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이탈리아소설
지은이 알베르토 모라비아 (열림원,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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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었는데 읽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어디서 줄거리 요약만 듣고 바로 산 거였다. 요약이라 함은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와 헤어지려 하는데, 그 여자 쪽에서 먼저 멀어지려 한 순간 사랑이 불타오른다' 정도 였고, 내용 또한 다르지 않다.

  '어머니가 돈이 많고' 자신은 부자가 아닌 주인공 디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초반에 묘사되는 디노가 느끼는 권태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탁월해서 이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디노는 서른을 넘어서까지 인생에 무료함을 느낀다. 그가 느끼는 권태는 고질적인 병인데, 모든 것이 지겹고 귀찮기만 하다는 이 태도는, 부자가 아니라는 디노의 말과는 달리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집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며 화가로 독립했지만 그림에 열정이 있지도 않고, 성공한 것도 아니고, 결국 어머니에게 약간의 돈을 매일 받고 있는(나는 디노가 그렇게아 어머니를 거부하면서도 막상 아버지처럼 떠나지못한다는 것이 우스웠다.) 디노의 일상에 무슨 절박함이 있느냔 말이다. 디노에겐 삶을 하루하루 투쟁해 가는 절박함이 없고, 또한 항상 무언가를 쉽게 얻어왔기에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 또한 없다. 그러니 권태를 느끼게 될 수밖에...

  이런 디노의 권태를 완전히 불살라 버리는 건 체칠리아이다. 사실 디노는 처음엔 체칠리아를 그렇게 대단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그 자신이 계획했던 완벽한 이별이 체칠리아로 인해 부서지게 되자 상황이 달라지고 만다. 체칠리아를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참 잘 묘사했다 싶어서 웃고 말았는데, 뒤로 갈수록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들이 줄줄이... 난 체칠리아 보면서 무슨 소시오패스인 줄 알았다.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그걸 태연히 감추고, 증거를 잡아 추궁하면 순순히 사실을 털어 놓으면서도 잘못한 줄을 몰랐다. 오히려 디노에게 둘 다 사랑한다고 말하질 않나... 여러모로 신기한 여자. 일종의 팜므파탈이었는데, 썩 마음에 드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머리를 쓰고 재고 따진다기보단 생각없이 행동하는구나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거나, 감정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하더라도 이해하지는 못하는 타입이었다. 병이 들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두고도 별로 슬프게 생각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여자는 틀림없는 소시오패스...

  디노는 자신이 체칠리아를 향한 사랑 때문에 죽은 노화가 발레스트리에리와 닮아간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을 관두지 못한다. 오히려 집착은 더욱 더 심해지고, 노화가가 걸었던 길인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그 길을 밟아갈 뿐이다. 비정상적인 관계가 계속되지만 그는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에게서 권태를 느껴야만 모든 것을 관둘 수 있는데, 그녀는 그가 권태로울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일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시간을 거의 주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데에서 기인하는데, 체칠리아가 입으로 사랑을 말해도 그건 디노에게 더 이상 안정을 주지 못한다. 디노는 그녀를 잡아 그녀를 일상적인 그 무언가로 만들려 하지만 그건 불가능 한 일이다. 결국 디노는 앞으로도 자기를 갉아먹으며 그녀를 사랑하게 되겠지. 권태를 다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심리 변화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고, 진행도 재미있다. 권태와 그 외 다른 감정들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다만 번역이 약간 거슬렸는데, '다르다'와 '틀리다' 정도는 제발 구분 좀 해라... 그리고 이건 편집자 실수겠지만, '안 되요'라고 쓰지마 제발!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무엇인가 하기를 강렬히 원하면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으면 마치 샴쌍둥이처럼 하기 싫은 일이 동시에 내 눈앞에 쌍으로 나ㅏ났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지만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 틀어박혀 있기도 싫었고 외출하기도 싫었다. 여행을 하기도 싫었지만 로마에 계속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리지 않고 싶지도 않았다. 깨어 있고 싶지도 않았지만 잠을 자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을 하고 시지도 않았지만 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고,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으며,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가끔씩 이런 권태가 극심해질 때면 혹시 내가 죽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사는 것을 내가 너무나 혐오스러워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모든 일이 음울한 춤처럼 쌍을 이뤄 교대로 내 머릿속에 침투해 들어왔는데,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가 종종 생각했둣이, 나는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을 그렇게 원치 않았듯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지도 않았다.

