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카테고리 소설 > 장르소설 > SF소설
지은이 스타니스와프 렘 (오멜라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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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읽는데 꽤 오래 걸렸다. 글이 안읽혀서가... 아 맞구나... 재미가 없어서... 영어본을 중역한 거던데 그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문장도 당췌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다가 내용도 영 께름측하고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랬다. 뭘 말하고자 하는건지 감만 잡히고 확실히 알진 못하고 책장을 넘겼다는 느낌?

  솔라리스라는 행성에 연구하러 간 과학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1인칭이라 그 심리가 잘 드러나 있긴 하다. 솔라리스의 바다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경이 같은 것들이 확 다가왔달까. 그 바다에서 만들어진 존재들, 이를테면 켈빈의 죽은 약혼녀 레야의 등장같은 것들은 내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불쾌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점 빼고는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거의 없었다. 난 애당초 SF나 근미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이 책을 샀는지 그 때의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 판타지인 어둠의 왼손은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 어째서 인간 심리를 이토록 꿰뚫는 이 책은 이렇게 끔찍했는지 모르겠다.

  레야라는 존재가 영 별 거 없이 가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물론 그게 작중의 '나', 켈빈에게는 엄청난 일이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는 소리. 하긴, 그게 레야의 본질인가. 켈빈에게 거대한 의미로 다시 다가오는 것. 처음에는 그 레야를 떼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켈빈이, 레야가 떠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는 건 흥미로웠다. 초반 부분에서 강렬하게 남았던 부분이 있는데,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레야를 두고 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라고 표현하는 부분. 이랬던 주인공의 감정이 레야를 떠나보내지 못하게 변했으니 내 기분이 어땠겠어.

  확실히 흥미롭고, 인간 자체를 잘 파고들었지만... 아... 이 묘하게 불쾌한 기분 덕분에 또 읽을지는 모르겠다.
까트린이야기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빠트릭 모디아노 (열린책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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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자끄 상뻬의 그림을 아주 좋아해서 샀던 책. 중학교 때인가...? 아무튼 내용같은거 하나도 안보고 그냥 오 상뻬 그림이다, 하면서 샀던 책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을 지지부진하게 읽었었고 그 뒤론 책장에 처박아두기만 했던 기억. 이번에 외출할 때 짧게 읽을 책이 필요해서 꺼내들었다. 책 무지 얇고 읽는 것도 빠르게 읽을 수 있다.

  회상하는 느낌이고, 아빠와의 생활을 말하고 있어서 일상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묘사되고 있어서 자세한 현실의 상황을 전해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대충 아, 어떤 사정이 있구나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정도. 이 애매모호함이 꿈속을 보는 것처럼 희망을 주기도 하고,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맞는다.

  아빠 조르쥬 세르띠뛰드는 확실히 딱부러지는 타입은 아니고, 좀 엉뚱하고 애처로운 모습도 있다. 그렇지만 까트린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보이는 그런 아버지였다. 아빠 성격이 잘 보이는 에피소드가 많다. 발레학원을 다니는 까트린이 거기에서 만난 여자애 오딜의 집에 초대받았던 에피스드가 기억이 난다. 까트린이야 어려서 그렇다쳐도, 아버지가 어떻게든 허세를 부려보려고 노력한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부끄러우면서도 짠했다. 그 뒤에 아빠가 파티에서 만난 르네 따벨리옹 씨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하는 모습도 그랬다. 분명 소설을 보는 나는 아빠가 너무 순진하다, 안쓰럽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조르쥬는 여전히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 연락을 못받는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 조르쥬는 그런 사람이다.

  아빠의 동업자 레옹 카스트라드씨는 확실히 건방지고 마음에 안드는 어른이지만 그래도 천성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저 좀 허세가 있을 뿐... 주변에 있으면 피곤하지만 도움을 주기도 하는, 뭐 그런타입? 이 둘과의 에피소드만으로도 아기자기하고 모양새가 괜찮았다.

