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감독 오우삼 (2008 / 중국)
출연 양조위, 금성무, 장첸, 린즈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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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에 케이블에서 하길래 비몽사몽간에 봤다. 며칠 전부터 보고싶다 했더니 마침 딱 하길래 참고 봤는데, 그냥 저냥 괜찮았다. 삼국지의 백미인 적벽대전에만 집중한 영화인데, 긴 삼국지에서 이야기를 추렸다 해도 그 앞뒤 사정을 알려야 하다보니까 2편짜리 영화가 된듯. 1편을 다 본 감상은 2편을 봐야 알겠다... 정도. 2편짜리 영화라고 생각한다 쳐도 프롤로그가 꽤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쓸데없는 장면도 많고, 시간을 할애한 데 비해서 제갈량(금성무)이나 주유(양조위) 외의 캐릭터 설명도 원활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시간이 지루한 감을 주기 쉬웠다. 이걸 2편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보았을 땐 허무했을 거 같기도 하다. 당장 1년 뒤에 2편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도, 그 전에 1편 내용을 다 잊어버릴 정도로 1편에는 그다지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여러 편으로 나누어진 다른 영화들이 앞의 한 작품만 보더라도 괜찮은 영화들의 예가 꽤 있다는 점에서 이건 단점이 아닌가 싶다. 전투장면이라는 것도 진을 짜고 이용하는 건 물론 흥미로웠지만 너무 길어지고, 진에 대한 설명보다는 장면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커서 그런가 초반에만 신선했다지 지루한 느낌이었다.

  삼국지연의에 바탕을 두었다지만 영화가 정말로 제갈량과 주유에 집중을 두었기 때문에 유비(우용), 관우(파삼찰포), 장비(장금생)는 훨씬 뒷전으로 물러난 느낌이며, 그 조조(장풍의)조차도 고작 여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소인배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이런 주요 인물보다 더 집중되어 살아난 것은 조자룡(후쥔)이나 손권(장첸)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이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렇게 패기 있던 손권에게, 아버지와 형의 업적에 억눌려있는 모습을 부여했다는 거. 이거 신선하면서도 설득력 있었다. 손상향(조미)은 원작에서는 이 부분에선 거의 나오지도 않았던 거 같은데 로맨스 라인때문인가 나왔나... 여장부 표현하려고 한 건 좋은데 미묘하게 안 어울린다는 느낌? 주유 아내인 소교(린즈링)는 그냥 예쁘다는 생각은 참 많이 했다.

  제갈량과 주유는 원작에서처럼 주유가 '하늘은 어찌하여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았단 말인가!' 하고 탄식할 만큼 차이가 나는 상대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재주가 뛰어난 것은 맞지만, 다만 우유부단한 군주 아래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는 모습을 보여줘 노력하는 천재같은 모습을 보여주어 좋았다. 주유의 경우엔 아직 제갈량의 적이라던가, 제갈량의 능력을 위험요소로 생각한다던가 하는 모습보다는 진지하게 그 순간의 동료로 인정해주는 대인배적 면모가 보여서 좋았다. 원작의 주유는 어쩔수 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캐릭터 같았는데 영화에서는 좀 더 여유롭고 능력있는 책사이자 장수처럼 보이더라.

  그냥 좋았던 장면은 의외로 한무제가 나오는 장면. 그 억눌린 궐 안의 분위기에서 긴장에 파묻혀 목숨을 이어가는 어린 황제의 모습이 잘 표현된 것 같다. 새가 오게 하려고 휘파람을 부는 장면이 조금 슬펐고 안쓰러운 기분을 자극했다. 주유와 제갈량의 거문고 연주 장면은 음... 감독이 뭘 의미하려고 한 지는 알겠는데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아서 아쉬웠던 부분.

  일단은 프롤로그. 1편 전체가 프롤로그란 느낌. 2편을 봐야지 알겠다.

꼬마 니콜라
감독 로랑 티라르 (2009 / 프랑스)
출연 막심 고다르, 뱅상 클로드, 샤를 바이옹, 빅터 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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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재미있는 게 왜 17일까지만 상영하는 건지 모르겠다. 엄청 재미있는데, 상영하는 관들도 거의 없고 해서 이거 하나 보러 단성사까지 가야했다. 뭐 주변에 놀거 많아서 은자랑 재미있게 놀긴 했지만. 좀 더 상영관을 잡아서 했으면 더 흥행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꼬마 니콜라' 원작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내가 초등학교인가, 중학교 초반인가 아무튼 그때쯤 본 본 좀머씨 이야기에서의 상뻬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이 책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꼬마 니콜라 시리즈는, 르네 고시니의 글도 맛깔스럽지만서도, 상뻬의 그림이 더 해져 완벽해지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유명한 원작이 영화화 된다길래 어떤식으로 이뤄질지 꽤 궁금했다. 꼬마 니콜라는 긴 이야기가 아니다. 신문에 연재되던 작달막한 에피소드들을 엮은 것이라 한 에피소드마다의 길이는 상당히 짧은데, 결국 영화화의 성패는 이 짧은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엮어내면서 꼬마 니콜라 안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표현해내느냐에 있었다. 조금 걱정한 것도 사실인데, 오 이 영화 너무 귀엽고 또 재미있었다!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각색해서 조금 바꾼 것도 있었지만, 아무튼 니콜라(막심 고다르)와 니콜라의 엄마(발리에리 르메르시) 아빠(카 므라), 니콜라 주변의 친구들인 알세스트(뱅상 클로드), 조프루아(샤를 바이옹), 클로테르(빅터 카를), 외드(벤자민 에비아티), 뤼퓌스(제르마 쁘띠 다미코), 아냥(다미앙 페르데르), 요아킴 (비르길 티라르, 책의 조아생인거 같다만...?)의 캐릭터들도 잘 살아있을 뿐 아니라, 항상 아이들 덕에 피곤해 있는 담임 선생님(상드린느 키베르나), 애들을 윽박지르길 잘하는 부이옹 선생님(프랑소아 제르비에 드메종)의 캐릭터도 살아 있었다. 단역에 가까웠던 교장선생님(미쉘 뒤소수아)이나 아빠 회사의 사장님(다니엘 프레보스트), 매일 아빠와 투닥대는 옆집 아저씨(프랑소아 다미앙)까지도 각자 매력이 있어서 좋았음.