『권태』, 알베르토 모라비아, 열림원, 2005, p. 31
캐리(스티븐킹전집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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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역시 다류에게 빌려서 읽음.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썩 취향이 아니긴 했는데 그래도 좀 더 읽어보고 취향인지 아닌지 알아야겠다 싶어서. 캐리는 데뷔작이기도하고, 워낙 유명해서 더 재미있을 줄 알았다.

  ........근데 왜 더 재미없어........OTL

  읽으면서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을 (또!) 함. 원체 공포류를 즐기지도 않는 성향이 작용한 거 같은데, 아니 그렇다 쳐도 이걸 읽으면서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냥 짜증이 퐁퐁 샘솟았을 뿐... 장르 소설이 취향이 아닌가. 그래도 어떤 종류들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공포가 취향이 아닐 지도... 뭐 뼈대 이야기도 내겐 흥미롭지 않긴 했다. 염력이라는 소재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게 주요점은 아니었다만.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고 집안에선 기독교 근본주의자 엄마에게 시달리는 캐리에타 화이트가 주인공. 불운했던 캐리가 자신의 염력을 사용해 마을에 불러 일으키는 재앙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사건 되시겠다. 이미 이야기 시작할 때 시점은 사건이 다 끝난 뒤. 서술은 회고하는 듯한 내용이고, 마치 실제 사건처럼 보이도록 뉴스 기사 인터뷰 같은 것들을 삽입해 놓았다. 이건 그 당시에는 신선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 봐서는 별로 그런 거 모르겠고... 피를 사용한 상징은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더라.

  인물들이 대부분 짜증나지만 (그 캐리조차) 가장 짜증나는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캐리의 엄마. 부모가 자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더라. 기독교 근본주의자 캐릭터는 언제 봐도 좋아할 수 없는 건데, 이걸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부모라는 역할로 마주치게 되니까 혐오의 극치였다. 크리스는 완전 짜증나고 철없는 애였고... 수지는 약간 위선적인 느낌도 있었지만 뭐 나쁜 느낌은 아니었던 듯. 제일 안된 건 토미. 하는 짓 보니까 애도 착하고 그렇던데 무슨 죄야... 캐리라는 캐릭터는, 그래. 음. 분명히 내 옆에 있어도 내가 잘해줄 거 같진 않았다. 그런데 그 애를 그렇게 의심과, 불안과, 자기열등감으로 몰아넣은 건 걔 엄마인게 분명해서... 또 짠하고, 캐릭터 보면 여러 생각이 들더라. 원래 한 가지 사고를 계속 주입당하면 거기서 벗어나기 되게 쉽지 않은데 일탈을 시도했단 점에선 어떤 의미로 대단하기도 했다. 다만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불안과 불신이 폭발하게 된 건 아쉽다.

  사건 자체는 흥미로울 게 못 되었고, 그보다는 캐리라는 캐릭터가 형성된 과정이나 캐리 엄마 캐릭터와 캐리의 관계, 이런 게 도드라지고 재밌더라. 그런 부분이 오히려 더 공포였고...

  빠르게 읽었고 앞에 읽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재미없지는 않았는데, 또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다 싶었던 책.
새벽의나나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박형서 (문학과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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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누네 집에 있길래 빌려온 책. 이전에 추천받았었는데 그 때 당장 사진 않았고 나중에 읽어야지 생각했었다. 지누 책에서 발견하고 첫장을 넘겼는데, 느낌이 아주 좋아서 바로 빌려옴. 그래도 그 때 몇 장을 넘길 때만 해도 이 소설의 배경이 태국인 지 몰랐다. 그냥 신기한 외국 이름이 나오기에, 어, 외국인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인가? 싶었다. 사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또한 겪어내는 인물인 '레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이긴 한데, 그보다는 태국의 홍등가 '소이 식스틴'에 얽힌 삶의 이야기들이라고 하는게 옳겠다. 태국 홍등가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자세해서 처음에는 아니 대체 이걸 어떻게 자료조사했지 싶었을 정도. 그 곳에 가서 살기도 했다는데 그래도 참 세세하다.