  이건 까트린 이야기라기보단 조르쥬 이야기 같기도 하다. 까트린이 지켜보는 세상엔, 학교나 학원의 이야기보다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더 많다. 아... 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까트린의 발레선생님인 갈리나 디스마일로바의 이야기. 러시아 출신 발레교사로 이상한 러시아 억양을 구사하는 디스마일로바가 사실은 프랑스 출신 오데뜨 마르샬이었다. 이 사실을 아빠가 까트린에게 살짝 말해준다. 발레리나였던 까트린의 어머니 탓에 그녀를 이전에 본 적이 있었던 거. 그 사실을 밝히라는 까트린의 말에 조르쥬가 대답해주는 태도가 좋았다.

  「너는 내가 <안녕, 오데뜨…… 생 망데의 부모님은 안녕하신가요?> 하고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빠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야…….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 그녀가 꿈을 꾸게 내버려둬야 해. 그녀와 그녀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꿈을 깨뜨리면 안 되는 거야……」

『까트린 이야기』, 빠트릭 모디아노, 열린책들, 1996, p. 89

  낭만적인 작은 동화. 누가 읽느냐에 따라 또 느끼는 게 많이 다를 것 같다.
신과다윈의시대
카테고리 과학 > 과학이론 > 과학이론/과학철학
지은이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세계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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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에 스폰서 배너 있는 걸 보면 알듯, 위드 블로그에서 선정되어 읽은 책. 따라서 평소보다는 약간 정성을 들여 쓰기로 마음먹었다. 리뷰용으로 책을 받았으니 그 정도 매너는 있어야겠지. 사실 책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 말고 일단 책 형식. 250페이지 가량의 책이니 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진화와 창조를 제시하고, 대놓고 무신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 치고는 얇다. 심지어는 자간도 꽤 넓어서 200%를 뛰어넘는다. (난 이건 편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두께가 빈약하게 된다고 해도 자간이 200%이상이 되는 책은 좀 지양해야 하지 않나? 가격이 13000원이나 되는 책인데, 어차피 얇은 책 페이지나 빼서 가격을 낮추는게 나았을 것 같은데.) 그만큼 전문적으로 파고 들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이 책은 너무 무겁지 않게, 가벼운 수준으로, 그러나 객관적인 시선을 취하려고 노력하며 쓰여져 있다. 이 책의 (때론 지나친) 무겁지 않음은, 이 책이 EBS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던 <신과 다윈의 시대>의 내용을 다시 엮은 것이라는 데 기인한다. 방송으로 나왔던 만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글이 쓰여졌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좀 더 진화론, 혹은 창조론, 혹은 무신론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책 내에 주석으로 쓰인 수 많은 참고서적을 보면 될 것 같다. 책 자체는 이런 논쟁을 알아보려 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딱 적당한 수준의 분량이었다.

  방송으로 방영된 것이니만큼, 이 책은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과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양 쪽의 주장을 평등하게 싣고 있다. 그런 주장들도 다양한지라, 강경한 쪽과 중도적인 쪽의 시선이 잘 담겨 있고, 각 학자 혹은 신학자들의 생각이 고루 드러나 있다. 보다보면 같은 이론을 믿고 있음에도 자신의 신념이나 성격 등에 따라 미진하게 그걸 주장하고 있는 듯한 분들도 계시더라. 꼭 같은 이론을 주장한다고 같은 '방식'으로 주장하는 건 아니라서, 그런 시선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난 신을 믿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신론을 주장하기에도 약간 어정쩡한, 회의론자에 가까운 편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어느 하나를 믿으라면 나는 반드시 진화론을 택하겠지만, 그 진화론의 이론에 '아직까지는' 결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길고 거기엔 빠진 미싱 링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족한 부분을 창조론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책에서도 여러번 주장된 바와 같이, 창조론은 너무나 종교적인 관점이고 그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쪽의 시선을 읽으면서 최대한 중립적인 관점을 가져보려 했지만... 글쎄. '지적 설계론'의 이론들은 내게 도무지 와닿지가 않는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우리가 보지 못한 초능력자 하나가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니.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아무리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말을 읽어도 논리적 오류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묻고싶었다. 그렇다면 그 지적설계자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해 그들은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대답밖에 내어주지 못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부족한 진화론이 내겐 나았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여러 사람들이 있다. 강경하고 똑부러지게 제 의견을 주장하는 자가 있고, 좀 온건한 타입으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타입도 있었다. 리차드 도킨스 같은 자가 전자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라면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의 저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하고, 그의 명쾌하고 딱부러지는 설명방식은 이미 널리 퍼져 있으니까. 나는 그의 인터뷰를 보는게 즐겁지만 그의 방식에 완벽하게 동조하지 않는다. 나는 스티브 존스의 인터뷰에 꽤 공감했다. 그는 지식에 관련된 부분에선 딱부러지게 지적설계론을 부정한다. 마이클 베히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그의 무지를 보여줄 뿐이라고. 그러나 종교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미진하면서 또한 종교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놀라웠다.