  그냥 캐릭터 빨로 밀고 나가려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각색을 잘 했고 보여지는 장면들이 위트있어서 너무너무 즐거웠다. 니콜라가 자신에게 동생이 생겼다는 '착각'을 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모든 에피소드들은 그 한 주제 아래에서 잘 엮여 있었다. 아이들의 야단법석한 동생 막기 소동 외에도 엄마 아빠의 알콩달콩(?)한 모습들, 회사 사장님을 향한 아빠의 노력 퍼레이드까지.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도 조근조근 잘 말해주지만, 조프루아이나 클로테르가 돋보였다. 조프루아의 경우엔 여러 코스튬을 보여줬는데 우주인 코스튬이 엄청 귀여웠다던가, '걸어서 등교하는 모습'에서 빵터졌다. 클로테르는 꼴찌임에도 항상 지목당하는 비애... 장학사(미쉘 갈라브뤼)가 왔을 때 파리를 관통하는 강이 어디냐는 질문에 클로테르의 머리굴러가는 장면은 정말정말 귀여웠다. 쓰고보니 클로테르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꽤 많았던 거 같기도 하다. 임시 선생님 아래에서 똑똑한 아이가 되어버린 클로테르, 친구들과 정한 암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클로테르, 신체검사에서 정신 상담을 할 때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이러면서 울먹이는 클로테르... 아 또, 선생님을 유인하기 위해 학교벽에 낙서하던 것도 너무 웃겼다. '선생님 죽...'까지 쓴 상태였는데, 선생님이 와서 뭐 이녀석! 하자마자 '선생님 죽도록 사랑해요!' 으익.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혹시 클로테르였던가! 외드나 뤼퓌스, 알세스트는 상대적으로 덜 돋보이기는 했어도 마찬가지로 귀엽게 굴었다. 그리고 그 얄미운 공부벌레 아냥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엉뚱함을 뽐내 귀여웠다. '임시 선생님을 처리하는 데는 얼마래?' 귀여운 아냥. 아, 조아생은 그냥 동생 때문에 잠시 거쳐간 역할...

  배경이 과거인거라 그런건지, 아무튼 아이들이 짧은 반바지를 교복으로 입고 있어서 귀여움이 돋보인 것은 좋았는데 겨울에도 입고 있더라... 안춥니 얘들아.... 시대배경을 뚜렷하게 드려내진 않지만 과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뭐 과거건 현재건 간에 행복하기만 한 세계이기만 하다. 하지만 원작에서도 세상은 불행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니콜라의 천진난만한 세계가 계속되는 거니까... 이걸 단점으로 꼽기엔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스피드 레이서
감독 앤디 워쇼스키, 래리 워쇼스키 (2008 / 미국)
출연 에밀 허쉬, 크리스티나 리치, 존 굿맨, 수잔 서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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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방에서 뒹굴다가 티비에서 하길래 봄. 막상 영화관에서 상영중일 때는 저런 걸 누가 봐, 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아예 기대를 안해서 그런걸까? 디즈니 영화를 좀 화려하게 꾸민 듯한 느낌인데 생각보다는 괜찮게 봤다. 아동풍이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뭐 엄청 대단하다던가 그런 건 아니고, 전형적인 성장 영웅물(...) 패턴대로 고난이 있고 이겨내고 뭐 그런 이야기. 미국 영화답게 가족의 힘은 또 엄청 강조한다. 오죽하면 성장의 고난에 있어서 자기를 이끌어 준 형인 레이서 렉스(스콧 포터)의 죽음이 껴 있니...

  그냥 저냥 이야기는 단순. 스피드 레이서(에밀 허쉬, 아역: 니콜라스 엘리아)라는 촉망받는 레이서가 거대 그룹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어떻게 그 고난을 이겨내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느냐 하는 이야기. 여자친구 트릭시(크리스티나 리치)와의 연애 이야기는 물론 빠질 수 없고, 아빠인 팝스 레이서(존 굿맨)와의 대립이나 엄마(수잔 서랜든)의 위로로 가족간의 정도 훈훈히 나타내 주고, 혐오스럽지만 또 믿음직스럽기도 한 캐릭터 레이서 엑스(매튜 폭스)도 있고, 태조(정지훈)의 배신도 있고... 있을거 다 있어서 오히려 심심하게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

  스토리는 심각할 정도로 무난하고 뻔한데, 화면 효과같은거 알록달록하니 '이 영화는 만화 원작을 하고 있음, 완전 비현실임'을 알려 주셔서 그거 보는 맛은 있었다. 그리고 뻔한 이야기 진행이지만서도 뭐 말 그대로 있을 건 다 있어서 재미가 아예 없진 않았고. 시간 때우기로 괜찮았다.