  '새벽의 나나'에서의 이야기의 진행은 꼭 현재에 국한되어 있지 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치중해 있다. 보면 꼭 삶의 연대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작가가 소이 식스틴을 대표하는 인물인 '지아-플로이-라노' 로 이어지는 연대기를 상상했다가 플로이의 시대를 쓴 것이라고. 지아와 라오의 이야기도 나오긴 하는데 비중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다.

  이야기엔 적절히 환상이 가미되어 있다. 그게 너무 자연스레 녹아있어서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간혹 흐트러진다. 환상조차 실제같다. 죽어버린 솜의 영혼이 자꾸 출몰하여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 그의 남편인 샨이 식물인간이 되어 금요일에만 깨어나는 것, 우웨의 몸집, 아잇의 죽음 묘사... 모든 것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것 마냥 그려졌다. '소이 식스틴'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말하고 있는 삶의 진실성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강조되는 느낌을 주어서 신기했다.

  아프리카로 떠나던 중이었던 한국인 청년 '레오'가 태국에 잠시 들렀다가, 소이 식스틴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플로이'를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독자는 소이 식스틴 내부의 삶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레오는 소이 식스틴에서의 이방인이었기에 그들 중 일부가 될 수 없고, 그런 레오의 시선을 겪게 되는 독자 또한 그들을 이해한다기 보다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레오 1인칭은 아니었지만 진행이 대체적으로 그랬다.

  소이 식스틴과 엮인 삶은 결코 아름답고 행복하지 못하다. 잠시 거쳐가는 여행자들만이 행복을 잡았다 갈 뿐이다. 레오는 '반' 여행자 였기 때문에 적절한 불행을 가졌고, 또 그만큼 그걸 쉽게 떨쳐낼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 당당한 플로이조차도 불행했다. 그녀가 가진 건 약간의 자존심과 알량한 숭배의 시선 뿐 실제로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본다. 늙은이 욘도 그랬고, 임신한 채 죽어간 까이도 불행했다. 그나마 자유로워 보였던 리싸는 너그러운 남편 마코와 함께 소이 식스틴을 떠나갔지만 교통사고로 죽어버렸다. 딸의 죽음을 자초해 무거운 몸으로 소이 식스틴에 눌러앉게 된 독일인 우웨, 진실된 사랑을 원했지만 스스로 그것을 잘못 판단하여 떠나보내고 섹스돌이 되어버린 콴, 콴을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어울리는 방식의 사랑을 알지 못했던 에릭,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위해 살다가 식물인간이 된 샨, 죽어서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던 솜. 플로이를 너무나 사랑했던 스웨덴인 유하 교수. 이태리 남자의 말을 믿고 성전환 수술을 했지만 버려진 수진, 소이 식스틴의 사람에게 가끔은 경멸받는 까터이 나왈렛. 모두가 불행한 줄 모르고 불행했다. 소이 식스틴의 삶이란. 그 처절함이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다가와 읽힌다는 게 슬퍼지더라.

  레오가 그렇게 미친듯이 사랑했지만 얻지 못했던 게 플로이. 아직도 플로이의 속을 잘은 모르겠는데, 자존심이 가장 크게 얽힌 문제가 아닌가 뭐 그렇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레오의 방식은 정말로 멍청했다. 플로이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레오가 실질적으로 플로이에게 해줄 수 있었던 건 알량한 돈 몇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믿음도 주지 못하는 남자가 비위를 거슬리게 했으니까. 행복한 전생 이야기는 비참한 현실을 더 드러내줄 뿐이다. 게다가 레오는 여행자였다. 언젠가는 떠나갈. 소이 식스틴의 창녀들은, 특히나 플로이는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니까. 그래서일까... 일상에서 벌어지는 그냥 사고 같았던 플로이의 죽음은 너무나 플로이 답더라.

  지아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 플로이의 시대도 갔고, 새롭게 라노의 시대가 오겠지만. 이미 많이 변해린 소이 식스틴의 안에서 라노가 어떻게 그녀의 시대를 알아갈지 궁금해졌다. 읽을 수 있으며 좋겠지만, 글쎄.