  저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상어와 호랑이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엄청난 강적이지만 상대방의 영역에서는 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과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논박할 수 있다며 종교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종교는 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코란이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봤을 때 4억 년전의 진화론은 근거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럴 때마다 오히려 자신이 믿는 종교에 나쁜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내리기 전에 조금 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브 존스 인터뷰 中, 『신과 다윈의 시대』,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세계사, pp. 105-106

  스티븐 존스가 말하길, '종교는 신앙 중심이지만 과학은 증거중심'이라고 하더라. 둘이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는거다. 나는 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그렇게 반박하고 싶어하는지, 과학자들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더라. 과학은 과학이고 종교는 종교일 뿐이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이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말이 왜 성서에 대한 모독이 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더라. 물론 모든 종교를 가진 자들이 이렇게 주장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학자들의 의견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는 게 지식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줬다면, 우리나라 각 종교분파들의 의견을 통해 사상적이며 철학적인 부분을 만족시켜 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불교야 원래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아닌데다가 세계관 자체가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지 않는걸 알고 있어서, 불교 쪽에서 진화론을 믿고 있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신기했던 건 천주교의 반응이었다. 개신교와 같이 신을 믿는 범주 안에 있으면서도 굉장한 비율의 신자가 진화론을 믿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천주교는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으며 (물론 내 입장에선 이게 매우 당연해 보인다만), 교황들은 성경을 과학적인 문서로 다루지 않았다는 거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새로운 지식을 통해 우리는 진화론을 가설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여러가지 연구 결과가 일치하는 것들이 그 증거가 됩니다.

  이 말을 오경환 신부는 말 그대로 해석해선 안된다고 했다. 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말에 오히려 그 핀트가 맞춰져 있다고 한다. 베네딕토 16세의 말은 다음과 같다.

세계는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깊은 수준에서 볼 때 세계는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세계는 그 안에 함의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진화와 창조 가운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며, 진화와 창조를 동시에 믿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되, 신에 의한 진화를 믿는다고. 아직 세계의 시작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확실치 않은 이 때에 이 정도 믿음이라면, 그들이 믿는 것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개신교 측은 진화론이 확증된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그러나 이 말은 내게는 좀 어폐가 있어 보였다. 실제로 보여지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설령 진화론이 세계의 시작을 말하진 못하더라도,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진화의 증거가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완벽히 반대한다는 게 내게는 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슬람 쪽은 진화론에 강경히 반대하고 있더라. 이 둘 쪽이야 성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역시 이 쪽에도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애당초 진화론에 대한 것이 왜 종교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에 난 이런 싸움 자체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본다. 최종덕 교수의 말처럼 진화론은 과학의 입장이고 창조론은 종교의 입장이다. 둘의 범주가 전혀 같지 않기 때문에 싸움의 결론도 날 수 없다. 과학적인 입장에서야 진화론이 절대적으로 옳고, 종교적으로 해석하고자 든다면 진화론이 옳다고 믿을 수 있겠다.

  마지막 부분에 있던 최종덕 교수의 인터뷰와 신을 믿는 과학자 윌리엄 필립스의 인터뷰가 둘 다 마음에 들었다. 철학적인 부분에서 지식을 충족시켜 준 것이 최종덕 교수의 인터뷰라면, 윌리엄 필립스의 인터뷰는 좀 더 마음에 와닿는, 친근한 구석이 있었다. 그 중 한 파트로 감상을 마무리하려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종교와 과학의 영역에 대해서, 그리고 종교와 과학이 각각 다른 종류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과학적 접근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이 단순한 생화학적 현상이라고 간주하며 인생을 살고 싶지 않겠죠. 우리의 삶을 설명함에 있어서 과학 이외에도 다른 가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과학적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종교인들이 성서를 완전히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성경에는 신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했다고 쓰여 있는데요. 과학이 이와 다르게 말했다고 해서 과학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는 성경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윌리엄 필립스 인터뷰 中, 『신과 다윈의 시대』,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세계사, pp. 247-248