보이 A
감독 존 크로울리 (2007 / 영국)
출연 앤드류 가필드, 피터 뮬란, 알피 오웬, 케이티 라이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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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보고싶어져서 동생이랑 같이 봤는데 막판에 펑펑 울었다.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고 슬펐다. 사회가 과거에 악행을 저지른 개인을 얼만큼 포용하고 받아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쓰리게 다가왔다. 10살에 친구와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14년을 복역하고 막 사회에 복귀하게 된 청년 잭 버리지(앤드류 가필드)가 보호감찰원인 테리(피터 뮬란)의 도움을 받아 사회로 복귀하고, 또 그 사회에서 버림받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그러나 이런 단순한 사건의 라인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아쉽다.

  영화에서는 잭의 사정을 보여준다. 왕따였고, 가정에서도 발붙일 틈이 없었던 외로웠던 소년 에릭(알피 오웬)곧 지금의 잭이기도 한 소년은, 비슷한 처지의 친구 필립(테일러 도허티)을 만나면서 제 삶의 희망을 얻는다. 아이들에게는 정당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게 만들어, 이해시키려 한다. 이런 부분에선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가 생각났다. 왜냐하면 흉악했던 범죄를 미화하는 정당화하거나 혹은 미화하는 기능을 인물들의 과거사를 통해 부여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과거사는 부가적인 이야기일 뿐, 결코 이 영화의 주요한 포인트가 될 수 없다. 이 영화는 결국은 용서와 편견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과거가 밝혀지기 전까지 크리스(숀 에반스)라는 괜찮은 친구를 사귀고, 미쉘(케이티 라이온스)이라는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얻고,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아이를 구해내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될 수 있었던 잭은 소년 A였던 사실이 밝혀지는 것과 동시에 그가 가졌던 모든 지위를 박탈당한다. 현재의 훌륭한 사회의 일원은 과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는다.

   교도소가 범죄자들을 한 데 모아놓고 '반성과 사회에로의 재활'의 기회를 부여하는가? 비슷한 생각을 이전에 드라마 '오즈'를 보았을 때에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 재활의 기회를 얻기보다는 새로운 범죄에 눈을 뜨게 된다. 범죄자를 드글드글하니 모아놓고 교육은 허술하게, 관리 또한 허술하게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그들을 재활시키기에 역부족한데, 사회에 나와서는 사람들의 냉정한 편견을 맞닥드려야한다. 죄값을 교도소 안에서 치뤘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범죄자로 본다. 여기엔 그 사람이 가진 과거 행동의 과정은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서류에 적힌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다. 때문에 교도소는 재활의 기회는 커녕 오히려 낙인을 찍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그들은 다시 교도소로 되돌아가기 일쑤이다.

  모든 것이 드러났을 때 패닉에 빠진 잭은 외친다. "아냐! 난 예전의 그 소년이 아냐!" 라고. 그러나 이 말은 진실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마음을 먹었어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예전의 그 소년이니까. 그런데 이게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결과만을 본다. '잭은 이전에 살인을 저질렀다' 이런 결과다. 그런데 잭의 현재 결과를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가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고, 얼마나 선량하게 굴고 있는지 그 결과는 보지 않는다. 오직 나쁜 결과만을 묻고 책한다. 잭을 꾸준히 지켜보고 그에게 기회를 부여했던 테리는, 아들인 젭(제임스 영)이 "그 애는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뭘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잖아? 걔의 현재가 말야. 과거는 무의미하고.

  죄값을 다 치룬 사람을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그 사람이 일을 저질렀던 결과를 중시하면서 현재의 결과는 중시하지 않는 이상한 모순에 휩싸여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편견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실 이겨내긴 힘들다.

  이 영화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서글프고 수더분한 표정의 연기자를 앞세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무시무시한 살인자를 두고 그에게는 사정이 있었다. 그는 벌을 받을만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기만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참 힘들다. 왜냐하면 이런 설득을 들어도, 결국 우리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는 있다.

  참, 앤드류 가필드라는 배우를 여기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연기를 잘했다. 그 수더분한 행동들이 모두 연기라면 그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잭 버리지 씨께

절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림의) 이건 당신의 칼이에요.
(그림의) 이건 당신의 날개예요.
난 당신이 천사라고 생각했어요.

캐서린 톰슨

셜록 홈즈
감독 가이 리치 (2009 /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레이첼 맥아덤즈, 마크 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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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뭘 쓸 수 있을까. 이거 감상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막상 펼치니 생각나는 말은 되게 한정적인 것들 뿐이라서 놀랐다.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딱 그만큼이라는 소리다.

