를 느껴서 바로 찾아 봄. 나온 지 삼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이름이 나 있던데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가 궁금하기도 했고. 총 11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봤다. 다 본 감상은 잘 다듬어진 고전 명작을 읽은 느낌이다. 본 게 아니라 읽은 느낌. 서두르지 않았고 고전 소설을 읽을 때의 그 느낌 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좋았는데 좋고도 슬퍼서 원작은 읽고 싶지가 않아졌다. 보통 이런 원작 있는 영활를 보면 소설이 절로 읽고싶어지는데도.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찰스 라이더(제레미 아이언스)가 옥스퍼드에 진학해, 학교의 괴짜 세바스찬 플라이트(앤소니 앤드류스)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너드 스타일이었던 찰스가 세바스찬을 만난 뒤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참 신기했다. 찰스는 밝아지고, 건방져졌으며 좀 더 다른 인물이 되었가는데 두 쪽 다 매력이 있었다. 다만 끝까지 약간 우유부단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천성은 안 변하는 거지. 세바스찬은 처음부터 매력이 팡팡 터지는 캐릭터인데 찰스가 첫눈에 반할 만 했다. 곰인형을 들고 다니며 짓궂은 장난을 일삼는 성인 남자가 매력적일 수 있다니. 그런데 그럴 수 있었다. 그들의 첫만남은 찰스에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을망정 불쾌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 세바스찬과 친해지는 과정도 보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다시 찾은 브라이즈 헤드에서 씁쓸하지 않은 건 그 둘이 같이 있을 때 뿐이었다.

  찰스가 플라이트 가문의 가족과 섞이게 되면서, 세바스찬이 예견하며 슬퍼했던 대로 찰스는 이 가족과 깊게 연관되었고 그 때부터 불행이 시작된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독특한 캐릭터인 세바스찬이 무너질만한 기반은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었는데, 찰스가 끼어들고 그의 다소 어리석은(내눈엔 그랬다) 태도가 섞이어 더 좋지 않은 길로 빠져든 것 같기도 했다. 찰스가 좀 더 세바스찬을 말렸더라면, 혹은 그에게 약간만이라도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더라면 세바스찬은 쉽게 돌아왔을 것 같은데. 이건 내가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그런 편이라 그런지 찰스를 보며 답답함만 늘더라. 세바스찬은 너무 자유로웠으나 그는 억압되어 있었다. 그를 이끌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듯 하다. 모나코에서 찰스가 세바스찬을 끌고가지 않을 때 굉장히 안타까웠었다. 둘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있었단 건 분명하다. 세바스찬의 아버지 로드 마치메인(로렌스 올리비에)의 정부 카라(스테판 오드랑)가 언급한 것처럼, 육체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둘의 사랑은 정신적으로 강했다. 그 강한 유대감도 그렇게 쉽게 흐트러져버린다.

  플라이트 가문 사람들은 세바스찬이 왜 그런 캐릭터를 형성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이 되는 사람들이다. 플라이트 가문은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어머니인 레이디 마치메인(클레어 블룸)의 뜻을 따라 가톨릭을 믿고 있다. 영국에서 가톨릭이니 이교도인 셈인데, 큰 아들인 로드 브라이즈헤드(사이먼 존스)와 막내인 코델리아(피비 니콜스)는 굉장히 신실하나, 세바스찬과 그 아래 여동생 줄리아(다이애나 퀵)은 형식만 따르는 신자. 둘 다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조금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는 가톨릭을 믿지 않는데다가 어머니를 피해 베니스에서 정부 카라와 살고 있기에 이 가족은 완전히 모계 위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완전한 듯 하나 그 안에서 썩어가는 것들이 고스란히 보여서 씁쓸했다. 어머니를 좋아하면서도 또 몹시 증오하는 세바스찬이 갈피를 잃을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은 모두 가족에게서 나온다. 특히 어머니 레이디 마치메인을 볼 때마다 나까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상냥하고 고상한 말투로 다정하게 세바스찬을 다루지만 본인의 룰 아래에서 아이들을 키우려 했던 것 같다.

