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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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한강 (문학과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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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까 했었는데 지누가 빌려줘서 보게 되었다. 읽으면서 계속 안 사길 잘했음...이었는데 막판가서 손을 오들오들 떨었다.

  읽는 동안 한강은 읽을 수록 나와는 맞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 두 개는 정말 너무 취향이어서 발버둥쳤는데, 문체 자체가 나와는 썩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너무 감성적이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듯한 글은 크게 재미를 못느낀다. 집중해서 읽지 않았다는 소리는 아니고 재미도 있었지만,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뭐 그런 느낌?

  이 모든 걸 뒤집어놓은게 마지막의 마지막이었다. 아 진짜 한강 소설을 보면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욕망, 혹은 삶에 대한 끈질기고 억센 집착. 가장 마지막에 이정희가 결국은 버티고, 또 버텨 내는 근원은 그녀에게 집착이 있기 때문에. 이미 죽어버린 친구 인주의 모든 것을 지켜내야겠다는 믿음이 있어서.

  주인공 이정희가 서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굳게 믿고 모든 것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시선을 끈다.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이 소설의 진행은 진행되는 이야기의 흥미 가운데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있는 기억을 헤집어 모를 감정들을 이끌어낸다. 캐릭터들은 모두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로든 매력적이었다. 이정희 본인의 엄마 이야기, 혈우병이 있는 인주의 삼촌, 알콜중독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던 인주의 엄마, 인주의 딸 민서, 상담의인 류인섭 소장. 그리고 강석원. 단순히 지금의 일들이 현재의 인물들의 일로 머물지 않고 과거와 얼키설키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민한 성격인 이정희는 썩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읽다 보니까 괜찮아지더라. 처음에는 너무 이정희의 행동들이 너무 심하다 싶었고, 또 아무런 증거 없이 막무가내로 믿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내가 이정희와 서인주 사이의 유대를 너무 얕보았던 것 같다. 그런의미에서 처음엔 명석해보이던 강석원이 보이는 모습은 정말 추하기 짝이 없어서 실망. 고작 그 정도 사람이었다니,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의 환상대로 서인주를 포장하려 했을까.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르고 읽는데 읽는 동안엔 그런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오히려 지리멸렬한 인간관계가 점액처럼 묻어 나오는 기분에 아 이게뭐야, 했었는데 막판가서는 꽤 카타르시스가 컸다. 재밌었다. 내가 죽으면 내 죽음의 원인을 쉽게 넘어가지 않아 줄 친구는 누가 있을까. 뭐 고런 생각을 잠깐 했음.
내여자의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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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한강 (창작과비평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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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취향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망했다. '어느날 그는'과 '아기 부처'는 좋았는데 나머지는 썩 취향에 맞진 않았던 듯. 나중에 되팔 목록에 올릴 지 말 지 고민중이다. (으 그러기엔 '어느날 그는'이 걸려서.) 여튼 그래서 초반 두 소설을 읽고 나머지는 건성건성 넘기고 닫고 이러다 나중에서야 완료.

  한강 소설 읽으면 침울하고, 음울한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만 같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왠지 자연스레 힘없고 하얗게 마른 여자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그런 여자. 여튼 한강의 소설은 그런 게 있다. 굉장히 삶에 집착하면서도 또 쉬이 그걸 놓아버리려고 하는 느낌 같은 게. 아니 삶보다는 어떤 대상인가? 그 대상에 대한 욕구 때문에 삶을 이어가지만 그 대상이 없어진 순간 삶에 대한 의지도 한풀 사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혹은 그 욕망의 대상을 위해서라면 삶 같은 건 되게 하찮아지고 마는. 끈질기게 뭔가를 갈망하는 모습이 소설집 전반에서 묻어나왔다.

어느 날 그는
아기 부처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붉은 꽃 속에서
내 여자의 열매
아홉 개의 이야기 
흰 꽃
철길을 흐르는 강

  '어느날 그는'은 다류에게서 텍스트를 얻어 먼저 따로 읽어봤었는데 그 때 느낌이 되게 좋았다. 뭔가 비참하고 절절한 집착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민화'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삐뚤어진 방식을 택하지만 그게 꼭 악에서 나왔다기보단, 방법을 몰라서 택하게 되었다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고시원 골방으로 돌아왔지만... 결말을 보면 그건 비극적인 일만도 아니다. 그는 민화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결국 그 스스로의 인생을 찾게 되었으니까. 시작점이라도.