  이 영화는 홈즈 팬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당연히 아니었다. 다행히 나는 홈즈 팬도 아니고, 전형적인 헐리웃 스타일 영화에 거부감이 없어서 그런지 재미있게 봤다. 로다쥬와 주드 로를 둘다 좋아하니까 물론 그것도 한 몫 했고. 뭐 어쨌든 영화는 재미있기는 하다. 완전히 헐리웃 스타일로 사건해결을 할 뿐. 이 영화가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왓슨(주드 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그냥 캐릭터 짜기가 귀찮았던 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영화 안에서 셜록은 완전히 머리 잘굴러가는 똑똑한 탐정이고, 그의 사건 해결은 항상 일사천리다. 블랙우드(마크 스트롱)의 범죄들? 그냥 타이밍이 늦은 것 뿐이지 셜록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그럼 셜록이 할 수 없는 건 무엇인가? 그건 인간관계에 얽힌 부분 뿐이다. 왓슨이 자기를 떠나 메리(켈리 라일리)와 결혼할 거라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것? 아름다우며 또한 범죄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자 아이린(레이첼 맥아담스)과의 연애에서 중학생 소년처럼 군다는 거? 일에 있어서는 완벽하지만 인간관계를 다루는 재량은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고, 왜 잘못됐는지도 모른다는 게 캐릭터에 있어 매력으로 작용했다. 셜록은 어린애같다. 그는 왓슨에게 끊임없는 애정을 갈구하고, 그가 자신을 떠나는 걸 당최 받아들이질 못한다. 왓슨은 왓슨대로 그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가 아니라 '너'야, 라면서 냉정하게 굴지만, 결국 왓슨은 셜록과 함께이지 않은가. 셜록과 왓슨이라는 두 캐릭터의 조합은 그래서 재미있다. 투닥대지만 끊어낼 수 없는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은 왜 이 영화가 '셜록 홈즈'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어야 했는가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따오지도 않을 거였다면, 그냥 다른 가상의 주인공을 세워도 됐을텐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점만 뺀다면, 오락 영화로서 셜록 홈즈는 정말 재미있었다. 후편도 기대하는 중.

전우치
감독 최동훈 (2009 / 한국)
출연 강동원, 김윤석, 임수정,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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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집 방바닥에서 썩어갈 때 광주 시내구경으로 끌려나가 본 영화. 볼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영화 내용도 몰랐는데 그냥 감독이 최동훈이라기에 재밌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재미는 없어도 강동원 얼굴은 보다 나오겠거니(...)

  적당히 시간 때우기는 좋았는데 박장대소 한다던가, 영화가 엄청 잘만들어졌다던가 이런 이야기는 못하겠다. 한국형 액션이라기엔 이미 이런 식의 소재가 꽤 있지 않았던가? 아라한 장풍 대작전 같은거. 난 오히려 그쪽이 흥미롭던데. 그래서 소재에서 엄청 특이하다 요런건 못느꼈고... 이야기 진행도 뭔가 좀 빤히 보인달까, 그런 거도 있고. 요건 넘 무르게 넘어가지 않았나, 이랬던 점도 있었고.

  깨달음 따위는 눈꼽만치도 없는 장난꾸러기 주인공 전우치(강동원)라던가, 온갖 걸 다 통달한 듯한 스승 천관대사(백윤식), 주인공 옆에는 항상 주인공을 도우며 때로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하는 친구 초랭이(유해진)가 있고, 주인공이 폭 빠진 여자(임수정)에 적으로는 주인공은 손도 못 댈 강자 화담(김윤석)이 있으니 이 어찌 흔하지 않으랴. 오해를 만들어내는 실수투성이 신선들(송영창, 주진모, 김상호) 까지도 좀 빠지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캐릭터 뿐 아니라 스토리 진행도 그저 그랬고...

  뭐 연기들은 좋았다. 난 강동원이 요런 껄렁한 연기를 잘 하는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유해진이나 김윤석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들도 다 좋았음. 아 요괴로 나온 선우선이나 공정호는 대사가 없어서 그런가 역할 땜에 그런가 좀 무덤덤.

  농담들도 그렇고 뭐 재미가 없는건 아닌데, 그래 그랬어... 뭔가 허전했어... 내가 최동훈에게 기대한 영화는 이런게 아니었는데. 분명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낮은목소리 2
감독 변영주 (1997 / 한국)
출연 강덕경, 김순덕, 김복동, 박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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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2』 - 할머니들의 말 건네기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는 잔혹한 만행들을 수없이 저질렀다. 그 수없이 많은 문제 중, 인간의 삶을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짓밟았던 것은 위안부 문제일 것이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젊은 소녀들을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며 속여서 혹은 강제로 끌어가 위안부로 만들었다. 끌려갔던 그녀들은 위안소라는 곳에서 청춘을 짓밟혔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위안부 생활도 끝났다.

  그렇게 짓밟힌 그녀들은 당당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스스로 나서서 위안부가 된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몹시 수치스럽게 느꼈다. 더욱 우스운 것은 그녀들의 가족조차 돌아온 그녀들의 과거를 알았을 때 그것을 부정하거나, 믿지 않으려 하거나,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가족들마저 그러한데 사회는 어떠했겠는가. 사회에서는 잠정적으로 위안부들을 ‘창녀’, ‘작부’라고 부르며 천대했으며, 그녀들을 수치로 여겼다. 그래서 그녀들은 더욱 더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50년 세월을 고통 받았다.

  위안부 문제가 물 위로 떠오른 것은 겨우 1990년대에 들어서이다. 사회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이슈화 되면서, 그제야 위안부 문제는 ‘역사의 수난’이 아닌 현실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위안부였던 그녀들을 이제 할머니가 되어 자신들의 겪었던 불행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2』는 이러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낮은 목소리 2』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냥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고, 과거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을 소재로 삼고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에는 영화가 무겁고 어둡고, 또 암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나 또한 그랬다. 아, 굉장히 어둡고 눈물 흘리게 만드는 영화이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재미는 전혀 없겠다. 그녀들의 증언만 줄줄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이 영화를 다 보지 않았을 때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낮은 목소리 2』에는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낮은 목소리 2』의 시작은 강덕경 할머니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빠릿빠릿한 말투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말하시는 강덕경 할머니의 모습은 진지하고 결의에 차 있으며,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잠시 뒤에는 할머니의 힘겨운 투병 생활의 모습이 보여진다. 몸에도 힘이 없으시다. 그렇게 의지에 불타셨으나 세월과 병마 앞에 약해지신 것이다. 앞에서의 빠릿빠릿한 모습은 아마도 전편인 『낮은 목소리』에서의 인터뷰 같다. 인터뷰와 대비되는 강덕경 할머니의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처음엔 짙은 어둠, 그 후에 보여지는 인터뷰의 인상은 강렬했고, 강덕경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한에 차 있었기에 그녀의 병세는 더욱 더 슬프게 느껴졌다. 영화는 강덕경 할머니의 투병과 죽음으로 처음과 끝을 맺으려 하고, 이는 영화 『낮은 목소리 2』가 중간 중간의 밝은 모습들에 중심을 잃지 않으려 깔고 있는 기본적인 베이스 같다.