  형제들은 첫째 브라이디는 다정한 부분만 제외하면 그야말로 레이디 마치메인과 꼭 닮아 있었다. 게다가 종교 이야기만 나오면 다소 무례하기까지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코델리아는 그냥 철없는 아가씨 같았다. 그 코델리아가 나중에 성장하여 차분해진 모습을 보면 저절로 신기해진다. 줄리아의 경우 세바스찬 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였다. 초반에는 굉장히 좋아했는데 후반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갑자기 선해지고 또 마찬가지로 플라이트 가문의 여자가 되어버린 이 캐릭터의 변화를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난 회의주의자인 찰스의 눈으로 줄리아를 봤을런지도. 렉스 모트람(찰스 키팅)과 사귈 당시의 줄리아는 철없었으나 그래도 자신만의 강단이 있었던 것 같은데. 10년 후 찰스와 재회한 뒤의 줄리아까지도 괜찮았는데... 이혼을 거쳐 막상 찰스와 살게 되자 그녀 안에 있던 레이디 마치메인의 피가 살아난 것 같았다. 하긴 그 로드 마치메인 조차도 죽음에 이르러서는 다시 종교인이 되었으니 플라이트 가문의 것이라 해야 할까. 세바스찬도 외국에서 종교에 귀의한 것 같으니. 아 쓰고 보니 이 소설 굉장히 종교적이다. 근데 맞았다. 회의주의자 찰스도 로드 마치메인의 죽음 앞에서는 기도를 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쉬웠다. 그러고보니 찰스는 그 때도 줄리아를 붙잡지 않았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찰스의 우유부단함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찰스는 본인의 이혼을 실행할 때만 빼고는 항상 남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렸다.

  이상하게 고통스러운 후일담. 그런 소설을 읽은 기분. 그러나 기쁘고, 슬프고, 온갖 먹먹한 감정들이 다 있었기에 좋았다. 이런 게 고전이다 싶은.

에라곤
감독 스티펜 팡마이어 (2006 / 미국,헝가리,영국)
출연 에드워드 스펠리어스,제레미 아이언스,시에나 길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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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분짜리 고문.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그 이하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와 내가 이렇게 어이없는 영화 진짜 오래간만이야... 하다못해 트와일라잇은 웃기기나 했지. 그 어떤 개연성 떨어지는 영화도 이 영화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보다가 열불이 뻗쳐서... 제레미 아이언스 나와서 중간에 끄지도 못하고; 체한 위장에 밥떠먹듯이 이 영화를 봄. 이것이 셀프고문.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드래곤 전사에 관한 전설이 있고, 드래곤이 있고... 거기에 선택받아서 드래곤을인 사피라(레이첼 웨이즈)의 알을 부화시킨 소년 에라곤(에드워드 스펠리어스)가 있다. 무슨 일인지 부모님은 안계시고 숙부의 손에서 사촌 로란(크리스토퍼 이건)과 함께 자랐다. 조금 컸더니 로란은 징집되지 않기 위해 마을을 떠나고, 숙부는 왕의 패거리에 의해 죽고. 복수에 불탄 얘한테 이전에 마을에서 헛소리를 일삼던 노친네 브롬(제레미 아이언스)이 나타나 드래곤 전사로서의 길을 제시한다. 알고 보니 반란군도 있대. 그 마을로 가면 된대. 그 와중에 꿈에서는 자기 편인 듯한 예쁜 여자 에리아(시에나 길로리)가 나오고...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의 축으로는 이 세계관의 왕인 갤바토릭스(존 말코비치)가 있으며 그의 가장 강한 부하로 마법사 더르자(로버트 칼라일)가 버티고 있다.

  대체 왜 이걸 이런 소재를 연결을 못시켜...? 캐릭터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고, 대사는 엉망이고 씬과 씬 사이의 연계성도 없고.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 캐릭터들이 얼마나 뜬금없고 막무가내로 설정되었는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나온다. 대사 하나하나를 뱉을 때마다 다들 입을 막아주고 싶었다. 내가 제레미 보려고 이 영화 본 거지만... 브롬 왜 죽지도 않아. 브롬 작살 맞았을 때 에라곤이 데리고 나가는 거 보고 울었다. 차라리 죽게 냅둬. 내가 이 영화좀 그만 보게... 브롬은 영화 시작하고 결말 다 되어서 죽었다. 너무 화난다... 브롬 캐릭터가 나름 에라곤의 인도자, 이런 역할인데 잘 보면 해준 게 없다. 그냥 몇가지 지식 알려준 것 뿐이지 에라곤이 성장하게 도와준게 없어ㅋㅋㅋㅋㅋㅋㅋ 죽는 것도 허접해ㅋㅋㅋㅋㅋㅋ 차라리 빨리 죽지... 빨리 죽으라고... 내가 젤.. 좋아하는 배우의 캐릭터도 이러니까 진짜 미쳐버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철없고 혈기왕성한 젊은이 캐릭터야 이전에도 많이 있어왔다만, 에라곤은 그 수준을 뛰어넘는다. 우왕 굳! 그냥 뇌가 없는 것 같아요! 행동 하나 하나에 생각이 없다. 에리아 그건 뭔 역할인지도 모르겠고... 악역인 더르자가 왕에게 겁을 먹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것은 왕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으니까. 왕이라는 갤바토릭스는 심지어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죽지도 않는다. 우와! 2편을 만들고 싶었나봐! 이 스토리로? 이걸로? 진심이셨나요? 맞다 여기에 머타그(거렛 헤드런드)라는 동료도 끝나기 직전에 나오는데... 넌 왜 나왔니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 이해하려 들면 안되지. 이건 제 정신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니까.