명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천운영 (문학과지성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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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받아서 산 책인데 내 취향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똑같이 기괴한 소재라고 해도 한강의 '어느날 그는'같은 건 굉장히 느낌이 좋았는데, 이 소설집에 실린 몇 개의 단편은 소재는 내 취향인가 싶다가도, 다 읽고나면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찝찝한 느낌이 소설집 전반에, 모든 소설 안에 있기 때문에 이건 천운영 본인의 느낌인 것 같다. 확고하게 밀어붙이는 천운영만의 감성이 있는데 이게 썩 나와 맞는 것 같지는 않다. 꼭 내가 졸졸 따라붙어도 별 대답을 내어주지 않는 무심한 표정의 여자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난 그녀의 속마음이 빤히 보인다. 뭐 그런거?

  주인공들은 꼭 뭔가가 결핍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소설들 안에서 느껴지는 욕구, 욕망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인데 이게 내게는 불편하다. 간절하고 절박하게 뭘 갈구하고 있는데 표정은 안 힘들다, 난 괜찮아.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속이 문드러진 담담함이 나는 싫다. 근데 못썼다는게 아니라 그냥 내 취향에 안 맞는 거다. 소설 자체는 마음에 든다. 느낌이 싫어서 여러 번 읽기는 싫은 거. 그 와중에도 '멍게 뒷맛' 같은 건 몇번이나 들춰봤지만...

명랑
늑대가 왔다
멍게 뒷맛
모퉁이
세번째 유방
어버지의 엉덩이
입김
그림자 상자


  '명랑'이라는 제목 때문에 명랑한 내용인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진통제 이름이야. 힘이 없어진 할머니, 억척스럽게 살고 있는 엄마, 어딜 가야할 지 모르는 백수인 나. 전체적으로 '나'의 시점에서 관찰되고 있는데 나름의 서늘한 긴장감이 좋았다.

  '늑대가 왔다'는 불쾌한 동화를 읽는 기분이었다. 꼬질꼬질하고 때묻은 채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생각하면 불편한 기분이 든다.

  '멍게 뒷맛'은 철저한 열등감 속에 갇힌 주인공 여자 때문에 흥미로웠다. 모두가 이런 심정을 완벽히 100퍼센트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다른사람에게 느껴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이 여자는 좀 더 극단적이었고 찌질했다. 사실 문을 안열어준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만, 그 뒤의 행보들이 좀. 어울리면서도 웃긴.

  '모퉁이'는 묘하게 마음에 들었었던 소설. 어린아이 시점에서 보여지는 가족의 모습이 썩 달갑지 않으면서도 파고드는 맛이 있었다. 인상적인 문장이 있는데,

네 엄마는 참 예뻤어. 키도 크고, 새침데기였지. 어떻게 해서든 네 엄마랑 결혼하고 싶었다. 아빠는 결혼식 사진을 보며 말하곤 했다. 나는 아빠가 말한 '어떻게 해서든'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모퉁이」, 『명랑』, 천운영, 문학과지성사, 2004, p. 103

이거다. 담담한 느낌으로 읽다가 소름이 쫙 끼치더라.

  '세번째 유방'은 어쩔 수 없이 '모퉁이'의 오빠가 주인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보다도 이 남자의 결핍된 삶이 그냥 좀 불쌍했다. 마지막에 그런식으로 폭발하게 된 것도 안타깝고.

  '아버지의 엉덩이'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밝지 않나 싶은데... 할머니니가 죽은 뒤 남겨진 나와 아버지 사이의 모습이 좋았다. 팽팽한 줄타기를 하는 듯하던 나의 심리가 점차 안정적인 느낌으로 이동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초반에 아버지가 할머니의 무덤을 타고 오르는 장면이 독특하게 느껴졌었다.

  '입김'은... 음... 엄청 소름끼치고 불쾌하다기보다는 그냥 힘이 쭉 빠진다. 그런 내용이었다. 사채를 끌어다 쓰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텅 비어 보였다. 돈보다도 가족을 잃은 게 더 큰 것 같았다. 그렇게 건물과 하나된 사내의 절망의 깊이가 엘레베이터 통로 만큼이나 어둡고 깊어보인다.