  레오는 우웨가 했던 말을 되씹어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말한 건 아무래도 실수였다. 그 자신은 우웨와 너무나도 달랐다. 저에게 여행인 것이 우웨한테는 유배였다. 저에게 가볍게 흘러가는 풍경인 것이 우웨한테는 생존의 엄숙한 배경이었다. 자신은 날렵하며 자유롭고, 우웨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인간으로 그 거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토록 다른데 무슨 수로 이해한단 말인가? 인간은 그 자체로서 각각 하나의 우주다. 같은 태양계라 해서 화성이 지구를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가 아니었다. 레오가 소이 식스틴에서 그간 줄기차게 해온 작업은 이해가 아니라 해석이었다. 만약에 멋대로 남을 해석하는 대신 고스란히 상대에게 이입된다면, 저말로 이해한다면, 거기에는 사랑도 증오도 끼어들 틈이 없다. 상대의 즐거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며 상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그건 사람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웨가 한 말은 그런 의미였다.

박형서, 『새벽의 나나』, 문학과지성사, 2001, p. 392
톰고든을사랑한소녀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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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류가 빌려줘서 읽기 시작. 스티븐 킹 소설은 이게 처음인듯? 영화화 된 건 영화로 좀 봤는데, 책은 그 전에 읽은 기억이 없다. 아 작법서라고 해야할까, 에세이에 가까웠던 '유혹하는 글쓰기'는 읽어보았음. 그건 재미있어 보여서 샀는데 에세이로서 재미있었다. 그래서 아무튼지간에 소설은 이게 처음.

  잘읽힌다. 속도감이 잘 붙는 글이었다. 문득문득 너무 가벼운 느낌에 빈 구석이 있단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문제될 거 없었다. 다만 내가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생각했던 건 '내가 왜 이걸 읽어야 하지?' 였다. 9살박이 트리샤의 고난이 내게 썩 와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왜 이 애가 괴로워하는걸 봐야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생각할 거리를 그렇게 많이 주지도, 그렇다고 이야기로서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후자는 취향 문제에 가깝다.) 생각할 거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고 그냥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읽었다. 교훈은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 있읍시다 일까... 애를 놔두고 한눈을 팔지 맙시다? 굳은 의지를 가집시다...? 의미를 으려면 찾기는 쉽다. 작가의 의도가 텍스트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남에도 확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음 역시 이건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시종일관 트리샤를 지켜보던 '그것'의 정체는 은근히 김이 샜다. 물론 그게 곰은 아니지만, 곰의 형상을 한 무언가이지만... 내겐 부족해. 내게 더 설명을 해줘.

  내가 좋아할 만한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다. 혼자 떨어진 극한상황에서의 사고방식, 행동 뭐 이런 건 재미있었다. 특히나 그게 내가 더이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된 어린이일 때에는.
호빗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판타지소설
지은이 J. R. R. 톨킨 (씨앗을뿌리는사람,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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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빗 영화화가 되기 전에 반지 시리즈를 다 읽어야지 하고 읽기 시작함. 생일선물로 기무니에게 반지의 제왕 전권을 받았고, 호빗은 반지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샀다. 호빗부터 읽기 시작. 지루할까 걱정했는데 생각외로 술술 읽혔다. 반지보다는 스토리가 좀 작고 오밀조밀한 맛이 있는 듯.

  하루 아홉끼의 식사를 먹고, 따뜻한 햇볕을 받는 것을 낙으로 삼는 안락한 삶을 살던 호빗 골목쟁이네 빌보가 겪는 모험 이야기. 마법사 간달프를 만나 난쟁이들의 보물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뭐 그런 이야기인데, 전체적인 여정이 험난한데도 불구하고 읽으면 마냥 귀엽다. 주인공이 빌보라는 작은 호빗인것도 그렇고, 난쟁이들과의 투닥거리는 관계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서술이 거칠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전투의 비극마저도 약간은 상쇄될 지경이었음. 근데 뭐 처음엔 동화처럼 썼다니까... 그리고 이 이야기의 무게에는 이 정도가 딱 적당한 듯 했다.