  첫째, 각본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 영화를 썼는지 모르겠고 둘째, 감독이 이 영화를 무슨 생각으로 연출했는지... 셋째, 배우들은 대본 받고도 이 영화를 찍을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마지막으로 다 만들어진 영화 보고 어떻게 폭스사는 이걸 개봉하고 유통시킬 생각을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제레미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영화 골라라ㅠㅠ 필모 보면 가끔 대책없는 영화가 꽤 섞여있어 이 사람.... 존 말코비치도 있던데... 세상에 이 좋은 배우들이 왜....?
 
야 제레미 진짜 이러지마라
육십 넘어서 이십대랑 러브신 찍지마라
여자애가 부러우니까
 
내년에 쇼타임에서 방영될 예정인 더 보르자스;
이런 막장가문 이야기라니... 제레미가 알렉산드르 6세라니... 감사합니다.....
나 사극 좋아하지 않는데 진짜 이거 손꼽아 기다릴 뿐이야ㅠㅠㅠㅠㅠ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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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팔루사
감독 에드 해리스 (2008 / 미국)
출연 에드 해리스,비고 모르텐슨,르네 젤위거,제레미 아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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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수가. 순전히 제레미 때문에 본 영환데 제레미 동정할 가치도 없고 악당이라는 칭호 붙여주고 싶지도 않은 상찌질이로 나온다니... 나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서부극. 난 서부극 별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별로 매력을 못느끼기도 했고, 내가 살아오는 동안엔 서부극이 유행한 적도 없으니까. 그래서 뭐 기존의 서부극이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요 영화 하나만을 놓고 보자면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다.

  버질 콜(에드 해리스)과 에버렛 히치(비고 모텐슨)라는 범죄 해결사 콤비가, 랜달 브렉(제레미 아이언스)이라는 악당이 판치는 마을 '아팔루사'에 와서 겪는 이야기. 그렇게 긴장감이 크지 않고, 워낙에 버질과 에버렛이 신적인 것마냥 그려져서 재미가 없다. 악당이라는 랜달은 앞서 말했듯 동정할 가치도 없는 상찌질이라서... 카리스마도 별로 없고 그냥 하는 짓거리도 찌질하다. 사형 판결 받은 뒤 링 쉘튼(랜스 헨릭슨)과 애브너 레인즈(톰 보워)에게 돈을 주고 도움을 받아 도망치는 과정이나, 그 와중에 다시 잡혀와서(...) 죽나 했더니 인맥을 활용해 사형에서 빠져나가는 거나... 자기 능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뻔뻔스레 아팔루사로 돌아와서 신사인 척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이건 뭐.

  아무튼 악당은 이렇고, 주인공인 둘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고. 그냥 끈끈하다. 앨리슨(르네 젤위거)을 통해서 잠깐 그려지려나 싶었던 불화도 불씨가 보이는 듯 하다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아 앨리슨은 그냥 남자 없이 못사는 싸구려. 이런 여자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려 드는 버질도 짜증나고(심지어 앨리슨이 어떤 종자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 그런 버질을 위해 문제거리를 해결해주고 떠나는 에버렛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너넨 멋있냐 그게...

  뭐 남자끼리의 신의라던가 카우보이들의 믿음이라던가 이런걸 멋지고 과묵하게 그려내려던 의도는 알겠는데 매력적이지 않았다. 배우들 아니면 내 시간이 많이 아까웠을 거에요.
Jeremy Irons

데드 링거(1988)
내가 너무 좋하는 식당씬ㅋㅋㅋㅋ
뻔뻔한 엘리엇

클레어 가니까 너무 좋아하다가 베브 우는거 보고 바로 걱정모드...

보기만 해도 내가 불안한 베벌리

아이언 마스크(1998)
심판의 날이다! 사제시라면서 주먹 막쓰긔

아 나 왜 이런장면이 좋지ㅋㅋㅋㅋㅋ 아라미스 귀여워ㅋㅋㅋ

레이디스 앤 젠틀맨(2002)
츄츄츄츄

미소가 예쁜 발렌틴 발렌틴씨

빙 줄리아(2004)
이름이 모야?
헉... 기억안나긔 아돈리멤버

츄츄츄츄

카사노바(2005)
아앙

이예스!!!ㅋㅋㅋㅋㅋㅋㅋㅋ푸치주교님ㅋㅋㅋㅋ


ETC.