  '그림자 상자'는 가족에 상처입은 남녀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뭐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좀 비정상적이 되어버린 여자와, 그런 여자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남자. 연애 이야기는 아닌데 둘의 공통점을 보고 있노라면 둘이 통하는 부분이 많겠다 싶기도... 여자가 느끼는 공복은 식욕보다는 다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가족에 대한 감정이라던가) 느껴지는 공복이겠지...

  모르겠다. 아 내 느낌은 아냐! 하고 몸서리쳐지다가도 또 마음에 드는 구석도 분명히 있는 이상한 소설집.
2010/01/23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엘리베이터에낀그남자는어떻게되었나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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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관한 감상글은 올렸고, 요건 단편집에 관한 내용. 읽은 지 좀 됐는데 이제서야 쓰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사진관 살인사건
흡혈귀
피뢰침
비상구
고압선
당신의 나무
바람이 분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이렇게 아홉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호흡이 짧고 매우 잘 읽히는 문장인지라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단편집. 난 이런 식의 호흡 빠른 글들을 참 좋아한다. 전에 이기호 단편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가 몹시 취향이었던 것처럼. 새삼스레 이 단편집 읽고서 김영하 단편이 진짜 내 취향이구나, 그런 생각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흡혈귀'랑 '비상구'를 가장 즐겁게 읽었음.

  '사진관 살인사건'은 결국 이런 식으로 진짜 범인이 아닌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그 사람들의 내면을 파헤치는 소설이었다.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충격적이진 않았다. '흡혈귀'는 소재가 즐거웠다. 내가 뱀파이어 너무 좋아하겠지... 비단 소재의 문제만은 아니고, 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편지글)이나 담고 있는 내용도 마음에 들었음. '피뢰침'은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뭔가를 갈구한다는 느낌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상구'는 말투가 꽤 현실적인데(지금에 와서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청춘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압선'은 묘하게 슬프다. 지극히 판타지 적이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슬프게 쓸 수도 있다. '당신의 나무', '바람이 분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셋 다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인상이 전체적으로 쓸쓸했음.

  재치있으면서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단편들. 아주 좋아한다.
고래제10회문학동네소설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천명관 (문학동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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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두께가 좀 있어서 오래걸리려나 했더니 생각보다는 금방 읽은 편. 내가 생각했던 방식의 소설이 아니라서 처음에 좀 당황했는데, 곧 자리를 잡고 나서는 후딱후딱 읽을 수 있었다. 굉장히 신기한 소설이었다. 방대하게 짜여진 몇십년의 역사와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재미있고, 말이 되는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라니. 쓸모없는 등장인물을 하나도 없이 언젠가는 다시 등장하기 마련이고, 사소한 행동 하나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그냥저냥 옛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보다가, 책장을 넘길 수록 한 방 먹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더라. 한마디로 신기했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잘 구사하는 사람을 요샌 거의 못봤었으니까. 진짜 탄탄하고 재미있었다.