  빌보 너무 착함... 이 호빗은 너무 선량해서 속이 탈 지경이었다. 하는 짓도 귀엽고, 착하고 뭐 그래서 별로 책잡을 구석이 없었다. 계속해서 현명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보기 좋았음. 난쟁이들은... 뭐 이런 불평많은 종족이 있나! 하나씩 잡고 때려주고 싶을 때도 많았음. 고집불통 소린..ㅡㅜ 죽을때 되어서야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마라ㅋㅋㅋ 그래도 뭐 본성자체가 악한 애들은 아니고 그냥 불평많아보이는 애들이었다. 나름 협동하고 이러는 거 귀여웠음. 괜히 난쟁이들 때문에 용한테 공격받은 호수마을 사람들은 눈물뿐이야... 그래도 좋은 지도자 새로 만나서 잘 살아나가겠지. 요정들은 좀 꽉막혀 보였고(막판쇄신이 있었지만)... 베오른은 고지식하면서도 귀엽고 멋이 났습니다. 여러 다양한 상상의 캐릭터들 보는 재미도 한 몫 단단히 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동화같은 판타지. 그렇다고 주제의식이 가벼운 것은 아니고, 오랫동안 읽히는 이유도 알법한 소설이었다. 재미있게 읽음. 반지 시리즈를 읽기 위한 발판정도로 생각했는데, 요 이야기 하나만 봐도 즐거웠다. 영화 버전도 어서 보고싶음.
바람이분다가라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한강 (문학과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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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까 했었는데 지누가 빌려줘서 보게 되었다. 읽으면서 계속 안 사길 잘했음...이었는데 막판가서 손을 오들오들 떨었다.

  읽는 동안 한강은 읽을 수록 나와는 맞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 두 개는 정말 너무 취향이어서 발버둥쳤는데, 문체 자체가 나와는 썩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너무 감성적이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듯한 글은 크게 재미를 못느낀다. 집중해서 읽지 않았다는 소리는 아니고 재미도 있었지만,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뭐 그런 느낌?

  이 모든 걸 뒤집어놓은게 마지막의 마지막이었다. 아 진짜 한강 소설을 보면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욕망, 혹은 삶에 대한 끈질기고 억센 집착. 가장 마지막에 이정희가 결국은 버티고, 또 버텨 내는 근원은 그녀에게 집착이 있기 때문에. 이미 죽어버린 친구 인주의 모든 것을 지켜내야겠다는 믿음이 있어서.

  주인공 이정희가 서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굳게 믿고 모든 것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시선을 끈다.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이 소설의 진행은 진행되는 이야기의 흥미 가운데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있는 기억을 헤집어 모를 감정들을 이끌어낸다. 캐릭터들은 모두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로든 매력적이었다. 이정희 본인의 엄마 이야기, 혈우병이 있는 인주의 삼촌, 알콜중독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던 인주의 엄마, 인주의 딸 민서, 상담의인 류인섭 소장. 그리고 강석원. 단순히 지금의 일들이 현재의 인물들의 일로 머물지 않고 과거와 얼키설키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민한 성격인 이정희는 썩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읽다 보니까 괜찮아지더라. 처음에는 너무 이정희의 행동들이 너무 심하다 싶었고, 또 아무런 증거 없이 막무가내로 믿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내가 이정희와 서인주 사이의 유대를 너무 얕보았던 것 같다. 그런의미에서 처음엔 명석해보이던 강석원이 보이는 모습은 정말 추하기 짝이 없어서 실망. 고작 그 정도 사람이었다니,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의 환상대로 서인주를 포장하려 했을까.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르고 읽는데 읽는 동안엔 그런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오히려 지리멸렬한 인간관계가 점액처럼 묻어 나오는 기분에 아 이게뭐야, 했었는데 막판가서는 꽤 카타르시스가 컸다. 재밌었다. 내가 죽으면 내 죽음의 원인을 쉽게 넘어가지 않아 줄 친구는 누가 있을까. 뭐 고런 생각을 잠깐 했음.
단테의신곡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이탈리아소설
지은이 단테 알리기에리 (느낌이있는책,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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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누가 샀대서 빌려읽기로 했다. 보통은 지옥, 연옥, 천국 편 3권으로 발행되어있는게 정석이지만 이 책은 이야기 식으로 이루어진 한 권짜리 책. 아마도 요약이나 생략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이야기식이라 읽기는 수월하긴 했다. (성경 볼 때 하는 생각인데 이야기 식으로 풀어진 거 없나?) 물론 시 형식으로 봤을때의 감동은 없었겠지. 난 그저 내용만 알게 된 것이다.