빙 줄리아(2004)
톰 스터리지... 영화에서 아들내미ㅋㅋㅋ 미소 넘이뻐

못나가긔ㅋㅋㅋㅋㅋ 능청맞다ㅋㅋㅋㅋ

싱글맨(2010)
매튜 구드... 중간에 키스부분은 잘랐는데 아우 이 샷 너무좋다

Lie to Me 2X11
라이투미에 싸이코패스로 나왔던 제이슨 도링...
여전히 귀염상인데 이런 역할도 꽤 잘어울려서 깜짝 놀람.
Ready to Die... Again?

The Drums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나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만한 깨방정도 없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이디스 앤 젠틀맨
감독 클로드 를르슈 (2002 / 프랑스, 영국)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빠뜨리샤 까스, 띠에리 레미떼, 알레산드라 마르티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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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아릿했다.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 슬프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있고... 프랑스 감독이라 그런가, 그쪽 영화 특유의 느낌이 약간 있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프랑스 영화 같지도 않았고... 시간 교차하는 편집방식 때문에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게 환상인지 때때로 헷갈렸지만 헷갈리면서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기억상실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꽤 적절한 편집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기꾼인 발렌틴 발렌틴(프랑스어로는 발랑탕 발랑탕, 제레미 아이언스)의 이야기와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인 제인(파트리샤 카스)의 이야기. 정열적인 사랑이야기라기보다는 저 사람들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랑에 관한 것은...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같은 병을 앓는 동질감 속에서 발렌틴과 제인이 이야기를 나누며 친근해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발렌틴의 경우 기억상실증의 원인이 뇌에 있는 거였지만, 제인의 경우엔 심적인 괴로움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 마음을 치료함에 따라 증세도 치료된 거겟지. 기가막히게 운이 좋은 발렌틴은, 팔코네티 부인(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보석을 훔친 도둑으로 오해를 사서(그간 행적을 바탕으로) 모나코 돈으로 수술도 하고 병도 치료되고 좋았네요. 결국은 누명도 벗었고, 새로운 연인도 얻었고.

  발렌틴의 사기행각은 생각보다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그 때문인지 노련미가 보였다. 어릴 때 기념품을 훔쳐내어 더 싼 값에 팔던 때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범죄는 단순하면서도 꽉 짜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기범들이 으레 그레하듯 자기를 꾸미는 데도 뛰어나고, 그걸 받혀줄 만큼의 매력도 있었다. 불가리에서 일하던 프란시스(알렉산드라 마르티네즈)가 자기네 보석상을 턴 발렌틴에게 넘어간 것도 이해가 갔다. 다만 단기적인 사랑은 줘도 장기적인 안정은 정말 모르겠기 때문에, 프란시스가 티에리(띠에리 레미띠)에게 마음을 주게 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틴이 모나코에서 고난에 처했을 때 당황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짠하기도. 여튼 발렌틴은 죽을 위험에 놓인 사기꾼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사실 제인보다 고난의 깊이는 없어보였다. 이런 생각은 해봤다. 그가 기억상실증을 겪게 된 것은 뇌종양 탓이지만... 크게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제인의 경우 어떻게 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삼각관계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거고, 사실 제인은 그에 대해 크게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내부에서 조용히 끓어오르고 있었나보다. 항상 먼 데 시선이 있는 제인은 제 마음까지 먼 곳에 두고 온 것 같았다. 간단하지만 그 슬픔의 깊이가 깊어 보였던 캐릭터.

  발렌틴과 제인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시간이 그리 길었다 말할 순 없지만 서로가 비슷한 종류의 상처와 고민을 떠안고 있었기에 잘된 거라고 본다. 처음의 어색했던 대화와는 달리, 고난의 길을 걸으며 그들은 단기간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서로가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털어놓아서 일수도 있겠고...

  결말이 산뜻하고 좋았다. 발렌틴이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들을 모두 복구하려 다니는 장면들도 좋았고... 제인이 다시 파리로 돌아온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바에서 노래하는 제인과 다시 만나게 되는 발렌틴이 좋았다. 혹시 얘네 서로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헤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묘하게 감성적이면서 산뜻한 영화였다.