  노파-금복-춘희 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얼키설키 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금복의 이야기이지만, 결론은 춘희의 이야기이며 시작은 노파의 욕망과 집착인 것 같다. 여러모로 세 인물 모두 비중이 크다.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쓰기는 귀찮은데... 제일 얄밉고 짜증나는 건 금복이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인물이었다. 특히 초반에 걱정과 칼자국 사이에서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그 여파가 계속 남았던 것 같다. 엄마로서의 점수는 빵점이지만, 그 연애 이야기가 너무 콱 박혔나보다. 여튼간에 금복이는 나름 행복하게 죽은 것 같고, 춘희가 너무 안쓰러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노파는 열외.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히 춤을 추는 소설이라 처음엔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건 우리나라 역사와 섞여있는 부분들이 간간히 드러나기 때문에 더 그랬다. 뭐 이건 중요한 건 아니다. 굳이 역사 이야기 안 섞어도 일들은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며 현실적이다. 중간중간 숱하게 나오는 그것이 ~의 법칙이다. 라는 구절들은 진짜 현실에서 통하는 것들이라서... 흥미로웠음. 그리고 이런 정교한 현실에 묘하게 섞어놓은 환상으로 인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춘희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걱정의 씨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흥미로운지. 걱정을 좋아했기에 춘희가 걱정의 씨앗이라 좋았다. 금복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튼 즐거웠다. 두꺼운 책인데도 술술 읽히고 누가 옆에서 옛 이야기 해주는 것마냥 재미있게 읽었음!
나의아름다운정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심윤경 (한겨레신문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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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장편이지만 꽤 잘 읽히고 이어지는 맛이 강해서 두어시간이면 다 읽을 것 같다. 나는 텀을 두고 읽었는데 텀 안두고 쭉 읽는거 추천하고 싶은 장편이었다. 어른스러운 점이 있는 아이, '동구'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가부장적인 아빠, 시집살이를 독하게 시키는 할머니, 다정한 어머니 사이에서 살고 있는 동구의 집에, 동생 '영주'가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이야기가 좀 섞여 있어서 그 시대 정치상황을 비춰주긴 하는데 이게 꼭 주는 아니다. 오히려 가족간에 벌어지는 갈등이 더 눈에 들어오고 (특히 고부갈등), 겉으로는 철없는 아이처럼 비춰지는 동구의 알차고 어른스러운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사에 집중해서 보는 편이 내게는 더 즐거웠다는 거.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싸움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른들이 생각없이 던지는 말에 아이가 어떤 식으로 상처를 받는지 하는 일들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어린 영주를 챙기는 동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해진다.

  동구네 집은 볼수록 열이 받으면서(...) 책장을 덮지는 못하게 하더라. 이건 마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야... 진짜 이렇게 못된 시어머니와 이렇게 짜증나는 남편이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근데 있었겠지... 아주 많이. 시대가 좀 바뀌어서 다행이다. 나는 아무리 봐도 저렇게는 못살 것 같아...

  주리네 삼촌과 박선생님, 이태준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의 깨어있는 무리들은... 긍정적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그만치 좌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중화되는 그 부분도 마음에 들었었다. 여기에 나오는 동구는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고 또 어른스럽다. 비록 주변의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동구가 생각하는 것들이 동구의 아빠보다 더 어른스럽고, 상황 판단이 잘 된다 생각될 때가 있다. 특히 결말쯔음 가서 동구와 동구 아빠가 중국집에서 요리를 먹는 장면에서 그랬다.
 
  재미있는 성장 소설인데... 아 근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가을에 읽기 적당한 소설이었다.
카탈로니아찬가(세계문학전집46)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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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전쟁 초반에 관한 이야기와, 전쟁 막바지의 이야기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정치상황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지루하고 피하고 싶고 그렇더라. 일단 스페인 역사를 잘 모르니까 그거 모르는 상태로 확립해가면서 읽는게 참 힘들었다. 묘하게 우리나라랑 비슷하다는 느낌은 많이 들었고. 이념싸움... 지겨우면서도 눈을 뗄 수는 또 없고. 전쟁 이야기가 썩 취향은 아니더라. (아 새의 노래 사놨는데 큰일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 같았다. 일기처럼 쓰인 르포. 전쟁에 직접 참여한 기자가 기사를 계속 써 나른다는 느낌이었다. 소설로서의 재미가 있다기보단 그 당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 역사라는게 흥미롭긴 하지만, 그렇게 확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 소설 읽고 스페인 역사 좀 찾아봤는데 이 나라도 깝깝... 그 이후에 독재자가 정권잡고 흔든것도 그렇고. 참 우리나라 떠올리게 한단 말이지... 내전 관련해선 더 읽어봐야겠다. 역사 좋아하지 않는데 궁금한 건 또 그래서...

  굉장히 현실적이라서 소설 같지 않다. 장점이자 단점. 스페인 내전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일 듯.
브이포벤데타VFORVENDETTA
카테고리 만화 > 그래픽노블
지은이 ALAN MOORE (시공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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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도 안봤고 그래픽 노블을 본 적도 없어서 평생 안 볼 줄 알았는데. 지누랑 만났다가 어쩌다 책 교환을 함. 다섯 장 읽은 김승옥 소설을 건네주고 이걸 받아왔다. 다음에 또 교환하겠지만ㅋㅋㅋ

  여태 읽은 만화책과 다르게 그래픽 노블이라는 게, 진짜 성인층을 노리고 만든 만화라는 게 느껴지더라. 내용이 엄청 무거우니까. 좀 더 단순화 시켜야지만 애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거 같은데, 뭐 굳이 그럴 필요를 느낀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 서구식 그림이 약간 적응 안되긴 했는데 그래도 느낌있고 좋았다. 하긴 이런 내용에... 이런 그림이 제일 어울리는 거 같긴 하다.

