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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다윈의시대 |
카테고리 |
과학 > 과학이론 > 과학이론/과학철학 |
지은이 |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세계사, 20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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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스폰서 배너 있는 걸 보면 알듯, 위드 블로그에서 선정되어 읽은 책. 따라서 평소보다는 약간 정성을 들여 쓰기로 마음먹었다. 리뷰용으로 책을 받았으니 그 정도 매너는 있어야겠지. 사실 책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 말고 일단 책 형식. 250페이지 가량의 책이니 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진화와 창조를 제시하고, 대놓고 무신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 치고는 얇다. 심지어는 자간도 꽤 넓어서 200%를 뛰어넘는다. (난 이건 편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두께가 빈약하게 된다고 해도 자간이 200%이상이 되는 책은 좀 지양해야 하지 않나? 가격이 13000원이나 되는 책인데, 어차피 얇은 책 페이지나 빼서 가격을 낮추는게 나았을 것 같은데.) 그만큼 전문적으로 파고 들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이 책은 너무 무겁지 않게, 가벼운 수준으로, 그러나 객관적인 시선을 취하려고 노력하며 쓰여져 있다. 이 책의 (때론 지나친) 무겁지 않음은, 이 책이 EBS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던 <신과 다윈의 시대>의 내용을 다시 엮은 것이라는 데 기인한다. 방송으로 나왔던 만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글이 쓰여졌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좀 더 진화론, 혹은 창조론, 혹은 무신론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책 내에 주석으로 쓰인 수 많은 참고서적을 보면 될 것 같다. 책 자체는 이런 논쟁을 알아보려 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딱 적당한 수준의 분량이었다.
방송으로 방영된 것이니만큼, 이 책은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과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양 쪽의 주장을 평등하게 싣고 있다. 그런 주장들도 다양한지라, 강경한 쪽과 중도적인 쪽의 시선이 잘 담겨 있고, 각 학자 혹은 신학자들의 생각이 고루 드러나 있다. 보다보면 같은 이론을 믿고 있음에도 자신의 신념이나 성격 등에 따라 미진하게 그걸 주장하고 있는 듯한 분들도 계시더라. 꼭 같은 이론을 주장한다고 같은 '방식'으로 주장하는 건 아니라서, 그런 시선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난 신을 믿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신론을 주장하기에도 약간 어정쩡한, 회의론자에 가까운 편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어느 하나를 믿으라면 나는 반드시 진화론을 택하겠지만, 그 진화론의 이론에 '아직까지는' 결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길고 거기엔 빠진 미싱 링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족한 부분을 창조론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책에서도 여러번 주장된 바와 같이, 창조론은 너무나 종교적인 관점이고 그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쪽의 시선을 읽으면서 최대한 중립적인 관점을 가져보려 했지만... 글쎄. '지적 설계론'의 이론들은 내게 도무지 와닿지가 않는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우리가 보지 못한 초능력자 하나가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니.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아무리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말을 읽어도 논리적 오류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묻고싶었다. 그렇다면 그 지적설계자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해 그들은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대답밖에 내어주지 못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부족한 진화론이 내겐 나았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여러 사람들이 있다. 강경하고 똑부러지게 제 의견을 주장하는 자가 있고, 좀 온건한 타입으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타입도 있었다. 리차드 도킨스 같은 자가 전자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라면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의 저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하고, 그의 명쾌하고 딱부러지는 설명방식은 이미 널리 퍼져 있으니까. 나는 그의 인터뷰를 보는게 즐겁지만 그의 방식에 완벽하게 동조하지 않는다. 나는 스티브 존스의 인터뷰에 꽤 공감했다. 그는 지식에 관련된 부분에선 딱부러지게 지적설계론을 부정한다. 마이클 베히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그의 무지를 보여줄 뿐이라고. 그러나 종교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미진하면서 또한 종교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놀라웠다.