아이언 마스크
감독 랜달 월러스 (1998 / 영국, 미국)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레미 아이언스, 존 말코비치, 제라르 디빠르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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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역시 순전히 제레미가 나와서 본 영환데 음... 감안해도 참 뜨뜻미지근했다.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영화인데 화면이 그렇게 화려한 것도 아니고, 내용도 뭔가 얼기설기 갖다붙인거 같은데다가 진행도 그렇고, 주인공들이 믿고 있는 신념들도 그렇고 해서 이모저모 재미있다기보단 그냥 꾸역꾸역 봤다.

  '철가면을 쓴 죄수'가 루이 14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쌍둥이 동생(필립,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라는 설정 하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글쎄다. 역사적 배경을 말아먹는 건 그렇다 쳐도 진행이 재미가 없었다. 달타냥(가브리엘 번)과 삼총사(아토스(존 말코비치), 포토스(제라르 드빠르디유), 아라미스(제레미 아이언스))가 서로 이해를 하고 있는 대상이다보니까 딱부러지게 선과 악이 나눠져 있지도 않고 그래서 싸움도 미적지근.

  유일한 악역이라는 루이 14세는 생각보다 하는 일이 없다. 예의없이 자라먹은 아이마냥 떽떽대고 짖어댈 뿐 막상 스스로 하는 게 없었다. 끽해야 제대로 보이는건 백성들에게 막대하는 거나, 라울의 임자 있는 여자인 크리스틴(주디스 고스레쉬)을 뺏는거..? 그거야 뭐 잔혹한 축에도 못들었다. 애가 잔머리도 없고, 힘도 없어서 긴장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 서있는 건 필립도 아니란 말이다? 필립은 진짜 별 거 아닌 캐릭터다. 혈통에 의지한 기반 빼고 그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삼총사가 얘 편이다. 잘되겠네. 어떻게든 잘 될거라는 생각이 먼저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으니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

  달타냥과 삼총사의 갈등도 무난하기 짝이없다. 달타냥이 약간 고지식하기는 해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은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이 쪽 편이 되겠구나, 이게 눈에 너무 잘 보였다. 거기다 루이 14세의 어머니인 안느(안느 파릴로드)와 관계가 있다는 재미 없는 설정으로 모자라 이 안느는 '제가 아들을 못키웠어요ㅜㅜ 내 다른 아들 필립..!' 이러고 있으니 이게 공감이 가야지. 애가 그정도로 비뚤게 자랐으면 엄마 캐릭터도 그런 방향으로 갔어야 좀 이해가 됐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필립을 중히 여긴다고 해도 또한 자기의 친아들인 루이를 그런 식으로 내치는 계획에 쉬이 동참하는 것도 좀.

  삼총사의 캐릭터는... 고지식한 달타냥과 비슷하면서도 아들인 라울(피터 사스가드)을 잃어 분노에 찬 아토스, 묘하게 신앙심을 엿바꿔먹은거 같은 모은 일의 원흉같기도 한 아라미스,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내심 자기에게 분노하고 있는 포토스. 이렇게 각자 차이가 극명하긴 한데 묘하게 비뚤린 구석들이 잘 맞아 떨어지는 거 같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말 하면서 모여다닐 패거리 같았다.

  막판에 다른 총사들이, 달타냥과 삼총사가 죽을 거 같은 상황에서도 용기있게 튀어나오니까 그거에 반응하는 거 보고 좀 웃었다. 그럴 거면 진작에 넘어가시던가...! 으 벌려놓은 판에 비해 해결이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끝까지 맥빠지게 했다.

  제레미 아니면 내가 진작에 채널 돌렸겠지...

카사노바
감독 라세 할스트룀 (2005 / 미국)
출연 히스 레저, 시에나 밀러, 제레미 아이언스, 올리버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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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제레미 나와서 본거... 라기엔 히스 레저에게도 관심 있었으니까. 감독도 라세 할스트룀이라서 보고싶었고. '개같은 내 인생'은 여전히 떠올리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영화다.

  소재에서 약간 걱정되긴 했는데 그럭저럭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만들어 진 것 같다. 가볍긴 한데 현대식 로맨틱 코미디처럼 팔랑팔랑 날아갈 것 처럼 가볍다는 느낌은 안들었던 게, 배경 때문인 것 같다. 화려하게 꾸며진 옛 베니스의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시선이 분배가 되어버리니까. 여기까지가 그럭저럭한 장점. 무겁지 않으니 볼거리에 집중하게 되고, 그 볼거리란 것도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답게 줄거리 자체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엄청 가벼웠다. 가볍다는 건 이런 장르에서 별로 문제가 안된는데, 진짜 문제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우습지 않았다는 것일까... 이야기가 진행되는 품새가 급박하지도 않고(상황은 분명 급박한 것인데 어째서), 그 과정 자체가 재치는 있지만(그렇다고 엄청 머리쓴 것도 또 아 아니란 말이다.) 엄청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뭐 따로 교훈이랄 게 없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가 재미가 없으면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소소하고 자잘하게 미소는 지어도 으응,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니까. 별 거 없이 그냥저냥 볼만했다는 이야기.