  『낮은 목소리 2』는 어둡지 않다. 밝은 부분이 많다. 어느 쪽이느냐 하면, 전체적으로는 밝고 중간 중간에 어둠을 껴 넣은 식이다. 도입부는 경건하게 시작했지만은 중간은 할머니들의 생활상이다. 이 생활상이 몹시도 즐겁고 경쾌하기 이를 데 없기에,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밝게 느껴진다.

  할머니들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은 아옹다옹 살아간다. 푸른색 자연 안에서 소일거리로 농사도 짓고, 예배 혹은 묵상도 하고, 자신들이 겪었던 상처를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하면서 할머니들은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편안해 보여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 마음속으로, 그들이 아직까지 일상생활에 있어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며 피폐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건가 싶어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생각 자체가 내 마음 속에서 그들에게 수치심으로 가득 찬 삶을 강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부끄러웠다.

  할머니들의 삶은 너무나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다. 정말로 일반적인 할머니들 같았다. 물놀이도 가고, 가끔은 서로 언쟁도 벌이고. 그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참 보기 좋게 느껴졌다.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는 설정이 보기에 편했다. 또, 순수한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박두리 할머니가 닭장을 치우면서 투덜거리는 가벼운 넋두리 모습은 몹시 귀여우셔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밝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괜찮아요. 우리는 멀쩡한 사람들이에요.’ 라는 메시지를 전달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말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생활 중간 중간에, 강덕경 할머니의 투병 생활이나 할머니들의 인터뷰,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이 나오기도 해 밝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한 할머니께서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위안부 시절을 테마로 가진 그런 그림이었다. 소녀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여서 가슴이 아렸다. 영화를 다 본 후에 나눔의 집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할머니들이 그림 그림들이 올라와 있었다. 위안부를 테마로 한 그림들은 일제에 대한 분노와 할머니들 마음속의 한이 잘 담겨 있었다. 그들의 한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강덕경 할머니의 투병생활은 더욱 더 표면으로 드러나는 슬픔이었다. 결국에는 강덕경 할머니가 돌아가심에 더 마음이 아팠다. 변영주 감독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해 몹시 죄송스러워 했다. 『낮은 목소리 2』는 울음이나 웃음을 쥐어짜내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그 안에서 그들의 감정을 전달하려 한다. 강덕경 할머니의 죽음도 그랬다. 예정되어 있는 듯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막상 할머니의 죽음을 영상으로 보아도, 싱숭생숭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그러나 장례식장의 모습을 잡아 주었을 때에는 정말로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다른 할머니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가게 된 동료, 친구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 슬픔의 모습이 슬펐다.

  할머니들의 인터뷰는, 『낮은 목소리 2』가 보여주는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부분이다. 나는 할머니들의 인터뷰 내용도 그렇지만, 인터뷰를 할 때의 그들의 모습이 또한 인상이 깊었다. 열심히 기도를 하는 울산의 할머니의 모습이 나왔다. 집에서도 할머니는 기도를 했다. 이는 종교로서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러한 모습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느꼈다. 열렬한 기도에서 그만치의 상처를, 그 깊이를 알 수 있었다.

  할머니들의 인터뷰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변영주 감독이 중간 중간 끼어드는 것은 우리가 끼어들 때 하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터뷰는 말 건네기이다.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우리는 이렇게 살았노라. 그러니 우리를 알아 달라. 하는 그런 모습이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진실성을 느꼈다. 그들의 말이 거짓이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뷰 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진실해 보였다.

  한 할머니는 인터뷰 중간에 자신이 했던 기도를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생명 거두어 주시고 다시 부활시켜 주세요. 시집도 가고, 여자로서 부활시켜 주세요. 자식도 낳고 싶어요. 다시 부활시켜 주세요.’ 이 얼마나 슬픈 말인지. 어린 시절 멋모르고 납치당해가서 당했던 일들을 모두 깨끗하게 지우고, 그 후에 돌아와서 받은 멸시를 깨끗하게 지우고, 남들처럼 오순도순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소원. 그 소원이 너무나 작고도 깨끗해서 가슴이 먹먹했다. 남들은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들이 그 할머니에게는 소원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슬픈 일이었다.

  할머니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더 많은 이들이 『낮은 목소리 2』를 보고 그들의 상황을 알고, 돕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말한다.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일제의 만행을 두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이렇게 말하고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 기쁘다고도 말한다. 군인이 되어 이 나라를 지키고 싶다고도 말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낮은 목소리 2』가 전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한을 풀기를 원한다. 일제의 사과를 원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알아주기를 원한다. 2세들이 그들을 묻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진실한 마음이 정확하게 전해져 온다.

  『낮은 목소리 2』는 일상을 소소하게 담으면서, 중간중간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나는 이 영화를 좀 더 즐겁게 보면서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는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묻고 답하기는 그들의 속내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방식이 좋았다.