저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상어와 호랑이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엄청난 강적이지만 상대방의 영역에서는 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과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논박할 수 있다며 종교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종교는 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코란이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봤을 때 4억 년전의 진화론은 근거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럴 때마다 오히려 자신이 믿는 종교에 나쁜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내리기 전에 조금 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브 존스 인터뷰 中, 『신과 다윈의 시대』,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세계사, pp. 105-106
스티븐 존스가 말하길, '종교는 신앙 중심이지만 과학은 증거중심'이라고 하더라. 둘이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는거다. 나는 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그렇게 반박하고 싶어하는지, 과학자들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더라. 과학은 과학이고 종교는 종교일 뿐이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이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말이 왜 성서에 대한 모독이 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더라. 물론 모든 종교를 가진 자들이 이렇게 주장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학자들의 의견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는 게 지식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줬다면, 우리나라 각 종교분파들의 의견을 통해 사상적이며 철학적인 부분을 만족시켜 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불교야 원래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아닌데다가 세계관 자체가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지 않는걸 알고 있어서, 불교 쪽에서 진화론을 믿고 있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신기했던 건 천주교의 반응이었다. 개신교와 같이 신을 믿는 범주 안에 있으면서도 굉장한 비율의 신자가 진화론을 믿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천주교는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으며 (물론 내 입장에선 이게 매우 당연해 보인다만), 교황들은 성경을 과학적인 문서로 다루지 않았다는 거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새로운 지식을 통해 우리는 진화론을 가설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여러가지 연구 결과가 일치하는 것들이 그 증거가 됩니다.
이 말을 오경환 신부는 말 그대로 해석해선 안된다고 했다. 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말에 오히려 그 핀트가 맞춰져 있다고 한다. 베네딕토 16세의 말은 다음과 같다.
세계는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깊은 수준에서 볼 때 세계는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세계는 그 안에 함의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진화와 창조 가운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며, 진화와 창조를 동시에 믿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되, 신에 의한 진화를 믿는다고. 아직 세계의 시작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확실치 않은 이 때에 이 정도 믿음이라면, 그들이 믿는 것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개신교 측은 진화론이 확증된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그러나 이 말은 내게는 좀 어폐가 있어 보였다. 실제로 보여지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설령 진화론이 세계의 시작을 말하진 못하더라도,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진화의 증거가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완벽히 반대한다는 게 내게는 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슬람 쪽은 진화론에 강경히 반대하고 있더라. 이 둘 쪽이야 성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역시 이 쪽에도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애당초 진화론에 대한 것이 왜 종교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에 난 이런 싸움 자체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본다. 최종덕 교수의 말처럼 진화론은 과학의 입장이고 창조론은 종교의 입장이다. 둘의 범주가 전혀 같지 않기 때문에 싸움의 결론도 날 수 없다. 과학적인 입장에서야 진화론이 절대적으로 옳고, 종교적으로 해석하고자 든다면 진화론이 옳다고 믿을 수 있겠다.
마지막 부분에 있던 최종덕 교수의 인터뷰와 신을 믿는 과학자 윌리엄 필립스의 인터뷰가 둘 다 마음에 들었다. 철학적인 부분에서 지식을 충족시켜 준 것이 최종덕 교수의 인터뷰라면, 윌리엄 필립스의 인터뷰는 좀 더 마음에 와닿는, 친근한 구석이 있었다. 그 중 한 파트로 감상을 마무리하려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종교와 과학의 영역에 대해서, 그리고 종교와 과학이 각각 다른 종류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과학적 접근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이 단순한 생화학적 현상이라고 간주하며 인생을 살고 싶지 않겠죠. 우리의 삶을 설명함에 있어서 과학 이외에도 다른 가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과학적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종교인들이 성서를 완전히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성경에는 신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했다고 쓰여 있는데요. 과학이 이와 다르게 말했다고 해서 과학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는 성경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윌리엄 필립스 인터뷰 中, 『신과 다윈의 시대』,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세계사, pp. 247-248