  '아기 부처'는 소재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감추려 애쓰는 남자, 그 상처 탓에 남자를 보게 되었지만 정작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자. 다른 여자에게 더 심한 상처를 받는 남자, 그리고 다시 남자와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자. 뭐 요런 구성 자체가 난 꽤 마음에 들었다. 상처입고 상처입다가도 결국 둘 밖에 남지 않는 느낌이 좋았다.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는 되게 비참하고 절절하다. 화자가 어린 소녀라서 더 그랬다. 그 소녀에게 독을 먹이고 같이 죽으려던 아버지의 심정이란 것도 볼수록 비참했고. 어머니가 외치던 '지겨워'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부녀가 찾아 헤매던 욕망의 대상인 어머니는 끝까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붉은 꽃 속에서'는... 나쁘진 않았는데 뭔가 체념하고 관조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해탈이라고 하나. 그래서 스님이 된 여자는 행복했을까. 이 소설 보면서 더 느낀 건데, 한강 소설 속의 남자들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참 드물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여자의 열매'는 채식주의자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길래 좀 기대했는데... 아 내가 뭘 기대한거지; 왜 밝은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채식주의자 만큼이나 무언가에 집착하고, 또 그 모습은 처절하게 아픈 모습이었다.

  '아홉개의 이야기'는 작은 토막글 아홉 개인데... 뭐 썩 마음에 안들지도,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간소한 이야기들이라 그런가 크게 다가오진 않았는데.. 그래도 '첫사랑'만큼은 좀 마음에 들었다.

  '흰 꽃'도 뭔가 근근히 붙잡고는 있는데 그게 엄청 희망적이진 않았고... '철길을 흐르는 강'도 마찬가지 느낌이 들었다. 둘 중 뭐가 더 낫냐고 하면 그나마 '흰 꽃'쪽을 택하긴 하겠다.

  음 모르겠다. 소재가 마음에 들었던 소설들은 좋았는데 나머지는 꾸역꾸역 집어넣은 기분이다. 난 밝고 희망적인 게 좋다. 아니면 내쳐지고 버려져도 끊임없는 욕망으로 삶을 붙잡으려 드는 모습이 좋고...

채식주의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한강 (창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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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이 실려있는 소설집. 세 편이 각기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단편이면서 동시에 연작.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세 편을 같이 읽는 편이 좋다.

  사실 읽으면서 재미 있었고 흥미롭다 생각했지만, 동시에 아 이거 과제로 읽은 소설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도 마구 했다. 가끔 이런 소설들은 내가 이해를 못한다는 기분에 미친듯이 불편해진다. 그렇지만 재미있으니까.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이 제일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선선하니 마음에 들었던 건 '채식주의자' 쪽. 형부나 언니는 영혜와 관련되거나 혹은 영혜의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는 영혜의 변화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안위와 체면만을 생각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는 뻔한 인물이었다. 널리고 널린 그런 평범한 인물이라는 게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평범하니까. 그리고 '채식주의자'쪽은 영혜의 변화가 극적으로 보여지고, 영혜 내면의 트라우마가 꿈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보이기에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고 할까.

  '몽고반점' 쪽은 반면 이미지는 강렬했지만 영혜의 심리를 잘 모르겠다는 느낌... 아 그래도 형부라는 인물의 속마음은 드러나긴 하지만. 난 이 형부 진짜 싫었다. 꼴같잖아. 예술에 눈이 멀었고 이미지에 눈이 먼 건 알겠는데 그러면서 현실 감각은 땅에 처박았나? 영혜 언니 말대로 진짜 나쁜새끼다. 아무리 포장하고 감싸고 변명해도 그래서는 안됐다. 여튼 이모저모 불편한 구석이 강했다. 그런 심리를 이해는 하면서도 으... 그래도 안돼. 그래도 그래선 안돼.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게 하는.

  '나무 불꽃'은 가장 이해가 안됐다는 느낌인데... 내가 이해한 방식을 굳이 억지로 털어놓을 부담감이 없으니까ㅋㅋㅋ 느낌만 말하자면 참 애처로웠다. 현실을 묵묵히 받아내던 두 사람이 어떻게 변화했느냐, 그런 현재 못습을 보고 있자니까 참 그랬다. 영혜는 현실을 버리고 나무가 되어버리는 쪽을 선택했고, 인혜는 자식탓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과거를 노려보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두 자매의 기본 바탕이 되는 트라우마가 같아서 그런가 그걸 다루는 둘의 방식이 흥미로웠음. 아 물론 더 피해를 입은건 인혜의 말대로 영혜 쪽이었지만.

  여튼간에 재미있었다. 이거 모티프가 한강 자신이 썼던 단편 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서 확장한 거라는데... 마침 그 책도 샀으니 곧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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