  여기에서 보이는 미래 영국의 전체주의 세계관은 약간 '1984'를 떠올리게 하더라. 인종분리니 인체실험이니 이런건 당연히 나찌 떠올랐고. 아무튼 1984 뭐 그거보단 훨씬 느슨하고 훨씬 악이 판치는 세계관이긴 하다. 아무튼 이런 상상력을 발휘해서 세계를 짰다는 게 아주 신기하고 재미 있었다. 섬세한 것 같다.

  '이비'가 '브이'를 만나서 바뀌어가는 과정이 신기하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브이가 이비를 갇혀서 고문 당하는 것처럼 속이는 부분이겠고, 또 하나는 브이의 죽음 이후 이비가 스스로 브이가 되어 변화의 물꼬를 트는 부분이겠다. 전자는 어떻게 보면 타의에 의한 깨우침이었는데 후자는 이비 스스로의 선택이라 그런지 요 변화가 더 마음에 들었다.

  브이 캐릭터를 뭐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시스템에 의해 핍박받다가 그 시스템을 부수어 나가는 인물. 어떻게 보면 미친놈이지만, 딱 제정신이 아니라기엔 더 깊은 밑바닥의 이상이 보였다. 상징적이면서도 단순히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고. 이래저래 불쌍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싫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정떼기 힘든 캐릭터였다.

  재미있었음!
채식주의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한강 (창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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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이 실려있는 소설집. 세 편이 각기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단편이면서 동시에 연작.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세 편을 같이 읽는 편이 좋다.

  사실 읽으면서 재미 있었고 흥미롭다 생각했지만, 동시에 아 이거 과제로 읽은 소설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도 마구 했다. 가끔 이런 소설들은 내가 이해를 못한다는 기분에 미친듯이 불편해진다. 그렇지만 재미있으니까.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이 제일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선선하니 마음에 들었던 건 '채식주의자' 쪽. 형부나 언니는 영혜와 관련되거나 혹은 영혜의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는 영혜의 변화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안위와 체면만을 생각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는 뻔한 인물이었다. 널리고 널린 그런 평범한 인물이라는 게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평범하니까. 그리고 '채식주의자'쪽은 영혜의 변화가 극적으로 보여지고, 영혜 내면의 트라우마가 꿈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보이기에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고 할까.

  '몽고반점' 쪽은 반면 이미지는 강렬했지만 영혜의 심리를 잘 모르겠다는 느낌... 아 그래도 형부라는 인물의 속마음은 드러나긴 하지만. 난 이 형부 진짜 싫었다. 꼴같잖아. 예술에 눈이 멀었고 이미지에 눈이 먼 건 알겠는데 그러면서 현실 감각은 땅에 처박았나? 영혜 언니 말대로 진짜 나쁜새끼다. 아무리 포장하고 감싸고 변명해도 그래서는 안됐다. 여튼 이모저모 불편한 구석이 강했다. 그런 심리를 이해는 하면서도 으... 그래도 안돼. 그래도 그래선 안돼.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게 하는.

  '나무 불꽃'은 가장 이해가 안됐다는 느낌인데... 내가 이해한 방식을 굳이 억지로 털어놓을 부담감이 없으니까ㅋㅋㅋ 느낌만 말하자면 참 애처로웠다. 현실을 묵묵히 받아내던 두 사람이 어떻게 변화했느냐, 그런 현재 못습을 보고 있자니까 참 그랬다. 영혜는 현실을 버리고 나무가 되어버리는 쪽을 선택했고, 인혜는 자식탓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과거를 노려보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두 자매의 기본 바탕이 되는 트라우마가 같아서 그런가 그걸 다루는 둘의 방식이 흥미로웠음. 아 물론 더 피해를 입은건 인혜의 말대로 영혜 쪽이었지만.

  여튼간에 재미있었다. 이거 모티프가 한강 자신이 썼던 단편 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서 확장한 거라는데... 마침 그 책도 샀으니 곧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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