  여튼 그래도 호기롭게 펼쳤다만은, 아... 재미 없어... 지옥편이 가장 재미있고 갈수록 재미 없어진다. 역시 사람은 잔인한 데 눈이 더 돌아가긴 하는건지 뭔지. 천국편이 재미가 제일 없었던 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책 전반적으로 깔린 사상도 영 마음에 안들고.

  아무래도 기독교 교리나 그런 사상을 깔고 있는 책이다 보니까, (무신론에 가까운) 나랑은 되게 안 맞았다. 또 시대배경이나, 문화를 알고 읽으면 모를까 그런 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로서는 내용을 보고 이게 뭐야, 싶은 부분이 있을 수밖에. 지옥 편에서 루시퍼의 입안에 물린 것이 유다, 브루투스, 카시우스인걸 보고 좀 피식했으니 말 다했지. 기독교 사상에 입각한 전개가 나와는 영 맞지 않았음. 신의 존재도 모르던 사람들이 지옥에 있다니(그 베길리우스가) 이게 무슨 개소리야... 물론 천국편에 보면 신의 존재를 모르던 사람들도 천국에 있기는 한데, 이 기준이란 것도 영 마음에 안들고. 연옥편에서 제일 기가 찼던건 현실의 사람들의 기도가 연옥을 빨리 빠져나오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거였다. 자기 죄를 씻는데 왜 남이 기도해야 돼...? 이런 걸 따지고 들면 내가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이렇게 느껴버렸으니 별 도리가 없다.

  읽으면서도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을까 고민했음. 그냥 참.
벨벳애무하기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세라 워터스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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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니에게 빌려서 읽기 시작. 처음에는 약간 시큰둥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역사소설이 재미있을까?) 와... 1장 읽으면서 가슴 터지는 줄 알았다. 난 내용 하나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이건 낸시 애슬리의 레즈비언으로서의 성장기. 그렇지만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낸시 자체가 소설 끝날즈음엔 꽤 철이 들어있다. 일단 얼굴만 밝히지 않아요... 아무튼 끝까지도 꽤, 아니 사실 엄청 재미있었다.

  1장, 2장, 3장으로 나뉘어서 낸시의 인생이 얼마나 널뛰며 변화하는지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1장이 제일 재밌긴 했다. 로맨스 소설 읽는 기분이었다. 레즈비언판 로맨스 소설... 심지어 잘 쓴. 남장 가수였던 키티 버틀러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쫓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기까지의 장면은 진짜 여느 로맨스 소설 뺨치는 긴장의 연속. 이게 낸시의 시점이다 보니까 감정이 절절하게 전해들어와서 또 좋더라. 촌뜨기 소녀였던 낸시가 사랑때문에 런던에 가며 인생이 확 바뀌어나간다.

  다이애나를 만나기 전 까지 낸시의 삶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고 어찌 보면 비참하기 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낸시에게 완벽한 풍요와 향락을 가져다 준 다이애나를 만난 뒤의 일이 썩 즐겁게 보이지만도 않았다. 돈 많은 과부의 애인이 된 낸시의 모습은 완벽한 애완동물이었다. 예쁨받지만 자신의 의견을 낼 수도, 존중받을 수도 없었다. 화를 낸다 치더라도 한낯 어린애의 화처럼 치부됐을 뿐이지. 제나와 그렇게 사고를 친 게 잘했다는 말하려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낸시 자체가 썩 도덕적이지 않은데다 캐릭터가 철 없을 나이의, 철 없는 애인지라 좀 열받게 하는 구석이 간간히 있긴 했다. 그래도 그렇게 된 데에는 다이애나의 탓이 절반은 넘는다고 생각. 뭐 낸시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긴한데, 이 부분은 그랬다.