  『낮은 목소리 2』는 우리에게, 보는 나에게 어떠한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낮은 목소리 2』를 봄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할머니들의 소소한 삶을 통해, 강덕경 할머니의 한 맺힌 죽음을 통해, 할머니들의 한 맺힌 삶의 일화를 통해 그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강요하지 않으나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되었다. 『낮은 목소리 2』는 그래서 더 느낄 것이 많은 그런 영화다. 그들은 우리를 붙잡고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말을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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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로 냈던 옛감상. 지금 봐도 처절할 것 같아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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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2009 / 미국)
출연 이순재, 에드워드 애스너, 크리스토퍼 플러머, 조던 나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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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본 영화. 평소에 내가 영화 틀면 좀 보다가 나가던데 이건 안나가더라. 뭐 평소에 동생과 나의 영화 취향은 거의 갈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알록달록한 풍선을 통해 하늘에 떠 있는 집. 포스터만으로도 호감을 갖게 하는 이 영화는 포스터 뿐 아니라 영화까지도 알록달록한 느낌으로 재미있었다. 나이많은 노인 칼(에드워드 애스너)과 동양인 소년 러셀(조단 나가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어쩌면 마이너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 하지만 정말로 재미 있었다.

  아내 엘리(엘리자베스 닥터 (그렇다! 감독인 피트 닥터의 딸이다!))를 잃은 뒤 혼자서 무료하고 칙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칼. 그는 어릴 적, 아내 엘리와 함께 모험가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그들의 롤모델은 여행가 찰스 먼츠(크리스토퍼 플러머)고, 따라서 그들의 목적지는 남아메리카에 있다는 파라다이스 폭포. 그들은 커서도 꿈을 쫓지만 안타깝게도 시기가 늦어버리고 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영화 시작 초반 몇 분 만에 다 설명된다(...) 그렇다고 이게 어색하고 그런 게 아니어서 이 요약본이 오히려 보는 재미가 있고 좋았다.

  아무튼 요런 칼의 집 근처 부지는 죄다 공사가 진행되고, 유일하게 남아서 자리를 지키던 칼은 어쩌다 보니 사고에 휘말려 요양보호소로 가야 할 처지가 된다. 쓸쓸히 짐을 꾸리던 칼은 집에 남은 아내와의 추억을 되새기다, 이제야말로 모험을 떠나야 겠다고 생각하고. 풍선장사를 하던 실력을 되살려 집을 풍선으로 띄우게 되는데... 요 여행의 과정에 보이스카웃인 동양인 꼬마 러셀이 끼어들면서 칼의 여행은 조금 정신산만해지게 되었다, 이거.

  생각보다 목적지까의 과정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크다기보다는,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인 파라다이스 폭포 근처까지는 정말 금방 도착하고 거기까지 가는 데에도 커다란 난관은 없는 셈인데... 그 목적지에서의 난관이랄 것도 결국 자기와의 타협이냐 아니냐 뭐 이런거에 가까웠다. 러셀과의 약속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 그런 것까지.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답게 결말은 훈훈.

  악역으로 찰스 먼츠가 등장한 게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 모험가는 자신의 야망에 혹해 다른 것들을 잃어버린 듯. 감초들인 동물들... 시종일관 까악까악 대기만 하던 케빈은 찰스 먼츠가 노리는 새이며 동시에 칼과 러셀이 지키려 하는 새라는 점에서 중요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조연으로서의 재미를 더해준 건 분명. 더그(밥 피터슨) 넘 귀엽고, 알파도 기계 고장나서 목소리 안나올때 귀여웠고... 베타(딜로이 린도)랑 감마(제롬 랜프트)도 제 할일 다 했다.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들이 새롭고 좋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다람쥐!

  즐거운 애니메이션. 알록달록한 풍선들이 집을 끌고 올라가는 장면은 정말 너무 좋았다.

키즈 리턴
감독 기타노 다케시 (1996 / 일본)
출연 안도 마사노부, 카네코 켄, 이시바시 료, 테라지마 스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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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하지 않는 청춘, 『키즈 리턴』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영화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진한 감동을 주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영화라던가, 강한 기쁨과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라던가. 그런 종류의 영화는 의외로 굉장히 많다. 나는 감정의 배설이 심한 편인지라 그러한 영화를 보고 쉽게 감동하는 편이다. 예술성이 하나도 없는 영화에서 감상적인 싸구려 억지를 만들어내도 나는 쉽게 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감동적인 영화를 골라보라’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나를 울게 하고 감동시키는 영화는 하나 둘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비단 운다거나 하는 강한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감동을 받지는 않는다. 덤덤한 이야기가 가슴을 콱 찔러올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화려하게 감정을 내뱉지 않더라도 어떤 영화는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영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일본 영화 『키즈 리턴』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키즈 리턴』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노라고.