  카사노바(히스 레저)라는 캐릭터를 좀 더 매력적으로 그릴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여자들이 왜 이 남자에게 빠지는지 그런 설명이 부족했던 거 같다. 애당초 명성이 드높아진 상태에서 시작해 버리니까... 그리고 꼭 이런 남자에게는 똑똑하고 정절을 지킬 것 같은 여자만 붙더라? 프란체스카(시에나 밀러)가 딱 그랬고 더 어긋나지도 않는데 사랑 때문에 멍청해지는 것까지 똑같았다. 처음에 다른 인물 역할 한 것도 그렇고, 자기 약혼자 파브리찌오(올리버 플랫)인척 한 것도 그렇고 이것저것 많이 속여먹었는데 자기 대신 감옥에 잡혀가 죽을뻔 했다고 다시 사랑 모드로 바뀌어버린다니. 양심 때문에 자기가 베르나르도 구아디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사랑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한 순간이고 짧지 않나... 음. 그래... 자기를 줄 수 있는 남자란 말인가.

  주연보단 조연들이 눈에 많이 밟혔던 영화. 특히 자코모 카사노바의 하인인 루포(오미드 다릴리)는 빼놓을 수 없이 유쾌한 조연이었고, 프란체스카의 엄마인 안드레아(레나 올린)는 허영심 가득하면서도 귀여웠다. 프란체스카의 약혼자 파브리찌오는 멍청한 캐릭터지만 순하고 본성은 착해서 거슬리는 점 하나 없었고... 프란체스카의 동생인 지오반니(찰리 콕스)만 좀 거슬렸나. 너무 찌질해... 빅토리아(나탈리 도머)한테 제대로 고백도 못하는 점이라던가, 창녀들이랑 한바탕 놀고 나서 자신감을 약간 되찾는 것도 어이가 없을 지경. 빅토리아는 그냥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애.. 치고는 귀여운 점이 있어서 좋았다. 이 영화의 유일한 악역이었던 푸치 주교(제레미 아이언스)는 뭐 이렇다 할 힘도 못쓰고 휘둘리는 점이 그냥 귀여웠습니다. 행동들이 별로 미워할 느낌은 아니었다. 나 종교재판관이나 이런 캐릭터 엄청 싫어하는데... 원체 뭐 딱 부러지게 하는게 없으니.

  문제의 해결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이뤄질 줄도 알았고 간단할 줄도 알았는데, 그 때문에 막판 쯤에 카사노바의 어머니(헬렌 맥크로리)가 나오지 않을까나 싶었다. 역시나 딱 고 타이밍에 남편 티토(레이 로우슨)와 함께 등장하시더라. 그 뒤론 그냥 약간 유쾌한 탈출극 같았는데, 요기서 약간 재미있었던 게 탈출이 너무 쉬워... 느린 배인데도 그 시대배경 때문에 못따라잡는게ㅋㅋㅋㅋㅋ 좀 웃겼다. 아무튼 그래서 해필리 에버 애프터...

  초반에 보면서 느끼는 지루함을 참을 수 있다면 끝까지 참을 수 있을 거 같은 영화. 클라이막스랄 게 별로 없어서 아쉽다.

빙 줄리아
감독 이스트반 자보 (2004 / 캐나다, 영국, 헝가리, 미국)
출연 아네트 베닝, 제레미 아이언스, 브루스 그린우드, 미리엄 마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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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포스터 영화랑 별로 연관 없는데 왜 저렇게 해 놨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출연진 중 그나마 이름있는 배우인 제레미를 강조하려고 했던걸까... 하긴 이런식의 상관없는 포스터 만들기는 이미 몇번이나 보긴 했다만. 그래도 안 짚고 넘어가기엔 아쉽다.

  정말이지 연기같은 삶을 살고 있는 배우 줄리아 램버트(아네트 베닝)의 이야기. 전체 진행 방식도 다분히 연극적이고 영화적이고 그렇다. 중간 중간 줄리아를 배우로 키워준 지미(마이클 갬볼)가 환상처럼 출연하고 그러니까.