  플로렌스를 만난 뒤 낸시는 레즈비언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완성된다. 그렇게나 철없던 그녀가 처음에는 살려고 발버둥치고, 플로렌스의 집에 들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탕아가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더라. 처음엔 플로렌스의 캐릭터 역시 썩 마음에 들진 않았는데(아 죽은 사람 붙잡고 살다니 이게 무슨 말이요), 갈수록 좋아졌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질투하는 모습도 나름 귀여웠고... 둘 사이 연애가 크게 꼬이지 않아서 다행. 서로 솔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난 굉장히 재미있게 봤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난감할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생각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어서. 퀴어문화에 조금 열려있지 않으면 난관일 듯. 그걸 감당할 사람에게라면 추천. 너무너무너무 재밌다. 핑거스미스도 완전 기대중.
멋진징조들(그리폰북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판타지소설
지은이 테리 프래쳇 (시공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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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한 삼주전에 읽은 거 같은데 아직도 왜 감상 안썼지. 까먹었네...

  재밌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산건데, 재밌긴 재밌었다. 요한계시록의 종말 이야기를 살짝 비튼 건데... 암울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바꾼 상상력이 마음에 들었다. 악마 아지라파엘과 크롤리의 몇천년 쌓인 우정의 모습도 좋았고, 적그리스도인 열한살 아담과 '놈들'의 모습도 귀여웠고. 그 외 어설픈 마녀사냥꾼들인 새드웰, 뉴튼과 예언자의 후예 아나테마의 이야기도 간간히 즐거웠다.

  전반적으로 영국식 유머? 서양의 유머감각이 묻어난다. 동시에 말하면 이 나라에 사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거나 금방금방 캐치가 안되는 유머가 많았다. 생각만치 즐기지 못해서 아쉽다. 기독교 교리를 삶의 바탕으로 삶고 있는 사람들이(믿건 안믿건)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게 느낄 것 같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를 다루며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 이야기가 쭉 이어지는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유머도 제대로 캐치 못하는데 이야기에도 집중이 안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하게 읽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냥저냥 즐겁게 봤음. 근데 산 건 돈 쪼끔 아깝다...
최순덕성령충만기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이기호 (문학과지성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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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거 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리고 첫 소설인 '버니'를 읽고 나서는, 어 이게 아닌데. 이런 느낌이 들었고. 같은 작가의 소설인가 의심하게 하더라. 분명 말을 풀어내는 방식은 비슷한데 더 무겁고 습윤한 느낌이었다.

버니
햄릿 포에버
옆에서 본 저 고백은 - 고백시대
머리칼 전언
백미러 사나이 -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간첩이 다녀가셨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독특한 형식으로 쓰여진 글들이 있는데 '버니'나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특히 그랬다. 버니는 랩 가사처럼 진행되는 서술이 인상적이었고, 최순덕 성령충만기야 아예 성경 문체. 버니 같은 경우는 내용이 너무 어두워서 그런가 그런 읊조리는 듯한 서술이 굉장히 불편하게 다가왔지만,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꽤 즐겁게 읽었다. 결국 내용의 차이인가.

  '갈팡질팡~'에서 보았던 시봉이 이 소설의 단편들에서도 보인다. '햄릿 포에버', '옆에서 본 저 고백은 - 고백시대', '백미러 사나이 -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렇게 세 편에 나오니 꽤 많이 나오는 편. 그렇다고 모든 단편의 시봉이 같은 시봉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시봉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입맛의 한 구석은 모두 같이 씁쓸하다.

  '머리칼 전언'이랑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이 소설집 안에서도 느낌이 되게 특이했다. 전설이랑 현대 이야기가 합쳐진 느낌이었는데,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는 결말까지 꽤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뭐 썩 좋진 않았다. 신기한데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도 둘 중 택하라면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간첩이 다녀가셨다'는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싶은 이야기. 그냥 현실적이었다. 좀 있을 법하고 소름돋는.

  난 좀 더 가벼운 느낌이 나는 '갈팡질팡~'쪽을 더 좋아한다. 그래도 다른 작가들 소설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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