  영화 『키즈 리턴』은 무척 덤덤하다. 이야기의 커다란 줄기는 이렇다. 과거의 단짝 친구였던 미야자키 마사루(카네코 켄)와 다카키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오래간만에 재회한다. 그들은 옛 추억에 빠져 함께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그 둘의 과거가 펼쳐진다. 둘은 고등학교 때 유명한 문제아였다. 그들에게서 학교는 탈출하고 싶기만 한 곳이다. 그래서 결국은 탈출하고야 만다. 미야자키 마사루는 야쿠자로, 다카키 신지는 권투 선수로서 성장해 나간다. 둘 다 유망주로서 성장해 나가지만, 종당에는 파국을 맞는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중심 토대는 딱 저것뿐이다. 그것에 살이 되는 것은 학교생활의 모습, 야쿠자의 삶의 모습, 권투장 안의 모습이고, 곁들여지는 이야기는 그들의 친구인 만담꾼과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이 영화는 이해가 안될 만큼 잔잔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게 찔러내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때 처음 보았다. 적절한 시기였다. 수능 공부와 내신 성적과 씨름하기 바빴다. 밤에는 학원에서 새벽까지를 보냈다. 그래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았다. 옆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고3 중반 즈음의 나는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공부는 영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야간 자율학습은 밥 먹듯이 빼먹고 놀러 다녔다. 그리고 사람이 가득 찬 길거리에서, 누군가 내게 시비를 걸어오길 간절히 바랬다. 누군가 내게 먼저 시비만 걸어준다면 흠씬 패주든, 흠씬 두들겨 맞든 어느 상황이건 일어나길 바랐다. 나는 그 때 꽤 감상적인 사춘기 소녀가 되어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흘렀고, 아무도 건들지 않았음에도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사회의 모든 것에 불만을 가졌다. 문제아가 되어 마구 난동부릴 용기도, 자살할 용기도 없다고 자신에게 짜증을 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유치한 일이지만 그때는 꼭 그랬다.

  그렇게 불만이 쌓여 학교를 관둘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을 때, 나는 『키즈 리턴』을 보았다. 영화라도 보면서 마음을 식히려는 마음도 있었고, 사실은 그냥 시간을 때우고 싶기도 했다. 고른 것도 우연히 고르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그랬다. 영화 초반부터 흐르는 그 담담함이 싫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키즈 리턴』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두 명의 주인공들이 문제아로서 학교를 휘젓고 다니는 방식만 봐도 그랬다. 그들은 억압된 틀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려 애쓰고 있었다. 교사를 골탕 먹이거나, 길거리에서 돈을 뺏거나, 성인 영화관을 전전하는 모습들. 그리고 똑같은 장소에 서있던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했고 또 갈망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정화와 새로운 욕구를 느낀 것이었다. 폭발하지 못해 안달 나있던 나는 그들을 보며 그런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들이 제도교육을 벗어났을 때에는 그것이 더 했다. 드디어 거지같은 곳에서 탈출하는구나 싶었다. 그것이 비록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마사루가 야쿠자에 들어갔을 때에도(영화를 봤을 당시의 나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았다.), 신지가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나는 마냥 보기 좋았다. 어찌 되었건 그들은 자신들의 억압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로 한걸음 내딛은 것이었다. 그들이 운동장에서 한가로이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 교실 안 학생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물론 교사는 한심한 놈들 하고 내뱉고 만다. 나는 교실 안 학생들처럼 그들을 바라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승승장구했다. 중간 보스가 잠시 빠진 상황에서 마사루는 중간 보스를 꿰어 찼다. 신지는 권투에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체육관의 유망주가 내려가며, 본인이 유망주가 되었다. 그들의 인생을 참 술술 풀렸다. 나는 더욱 더 열광했다. 제도 교육을 벗어나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나에게도 길이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살고 있는 곳은 참 비정한 세계이다. 잠깐 붙여지는 그들의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만담을 하는 두 아이들은 손님이 없는 곳에서 공연을 하고, 젊은 샐러리맨이 된 친구는 자살을 한다. 젊음은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성질이 몹시 고약했다. 그들은 점점 추락한다.

  마사루는 보스가 죽은 상황에서 다른 야쿠자들에게 말을 잘못하여 그것을 빌미로 추락했다. 안타까웠다. 처량한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신지가 추락하는 장면은 더 담담했지만, 더 극적이었다. 영화는 꽤 많은 부분을 권투 장면에 할애하고 있다. 권투를 행하는 장소는 체육관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인생의 여러 모습들이 담겨있다.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늙은 복서, 이제 권투를 시작한 복서, 유망주가 된 복서. 그런 인생의 향연 속에서, 신지는 퇴물 선배와 함께 다니다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그런 추락 앞에 신지는 담담하다. 첫 실패다. 그런 것 앞에서 담담한 것이다. 신지와 함께 했던 늙은 복서는 인생의 허무함과 존재의 무의미, 힘겨움에 대해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그가 한 말과 함께 신지의 실패는 무척 담담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쓴 맛을 대신 겪으며, 나는 내 가슴마저 쓰려왔다. 담담하게 느껴지면서도 가슴 한 켠이 그랬다.

  그들은 그들을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의 성공을 쫒았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치기와 함께 바람 불 듯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것이 슬펐으나 별 도리는 없었다. 이 영화를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 즈음엔 영화는 새로운 결말을 내놓았다. 그 장면이 어찌나 평화로운지.

  그들은 재회 후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탄다. 공기는 평화롭다. 교실 안의 선생님은 그들을 보며 여전히 혀를 차고, 교실 안의 학생들은 선망하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자전거를 타는 둘은 말없이 서로 교감한다. 그리고 신지가 묻는다.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마사루는 대답한다. “바보, 아직 시작도 안했어.” 그 얼마나 감동적인 대사인지. 보고 느끼지 않은 사람은 모를 대사이다. 그 말은 그렇게 불만이 가득 찬 내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가득 차 있었고, 저 말은 내게 가장 용기를 북돋아 준 말이었다.

  그들은 성공하겠다는 굳은 신념,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앞에 있는 현실을 그때그때 대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삶 안에서 성공도, 실패도 겪는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젊은 삶의 모습이다. 나는 지금도 젊지만 영화를 볼 당시 몹시 젊었다. 주인공들을 따라 쉽게 그들의 삶을 경험했다. 그들이 결국에는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젊음과 생각 없음이 부러웠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도권을 벗어난 그들의 행로가 분명치 않음에도 그들은 젊기에 아름답다. 젊음은 아름답다. 성공하지 못해도 가슴 쓰리며 훌훌 털어내면 되고,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거는 걸어도 아깝지 않은 이유이니까.