  사십대에 접어든 연극 배우 줄리아에겐 일상이 지루하다. 남편 마이클(제레미 아이언스)과는 서로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사이이고, 연기에는 탁월한 재능이 있지만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줄리아는 젊은 미국인 청년 톰(숀 에반스), 티.오.엠, 을 만나서 장난스러우면서도 불꽃같은 연애를 하게 된다. 이런 불륜은 아슬아슬한 모습은 거의 없이 자유분방하게 그려져서 보는 사람들도 산뜻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뭐 이런 연애의 끝이 으레 그렇듯 톰은 젊은 연극 배우 애비스 크라이튼(루시 펀치)에게 빠져 줄리아를 떠나게 되고, 줄리아 또한 질척이는 것 없이 관계를 끝내준다. 상처를 받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새 연극에 배역을 얻길 원하는 애비스 크라이튼과, 또한 그것을 바라고 있는 톰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여기에서 끝났으면 이건 줄리아의 이야기가 아니지.

  줄리아는 싱그럽고 살아있는 캐릭터다. 이 배우는 자신의 삶에서도 연극적인 태도를 취하고있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의 삶까지도 다분히 연극적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아들 로저(톰 스터리지)까지도 줄리아에게 줄리아의 삶과 연기가 너무 합쳐져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을 정도니까... 어쨌거나 줄리아는 사랑을 할 때는 생동감이 넘치고, 슬플 때엔 비 맞은 짚단마냥 축 처지고 그런 왔다갔다 하는 감정표현을 자유로이 보여줘 지루할 새가 없었다.

  이야기 자체는 어떻게 보면 뻔한 구석이 있지만 줄리아란 캐릭터가 워낙에 살아있다 보니 영화까지 힘을 얻는 거 같았다. 어떻게 보면 천방지축에 거만하고 가끔은 재수없기까지 한 배우인데, 이렇게 귀여워 보일 수 있다니. 영화 내에서도 그런 줄리아의 캐릭터가 매력이 있기는 한지, 찰스(브루스 그린우드)같은 진정한 친구도 있고, 틱틱대면서도 자기를 도와주는 이비(줄리엣 스티븐슨)도 주변에 있다. 부러운 여자로다... 

  애비스 크라이튼에 대한 깜찍한 복수는 그저 마냥 귀여웠다. 그 복수를 할 때 마이클과 톰의 표정이 볼만하다. 비.이.엔.을 외치던 줄리아가 너무 귀여웠다. 톰 못나가게 은근히 막는 로저도 완전 귀여웠고... 이 아들 캐릭터 꽤 마음에 들었다. 비중이 큰 건 아닌데 뭐 생각깊고 그런 역할이었다. 저런 부모 사이에서 이렇게 정상적이고 훈훈하게 자랄 수 있다니... 정말 줄리아는 모든 걸 다 가졌구나.

  그냥저냥 유쾌했다. 커다란 의미를 찾으라면 뭐 그런 건 없는데... 소소하게 보면서 재미있었던 영화였다.


킹덤 오브 헤븐
감독 리들리 스콧 (2005 / 독일, 스페인, 영국, 미국)
출연 올랜도 블룸, 에바 그린, 리암 니슨, 에드워드 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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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길어서 보느라 힘들었지만 오 다 보고나니 꽤 만족했다. 극장판에 비해 감독판이 49분 더 길대서 극장판으로 봐야했는데, 이거 극장판으로 본 사람들이 욕한 이유를 알겠더라. 이건 완벽히 감독판으로 봐야 하는 영화였다. 그래야 모든 서사구조가 눈에 들어 오겠더라. 아무튼 엄청나게 긴 탓에 내가 영화를 처음 보려던 목적이었던 제레미는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 나와...ㅎㅎ

  애초에 사극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편인데, 요새 나오는 역사물들은 거의 팩션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물이나 사건 일면만 툭툭 따오는 거라고 생각해 버려서 그런지 완전히 바뀌는 것만 아니라면, 실제 역사와 어긋나도 크게 거슬려하지 않는다. 애초에 역사에 그렇게 관심 있는 타입도 아니기도 하고. 킹덤 오브 헤븐도 역사물이라고 하기엔 꽤 많은 것들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발리앙(올랜도 블룸)이 이십대의(!) 평민 대장장이 출신으로 되어있다던가, 시빌라(에바 그린)가 발리앙을 좋아한다던가... 또 뭐가 있지. 아무튼 요런 설정들은 현실과 다르긴 한데, 그걸 빼고 나면 이 전쟁에 대한 시선이 생각보단 객관적으로 그려져 있다고 생각했다. 과장된 영웅주의는 접어두고 기독교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발리앙이라는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오히려 그 기독교적인 신념이란 것, 전쟁에 앞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여튼 재미있고 말이 되게 이야기를 만들어 놨다는 소리다. 리들리 스콧은 '글래디에이터' 볼 때도 느꼈는데 이런식으로 역사 서사시를 헐리웃 판으로 잘 만드는 것 같다. 이번에는 대놓고 영화 사이사이에 중간, 막간 이런 부분을 넣은 점이 흥미로웠다. 완급조절은 잘 된편일까... 상대적으로 화려한 전쟁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득달같은 로맨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보는 내내 아 이거 재밌군,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십자군 3차 전쟁 직전의 이야기인데 사실 요 때 예수살렘이 살라딘의 손 안에 넘어갔을때, 주인공은 이벨린의 발리앙보다는 승리한 자인 살라딘(가산 마소드) 쪽이 헐리웃 스타일에 더 맞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남아서 예루살렘을 지키고 지키다 평화롭게 협상을 맺어(역사에선 어쨌건간에) 사람들을 구제했던 이벨린의 발리앙을 내세운단 말이다. 이 주인공 설정에서부터가 이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기사 고프리(리암 니슨)의 사생아로서 원래는 평민이었던 발리앙은 이벨린의 영주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게 되는데, 처음에는 죽은 아내(나탈리 콕스)의 천국행을 기원하고 동생(마이클 쉰)을 죽인 자신의 죄를 씻으려 한 것이지만... 막상 예루살렘에 가 보고 나니 별게 없단 말이다? 자기가 바라던 신은 모습은 커녕 목소리도 안 보이고 옆에서 아버지와 함께하던 자선단체 회원(데이빗 듈리스)이 아무리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해 좋게 설파해도 마음은 냉랭하기만 할 뿐인데 그런 거 치곤 자기 할 일을 잘 해나간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의 충실한 신하인 티베리아스(제레미 아이언스)와 만나고 나병에 걸린 볼드윈 4세를 받들며 자신의 영지인 이벨린을 개척해나가는 일들 말이다. 여기엔 다른 십자군과 같은 종교적 여지가 전혀 없어보인다. 요런 덤덤한 영웅이라는 설정이 오히려 신선했다.

  볼드윈 4세는 살라딘과 적절한 수준의 평화를 유지해나가는 왕인데 이거에 반발하는 부하들이 당연히 있고... 그게 기 드 뤼시냥(마튼 초카스)과 샤티용의 레이날드(브렌든 글리슨) 같은 애들. 아, 영화답게도 이 반대편인 기 드 뤼시냥의 아내이며 지금 왕이 죽으면 자기 아들을 통해 섭정을 할 여자가 시빌라란 말이다. 그런데 이 아들도 삼촌과 같이 나병에 걸려있다는걸 발견하고, 시빌라는 그런 아들을 차마 두고보지 못하고 자기 손으로 죽인다. 그리고 나서 왕위는 자연스레 자신에게서 기 드 뤼시냥에게로. (실제로 시빌라는 발리앙에게 반하지도 않았고 당연한 수순으로 기 드 리시냥에게 왕위를 넘겼다.)

  이 왕위 넘어가는 과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게 실제 역사와 다른건 차치하고, 시빌라의 마음 속이 그렇게 이해되는 편은 아니었어서 그랬다. 발리앙을 그렇게 사랑한다면서도 상황 판단 제대로 못하고 배신감 느꼈다고만 생각하는게... 그래서 나라 쫄딱 말아먹기 직전까지 가게 만드는 게 영. 뭐 그거 때문에 영화 진행되는거긴 하다만 아들 죽이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 외의 스토리 진행이나 캐릭터 묘사는 참 좋았음.

  종교세계를 해탈한 듯한 발리앙의 묘사도 그랬지만, 인심 후했던 승리자 살라딘에 대한 묘사가 좋았다. 맡은 배우 가산 마소드는 이슬람교 연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던데, 여로모로 카리스마가 넘쳤다. 예루살렘이 무엇이냐고 묻는 발리앙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 라고 말하고 연이어 하지만 곧 전부이지(everything) 라고 하는 모습은 이 성지가 가지고 있는 상징을 보여주는 듯 해 좋았다. 살라딘 주변 인물로 초반부에 등장하기도 했던 이마드(알렉산더 시디그)는 능글맞은 면이 있으면서도 진중한 면모가 돋보이던 캐릭터. 병마에 시달리며 얼굴이라고는 눈밖에 나오지 않았던 볼드윈 4세는 종교의 광기와 현실 사이에서 중도를 찾으려고 하는 거 같아서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었다.

  음... 기대를 하나도 안하고 봐서 그런가 재미 있었는데, 남들이 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전쟁씬을 보려는 게 아니라 서사를 보기 위해 보는 영화였고, 그 역할을 잘 해낸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았다. 다들 안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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