  나는 『키즈 리턴』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이 영화를 찾아보며 용기를 얻는다. 이 영화 이후 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많이 극복했다. 가장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매체였다.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은 그들의 담담한 이야기. 모든 것이 꽉 막혀 있다 느낄 때 나는 이 영화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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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 쓴 옛감상. 나는 지금 꽉 막혀있다고 해도 이 영화를 찾지 않는다.
 
공각기동대
감독 오시이 마모루 (1995 / 영국, 일본)
출연 야마데라 쿄이치, 다나카 아츠코, 카유미 이에마사, 오오츠카 아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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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지루해 했다. 유명세를 다 타고 난 후에야 접한 이 애니메이션은 정말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사이보그화 등의 배경 상황은 그나마 다른 곳에서도 많이 접한 상황이라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스트 등의 알 수 없는 어휘는 뜻을 파악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고(슬프게도, 내가 뜻을 파악하지 못했어도 스토리는 흘러간다.) 스토리 진행은 더디게 느껴졌다. 거기에 나를 더욱 지루하게 만든 것은 온갖 현학적인 대사들이었다. 수월하게 이해할 수 없는 대사들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더욱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당시에는 일단 그 화려함에라도 감탄했겠지만, 나온 지 10년이 지난 이 애니메이션은 그다지 놀랄만한 효과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음에도,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나선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지루하게 본 영화는 보고 난 후 곧바로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왠지 계속 깔끔하지 못한 뒷맛은 영 나를 괴롭혔다. 목을 길게 빼는 것이 귀찮아 놓쳤던 자막 몇 개가 걸렸다. 질척한 느낌으로 진행되는 스토리와 애니메이션에 꼭 어울리는 소름끼치는 음악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결국은 영화를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애니메이션 안의 상황 판단이 된 상태에서 본 공각기동대는 처음 보았을 때 보다 훨씬 나았다. 자막이 보이지 않아서 놓쳤던 몇몇 대사들도 빠짐없이 보았다. 물론 대사 몇 개를 더 보았다고 해서 영화가 갑자기 쉽게 느껴진 건 아니었다. 영화는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첫 번째 감상보다는 나아진 기분이었다.

  사이보그화 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가? 아니 비단 사이보그화 된 인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가는가? 이것이 이 어렵기만 한 영화 속에서 내던지는 질문이다.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현학적 대사들은 전부 저것을 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인공인 쿠사나기는 사이보그 신체라서 가라앉아 버릴 수 있음에도 잠수를 계속한다. 온 몸이 몽땅 기계인 그녀는 그 신체로 잠수할 이유가 없다. 잠수에 대한 바트의 질문에 쿠사나기는 이렇게 대답한다. 

두려움, 불안, 고독, 어두움,... 그리고 어쩌면 희망? 해면으로 떠 올라갈 때,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나는 이 대사가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 시작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은 혼란한 미래사회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 혼란을 더욱 부각시킨다. 멋대로 기억이 조작되어 괴로워하는 청소부는 직접적인 설명이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기억의 축적을 통해서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것이 교란될 수 있다는 상황을 가정해  ‘네 존재는 증명 될 수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만약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과 나를 둘러 싼 기억이 모두 수정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 기억이 수정된다면 기억이 수정된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어. 그렇게 이 애니메이션은 대답하는 것이다. 

 영화 어딘가에서 나온 대사 중 이런 것이 있다. 자세한 위치는 적어두지 않아서 어떤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사의 내용으로 보아하니 아마도 쿠사나기나 인형사의 대사일 것이다. 

삶의 시작은 화학반응에 지나지 않고, 인간의 정보는 기억 정보의 그림자일 뿐이지.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정신은 신경계세포의 스파크에 불과해. 육체나 두뇌가 기계로 바뀔 수 있다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인격’과 ‘기억’이라는 정보 뿐. 그런 정보들이 사라지면.. 그것을 죽음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아.

  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생각에 완벽하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는 나의 기억으로서 더욱 명확한 내가 될 수 있다. 주변이 가지고 있는 나의 기억 또한 나의 존재를 명확하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 앞에 있던 질문을 다시 끌어다 써 보자. 만약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과 나를 둘러 싼 기억이 모두 수정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 기억이 수정된다면 기억이 수정된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을 수 있을까? 완벽하게 같지는 않아도, 아주 다를 수는 없다는 게 나의 대답이다. 나는 나이고, 모든 기억은 어쨌든 나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인데 그것이 없다고 나의 존재가 부정 될 필요는 없다. 기억이 없다 하더라도 여기 내가 살아있고, 내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존재는 나의 기억을 뛰어넘을 수 있다. 오만한 생각일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말들만 늘어놓는다. 이 애니메이션이 어깨의 힘을 조금만 더 풀었다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내가 감상문에 풀어 넣은 것들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래서 그 많은 내용들을 우겨넣느라 영화가 어려워 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어깨의 힘을 조금 더 뺐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각기동대의 후속 작으로  ‘이노센스’가 있다고 들었다. 안타깝게도 공각기동대보다 더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언제 한번 보아야겠다. 공각기동대의 후속 작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두 번째 본 공각기동대는, 처음보다 매력적인 영화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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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릇파릇하던 대학교 1학년 때 쓴 감상. 과제 파일에서 찾았다.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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